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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우연히 국궁신문을 보고 부천 활 박물관에서
각궁 제작설명서 기획전을 한다는 소식을 알게되어
지난 금요일 부리나케 부천으로 향했습니다.
이렇게 기간제 행사라는 데에 눈이 뒤집혔지요 ㅎㅎㅎ
맨날은 안한다는 말 아니겠어요?
여러 분들께서는 이 박물관에 대하여 잘 알고 계시겠지만
저는 풍문으로만 들었지 생전 처음 가봤습니다.
생각보다 그리 오래 구경하지는 않았지만
여기서 왕복 세시간 반을 달린 가치는 충분했다고 생각하며
아주 만족할 만한 견학이었습니다.
이 활은 김장환 선생님의 작품이며 참으로 귀한 자료입니다.
특징이라면 역시 고자와 삼삼이죠..
요즘 활은 처음 받을 때 부터 저렇게 말린 활은 매우 드뭅니다.
궁도인(저는 궁도인이라는 말을 싫어합니다. 김활량이라고 불러주세요!!)들이 원하는 대로 오금만 살려놓고 전부 다 밟고 펴서 주니까요…
자기 구미에 맞게 해궁하는 법을 모르는 사용자가 많다보니
통상적인 미립으로 만들어서 주는가 보다.. 라고 생각합니다.
일등공신은 주장응 궁장님이시라고 들었습니다. 👏👏👏
저 활은 모양으로 보았을 때는 미사용인 듯 한데 외형 상
마모도가 많아 보이는 것이 자주 사용한 흔적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용을 했어도 장시간 보관하면 저렇게 말려든다…?
분명 요즘 활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가 있어보입니다.
기술적인 면(제궁 또는 해궁)이나 재료적인 면이 뭔가 다르긴 다른가봅니다.
이거슨 김박영 선생님 작품입니다.
줌통은 베로 쌌고 위 아래 아구통이랑 정탈목에 나이롱 실 대신 아귀피가 붙은게 특징이네요.
아귀피 재질은 도피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실을 감아도 예쁘지만 아귀피도 나름 깔끔하니 멋이 있습니다.
활채는 역시나 잘 말려있습니다.
오금부위가 유난히 동그랗게 살아있는 걸로 봐서는
미사용 활인 듯 합니다.
제작 설명서 전시실에서 유난히 눈에 띄었던 것은 뒤깎이 후,
그리고 심놓이가 완료된 저 상태가 제가 자주 찾아가서
구경하던 xx활과 완전 판바기였다는 것 입니다.
역시 명품은 통하는 구석이 있나봅니다.
매끈한 심판이 저 활의 가치를 대변해주네요.
활에는 계보가 있습니다.
남한은 크게 서울 부천 예천입니다.
댕대 최고였다는 서울활은 장진섭 선생님 작고 후 대가 끊어져 지금은 전설이 되었습니다.
서울에 권무석 궁장님이 대를 이었다고 하는데
권무석 궁장님 활에 대해 저는 잘 모르므로 pass…
혹시 권무석 궁장님 활을 써보셨거나 아시는 분 계신가요?
아시는 대로 설좀 풀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무튼… 현재는 아들 오정씨가 대를 잇고 있다고
유튜브에서 봤습니다.
부천활은 김장환 김박영에 이어 김윤경이 부천의 대를 이었고
김장환에게 배운 주장응이 세종에,
주장응에게 배운 이상운이 전라도 광주에
김장환의 장자 김기원의 아들인 (김장환 손자)김동진에게
배운 고영환이 단양에
그리고 영월 신승윤 또한 김동진에게 많은 영향을 받은걸로
알고 있습니다.
영월깍지로도 유명하신 신승윤 궁장은 횡성에서 최상배 궁장을 가르쳤습니다.
제가 아는 부천활 계보는 이정도 입니다.
그러고 보니 2021년 부터 최근 삼년동안 부천계열만 썼네요.
부천 단양 광주 영월 각 한 장 횡성 2장 이렇게 썼습니다.
예천활은 많이 접해보지 않아서 잘 모릅니다.
전주 권오철 천안 권영무 예천 권영학, 김성락 궁장님들이
예천계열입니다.
처음 각궁을 접할 때에는 전주, 천안활 등을 간혹 빌려서
체험을 해보긴 했었는데 지금은 손맛을 다 잊어버렸습니다.
초반에 광주 김석제 궁장님 활만 네장(새활2, 중고2)구입…;;;
다른 이유보다는 구하기가 쉬웠습니다.
저기에 언급 안한 활도 두장…(천지, 부안)
제 각궁인생 오년 동안 거쳐간 활들이 저렇게나 많다니
새삶 놀랍습니다…
가난한 공무원 월급으로 활에다가 돈지x 마니 했네요 ㅎㅎㅎㅎ
한국의 궁시라는 책은 어디서 구 할 수 있을까요? ㅎㅎ
읽어보고 싶네요.
이 박물관에서 가장 빛났던 건 저 분 입니다.
자태만 보아도 영롱~~ 한 것이 조선의 궁술 그 자체입니다.
특징은 뭐니뭐니 해도 저 고자닢 입니다.
