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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의 말씀(80) : 코로나가 주는 교훈 (겸손)
마태복음 23:1~ 12
'이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며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저희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여 하나니 곧 그 차는 경문을 넓게 하며 옷술을 크게 하고
잔치의 상석과 회당의 상좌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이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하나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자시니라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지도자는 하나이니 곧 그리스도니라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아프리카 속담에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가려면 함께 가라 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왜 코로나가 왔을까.. 신앙적으로 많이 고민하고 기도하는 중에 깨달은 것이 이 속담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전까지 우리 교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은 다른 곳이니 나랑 달라 하고 멀리 하거나 우리만 잘 되면 된다' 라고 생각했는데 그걸 반성하고 회개하게 하는 그런 속담이었습니다. 코로나로 우리는 도리어 함께 예배 드리지 못하고 함께 교제하지 못하고 함께 찬양하고 기도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코로나가 끝나면 이제 우리는 더 함께 하고 더욱 같이 해야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만 우리 성도들끼리만 우리 교회만 같이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이웃과 함께 해야하는 것이죠.
빨리 가려면 혼자 가면 됩니다. 하지만 이제 함께 가라고 함께 멀리 가라고 하나님께서 이 코로나를 통해서 우리에게 교훈을 주신다 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코로나로 함께 하지 못하지만 곧 그렇게 함께 할 그 때를 사모하고 준비하는 저와 여러분 우리 연동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 각 가정에서 우리 옆에 있는 분들과 이렇게 인사 나누길 원합니다. 우리 함께 멀리 갑시다. 우리 함께 멀리 갑시다.
오늘 마태복음에 말씀 80번째 '코로나가 주는 교훈 - 첫 번째 겸손' 이라는 말씀의 제목으로 함께 말씀을 나눠 보고자 합니다.
코로나 시대가 되면서 전에는 사용하지 않았던 신조어들이 코로나 시대에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가장 널리 사용되는 신조어는 언택트 Untact 라고 하는 표현입니다. 그 뜻은 비접촉 비대면이지요. 원래는 컨택트 Contact 라고 하는 단어가 있는데 그 반대 표현이 언택트는 아닙니다. 사실은 영어에 이런 표현이 없는 것인데, 이 표현이 코로나 시대에 서로 비대면 비접촉으로 해야 한다 라는 표현으로 언택트 라는 신조어가 나와서 이제는 당연한 것처럼 쓰여지고 있습니다. 또한 코로나 확진자 표현의 그 살짝 된소리를 넣어서 확찐자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운동도 못 하고 외출도 하지 못해서 살이 쪘다 라고 하는 것을 우스개로 이렇게 표현한 것도 신조어로 나왔죠.
또한 우리 주부들이 이런 표현도 쓴다고 합니다. 돌밥 돌밥 돌밥입니다. 돌밥이 뭔지 아십니까? 돌솥밥 두 개가 아닙니다. 돌아서면 밥 해야 되고 돌아서면 밥 먹어야 되고 돌아서면 또 밥 해야 되는 그 반복된 삶을 돌밥 돌밥 이라는 표현으로 사용한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코로나 블루가 있는데요 코로나 시대 우울증을 코로나 블루라 합니다. 또는 거리두기를 하는 것을 또 거리두기 사회적 거리두기 거리두기라는 표현도 과거에는 쓰지않았죠. 교회에서는 현장 예배 또 여러분 지금 드리고 있는 예배를 비대면 예배라 하는데 이런 표현은 전에는 사용하지 않았지만 코로나 시대에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줌 Zoom 성경 공부 언택트 심방 등등의 신조어들이 만들어졌습니다. 우리 자녀들과 지금 많은 분들이 함께 예배드릴 겁니다. 방학을 해서 이제 아이들도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졌는데요 이제 방학을 해서 방학 계획표를 세우는 데 요즘 하나더 계획표를 세운다고 합니다. 그것이 코로나 방학 수칙이라는 것입니다. 