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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
노동자의 필요와 욕구를 위한 새로운 사회로 가야 합니다.
【질문】 2008년 자본주의 공황 이후 유럽에서도 「코뮤니스트 선언」의 판매량이 급증하는 등 맑스주의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고 합니다. 한국 사회에서도 맑스주의 관련 서적들이 연이어 출판되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맑스주의를 어떻게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습니까?
【김수행】 내가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 들어간 게 1961년입니다. 경제학이 너무 재미가 없어요. 무슨 소리인지, 현실적인 감각이 전혀 없더라고요, 방법이 없느냐 해서, 생각을 해보니까, 일본 책을 봐야겠다고 생각해서 1학년 때, 책 읽기 위해서 일본 말을 서너 달 배웠어요. 그때 상과대학에 경성제국대학 시절의 책이 많이 남아있어서 일본 책으로 이론에서, 경제사에서, 경제사상사에서, 맑스와 맑스의 위치를 공부했어요.
【질문】 선배들 권유가 아니라, 선생님은 독학하셨네요. 그러면서 신영복 선생님하고 남산에서 고초도 당하셨죠?
【김수행】 우리 때는 권유 그런 거 없었어요. 독학을 했어요. 대학원에 들어가서, 석사논문으로 「금융자본에 관한 일 연구」를 썼는데, 힐퍼딩과 독점자본, 금융자본, 산업자본, 은행자본이 어떤 식으로 융합되느냐 하는 공부를 했어요. 주로 일본 책 읽으면서, 석사 논문을 쓰고 나서 경제학과 조교가 됐어요. 신영복 선생님과 만나는 것은, 상과대 경제학과에 동아리가 있었는데, 경우(經友)회가 있었어요. 내가 들어갔는데, 6기더라고요, 신 선생은 2년 선배니까 4기지요. 1년에 선후배 관계로 한 두 번씩 보는데, 신 선생하고 통일혁명당 사건에 걸린 것은, 내가 종암동에 살았는데, 우리 집 가까운데 신 선생이 살았어요. 그때 신 선생은 육군사관학교 교관을 하고 있었어요, 내가 석사 논문을 쓰고 나서 하도 힘들어서, 재밌는 책이 없느냐고 했더니, 신 선생이 갖고 온 책이 레닌이 쓴 「러시아에서의 자본주의 발전」, 「꽃 파는 처녀」로 기억해요, 근데 보니까 한글로 돼 있더라고요.
【질문】 그러면, 북한판본이네요.
【김수행】 맞아요, 북한에서 나온 책입니다. 그때는 그런 책이 남한에서 나올 수가 없었어요, 그걸 보고서, 어, “이거 어디서 난 거에요” 물었지요. 그랬더니 신 선생이 육군사관학교에 많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읽고 나서 돌려줬어요. 근데 68년에 통일혁명당 사건이 터졌는데, 신문에 신 선생이 잡혀가고 청맥회가 거론됐어요. 나는 68년 한여름에 잡혀 들어갔어요. 상과대 경우회 사람들이 잡혀가고, 나한테도 올 것 같더라고요. 부산에 도망가 있었는데, 내가 조교라서 학교에 전화했더니, 학교 선생님들이 “정보부 사람들이 교무실에 매일 와서 앉아 있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학교에 갔어요, 바로 잡아가더라고요. 근데 사건이 종결될 때가 된 거지요. 나 같은 사람은 크게 가치가 없는 겁니다. 신 선생하고 걸린 게 별로 없어서, 나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조사받으면서, 신 선생과 별로 관계가 없다고 그랬어요. 그러다가 많이 맞았어요. 정보부에서 사건을 빨리 끝내야 할 필요가 있었던지, 신 선생이 진술한 내용을 내게 던져주더라고요. 근데 보니까, 책 빌린 내용밖에 없잖아요. 그 사람들이 “이걸 읽어보고 인정해” 그러잖아요, 그래서 인정했어요. 그 당시 내가 조교를 하고 있었는데, 정보부 수사관들이 조교하고 조교수를 구분을 못 해서 신 선생이 나한테 크게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고 생각한 거예요. 나갈 때쯤 되니까, 정보부 수사관이 “당신은 기소 유예될 것 같다”라고 귀띔을 해주더라고요. 기소유예 받은 거지요. 그러고 나서 학교 조교 사표를 냈고, 은행에 들어가서 영국에 갔어요. 런던대학교 버크벡(Birkbeck) 대학인데, 거기에 영국 좌파들이 다 와 있었어요. 내 지도교수는 로렌스 해리스(Laurence Harris)라는 사람이고, 심사위원은 벤 파인(Ben Fine)이었습니다.