버들잎 모양의 고자 밑으로 얇은 발목이 각선미를 자랑하며
요즘에는 멸종되어버린 골격이 선명하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발목은 아주 좁게 시작해서 서서히 넓어지다가 먼 오금부터 너비가 급격해지며 바튼오금부터 다시 좁아집니다.
아귀와 줌통은 비교적 두꺼우나 폭은 좁습니다.
전형적인 조선활 입니다.
역시나 궁금한 것은 과연 오랫동안 사용을 해온 활인지
그냥 미사용 전시품인지 입니다.
요즘 활들은 벌리면 다시 오무라들지 않습니다.
해궁의 차이인지 재료의 차이인지 제궁법의 차이인지
궁금하네요.
제가 활 쏘는데에는 알 필요 없는, 쓸데없는 궁금증이지만
왠지 모르게 이 미스테리를 꼭 밝혀내고 싶습니다.
이 수수께끼는 아마 활의 탄력성이나 수명과 밀접한 무언가가
있을거라 봅니다.
그러려면 저런 활을 많이 접해보고 연구를 해야겠네요.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했지요?
뜻을 굽히지 않는 한 길은 있을 겁니다.
저는 그동안 그래왔습니다.
처음, 조선의 궁술을 읽고 좋은 궁체에 뜻을 두었더니
참스승을 만나뵙고 활 쏘는 법을 잘 배워서
지금은 아주 재미있고 만족스럽게 활을 냅니다.
선생님들께서는 노파심에 연궁 연궁 하시지만
궁체가 좋으면 강궁을 쏘아도 생각만큼 많게는
몸에 무리가 오지 않는가봅니다.
어제 65파운드 짜리 활로 열 순 이상을 내었는데
(솔직히 그렇게 센 활은 처음 써봄)
오히려 뻐근했던 몸이 풀리더랍니다..
무거운 살이 없어 일곱돈 죽시를 걸었는데
살찌가 바닥을 훑고 가다가 관중이라도 하면
과녁인지 살인지 아무튼 뭐 하나가 박살나는 소리가 납니다.
집궁 초반에 50파운드 개량궁에 엘보가 너무 심하게 와서
1년도 채 되지 않았음에도 폐궁 직전까지 갔었는데 (지금도 그 휴유증으로 제 왼쪽 팔꿈치는 정상이 아닙니다)
지금은 어떻게 그런 강궁을 쏘고도 멀쩡할까요?
아마도 지금 궁체가 그때보다는 더 좋은가 봅니다.ㅎㅎㅎ
사실 강궁 쏠 마음은 없는데 어쩌다 보니 그런 활도 손에
들어옵니다.
좋은 활을 만나고 싶음에 뜻을 두었더니
훌륭하신 궁장님을 만나게 되어
지금은 만듦새가 매우 훌륭한 최상품의 활을 받아서 쏩니다.
만드시는 정성을 간혹이라도 옆에서 지켜보았기 때문에
그 활이 지닌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압니다.
그렇다보니 솔직히 어느 궁방 활도 부럽지 않습니다.
일년에 서른장 내외로 만드시는데 그 중 한장이 제 활이라니
그저 감사하고 영광입니다.
박물관을 다녀오니 더더욱 그렇습니다.
만듦새가 현재 조선 최고라 하는 부천활에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습니다.
덩달아 활을 다루는 법, 해궁하는 법 등등
옆에서 기웃거리며 많이 배웠습니다.
뜻을 품고 나름 되는대로 노력을 하다보니 이런 좋은 인연들이
자연스레 따라와 준 거라 생각합니다.
지금 품은 이 뜻 또한 언젠가는 이루어 질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제 뜻이 사그러 들지 않는 한 말이지요…
첫댓글 고 장진섭 궁장님은 어머니의 외삼촌 이셔서 저도 말씀을 많이 들었습니다. 권무석 궁장님이 계승하셨다는 점은 잘 모르겠네요.. 제가 알기로는 계승자는 없습니다. 아드님 두 분이 다른 일을 하셔서...기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 감사드립니다. 장진섭 궁장님의 가족이시라니 영광입니다. 권무석 궁장님에 대한 의문은 사실 반어법이었습니다. 그 분이 장진섭 궁장의 계보를 이었다면 엄청나게 유명했겠지요. 하지만 아니지 않습니까? 조선 제일의 제궁 가문의 대가 끊어져 안타깝기 그지 없네요. 아마 대를 이었다고 해도 트렌드가 있기 때문에 전통방식으로는 안하셨을겁니다. 온깍지 선생님들께서 그간 전통사법을 찾으셨다면 저는 지금 전통활을 찾고 있습니다. 제 뜻대로 만들어 주실 분이 안계신 것으로 알아 제가 만들어 보고자 하는 뜻이 생겼습니다.
제 뜻이 굽히지 않는다면 10년 안짝에는 제 손으로 몇장이라도 재현은 될거라 믿습니다.
그 전에 저 아닌 다른 누군가가 해주면 더 고맙겠네요^^
@온깍지신사 목표하신 바 꼭 이루시길 바랍니다~~
@봉제산 응원 감사드립니다. 열심히 한 번 해 보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