코로나방역 수칙이 아니라 코로나 방학 수칙인데요 우스개로 진짜 그렇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 코로나 시대를 재밌게 하나 만든 것입니다.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주는 대로 먹는다. TV 를 끄라고 하면 당장 끈다. 사용한 물건은 즉시 제자리에 갖다 놓는다. 한번 말하면 바로 움직인다. 엄마에게 엄마에게 쓸데없이 말을 걸지 않는다. 아까 우리 집에 계신 우리 주부들이 돌밥 돌밥이라 했는데요, 돌솥밥 두 개가 아니라 돌아서면 밥해야 되고 돌아서면 밥 줘야 되고 그런 표현을 쓴다고 그래서 우리 엄마들이 주부들이 참으로 지금 힘들고 어렵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그 상황을 알고 이렇게 쓴 겁니다. 그런데 맨 마지막에 이렇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위 사항을 어기면 피가 코로 나올 것이다. 말 장난을 하는 건데요 피가 코로 나올 것이다. 코로나가 온다는 게 아니라 코피가 나올 것이다 라는 걸 저렇게 코로나 시대에 코로 나올 것이다 라는 표현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지금 이 코로나가 우리들의 큰 영향력을 주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이런 코로나 때문에 생긴 신조어들을 접하면 이런 현상들은 코로나를 통해서 경험하고 그 가운데 교훈을 얻은 것으로 표현하는 거죠. 거리두기 언택트 확찐자 등등의 표현들은 그 가운데도 경험과 그 교훈들을 생각해서 만든 신조어들입니다. 좀 전에 한 아이가 만든 코로나 방학 수칙은 코로나 전에도 지켜야 할 규칙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저희는 지금까지 잘 지키지 않았던거죠. 아이들은 주는 대로 먹지 않았습니다. 편식하고 가려 먹고 자기가 먹고 싶은 것만 먹었죠. 그동안 음식을 정성껏 준비한 어머니의 그 모습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사용한 물건은 즉시 제자리에 갖다 놓지 않았습니다. 내 멋대로 편하게 살았죠. 누군가 치워 주겠지. 누군가 청소해 주겠지. 어머니가 뒤에서 다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손을 자주 씻고. 위생과 청결을 유지하려고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전에는 그렇게 살지 않았습니다. 지금처럼 이렇게 손을 자주 씻지 않았지요. 코로나를 통해서 그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코로나가 종식 되더라도 우리는 이 코로나때 지켜왔던 이런 많은 교훈들을 이후에도 계속 중요한 행동과 습관으로 지키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코로나를 경험하면서 우리는 일상적인 삶이 많이 변화되었습니다. 더불어 우리는 특별히 신앙적인 부분에 귀한 레슨 Lesson 을 받았습니다. 교훈을 받고 경험을 하고 깨달음을 얻는 과정을 저희들은 겪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마태복음 강해 설교를 이제 네 번 남았습니다. 1년 8개월 동안 지금까지 이렇게 말씀 가운데 함께 마태복음 말씀 가운데 함께 오셨는데, 이제 한 달 남았는데 그 한 달 동안 코로나가 주는 교훈들이라는 말씀의 제목으로 네 가지 말씀으로 마태복음 강해를 정리하고자 합니다.
오늘은 첫 번째 하나님께서 첫 번째로 이 코로나 시대에 주는 교훈을 우리에게 우리는 어떻게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 첫 번째 교훈은 코로나가 주는 신앙적인 교훈으로 우리는 코로나를 통해 어떤 분야든 어떤 삶이든 어떤 행동과 말이든 어떤 삶의 모습이든 겸손해야 한다 라는 것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겸손해야 한다.
코로나 초기 가장 먼저 코로나 바이러스의 타격을 입은 나라들이 여러분 다 아시지만 선진국들이었습니다. 세계 최강국이었던 미국 그리고 G7에 포함되어 있는 유럽의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같은 선진국들이죠. 그런 나라들이 초기 바이러스가 감염될 때 아, 선진국인데 안전하게 잘 지키고 하겠지 생각했습니다. 기술 발전이 뛰어난 나라니까 금방 사라지겠지 라고 했지만 그 위기를 극복하기 못하고 이 선진국들이 가장 많은 확진자 들을 내면서 선진국이란 이름을 무색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콧대 높이며 자랑했던 선진국들이 국경을 폐쇄하고요 경제 활동이 중지되서 경제 성장률이 마이너스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 사이에 우리나라는 마스크와 진단기를 빠르게 생산했고 드라이브스루 Drive Thru 라고 하는 검사 시스템을 내놨는데, 유례 없는 것들을 세상에게 알리기도 했습니다. 사재기 없는 높은 국민의식을 보여줬고 국경 폐쇄 없이도 감염자 관리를 잘 했지요. 그래서 선진 방역국가라는 위상을 높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어떻습니까? 여러분 지금 상황이 어떻습니까?