【질문】 선생님은 영국에서 공황 연구를 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서 쓰신 책 「세계 대공황」 부제가 ‘자본주의 종말과 새로운 사회의 사이’라고 적혀있습니다. 선생님은 이번 자본주의 세계 대공황이 쉽게 말해서 자본주의가 망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선생님께서 생각하시기에 지금 자본주의 사회는 붕괴하고 있나요? 흔히 말할 때, 자본주의는 경쟁 자본주의, 국가 주도 케인즈주의, 신자유주의 이런 식으로 발전해 왔는데, 현재 신자유주의가 파국을 맞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2007년 미국 금융위기 시점부터 보시는 겁니까?
【김수행】 내가 강조하고 싶은 거는 신자유주의라는 것이 금융 주도적인 경제체제로 됐기 때문에, 고용이 늘지 않아요. 금융이 주도하다 보니까, 선진국 산업 자본들은 중국에 투자하고 노동자를 착취해서 생산하여 자기 나라나 다른 나라로 수출하는 이런 경제형태가 된 거예요.
【질문】 선생님, 중국이 세계 공장화됐다는 걸 말씀하시는 거죠.
【김수행】 그렇죠. 신자유주의는 실제로 1979년 5월 영국의 대처가 수상이 되고, 1980년 11월 미국의 레이건이 대통령이 되어 추진한 정책입니다. 그전에는 1950~1970년대가 자본주의 복지국가 시기예요. 이론적으로 케인즈주의가 영향을 줬지만, 복지국가 시대에는 실제로 노동조합하고 서민의 힘이 굉장히 강했고, 복지수준, 생활 수준도 높았지요. 대처와 레이건이 노동자계급의 힘을 꺾기 시작한 게 기본적으로 신자유주의입니다. 1974년부터 경제가 내리막으로 가기 시작했는데, 이 친구들이 노동법을 개악하고, 레이건이 미국 항공관제사 노조 파업을 탄압하고 해고를 했어요, 그러면서 긴축 정책을 펴는 겁니다. 이게 밀턴 프리드먼의 통화주의인데, 그러니까 산업자본이 파괴되면서, 실업자도 많이 생기고, 경기가 불황에 빠졌는데, 그렇게 되니까 금융밖에 국제경제력이 없다고 생각한 겁니다. 그래서 금융자본을 지원하여 전 세계적으로 주식시장, 자본시장을 자유화하면서 경제를 살리려고 했단 말이에요. 그런 사이에 산업자본은 갈 데가 없으니까, 중국에 투자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세계적으로 중국이 세계 공장이 되고, 금융은 미국 월가를 중심으로 형성되면서, 세계 경제가 구성됐어요. 금융이 붕괴했다는 이야기는, 경제가 다 망가졌다고 보면 돼요. 경제를 일으킬 방법이 없는 겁니다. 그러니까 옛날과는 다르죠. 산업자본의 우위 하에서 금융이 산업자본을 도왔는데, 금융자본이 주도했기 때문에, 산업자본이 기반을 확충하지 못했어요. 경제가 전혀 살아날 가망이 없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그대로 증명이 되고 있잖아요. 2007년, 2008년 전 세계적으로 공황이 전개되는 것을 보니까. 미국은 자동차 산업 살린다고 수천억 달러를 넣은 것뿐이에요. 실업을 해소하는 방법이 없는 거죠. 금융자본은 중앙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려 가지고, 금리가 제로잖아요, 온갖 투기를 하는 거예요. 손해 본 것을 보충하려고. 투기를 자꾸 한다는 얘기는 중산층에서 부를 뺏어갈 수밖에 없어요. 중산층이 몰락하는 겁니다. 1%대 99% 사회로 가는 거죠.
