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운의 신간 [에디톨로지]는 전체를 아우르긴 힘들어도 많은 부분 침소봉대하다는 생각이다.
김정운 교수는 연초 [오늘, 미래를 만나다]라는 방송을 3일 연속으로 했는바 나뿐 아니라 시청자들로 하여금 재미있고 유익한 공감을 이끌어냈었다. 난 특히 3일의 방송 중 하루도 아니고 3일 간 김정운 교수가 등장을 하여 강연을 한 점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라 생각한다. 그만큼 몇 년에 걸친 부재에도 불구하고 연초에 3일 연속으로 방송을 한다는 건 하나의 부증수표 같은 '인증'이 아닐까.
특히 '창조'를 '편집'이라 매조지해준 바에 대해선 시원하기까지 하다. 그만큼 여기저기서 창조를 부르짖지만 실체가 없던 창조에 즉물적으로 뭔가를 보여주었으니까. 다들 편차는 있겠으나 방송을 봤으면 책까지 읽을 필요는 없겠단 생각을 하게 됐다. 책이 방송의 재탕이기 때문이다. 책의 전체적인 조망을 이미 방송에서 다 보여줘버리니깐.
책은 앞서 주장한 바와 같이 상당부분 한쪽 기제를 전체인양 전복하고 있다. 전체를 공박하긴 어려워도 카라얀 정도는 할 얘기가 있다. 글쎄, 정말 그가 세계 최초 뮤직비디오 제작자였나?
......사실 클래식 음악을 좀 듣는다는 이들 앞에서 카라얀을 좋아한다고 '고백(?)'하는 것은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졸지에 아주 우스운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김광석, 성시경을 이야기하는데, 나훈아를 좋아한다며 끼어드는 경우라고나 할까? 나름 클래식 음악을 듣는다는 이들은 카라얀 이름만 나오면 삐죽거린다. 클래식 음악을 조금 안다면 카를로스 클라이버나 볼프강 자발리쉬 정도는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표정이다. 어찌 그 천박한 쇼맨십의 카라얀을 들먹이냐는 거다. 하긴 70~80년대 한국에서는 카라얀이나 베를린 필하모니의 사진 한 장 안 붙어 있는 문화 공간은 없었다..........음악은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일찌감치 눈치챈 카라얀은 음악과 영상의 편집을 시도한다. 사람들은 카라얀이 세계 최초의 뮤직비디오 제작자라는 사실을 잘 모른다. 뿐만 아니다. 스스로 예술 감독, 영상 감독을 자처한다. 1965년 예술 감독으로 오페라 <라보엠>을 찍은 후, 1967년에는 <카르멘>의 연주를 본인이 직접 감독한다.
사실상 클래식 음악을 좀 듣는 이라면 카라얀을 좋아한다고 상당한 용기를 내어 고백할 필요는 없다. 카라얀은 명실공히 가장 뛰어난 지휘자 중 한 명이다. 클래식fm [명연주 명음반]을 진행하는 정만섭은 카라얀에 비춰 그가 만들어내는 음악들이 달콤한 초콜릿 시럽 같다는 항간의 비아냥에 대해 자주 반박한다. 카라얀이 어떤 만들어진 허상이거나 억세게 운빨이 좋았던 사람이 아니라 매우 뛰어난 음악가라는 말이다.
김정운은 베토벤의 7번을 예로 들어 카라얀식 뮤직비디오에 대해 시종 단원들과의 교감은 무시한 채 눈을 감고 장렬한 제스처로 지휘만 몰두한다는 주장이다. 실지로 연초 예의 그 3일간 방송에서 카라얀 연출의 유투브를 보여주기까지 했는데 이뿐 아니라 다른 교향곡도 이런 연출이 많다. 운명도 마찬가지. 1악장을 단 한 차례의 교감도 없이 혼자 심취하여 지휘봉을 흔들어댄다. 베토벤의 교향곡을 카라얀은 생애에 네 번이나 녹음하였다. 그만큼 베토벤 교향곡은 클래식 전체로 봤을 때도 유산이다. 그중 전체반으로 두 질의 카라얀반을 들어보았다. 역시나 너무도 미끈하게 잘 다듬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어디 하나라도 자기 의식을 넣긴 했을까 싶을 만큼 대중친화적이었다. 초콜릿 시럽 얘기 나올 만하다.