잘하고 있다 잘한다 라고 생각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백신 접종에 준비가 부족해서 계속해서 잡음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다시 확진자는 1차 2차 3차 대유행 때보다 많아졌습니다.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다른 나라들도 백신을 많이 맞아서 조금씩 확진자가 더 드는 듯 하는데 오히려 더 감염 환자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전보다 더 심각한 상황으로 가고 있습니다. 돌파 감염도 생기고요 변이 바이러스가 생겨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됐다 싶었는데, 아직 끝이 아닙니다. 곧 종식된다 생각했는데 변이 바이러스가 나와서 종식은 아직도 저 멀리 있는 것 같습니다. 작년 1월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 공포 이후로 눈에도 보이지 않는 그 바이러스를 이기지 못해서 철저하게 저희들은 깨지고 있습니다. 또 깨지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교훈에 교훈을 얻고 있죠. 저는 하나님이 이런 과정을 통해 철저히 저희를 낮추시고 철저히 깨트리는 시간을 우리에게 허락해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절과 3절에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아있으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6절과 7절에는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한다 라고 말씀하고 계시죠. 예수님은 서기관 바리새인과 더불어 이전에 21장과 22장에서 예수님과 논쟁했던 모든 권세잡은 자들을 향해 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아있다 라고 얘기합니다. 모세의 자리는 상징적으로 교만과 오만의 자리 하나님이 되겠다 라고 하는 자리이지요. 우리가 신앙 가운데 해야하는 것은 모세가 우리에게 알려준대로 모세의 뜻 모세의 율법 모세의 가르침 모세가 우리에게 준 그 교훈을 지키는 것인데 도리어 그들은 그 모세의 자리에서 모세가 우리에게 준 교훈과 가르침은 다 버리고 그 자리에 자기들이 앉으려고 한다 라는 것입니다.
모세가 앉은 높은 자리에서 하나님처럼 되려고 하는 그 자리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의 교만함을 꾸중하고 계시는 것이죠. 그러면서 11절과 12절에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우리 각자의 자리에서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예수님은 우리가 겸손하기를 원하십니다. 큰 자가 되기 위해서는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높은 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낮은 자리에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저희가 낮고 섬길때 낮은 자리에 있고 섬기는 자리에 있을 때 도리어 하나님께서 우리를 높이시고 크게 만들어 주신다 라고 약속해 주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그 전제는 저희는 겸손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지요. 코로나 때에 하나님의 교회가 요나처럼 코로나의 풍랑을 잠잠케 하기 위해서 스올과 지옥과 같은 그 바다에 몸을 던지는 희생과 헌신의 역할을 기대하고 말하셨는데 코로나 대유행의 위중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 그리스도인 만이라도 성도들 만이라도 교회 만이라도 이 땅에 고통과 아픔 코로나를 발생하게 한 인간의 무책임한 모습 속에서 우리 탓입니다, 교회 탓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문제였습니다, 우리가 회개합니다,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잘 다스리는 청지기의 사명을 잘 감당하지 못 했습니다, 우리 탓입니다 라는 책임지는 그리스도인 책임지는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길 원하셨는데 우리가 그렇지 못했다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런 모습 속에서 우리는 다시 주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 판에 새겨야 합니다.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분명히 높아지리라 라는 이 말씀을 우리는 새겨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사단에게 받으셨던 그 시험과 지금 우리가 코로나를 시험 테스트라고 생각해서 양쪽의 시험을 비교해서 생각해본다면 코로나 때에 내 교회에 이름을 내라 내 교회 첨탑을 높이 세워라 내 이름을 널리 알려라 라고 하는 소리가 들리면 그것은 사단의 유혹입니다. 적어도 믿음의 사람들이 들어야 하는 하나님의 음성은 사단은 물러가라고 외쳐라 오직 나만 따라라 하나님만 따라라 그분만 쫓아가라 하는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분을 쫓아가고 하나님만을 따르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낮아지고 겸손하고 희생의 자리로 내려가는 것 우리는 코로나 라는 시험 가운데 유혹을 이겨내고 예수님께서 가셨던 그 낮은 자리로 가는 겸손한 신앙이 우리 가운데 필요합니다. 코로나를 통해 그렇게 깨닫고 배운 참 겸손의 삶을 우리 신앙 가운데 어떻게 드러낼 수 있는가?