【질문】 바로 이어서 재정위기도 말씀해 주세요.
【김수행】 2010년쯤 그리스 재정위기가 터지는데, 공황이 오기 전에 그리스 은행들이 국제금융자본(외국계 은행이고 주로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은행들)한테서 돈을 차입해서 온갖 투기(부동산, 주택담보 대출)를 해서 돈을 잃어버렸어요. 만기가 되니까 채권은행한테 돈을 갚아야 하는데, 그리스 은행이 정부에 돈 좀 꿔달라고 구제 금융을 신청한다고요. 정부는 국채를 발행해 돈을 빌려줬어요. 근데 그리스 정부는 국채를 발행했으니까, 만기에 국채를 갚아야 하는데 경제는 망해 가고 돈은 없어 갚을 수가 없게 된 거지요. 그러니까 국제채권은행단이 트로이카(유럽연합, 유럽중앙은행, IMF)에, 그리스 정부가 국채를 발행해 놓고 돈을 안 갚는다고 비판하면서 트로이카가 자기들의 채권을 추심해달라고 강요한 겁니다. 그래서 트로이카는 하는 수 없이 먼저 자기의 자금(근데 이 자금은 각 회원국이 국민으로부터 거두어들인 혈세, 세금이야)으로 국채를 대신 갚아주고, 그리스 정부에 예산에서 흑자를 내서 자기가 대신 갚아준 ‘구제금융’을 상환하라고 윽박지르고 있는 판입니다. “공무원 수를 줄여라”, “공무원 봉급을 줄여라”, “공무원 연금을 줄이고 퇴직 연령을 높여라”, “최저임금 수준을 더 낮추어라”, “국영기업들을 매각하라”, “공공요금을 인상하라” 등등, 국민이 죽어 나가는 겁니다. 불경기인데, 국제 금융자본을 위한 긴축 내핍 정책을 쓰니까 경제는 마이너스 성장하고. 만약에 산업자본을 살리라고 트로이카가 돈을 주었다면, 고용, 소득이라도 늘잖아요. 이런 상태가 세계 전체를 지배하고 있으니까, 자본주의는 망했다는 겁니다.
【질문】 선생님은 현 자본주의가 역사적 경향으로 볼 때 붕괴 경향으로 간다고 보시는 거죠. 그러면 자본주의가 번영기에서 팍 꺾이고 있는데, 봉건제보다 진보적 생산양식인 자본주의는 이제 힘들다고 생각하십니까?
【김수행】 실제로 맑스는 1825년부터 10년 주기로 자본주의의 경기 변동을 본 겁니다. 1847년의 「코뮤니스트 선언」에 보면, 자본주의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세계 시장을 만들어 내고 생산력을 거대한 규모로 발전시켰는데, 자본주의의 모순들이 격렬하게 폭발하는 ‘공황’이 자본주의에 치명적 타격을 준다고 보는 겁니다. 공황에서는 노동자나 기계가 남아돌지만, 이윤의 전망이 없기 때문에 자본가가 생산을 개시하지 않으며, 이리하여 노동자나 서민의 생활이 엉망이 되는 것이죠. 자본가계급이 생산수단을 독차지하면서 이것을 주민 전체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사용하지 않고 자기 혼자의 이윤 획득에 사용하기 때문에, 인민 전체가 실업과 빈곤과 자살로 내몰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본주의의 근본모순이잖아요. 노동자들은 생산의 3대 요소(자본, 노동, 토지)는 남아도는데 우리는 왜 이렇게 못 사는가를 고민하면서, 자본가계급이 생산수단을 독차지하고 있는 ‘생산관계’가 문제의 핵심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고요. 생산수단을 노동하는 사람들이 차지하여 모든 사람의 필요와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사용하게 되면, 자본주의는 사라지면서 더욱 나은 새로운 사회가 오는 것이에요.
