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날에
전호준
오랜만에 아내와 같이 서문시장 쇼핑을 했다. 이것저것 필요한 물품도 구입하고 시장 구경도 해본다. 어린애처럼 군것질도 하며 왁자지껄 사람 사이를 비집는 재미가 사람 사는 세상 같다.
난전 가판대에서 칼제비를 먹으며 신혼 초 어렵던 시절 아내와 오일장 난전에서 먹어보든 밀수제비 생각이 난다.
아침 밥상머리에서 오늘 점심이나 저녁은 내가 한 턱 쏠게!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말해 보라고 했다. 웬일이냐며 의아해 한다. “당신 오늘 무슨 날인지 알아요?” 하자 대답 대신 벽에 걸린 달력을 쳐다본다. “오늘이 바로 부부의 날이지” 나의 대답에 그런 날도 있는가 하는 듯 무덤덤하다.
매년 말이 되면 방마다 새해 달력을 하나씩 걸어 두지만 잘 보지 않는다. 휴대폰 캘린더에 모든 일정을 그때그때 기록 저장해 두고 수시로 확인해 보기 때문이다.
대구에 사는 고향 갑장甲長들이 밥 한 끼 하자는 카-톡을 받고 무심코 벽에 걸린 달력을 들여다보았다. 5월 21일 부부의 날 이란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이런 날도 있었던가? 나로선 생소한 날이다. 기껏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등등 내가 알고 있는 날은 불과 열 손가락을 꼽을 정도다.
내킨 김에 달력을 내려 끝에 날이라 표시된 일을 모두 살펴보았다. 예상외로 제법 많다. 모두 쉰 세 개나 된다. 새해 첫 설날을 시작으로 12월 27일 원자력의 날로 끝이 난다. 그중 오월이 가장 많은 열세 개나 된다. 역시 가정의 달이다. 이중 빨간색으로 표시된 날은 설날과 어린이날, 부처님 오신 날, 한글날 등이며 공휴일은 아니지만 정부에서 지정한 의미 있는 법정 기념일 들이다.
부부의 날이 궁금해 인터넷을 검색해봤다. 가정의 달인 5월 21일은 둘(2)이 하나(1) 되는 것이 부부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했다.
1995년 권재도 목사 부부에 의하여 처음 시작되었다. 어느 방송사 어린이날 프로에서 고아로 자란 한 어린이가 우린 엄마 아빠와 함께 사는 것이 소원이라 울먹이며 한 말이 부부의 날 운동의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2003년 국가 기념일로 지정해 달라는 청원을 거처 2007년 5월 21일 대통령령에 의하여 제정된 부부의 날은 세계 최초의 일이라 한다.
결혼 한지 40여 년 부모님과 같이 산 세월보다 10여 년이나 더 오랜 세월을 함께 해온 사람이다. 부부란 과연 어떤 관계이며 누구일까?
서로 다른 샘에서 발원한 한 방울 물이 어느 순간 우연한 인연으로 하나 되어 종착지인 바다에 이르기까지 우여곡절을 겪으며 세월 따라 흘러가는 물과 같은 것이다. 함께 어울려 졸졸졸 즐거운 노래도 부른다. 유유자적 삶을 즐기며 가기도 한다. 때로는 낭떠러지를 만나기도 하고 장애물에 부딪쳐 상처를 입기도 한다. 더러는 중도에 갈라지기도 하고 불의不意의 이별을 하기도 한다. 미운 정 고운 정 속에 싫든 좋든 바다라는 종착지를 향해 가는 미완의 인간을 위해 신이 내린 선물이다. 서로 지지대가 되어 어떠한 어려움도 극복하며 좌충우돌 함께 가야만 하는 것이 부부관계다.
흔히들 부부관계를 천생연분이라 하지만 지금은 옛말이 된 것 같다.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되도록 죽음이 둘을 갈라놓을 때까지 함께 하겠다던 혼인 서약은 차치하고라도 무슨 놈의 하늘이 준 인연이 어느 날 갑자기 도끼날에 나무토막 갈라지듯 쉽게 쪼개질까? 그들의 말 못 할 아픈 사연을 알지도 못하면서 감 놔라 대추 놔라 끼어들 생각은 아니다. 우리나라 이혼율이 OECD 국가 중 9위로 높다는 통계도 있으니 딱한 노릇이다. 부강하고 행복한 나라는 건전한 가정으로 시작된다. 국가가 몸통이라면 가정은 몸통을 구성하는 세포다. 건전한 세포가 많을수록 몸이 건강하다. 이혼율이 높은 것은 단순한 개인의 사생활 차원을 넘어 사회적 문제이고 국가의 미래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삼강오륜에 부부유별이란 말이 있다. 남편과 아내는 분별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아무리 부부 사이라지만 인륜상 각각의 직분이 있어 서로 침범하지 않아야 할구별을 뜻하는 것이다. 서로 공경하고 존중하며 평등한 위치에서 살아가야 한다. 오랜 세월 유교적 관습을 버리고 부부라는 두 글자가 의미하듯 부부는 평등하며 순서도 앞뒤도 없는 전차와 같다. 때로는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며 힘들면 서로 바꿔가며 함께 가는 것이 부부관계다.
