Saint Hilarion the New의 Synaxarion, Dalmatoi 수도원의 대 수도 원장
Saint Hilarion the New의 Synaxarion, Dalmatoi 수도원의 대 수도 원장
그대는 정신적으로 기뻤고,
힐라리온은 몸과 마음으로 기뻐하였다.
여섯째 날, 힐라리온은 순수한 마음으로 올림푸스로 갔다.
복자 힐라리온은 카파도키아 출신으로 귀족 니케포로스 (802-811), 스타우라키오스 (811년 7월 26일-811년 10월 2일), 미카엘 랑가베 (811-813), 아르메니아인 레오 황제(813-820), 성상 파괴자 미카엘 말더듬이 (820-829), 성상 파괴자 테오필로스(829-842) 황제의 통치 기간 동안 살았다. 그의 아버지의 이름은 베드로였고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테오도시아였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황제에게 알려졌는데, 황제의 식탁에 빵을 주곤 했기 때문이다. 그들로부터 태어나 젖을 먹인 성인은 성스러운 글자를 주의 깊게 배우기 위해 학교에 보내졌다. 스무 살이 되던 해, 그는 복음의 처방에 따라 아버지, 어머니, 집안, 재물, 그리고 모든 세상 것들을 버리고 콘스탄티노플의 제로케포스 수도원에 입회했다. 그곳을 떠나 그는 달마토이 수도원으로 갔고, 그곳에서 위대하고 천사적인 도식을 받았다.
순종, 겸손, 고요함을 지닌 유명한 사람은 10년 동안 수도원의 정원에서 일했다. 그의 영혼에서 모든 정욕을 깨끗이 씻어 내고, 태양과 같은 미덕으로 그 영혼을 비추었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기적을 행하는 자가 되었고, 그를 괴롭히는 더러운 귀신을 한 젊은이에게서 추방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수도원의 대수도 원장은 그의 의지에 반하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사제로 만들었다. 1 년 후 대 수도 원장이 죽었을 때, 성인은 수도원에서 물러나 옵 시키온이라는 곳으로 갔고, 거기서 카타론 수도원으로 갔다. 수도원의 수도사들은 이 사실을 알고 당시 총대주교였던 성 니케포로스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총대주교는 귀족 니케포로스 황제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성인을 다시 데려오라고 촉구했다. 성인은 황제와 총대주교의 촉구에 순종하여 돌아왔고, 시노드에서 결정한 대로 그렇게 하는 것이 그곳의 관습에 따라 수도원장이자 대주교가 되었다. 성인이 그리스도를 본받아 그리스도의 양떼를 돌본 지 8년이 흘렀다. 아르메니아 황제 레오가 813년에 왕좌에 올라 거룩한 아이콘 숭배를 거부했을 때, 성 힐라리온은 황제 앞에 끌려 갔고, 그는 특정 주장과 약속으로 거룩한 아이콘 숭배를 중단하도록 설득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성인은 그를 무신론자이자 새로운 배교자 줄리안이라고 부르며 그를 꾸짖었다.
이 때문에 황제는 격분하여 그를 참을 수 없는 형벌을 많이 내리겠다고 위협한 다음 그를 감옥에 가두었다. 시간이 지나자 성인은 다시 한 번 그의 앞에 섰고, 그가 전에 했던 것과 같은 말을 그에게 했다. 그런 다음 그는 같은 생각을 가진 총대주교, 즉 카시테라스라고도 불리는 테오도토스 멜리세노스(815-821)에게 마치 설득하려는 듯이 넘겨졌다. 성인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여러 날 동안 어두운 감옥에 갇혀 고통을 겪었다. 또한 그에게 빵이나 물이나 다른 어떤 음식도 주지 말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그의 승려들과 제자들은 이 말을 듣고 황제에게 가서 "황제여, 우리에게 우리의 목자를 주십시오, 그러면 잠시 후에 우리가 당신의 뜻을 행하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황제는 이 약속에 속아 넘어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에게 성인을 주었다. 성인은 수도원에 머물렀고 이전의 고통으로 인해 거의 휴식을 취하지 못했기 때문에 감옥에 갇혀 있던 굶주림에서 해방되었다. 황제는 승려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고 오히려 그를 조롱하는 것을 보았을 때 승려들을 처벌하고 성인을 투옥했다. 그런 다음 그는 그를 도시 모퉁이에 있는 Phoneos 수도원으로 보냈고, 거기서 그는 더 많은 고통을 겪을 수 있도록 6개월 동안 감옥에 갇혔는데, 이 수도원의 수도원장은 거칠고 야만적이며 동정심이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황제는 성자를 황궁으로 데리고 가서 아첨으로 유혹하여 그를 속였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성인은 Kyklobios 수도원에 투옥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2년 6개월 후 성인은 그곳에서 풀려났고, 누메라라는 감옥에 갇혔다. 거기서 그는 가혹한 채찍질을 당했고, 프로틸리온이라는 요새로 추방되었다. 아르메니아인 레오가 그리스도의 거룩한 이콘을 조롱하고 땅에 던졌던 바로 그 교회에서 칼로 죽임을 당했기 때문에, 그의 사악한 영혼을 내쫓았기 때문에, 말더듬이 미카엘은 820년에 황제가 되었고, 성인은 감옥에서 풀려났다. 한 그리스도인 여자가 자기 소유물로 그를 후대하였으며, 그 여자는 7년 동안 그를 섬겼다.
829년 말을 더듬는 자의 아들 테오필로스가 황제가 되었을 때, 그 죄인은 성상들을 위해 이전의 모든 고해자들을 모아 투옥시켰다. 그런 다음 축복받은 힐라리온을 조사하여 황제의 명령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했다. 성인이 테오필로스를 무신론자이자 돌팔이라고 꾸짖었기 때문에 그는 117개의 나무 조각을 등에 지고 가야 했으며, 알로나 근처에 있는 아푸시아 섬으로 추방되어 프로이코니소스의 대주교 아래 있었다. 거기서 성인은 바위를 파서 작고 좁은 감방을 만들었다. 거기서도 기도로 물을 길어 내셨고, 거기서 8년을 보내셨다. 테오필로스가 죽고 그의 아내 테오도라가 콘스탄티노플의 모든 고해사제와 신부들을 유배지에서 불러 모으고, 거룩한 성화의 회복과 공경을 통해 정교회를 확립하고 옹호했을 때, 성 힐라리온도 유배지에서 풀려나 수도원을 되찾고 기적을 일으켰다. 그는 그 후 3년을 살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방법으로 제자들을 감독한 다음, 845년 70세의 나이로 주님께로 떠났다.
첫 번째 음색의 Apolytikion
주님의 말씀을 가꾸어 감람나무처럼 은혜로 꽃을 피웠도다. 신성한 미덕의 기름과 복된 힐라리온이여, 그대의 고백으로 그대는 그대에게 신실하게 부르짖는 자들을 기쁘게 하였나이다: 그대를 강하게 하신 그리스도께 영광이여; 네게 면류관을 씌우신 분께 영광을 돌리라. 당신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치유하시는 분께 영광을 돌리소서.
첫 번째 음색의 Kontakion
네가 불로 다툴 때에도 타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이슬이 너를 새롭게 하였음이라. 그대는 자연을 초월한 투쟁을 성취하는 것을 기뻐하였도다. 오 힐러리여, 그대가 지금 의인들 가운데 있으니, 우리를 기억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