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성숙한 사람인가? / 박명숙
한두 주 만에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다. 숨 막히게 덥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두꺼운 옷을 찾아 입는다. 자연도 적응하기 힘든지, 뉴스에서도 때아닌 벚꽃이 피어 사람의 시선을 끈다고 했다. 제철이 아닌 계절에 또 꽃을 보니 반갑기도 하면서, 그 꽃잎을 피우려고 나무가 고통을 두 번이나 겪는 것처럼 보여 애처롭기도 하다.
기후 변화만큼이나 종잡을 수 없는 아이가 있다. 기분이 좋을 때는 천사처럼 빛이 나는 소녀다. 음식을 먹거나, 자기 뜻대로 일이 돼 가거나, 잘한다고 인정해 주면 미스코리아 못지않은 얼굴이 된다. 음악에 관심이 있고 흥이 많아 공연장에 가는 걸 즐거워한다. 성격이 밝고 마음이 따뜻한 아이다. 내게 서운한 게 없으면 자기 머리카락을 내 얼굴에 대고 비비며 "예쁜 이모, 이모도 나 좋아?" 하며 살갑게 군다. 모야모야병으로 뇌 병변 시각장애인이 되었지만, 부모의 정성으로 걷고, 대화도 가능할 정도로 잘 자라가고 있다. 7년째 언어, 인지, 감각 치료를 꾸준히 받으며 재활해 온 덕분이다. 가기 싫다며 꿈쩍도 안 하는 아이 앞에서, 주저앉지 않고 한결같은 목소리를 낸 결과다. 비록 앞을 보지 못 해도, 익숙한 환경에서는 스스로 하는 일이 많다. 그래서, 걸핏하면 자기는 볼 수 있으니 가르쳐 주지 말라는 말을 쉽게 내뱉으며 주변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겠다고 우긴다. 그러다가 장애물에 걸려 넘어져 다치기도 하면서 말이다.
고집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사고 싶은 물건이 자기 손에 들어올 때까지 끈질기게 사달라고 조른다. 똑같은 것이 집에 있어도 집착이 멈추지 않는 고집불통이다. 그 문제가 해결되기까지 온갖 짜증과 화를 내며 힘들게 해서 아이의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눴다. 생각을 분명하게 전하는 인지와 사고가 있는데 절제와 타협이 안 돼 앞으로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데 어려움이 있겠다는 의견이 서로 같았다. 그래서 떼를 써도 일관되게 지도하자고 했다. 생각이 모아지니 희망이 보인다.
그날도 공이 사고 싶다며 이마트에 가자고 했다. 물건은 필요할 때 사는 거고, 집에 공이 다섯 개나 있으니 그것 가지고 놀면 된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이모 싫어. 다른 활보 선생님(장애인 활동지원사) 오라고 해야겠다. 이모는 학교에 오지 마.”라고 한다. 자기 말을 들어주지 않아 화가 난다며 씩씩거렸다. 도와주는 사람이 없으면 집에 오지 못하는 걸 아니까 다른 활동지원사를 불러야겠다는 생각까지 할 줄 아는 아이다. 내가 끝까지 굽히지 않으니 욕을 해대기 시작했다. 들어본적도 없는 끔찍한 말을 서슴없이 한다. 고약한 성질이다. 이런 배신이 또 있을까?
아이의 말이 나쁜 거라고 어머니와 내가 아무리 가르쳐도 소용없어서 담임 선생님과 같이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뒷날 하교 시간에 교사에게 어제 있었던 일을 얘기했더니, 학교에서도 선생님들에게 그런 태도를 보인다는 거였다. 특수학교는 장애 형태가 다양해서 담임, 부담임, 실무사가 함께 한 반을 맡아서 아이들을 돌본다. 담임에게는 말과 행동을 조심하는데, 다른 교사들에게는 함부로 한다는 거다. 담임이 도와주면 아무 말 안하면서, 부담임이나 실무사가 관심을 보이면 자기가 알아서 할 테니 말하지 말라며 화를 낸단다. 그들 앞에서 난감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란다. 담임과 부담임, 실무사의 지위를 아는지, 느낌으로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확연히 다르게 대한단다.
아이는 성장해 간다. 아직 덜 성숙해서 비교할 수도 있다. 배워가는 중이라 봐 줄 만하다. 하지만, 어른이 약자에게는 잘난 척하고, 강자에게는 굽실대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많던가. 어른이 아이처럼 자기 생각을 잣대 삼아 다른 이를 평가하는 건 성숙한 태도가 아니란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나는 성숙한 사람인가?
첫댓글 선생님, 고생하시네요. 대학원에서 특수교육을 공부하면서 저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영역이라고 포기했습니다. 주제 파악을 한 거죠.
선생님이 저보다 더 잘하실 것 같아요.
선생님 말처럼 성숙한 사람이어야 하는데 아이만도 못 할 때가 있어서 참 씁쓸합니다. 자기를 자주 돌아보는 방법 밖에요.
네, 저도 아이 돌보면서 배웁니다.
이렇게 글쓰며 자신을 끊임없이 돌아보는 것은 성숙한 사람이 하는 일 아닐까요?
너무 부족한 것이 많아 아이에게 배울 때가 많습니다.
'나는 성숙한가?' 하는 물음이 읽는 이에게 너는 성숙하냐고 묻는 것 같습니다. 이런 것이 글의 힘인가 싶습니다.
네, 그렇게 읽혀졌다니 다행입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너무 자책하지 마시고 힘내세요. 글 잘 읽었습니다.
네, 고맙습니다.
응원합니다!
고맙습니다.
학교에 나가는 저도 느낍니다. 아이들은 외부 강사와 담임 선생님을 구별해서 대합니다.
씁쓸한 현실입니다.
네, 선생님도 그런 경험이 많이 있나 봅니다. 그럴 때 나는 아이들을 볼 때 편견없이 봐야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