붕우유신이라 하지만 부부 유신이라 말하고 싶다. 부부간의 믿음은 절대적이다. 믿음이 없는 부부관계는 언제 깨어질지 모르는 살얼음판 같다.
한평생을 살아가며 허물도 실수도 있을 수 있다. 용서하고 뉘우치면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며 무한의 신뢰와 인간적 사랑이 행복한 가정과 건전한 사회를 만든다. 나아가 부강한 나라의 초석이 된다는 생각이다.
결혼 후 처음 부부의 날, 깜짝 이벤트로 선심 아닌 호기 한번 부리겠다며 잡은 폼이 물거품이 된 순간이다. 고작! 칼제비? 칼제비가 먹고 싶다는 아내의 제안에 어리둥절 내심 껄렁했지만 수긍했다.
시장 가판대에서 몇 천 원짜리 칼제비를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며 그 옛날 오일장에 즐겨먹던 밀수제비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때는 끼니 이어 먹던 밀수제비, 6,70년대 수수하고 순박하던 우리네 어머니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에 넌지시 아내의 손을 잡아본다.
덕분에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흡족한 듯 인사를 잊지 않는 아내의 표정에 고급 양식집에서 나이프와 포크를 들고 와인을 마시는 기분보다 더 흐뭇한 것은 무슨 까닭일까?
마음이다. 서로의 마음을 먹는 것이다. 아내의 소박한 한마디 인사에 내심 고마움을 느끼며 부부의 날에 진정한 의미를 되새겨 보는 하루였다.
2019. 5. 21 부부의 날에~
첫댓글 감동적인 글입니다. 칼제배 힌 그릇에 깊은 사랑이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화려하고 요란한 이벤트보다 더 깊은 사랑과 배려가 묻어나는 글 잘읽었습니다.
부부에 대하여 정의를 제대로 내린 부부학 교과서 같은 글입니다. 부부유신, 부부의 처음 출발점은 샘물로 시작하여 바다로 흐르는 과정이라는 말씀과 부부는 한명 한명이 물과 같은 존재라는 말씀에 공감하는 바 큼니다. 그래서 부부싸움을 칼로 물베기란 말이 생겨 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푸근하고 따뜻한 남편, 소박한 사모님의 다정한 시장나들이 모습이 진한 칼제비 국물맛처럼 훈훈하게 전해 오는 듯 합니다. 음미하며 잘 읽었습니다.
'부부는 이렇게 사는 것이다'하고 표본을 보여 주신 것 같습니다. 물로써 모든 희노애락을 같이 견디며 살아가는 부부의 한 세월을 너무나 적절히 비유해주셨습니다. 샘물에서 시작하여 바다에 이르기까지 그 많았을 사연을 공유하는, 부부란 정말 인연 중에도 중한 인연일 듯 싶습니다. 부부간의 믿음은 질대적이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크게 공감합니다. 부부의 날을 기억하시고 챙겨주시는 남편, 작은 것도 소중히 크게 받으시는 사모님의 마음.. 모두 지금 시대를 살고 있는 부부들의 귀감이십니다. 부러워하며 잘 읽었습니다.
두분의 모습이 따뜻하게 그려집니다. 서로의 마음을 먹는다는 말씀이 크게 와 닿습니다. 부부는 다른 샘물의 한 물방울이 만나서 그 숱한 사연들을 겪으면서 모든 것을 품어주는 바다로 오기까지 긴여정을 함께한 관계니 영원한 길동무입니다. 부부의 참 모습을 마음에 새기며 잘 읽었습니다
진정한 부부관계는 이러한 것이다 라고 이야기 하는 것 같습니다. 남편들이 부부의 날 특별한 이벤트를 하려고 해도 의외로 아내의 소망은 소박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잘 읽었습니다.
2007년에 부부의 날이 제정된것도 세계 최초라는 것도 이제야 알았습니다. 다만 언젠가 부터 달력에 부부의 날이라는 것이 눈에 띄여 외식을 했던것 같습니다. 부부란 - 서로 다른 샘에서 발원한 한 방울 물이 어느 순간 우연한 인연으로 하나 되어 종착지인 바다에 이르기까지 우여곡절을 겪으며 세월 따라 흘러가는 물과 같은 것이다 - 무척이나 가슴에 와 닿는 말입니다. 두분 계속 행복하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잘 읽었습니다.
부부의 날을 보내는 두분의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추억의 음식이 밀수제비에서 칼제비로 바뀐 것 말고는 신뢰하고 사랑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으십니다. 잘 읽었습니다.
부부의 날, 아직 기억하고 있지 않습니다.얼핏 들은듯 하지만 그 날이 언제인지 둘다가 이정도입니다.연애로 맺으진것도 아니고 결혼하는 날이 세번째 만난는 날이라고 하면 이조시대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역만리 타국사람도 아니고 아버지 상중에 결혼은 꿈도 꾸지 않았는데 시누이의 비행기타고 인연을 맺아 2년만 있어면 아니 일년 조금 지나면 50 년 살았네요 시어머님이 꾸신 좋은 꿈때매 벼락치기하고 내 꿈이 너무 안좋아 고생고생 반백년 살았네요. 40년을 설뚱 멀뚱 살다가 내가 암걸린후 영감이 죽네사네 울면서 동네방네 죽을까봐 전화하고 이것이 인생이다 하고 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