【질문】 금본위제에서 달러 본위제로 갔는데, 미국이 발권 국가로서 달러를 계속 찍어내고, 군사력에서 세계 헤게모니를 유지해서, 미국이 붕괴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도 드는데요.
【김수행】 그런 면도 있겠죠. 근데 1973년 10월 오펙이 기름값을 4배나 올렸는데, 그때가 베트남 전쟁 때입니다. 미국이 달러를 너무 많이 찍어내서, 세계시장에서 원자재 가격, 온갖 물가 폭등이 일어났기 때문에 오펙이 기름값을 올릴 수 있었어요. 3차 양적 완화 정책을 쓴다고 하는데, 실제로 달러값이 ‘상당히’ 떨어지면 어떻게 되겠어요? 다른 나라에서 세계화폐로서 달러를 안 가지려고 할 거라고요. 안정적인 세계화폐가 없으면 국제간의 무역이나 자본거래가 크게 축소할 수밖에 없고, 세계 경제는 1930년의 세계 대공황처럼 큰 혼란에 빠질 것이라고요.
【질문】 유로화, 위안화가 세계화폐로 등장할 가능성은 없나요?
【김수행】 지금까지 미국 달러만큼, 다른 나라들이 그런 힘을 갖지 못해요. 유럽이 경제통합은 했는데, 정치적으로 하나의 힘이 안 되잖아요. 미국처럼 연방국가가 된 것이 아니라고요. 유로존이 애를 먹는 이유가, 각국의 재정이나 금융을 하나의 집단으로 유럽연합이나 유럽 중앙은행이 관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유로존이 하나의 세력으로 뭉쳐야 유로화가 세계화폐로 가능한데, 지금 그럴 능력이 하나도 없잖아요. 중국은 자기 나라 안의 정치적 불안 때문에, 위안화가 세계화폐가 될 수가 없어요. 아까 질문에서 얘기했듯이 미국이 군사력으로 세계 헤게모니를 유지한다고 했는데, 그렇게 되려면 군사비 지출이 대폭 증가해야 할 것입니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이란 등지에서 온갖 일을 벌이고 있잖아요. 금융자본은 미국의 재정적자와 국가채무의 증가를 싫어해서 군사력으로 세계 헤게모니를 유지하는 것까지 반대할 거라고요.
【질문】 부르주아지는 자본주의 경제의 회복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나요? 보기를 들면 케인즈주의를 부활시킨다든지?
【김수행】 케인즈주의 방법은 안 되고, 부르주아들이 뭘 하냐면, 돈을 찍어내어서 증권시장을 강화하고 있어요. 이게 양적 완화 정책의 핵심입니다. 돈이 산업자본으로 가서, 노동자의 실업을 해소하는 그런 정책이 안 나온다고요. 은행들이 기업한테 대출을 안 해줘요. 돈 떼일까 봐. 스스로 금이나 곡물 등에 대한 투기를 자꾸 하기 때문에, 돈이 인민을 살리는 방법으로 안 간다는 겁니다. 금융공황을 겪으면서 금융자본가들과 증권투기꾼들이 큰 손실을 보았는데, 그들은 언제 주식가격과 증권가격이 다시 폭등할까 그런 생각만 하고 있어요. 양적 완화 정책으로 돈 푼다고 하는데, 산업자본가는 큰 이익을 얻을 수가 없어요.
【질문】 이번 세계 대공황을 미국의 금융위기에서 출발했다고 보시는데. 1929년 세계 대공황과 지금 세계 대공황의 차이는 어떻게 되나요?
【김수행】 1929년 공황이 일어났는데, 대공황을 극복하는 방식이 미국에서는 루즈벨트가 뉴딜을 했지요. 실업자와 빈민들이 데모하거나 굶어 죽으니까, 사회보장제도로 못사는 사람들에게 돈을 푼 겁니다. 그리고 댐, 도로, 주택을 정부가 건설해서 일자리를 만들어 준 겁니다. 독일에서는 나치가 등장하여 남의 나라를 침략해서 자원을 획득하고 ‘생활권’을 확대해야 독일이 번영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게르만 민족주의가 나오는 겁니다. 1930년대 공황은 전쟁을 계기로 회복되는 거지요, 케인즈주의가 뭐한 게 아니에요. 히틀러가 전쟁을 위해서 군수산업을 일으키니까, 딴 나라도 할 수 없이 군수산업을 일으키는 겁니다. 전쟁이니까 정부가 개입해서 군수산업을 확대하면서 일자리가 생기고 경제가 회복된 겁니다.
