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바닷길로라면, 하북(河北)ㆍ경동(京東)ㆍ회남(淮南)ㆍ양절(兩浙)ㆍ광남(廣南)ㆍ복건(福建)에서 모두 갈 수 있는데, 지금 세워진 나라는 바로 등주(登州)ㆍ내주(萊州)ㆍ빈주(濱州)ㆍ체주(?州)와 서로 바라다보인다 고려도경
성종(成宗) 14년에 전주(全州)ㆍ영주(瀛州)ㆍ순주(淳州)ㆍ마주(馬州) 등의 주현을 강남도(江南道)라 하고, 나주(羅州)ㆍ광주(光州)ㆍ정주(靜州)ㆍ승주(昇州)ㆍ패주(貝州)ㆍ담주(潭州)ㆍ낭주(郞州)를 해양도(海陽道)라 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고려사
송나라때 고지도를 참고하면 영주와 체주의 위치가 나타난다. 고려는 바로 체주에서 바로옆에 있고 영주를 포함하고 있었던 것이다. 고려시대 기록이니 당연히 고려와 동시에 존재했던 송나라고지도를 참고해야 하지 않는가!!!
?州樂安郡,上。武德四年析滄州之陽信、?河、樂陵、厭次置。八年州廢,縣還?滄州。貞觀十七年,複以滄州之厭次,德州之?河、陽信置。土貢:絹。戶三萬九千一百五十,口二十三萬八千一百五十九。縣五:厭次,上。貞觀元年?德州。?河,中。貞觀元年?德州。陽信,望。貞觀元年省,八年複置。蒲台,緊。本?淄州,貞觀六年省入高苑,七年複置。景龍元年來屬。渤海。緊。垂拱四年析蒲台、厭次置。有鹽。 신당서 체주낙안군은 무덕4년 창주의 양신 상하 낙릉 염차를 분할하여 설치했다. 중략 발해현은 수공4년에 보태와 염차현을 잘라서 설치했다 소금이 난다..
보성군(寶城郡) 세종지리지
체주주변이 고려땅임을 알았다면 그 땅의 기원에 대해 알필요도 있다. 바로 기록이 존재한다. 체주낙안군은 당나라가 부르던 지명인데 동시에 존재했던 신라도 낙안군이 존재했다. 즉 체주주변땅이 원래는 백제땅인데 신라가 차지하고 고려가 차지하게 된 것이다. 보성군에 관한 기록에서 패주와 낙안군이라는 지명이 나온다.
대청광여도라는 청나라지도를 보면 이해가 쉽다.패주의 위치가 나온다 바로 체주의 근처이다. 그러니 패주의 일부를 낙안군에 속하게 했다는 신라의 기록이 이해가 될 것이다. 낙안군은 패주와 체주 사이에 있었을 것이다. 덕주가 동청주임은 북위서에 기록이 나와있다 백제가 부여받은 동청주자사는 바로 덕주일대를 백제가 차지했다는 것이 된다. (매국노들도 동청주자사에 대해서는 별로 할말이 없는 것 같았다. 지들이 멀 알아야 설명을 할 것이 아닌가 !!! )
패주는 마침 청하라는 지명과 공존하는데 다음 기록을 보라
《남제서(南齊書)》 백제열전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모태(牟太)가 또 표문을 올려서 말하기를, “신이 파견한 행 광양 태수(行廣陽太守) 고달(高達), 행 조선 태수(行朝鮮太守) 양무(楊茂), 행 선위장군(行宣威將軍) 회매(會邁) 등 3인에 대해서 특별히 굽어 살피시어 정식으로 관작을 제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고달은 이제 가행 용양장군(假行假行龍?將軍) 대방태수(帶方太守)라 하였습니다. 양무는 이제 가행 건위장군(假行建威將軍) 광릉태수(廣陵太守)라 하였습니다. 회매는 이제 가행 광무장군(廣武將軍) 청하태수(淸河太守)라 하였습니다
백제 동성황제가 남제에 보낸 글에 청하태수라는 관직이 나온다. 즉 청하군의 태수는 백제인이고 백제는 청하군을 차지했다는 것이다. 청하군은 패주와 같은 지명이고 청나라지도에도 같이 표기되니 청하와 패주라는 땅이 원래 백제의 땅이었음을 알수 있다.그런데 신라는 패주와 체주사이의 낙안군을 차지했으니 아마도 백제멸망후 일부 땅이 당에 넘어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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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조선의 후예 원문보기 글쓴이: 조선의 후예
첫댓글 철저한연구가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