저자는 지난해 라이프치히를 방문하여 최고의 음향을 들려준다는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공연을 보았다지만 과연 어느 정도의 마니아인지도 좀 궁금하긴 하다. 카라얀의 지휘에 대한 변은 한 마디도 없고 대신 세계 최초의 뮤직비디오 연출가, 영상 편집자, 오페라 연출가 고 하니 말이다.
당시 기껏해야 공연 실황으로 연주되던 클래식 공연을 카라얀은 다양한 영화적 기법을 동원해 최초의 뮤직비디오를 만들었던 것이다. 그 이후 본격 등장한 베를린 필하모니의 뮤직비디오는 거의 '카라얀 감독, 카라얀 각본, 카라얀 주연'이었다. 그의 지나친 나르시시즘은 욕먹어 마땅하다. 그렇다고 해서 '눈으로 보는 음악'을 창조해낸 카라얀의 업적을 폄하해서는 안 된다.
카라얀 뿐 아니라 이런 식의 월권은 예부터 있어왔다. 연주자가 주체하기 어려운 카리스마를 폭발하여 무대장치나 연출까지 손을 대는 예는 많다. 약소하나마 러시아의 위대한 베이스 표도르 샬리아핀도 그런 예다. 물론 조금 다른 환원이긴 하다. 그렇다고 무소불위의 카라얀을 세계 최초 뮤직비디오 감독에다 취직시키는 건 온당치 못하다. 이미 카라얀은 인기나 명성을 볼모로 전권을 누린 일은 확실하다. 그러나 본말의 전도는 막자고.
카라얀은 '음악과 영상의 편집'이라는 21세기적 에디톨로지의 선구자다. 클래식 음악의 영역으로만 그를 평가해서는 안 된다. 그가 엄청나게 예쁜 부인을 포르쉐에 태우고, 베를린에서 잘츠부르크까지 무지막지한 속도로 달렸다고 배 아파해서는 안 된다. 그가 없었다면 클래식은 그야말로 늙은이들의 음악으로 20세기 중반에 사라졌을 확률이 높다. 그가 만들어낸 그 폼 나는 영상들이 클래식에 대한 대중적 환상을 만들어냈기 때문에 클래식이 오늘날까지 우아하게 버틸 수 있는 것이다.
글쎄 그가 만들어낸 폼 나는 영상들이 클래식 대중화와 환상에 이바지했을까? 뭐 난 그리 대접해주고 싶지 않다. 카라얀은 유년시절 이미 피아니스트로 이름을 드날렸던 인물이다. 단지 스승으로부터 충고를 받아들여 방향을 틀었고 정상에 올랐다는 점이다. 카라얀에 앞서 이미 베를린 필 3대 지휘자 푸르트벵글러 그리고 2대 아르투르 니키시가 베를린을 오늘에 있게 한 초석이다. 푸르트벵글러는 카라얀의 부상을 극도로 꺼려하였다. 자기 후임으로 베를린필을 맡게 되는 너무도 패기만만하며 팔방미인인-게다가 오지랖도 광범위한-카라얀을 견제하고 질투하였다. 아무튼 카라얀이 오늘의 베를린을 있게 했다기보다 당시 이미 베를린필은 어떤 교향악단도 범접하기 힘든 교향악단으로 굳건했었다. 물론 카라얀이 그 명성을 더욱 공고히 한 면은 있다. 카라얀의 주장은 그냥 '정운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