【질문】 선생님은 1930년대 대공황 시기 무솔리니, 히틀러, 파시즘이 나온 것처럼, 지금도 노동계급이 투쟁을 제대로 못 하면 민족주의나 파시즘이 올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김수행】 지금 자본가계급이 노동자나 서민을 살릴 수 없으니까, 이민자나 회교도를 박해하면서 문제의 본질을 다른 곳으로 전환하는 중입니다. 이런 외국인 혐오주의를 강화하면서 노동계급의 반발을 억제하려는 것이지. 각국에서 나치 계통의 정당이 조금씩 세력을 얻는 것도 부르주아지의 이데올로기 투쟁의 한 가지 전략입니다. 이것은 결코 노동자나 경제를 살리는 정책이 아닙니다.
【질문】 그런 맥락에서 이명박 정부가 일본과 독도 분쟁하고 있는 거죠.
【김수행】 맞아요. 그리스, 스페인, 아일랜드 등 온갖 나라들이 경제에 골치를 앓고 있잖아요. 내가 생각하는 것은 노동자들이 공장을 접수하는 수밖에 없어요. 이윤추구가 아니라, 같이 일해서 주민들의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나가야 합니다.
【질문】 자연스럽게 대안 사회 문제로 넘어가겠습니다. 새로운 사회를 말하려면, 1917년 러시아혁명 경험을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선생님은 최근에 쓴 책 「마르크스가 예측한 미래사회」 6장에서 “소련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였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선생님은 결국 소련 사회가 레닌의 정치혁명 시기나 스탈린의 공업화 시기에도 결국 자본-임금노동 관계가 지배적이었다고 보시나요?
【김수행】 그래요. 자꾸 생각하면 할수록 소련의 볼셰비키혁명 자체도 소련 경제를 어떻게 개발할 거냐 하는 문제에 집중된 것 같아요. 혁명 과정에서 적군이 백군을 진압한 뒤 ‘신경제정책’을 실시하거나 ‘국가자본주의’를 이야기하거나 농업 집단화나 중화학 공업화의 추진 등에서 새로운 사회의 특징인 ‘노동자의 해방’은 전혀 논의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생산력을 증강시킬 수 있는가에만 몰두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고 반성하게 돼요. 내가 자본주의였다고 생각하는 것은, 맑스가 얘기할 때 자본주의 이후 사회에서는 노동자가 해방되는 겁니다, 임금노동자가 있어서는 안 되는 겁니다. 맑스대로 이야기하면 상품, 화폐, 임노동 관계가 소멸해야 해요. 근데 소련에서는 자꾸 경제개발 문제만 생각하는 겁니다. 자본주의 이후 새로운 사회를 계획경제로 보느냐, 아니면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사회로 보느냐는 가장 핵심적 쟁점이거든요. 그런데 특히 스탈린주의자들은 자본주의의 기본 문제라는 것이 생산의 무정부성이다, 무계획성이다, 계획적으로 운영하면, 자본주의적 공황도 없고 낭비도 없다고 생각한 겁니다. 그러니까 노동자가 주인이라는 개념이 빠지는 겁니다. 국유화의 의미가, 맑스에 따르면 생산수단을 자본가로부터 노동자에게로 소유를 이전하는 것이고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표지인데, 소련에서는 국가가 모든 생산수단을 국유화해서 노동자를 착취하여 자본을 축적해서 군수산업 등 각종 산업을 건설하는 이런 식으로 갔다고요. 임금노동자를 착취하는 자본이 인간의 탈을 쓴 게 자본가라고 파악해야 하기 때문에, 소련에서는 국가, 당과 정부의 관료나 노멘클라투라가 자본가계급이라고 볼 수밖에 없어요.