저는 두 가지를 여러분과 나눠보고자 합니다. 그 첫 번째는 신앙에 대한 겸손의 삶 겸손의 삶을 견지해야 한다. 신앙에 대한 겸손의 삶을 견지해야 한다. 부제를 부친다면 '종교 중독'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종교 중독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앞에서 코로나 시대 신조어들이 등장했다고 말씀드렸죠. 언택트 확찐자 거리두기 코로나 블루 교회에서는 비대면 예배 줌 성경공부 등등의 신조어들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물론 과거에서부터 조금씩 사용되었지만 최근 코로나 때문에 각 언론과 종교계에서 많이 사용되는 표현이 종교 중독이라고 하는 표현입니다. 종교 중독이란 본질적으로 신이신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고 종교적인 활동과 행위에만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말로만 신앙의 대상으로 삼고 실제로는 자기를 위해 자기 만족을 위해 자기 이익과 성공을 위해 종교를 신앙을 이용하는 사람들이지요. 그 사람들을 종교 중독자라고 하는데 그들이 보여주는 행태를 종교 중독이라고 하는 것이죠.
그런데 코로나로 인해 사람들은 자기 편의를 추구하는 종교 생활이 드러납니다. 우리 기독교 신앙도 자신의 편의에 따라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더 편하게 신앙생활 할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묻기 전에 내 편이를 찾고 있는 것이죠. 코로나로 불안하고 우울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찬양 영상이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혹자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예배가 너무 지루합니다. 영상 예배 드리기 힘듭니다. 찬양 영상 한 서너편 듣고 예배드린 걸로 하겠습니다. 그게 은혜롭습니다 하는 분도 계십니다. 여러분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건데 내 편한 것으로 생각하고 예배를 드리려고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코로나 정책에 따라 코로나에 대한 국가 정책에 따라서 누구는 보수 누구는 진보라고 편을 가르고 프레임을 만들어서 이런 이념에 교회와 그리스도 인들을 이용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있습니다. 코로나 상황 속에서 이념을 종교에 이용하는 모습이 종교 중독이지요.
지금은 어느 때보다 성도들을 더 살피고 지역 사회를 더 돌아보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교회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찾고 수고해야 하는데 요즘 교회는 마치 이익집단처럼 우리가 손해봤다 우리만 차별받았다 우리만 홀대 당한다 라고 말하니 여러분 그 말이 맞긴 합니다. 예배 드리는 것 많은 교회들이 예배 드릴 때 방역지침을 너무나 잘 지킵니다. 예배드려서 확진자 들이 늘어난 것은 조금이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종교단체에 집회 특별히 우리 기독교의 예배를 많이 막고 있습니다. 억울하죠. 정말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예배를 못 드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우리가 우리도 공정하지 못하고 우리도 억울한 부분을 얘기하는데 사람들은 국민들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교회가 불신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걱정해야 될 부분은 예배를 함께 모여서 못 드린다는 것뿐만 아니라 더 걱정해야 하는 것은 교회가 신뢰를 주지 못하고 믿음을 주지 못하는 모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선교의 대상이 누굽니까? 우리들끼리만 선교의 대상입니까? 아니죠. 교회를 불신하고 교회를 믿지 못하는 교회를 비판하는 그들도 교회로 불러 모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선교인데 우리가 그들을 위해서 지금 어떻게 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예배를 못 드려서 손해보는 것 같고 함께 모이지 못해 교회가 어려운 것 같아서 걱정과 근심 속에서 도리어 하나님과 세상 사람들은 이럴 때일수록 교회가 더 세상 걱정하고 이웃의 고통에 함께 하고 함께 우는 그런 역할을 해주기를 원한다는 것은 그렇게 그들은 생각하는데 하나님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교회와 믿는 자들이 그렇게 못하는 것이 보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교회를 향해 너희는 종교 중독에 빠졌다. 너희들 정말 하나님을 믿느냐? 어떻게 그렇게 하나님 믿는데 이기적으로 할 수 있느냐 하고 얘기한다는 것이지요. 풀러 신학교 총장이셨던 리처드 마우 교수는 '왜곡된 진리' 라는 책에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리스도 인들은 어떤 이데올로기를 고수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 인이라는 것은 이데올로기나 이념이나 사상이나 이론에 그것을 쫓아가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럼 어떤 사람이냐?
