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 교수님은 “두 번째는 이기주의자입니다. 그들은 절대로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뜻밖의 진단이었습니다. 다들 자신을 챙깁니다. 나 자신을 챙기고, 나의 이익을 챙깁니다. 그걸 위해 삽니다. 왜냐고요? 그래야 내가 행복해지니까요. 그런데 김형석 교수님께서는 이기주의와 행복은 공존할 수 없다고 못 박았습니다. 이기주의와 행복, 왜 공존이 불가능한가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기주의자는 자신만을 위해 삽니다. 그래서 인격을 못 가집니다. 인격이 뭔가요. 그건 인간관계에서 나오는 선한 가치입니다. 이기주의자는 그걸 갖추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인격의 크기가 결국 자기 그릇의 크기입니다. 그 그릇에 행복을 담는 겁니다. 이기주의자는 그릇이 작기에 담을 수 있는 행복도 작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 말끝에 김형석 교수님은 자신의 경험담을 하나 꺼냈습니다. “제가 연세대 교수로 갈 때 몹시 가난했어요. 고생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월급이 오르거나 보너스가 나오면 무척 좋아했어요. 동료 교수들도 다들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그때도 등록금을 내지 못해 고생하는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스승이라는 사람이 자기 월급 올랐다고 좋아한 겁니다. 그건 교육자의 도리가 아니지요. 그 생각을 하면 지금도 미안하고 부끄럽습니다. 행복하질 않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행복은 공동체 의식이지, 단독자인 나만을 위한 게 아니더군요.” 교수님은 자기가 먼저 큰 그릇이 되어야 큰 행복을 담을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김형석 교수님은 이런 이야기도 하셨습니다. 최근 지방 출장차 김포공항에 갔습니다. 예약자들에게 발권 표를 다 나눠주는데, 자신만 빠졌습니다. 문의를 했더니 항공사 직원이 이상하다며 급히 매니저를 불렀습니다. 달려온 매니저가 교수님에게 혹시 연세가 어떻게 되시느냐고 물었습니다. 알고 보니 컴퓨터상에 나이가 ‘1살’ 이라고 떴습니다. 1920년생인 교수님은 올해, 만으로 101세입니다. 컴퓨터가 두 자리 숫자만 읽게끔 설정돼 있었던 겁니다. “지금까지 대한항공 비행기만 930번 이상 탔어요. 그런데 직원이 보니 1살짜리가 930번 비행기를 탄 겁니다. 사람들이 종종 물어요. 올해 나이가 어떻게 되느냐고. 이상하죠. 저도 나이 생각이 없어져요. 내 나이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1살이라고 하니 올해는 인생을 새로 시작하는 기분으로 살려고요. 하하......”
“100세 시대에 다들 100세 인생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내가 연세대 교수로 처음 갈 때 30대 중반이었어요. 그때는 환갑이 되고 정년이 되면, 내 인생이 끝날 줄로 알았습니다. 당시에는 인생을 두 단계로 봤어요. 30세까지는 교육을 받고, 나머지 30년은 직장에서 일한다. 그럼 인생이 끝난다. 그런데 막상 살아보니 그게 아니었어요. 가장 일을 많이 하고, 행복한 건 60세부터였어요. 내가 살아보니까 그랬습니다. 글도 더 잘 쓰게 되고, 사상도 올라가게 되고, 존경도 받게 되더군요. 사과나무를 키우면 제일 소중한 시기가 언제일까요. 열매 맺을 때입니다. 그게 60세부터입니다. 나는 늘 말합니다. 인생의 사회적 가치는 60부터 옵니다. 60을 넘어 90까지는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사회적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럼 90세 이후에는 어떻게 되느냐. 되는 사람도 있고, 안 되는 사람도 있더군요. 주로 건강 때문입니다. 의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혈압, 당뇨, 치매는 주로 60세 이후에 찾아옵니다. 그걸 60, 70, 80세가 돼서 관리하려고 하니까 힘이 듭니다. 그러니까 50세부터 잘 관리하면 됩니다. 그럼 90까지는 다 간다고 합니다. 90세까지는 행복하고 보람있게 살 수 있습니다. 의술이 발전하니까 40~50년 후에는 100세까지도 다들 행복하게 살 수 있겠지요.”
그러고 보니 102세의 김형석 교수님은 지팡이를 짚지 않습니다. 놀란 건 육체적 건강 때문만이 아닙니다. 100세 넘는 연세에도 정신력과 기억력, 사고력과 판단력이 놀랍습니다. 유연하고 열린 사고 역시 젊은이들 못지않습니다. 100세의 건강 못지않게 100세의 정신에 더 놀랍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습니다.
“100세까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려면 무엇이 가장 중요합니까?” 라는 질문에 교수님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사람은 항상 공부를 해야 합니다. 뭐든지 배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정신이 늙어버립니다. 사람들은 몸이 늙으면 정신이 따라서 늙는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아닙니다. 자기 노력에 따라 정신은 늙지 않습니다. 그때는 몸이 정신을 따라옵니다. 강연차 지방에 갈 일이 종종 있습니다. 그럼 거기서 지방 유지들을 만납니다. 장관 지낸 사람, 교수 지낸 사람들도 만납니다. 이야기를 해보면 다들 나보다 정신이 늙어 있습니다. 왜 그럴까. 가만히 생각해 봤습니다. 결국 장관직 끝내고, 정년퇴직하고 일도 안 하고 공부도
안 하기 때문이라는 걸 알겠더군요. 일과 공부를 안 하면 몸도 마음도 빨리 늙습니다. 공부가 따로 있나요. 독서 하는 거죠. 취미 활동하는 거고요. 취미도 일 가운데 하나입니다. 100년을 살아보니 알겠더군요. 일하는 사람이 건강하고, 노는 사람은 건강하지 못합니다. 운동은 건강을 위해서 있고, 건강은 일을 위해서 있습니다. 내 친구 중에 누가 가장 건강하냐. 같은 나이에 일이나 독서를 제일 많이 하는 사람이 가장 건강합니다.”
102세의 김형석 교수님의 인터뷰 내용을 인터넷을 통해서 접하고 나서 상쾌했습니다. 마음이 부자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참, 값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00세의 언덕에서 우리들 각자에게 던져주는 지혜의 알갱이들이 말입니다. 100살이라는 나이는 누구에게는 10년 뒤, 30년 뒤, 누구에게는 50년 뒤, 또 누구에게는 70년 뒤가 되겠지만 말입니다. 결국 모두에게 오게 될 그 100세의 언덕에, 미리 서 볼 기회를 주고 있으니까요.
출처:해남중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