【질문】 소련의 국영기업과 달리 보기를 들면 콜호스, 소프호스는 소련의 집단 농장으로 모든 생산수단을 사회화하고 협동조합 형식에 의해서 농민이 집단 경영을 하고, 각자의 노동에 따라 수익을 분배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콜호스, 소프호스도 노동자를 착취하는 자본가라고 볼 수 있나요?
【김수행】 집단농장도 모두 정부가 통제했어요, 자발적으로 했다고 볼 수 없지요. 생산량 할당하고 임금도 위에서 다 결정하고. 맑스에 따르면, 각 공장을 공동으로 소유한 노동자들이 공장을 운영하고, 다른 공장들과 연계해서 전국적 계획을 세워야 해요. 그게 인민을 중심으로 한 계획경제지요. 이렇게 하여 직접 생산자들이 자꾸 협력하게 되고 어소시에이션(association, 연합)을 형성하는 겁니다. ‘자유로운 생산자들의 연합’이 새로운 사회에서는 ‘국가’라는 겁니다. 그런데 소련에서처럼 정부나 당의 관료들이 책상머리에 앉아서 이래라저래라하면서 계획을 세우면 노동자들이 일할 맛이 나겠어요. 소련 사회가 네프(NEP. 신경제정책)로 넘어갈 때, 레닌이 그러잖아요, 경제를 움직여야 하는데, 머리가 빨갛고 능력도 있는 사람이 없다고. 잘 모르는 사람이 공장 운영을 어떻게 해요? 네프 도입은 자본주의의 시작입니다.
【질문】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지난 1980~90년대 한국 사회에서는 소련 사회를 자본주의라고 한 적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맑스의 경제학 비판을 제대로 복원하려면, 스탈린주의를 철저하게 비판해야 한다고 봅니다. 스탈린주의 경제학은 사회주의 생산 양식론이나, 자본주의 전반적 위기론, 정치적으로는 진영 테제 등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스탈린주의 경제학 비판을 하려면 맑스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거죠? 선생님은 과거 소련 사회 경험에서 본 것처럼, 국유화가 문제라고 보시는 것 같습니다. 한국 사회 일부 운동진영에서도 국유화를 주장하는 경우가 있는데요.
【김수행】 경쟁 자본주의에서 독점자본주의 그리고 국가독점자본주의로 성장하다가 새로운 사회(사회주의 사회로 부르든, 공산주의 사회로 부르든)로 간다는 겁니다, 이것은 엥겔스 도식입니다. 새로운 사회가 계획경제라는 것을 가정하고 있는 겁니다. 여기에 노동자가 어디에 있어요? 없지요. 엥겔스 도식을 스탈린이 받아들여서 계획경제의 실현을 사회주의의 가장 중요한 지표로 제시했어요. 진영 테제는 이론도 없고, 아무것도 아닙니다. 스탈린의 강제 이주 정책이나 강제수용소는 맑스가 「자본론」에서 이야기한 ‘자본주의’의 시초 축적입니다. 옛날 소련 경제를 전형으로 하는 중앙지령형 통제경제에서는 국가가 세운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서, 국가가 동원한 노동하는 개인들은, 사실상 국가에 노동력을 파는 임금노동자, 노예에 지나지 않아요.
맑스가 생각한 노동자 해방, 해방된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창의적으로 협동하는 그런 개념이 없어진 겁니다. 평의회나 이런 게 없어진 겁니다. 이런 게 문제점이라고 생각해요. 혁명적 이행기의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는 공권력을 장악한 노동자들의 연합이 공장을 접수하여 임금노동 제도를 폐기하고 자본가계급을 ‘노동하는 개인들’로 전환시켜서 계급 없는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결국, 해방된 노동자가 주체가 돼야 하고 중심이 되어 자본주의 잔재를 부수어야 하는데, 새로운 계급인 당이나 정부의 관료가 하니까 안 돼요. 정부 관료가 “금년 목표는 이거야” 노동자들한테 “따라와” 이렇게 하니까 말로만 계획경제입니다. 지금 새롭게 나오는 소련 문서를 보면, 국영기업들이 이윤율을 올릴수록 경영자와 노동자들은 공장에서 인센티브(incentive), 보너스를 받게 되었다고요. 전체적인 계획경제도 안되고, 거짓말 보고만 되는 겁니다. 자본주의의 임금노동자와 무엇이 달라요. 고르바초프의 개혁 개방은 이런 특수한 소련 자본주의를 시장에 다 맡겨 경쟁적 자본주의로 전환시켜야 비리가 없는 능률적 사회가 된다는 겁니다. 지배계급인 당과 정부의 관료가 국유재산을 모두 헐값으로 사들여 경쟁적 자본주의의 자본가계급으로 둔갑했는데, 소련의 역사 80여 년이 이런 식으로 쭉 연결된 겁니다.