그리스도 인은 원칙이 아니라 이념이 아니라 사상이 아니라 인격이신 하나님께 헌신한 사람이라는 것이죠. 우리는 인격이신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입니다. 이념이 달라도 인격적으로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지요. 생각은 달라도 주님의 성품을 우리는 서로를 축복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 인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사랑 그 긍휼 그 은혜 여러분 그거보다 더 큰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잠언 10장 12절 베드로전서 4장 8절 말씀 대로 여러분 사랑은 하나님의 성품이신 그 사랑은 허다한 것을 덮습니다. 예수님은 그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 하늘 보좌 버리고 이 땅에 내려와 죽기까지 복종함으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에게 사랑을 친히 보여주셨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신앙이 여러분 종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삶으로 보여주는 인격적인 신앙이 되어야지요 그렇다면 예수를 믿고 그를 따르는 저와 여러분 같은 그리스도인들이 보여줘야 할 신앙은 예수님이 보여줬던 겸손입니다. 낮아짐 섬김의 신앙을 인격으로 드러내는 모습이 우리 그리스도 인의 모습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의 한국교회는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큰 불신을 받고 있습니다. 큰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 가운데 주님이 다른 것 원하시는 거 아닙니다. 제발 이제 겸손해라. 말로만 낮은 곳에 있다고 얘기하지 말고 진짜 낮은 곳을 살피고 어려운 이웃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돌봐라. 이론으로 말로만 하지 말고 몸으로 실천으로 인격으로 그 삶을 보여줘라. 여러분 신앙을 액세서리로 생각하고 삶의 한 구석을 치장하는 걸로 여러분의 신앙을 그렇게 만들지 마십시오. 이제는 제대로 된 신앙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진짜 예수님처럼 겸손하고 섬김으로 이웃과 지역사회와 세상을 헌신하는 교회 모습을 보여줄 때 코로나는 우리에게 진짜 교훈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진정으로 코로나가 종식되는 것은 백신과 치료제가 만들어져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코로나를 통해 우리의 신앙이 우리 교회의 자리가 어딘지를 깨닫게 될 때 코로나는 종식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창조세계에 대한 겸손한 삶을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창조 세계에 대한 겸손한 삶을 살아야 한다. 연일 35도가 넘는 폭염이 계속되는 가운데 이런 이상기후는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죠. 지난 주에 중국에서는 홍수가 나서 도시 하나가 마비가 되었습니다. 산불이 미국에서 산불이 났는데 그 산불이 심해지니 불기둥 같은 토네이도가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처럼 폭염이 계속되는 것은 더위로 사람이 죽기도 합니다. 일부에서는 이상기후는 지금처럼 계속 될 것이라고 얘기합니다. 여름엔 여름 겨울엔 겨울 왜 그런가? 전에는 다양한 이유들을 얘기했는데 요즘에는 한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왜 이런 이상기후가 계속 발생될까? 환경오염 때문이라는 것이죠. 환경오염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뭔지 아십니까? 자연이 파괴되고 환경이 오염되는 유일한 원인자는 인간 뿐입니다. 저와 여러분 인간 때문에 이렇게 환경이 오염되고 자연이 파괴되서 이런 이상 기후가 생긴다 라는 것입니다.
린 화이트라는 학자는 이런 자연 파괴를 일으킨 인간을 정당화한 것이 하나님이고 성경이라고 얘기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세상을 다스리고 정복하라 명령하셨기 때문에 대부분의 기독교가 특별히 역사적으로 기독교의 배경을 가졌던 유럽의 선진국들이 세계를 정복하면서 착취하고 무분별로 파괴해서 문명과 산업을 발전시켰고 그 과정 속에서 하나님의 명령대로 땅과 물과 환경을 마음대로 파괴시켜 엄청난 이익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후에 이 땅이 하나님의 창조 세계는 지구온난화 환경오염 이상기후로 더 고통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린 화이트 이후에 많은 신학자들은 린 화이트가 잘못 해석했다 잘못 보았다 라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교회와 그리스도 인들이 무차별적으로 지구의 정복하는 그런 지구의 파괴자가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백성들로써 지구를 지키고 보호하고 그 가운데 이 지구를 지키는 청지기와 섬김이로 하나님의 창조 세계 자연을 지키는 자들이 우리 그리스도 인의 정체성 이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한 개인의 구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나를 포함해 우리 여기서 우리 일하는 것은 내 옆에 사는 이웃들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세계가 함께 구원받는 통전적인 세계를 소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삶을 죽음 이후에만 꿈꾸는 것이 아니라 죽음 이후에 저 천국에서 아름다운 세상 아름다운 그 숲이 만들어진 천국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아름다운 하나님의 에덴동산과 같은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죠.