【질문】 선생님 견해에 따르면, 지금의 중국, 북한도 자본주의로 볼 수 있겠네요. 국가 주도적 자본주의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김수행】 자본주의에서는 경제적 권력이 자본가계급에 있기 때문에 국가 주도가 잘 안 돼요. 박정희 체제를 국가 주도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재벌한테 모든 걸 맡긴 겁니다. 새로 탄생한 국영기업이 별로 없잖아요? 정부가 재벌한테 금융 혜택, 세제 혜택 줬어요. 외국 차관의 도입에 정부가 지급 보증을 했어요. 재벌이 노동계급을 착취하고 중소기업을 수탈하는 것을 박정희가 총칼로 보호한 겁니다. 흔히 박정희 체제에서는 정치권력이 경제력을 제압했다고 보면서 ‘국가 주도’를 이야기하지만, 이것은 겉으로 나타난 것을 가리킬 뿐입니다. 독재적 정치권력은 권력 유지에 돈이 필요해서 증권파동을 일으킬 정도였기 때문에, 재벌에 크게 의존했고, 미국 정부가 국영기업이 아니라 민간기업 중심으로 경제를 개발하라고 지침을 주고 있는 상황에서 독재 권력은 재벌 중심으로 경제개발을 추진할 수밖에 없었어요. 따라서 ‘국가 주도’를 이야기할 수 있는 경우는 낡은 사회를 타파해서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려고 시도하는 ‘혁명적 전환기’일 뿐입니다. 실제로 해방된 노동자들이 공권력을 장악하여 공장을 접수하면서 사회를 새로운 방향으로 끌어가야 합니다.
【질문】 선생님이 자연스럽게 이행기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선생님은 「마르크스가 예측한 미래사회」에서 이행기 문제를 말씀하십니다. 이행기 강령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궁금한 게 있습니다. 이행기 강령에 시장도 사라지고 화폐도 없어져야 한다고 말씀하시는데요. 일반 노동자들이 볼 때 쉽게 다가서지 않을 것 같아요. 그리고 일반적인 좌파들, 트로츠키 이행기 강령보다도 더 센 이행기 강령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 부분을 설명 좀 해주세요.
【김수행】 자본이 형성되는 과정을 보면, 「자본론」에서 상품부터 시작하잖아요. 생산물이 상품으로 전환하면서 상품교환이 이루어지고, 상품교환에서 화폐가 생기며, 화폐를 가지고 더 많은 화폐를 얻기 위해서, 결국 임금노동자를 착취하잖아요. 상품, 화폐, 자본은 결국 임금노동자를 착취하는 것으로 귀결하게 돼 있어요. 이 기본 요소들을 없애지 않으면, 자본주의는 계속 살아남게 돼 있어요.
새로운 사회인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에서는 노동하는 개인들이 모든 노동조건들에 대해 공동으로 자기의 것으로 상대하기 때문에, 혁명적 이행기에 생산수단이든 소비수단이든 사회적 생산물을 사회의 일부 사람들이 배타적으로 처분 사용하는 것을 완전히 없애야 합니다. 이래야만 생산물이 상품형태를 취하거나, 가치에 따라 교환되거나 하는 것이 없어지고, 따라서 일반적 등가물인 화폐와 시장이 완전히 사라지게 됩니다. 이행기에 이렇게 하지 않으면, 공동의 생산수단으로 노동하고 모든 개인적 노동력을 하나의 사회적 노동력으로 의식적으로 지출하는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이 성립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행기의 초기에는 아직 자본주의가 지배적이니까 화폐가 있을 수 있겠지만, (공장평의회에서, 지역평의회로, 전국평의회로 가면서) 노동자들의 연합이 사회의 인적 물적 자원을 계획적으로 이용하여 주민의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켜야 하기 때문에, 생산한 것을 각 가정에 ‘택배’로 배달하면 될 것이므로 생산물이 시장에서 팔릴 필요도 없고, 노동자들이 화폐를 갖고 물건을 살 필요도 없어요. 화폐가 계속 사용된다면, 화폐를 많이 가진 사람들이 상품을 매점매석하여 물가를 폭등시켜 혁명을 좌절시킬 수 있기 때문에, 쿠바혁명에서도 체 게바라가 몇 번에 걸쳐 화폐개혁을 계속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질문】 최근 한국 사회에서 복지 담론이 화두입니다. 한국 사회도 경제 성장 후퇴가 발생하고 있는데, 복지 담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김수행】 한국에서는 복지국가가 성립하기도 전에, 복지국가를 타도하는 신자유주의가 1997년 말에 폭발한 금융․외환위기에 대한 IMF 처방으로 광범하게 도입됐잖아요. 서방에서 복지국가를 해체하기 위해 채택된 신자유주의가 한국에서는 복지제도도 없는 상태에서 도입되었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 즉 민중은 살기가 더욱 어렵게 된 겁니다. 대량 해고의 실시, 정규직의 비정규직화, 공기업의 민영화, 교육의 시장화, 부자 감세, 공공요금의 인상, 대외거래 자유화와 개방화, 긴축 내핍정책 등이 대표적입니다. 한국 사회는 깡패 자본주의 사회라고요. 실업문제, 자살 문제, 빈곤 문제를 전부 개인의 문제로 돌리잖아요. 사회 문제로 봐야 한다고요, 그래야 복지가 문제로 될 수 있어요. 빈곤․실업․불안․자살 등이 ‘개인’의 책임이 아니고 ‘사회’의 책임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야 ‘복지정책’이 제대로 나올 수 있어요. 그런데 한국 사회의 지도자들은 전혀 이런 인식을 가지고 있지 않을 뿐 아니라, 고통에 시달리는 민중도 이런 인식이 부족해요.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이 사상이나 생각 면에서는 완전히 낮은 수준입니다. 이런 상태니까, 복지에 대한 요구가 어느 날 갑자기 ‘무상급식’이나 ‘반값 등록금’이라는 형태로 분출해서 나오는 겁니다. 이것을 복지 포퓰리즘이라고 욕하든 말든, 무상급식을 ‘쟁취’했기 때문에 민중은 이제 용기와 자신감을 가지고 계속 더 많은 복지를 요구할 수 있는 겁니다. 복지에 대한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부자에 대한 공격, 부자를 위한 정당과 정부에 대한 반대가 강화될 것이고, 부자들은 ‘옛날 그 좋던 박정희 시대’를 그리워할 것이지만, 이제는 세상이 ‘디지털 세상’이 되어 그런 폭력과 부정․부패가 지배할 수가 없어요.
1%의 부자가 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99%의 서민은 빈곤에 시달리는 자본주의 사회를 없애버리고, 매년 생산된 부를 나누어 가지면,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하게 잘 살 수 있는 새로운 사회가 될 겁니다. 정치 민주화가 정치면에서의 ‘1인 1표’라면 ‘경제 민주화’는 당연히 경제면에서의 ‘1인 1표’일 것이므로, 경제 민주화의 핵심은 간단히 말해 공장과 회사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들이 공장과 회사를 운영하는 겁니다.
【질문】 선생님의 앞으로 연구 계획은?
【김수행】 이제 맑스 경제학의 원론을 뛰어넘어 좀 더 구체적인 한국 경제를 연구하고 싶습니다.
<편집자 주> 이 글은 2012년 여름, 남궁원 동지가 성공회대 연구실에서 김수행 선생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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