우리는 이제 우리가 살아 있는 이 순간 지금 우리가 땅을 딛고 있는 지금 살아가는 삶 속에서 내가 그리스도 인으로 살아가는 동안에는 우리는 하나님이 친히 창조하신 이 땅을 보존해서 함께 구원받는 그때까지 함께 나아가는 신앙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전에 말씀드린 대로 이 코로나는 실제 사람의 문제 인재라고 얘기합니다. 사람에 의해서 발생된 자연 파괴의 문제였다 라는 것이죠. 그것이 온 인류를 고통에 빠지게 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생태학자 최재천 교수는 코로나는 자연과 공생하지 않았던 인류의 성장 방식이 가져온 재난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최재천 교수는 지금 목을 놓아 기다리는 백신과 치료제가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을 이야기하면서 이런 대안을 제시합니다. 생태 백신이 필요하다.
쉬운 말로 자연 보호인데 생태를 존중하는 문화로 인류의 생활방식과 산업구조를 모드를 바꿔야 한다 라고 말합니다. 생태 백신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 신앙적인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본다면 여러분 창세기 1장을 보면 인간은 맨 마지막 여섯 번째 날 창조되었습니다. 왜 여러분 생각하기에 하나님께서 여섯 번째 날 맨 마지막 날에 인간을 창조하셨습니까?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얘기합니다. 모든 것에 그 생태계 꼭대기 피라미드 맨 윗점에 있지요. 모든 것의 포식자입니다. 가장 이성적이고요 뛰어난 호모사피엔스 지혜를 가지고 있는 자들이 인간이죠. 그런 뜻으로 본다면 인간을 첫 번째 날 만드시지 왜 하나님은 맨 마지막 날 만드셨을까? 물론 저희들이 아무리 알려고 해도 아마 주님 오실 때까지 알 수 없을 겁니다. 천국에 가서 하나님께 왜 인간을 여섯째날 만드셨습니까 라고 하나님께 여쭤야겠죠.
하지만 저는 그 여섯째 날에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만드신 이유가 이렇게 생각이 듭니다. 겸손하라고. 너희들 겸손해야 한다. 저와 여러분 같은 인간은 모든 만물보다 가장 늦게 창조된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이 제 아무리 재능과 기술과 능력을 가지고 있더라도 우리는 모든 창조물 보다 나중에 만들어 주신 것을 깨닫고 모든 것을 헤아리고 돌보는 마음을 가지고 살라고 맨 나중에 창조하셨다 라는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천지를 창조하시다가 다섯째날 창조하시고 창조를 그만 두셨습니다. 그러면 우리 인간은요 창조되지도 만들어지지도 존재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런 천국에는 뭐가 있을까요?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빛 궁창 산과 바다 육지 다섯째날 바다에 물고기 그리고 새들을 창조하셨습니다. 다섯째 날까지 창조하셨으며 천국에는 아마도 아름다운 수족관이나 아름다운 새들의 천국이 만들어졌을 것입니다. 인간은 거기 없습니다. 왜 여섯째날 만들어졌습니까? 우리 인간은 세상에서 말하는 만물의 영장인 이전에 성경대로 본다면 가장 늦게 창조된 하나님의 피조물임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은 곧 우리가 갖고 있는 역할 우리의 위치 우리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더 분명하게 하는 태초의 말씀입니다. 다른 건 아닙니다.
첫 번째 날에서 여섯째 날까지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을 이제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대신해서 그것을 더 아름답고 더 풍성하게 지켜내고 보호하고 마지막 종말의 마무리 회복될때 태초에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야 보기 좋구나 태초에 하나님 보시기에 야 보기에 좋다 하신 말씀대로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우리가 마지막 날 창조되어서 주님 오실 때 이 자연 환경을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아름답게 보존해서 마지막 때도 하나님 보시기에 보기에 좋구나 하도록 마지막 종말을 맞이하라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 마지막 날 만드신 것입니다. 여러분 코로나가 교회를 멸망시키고 믿는 자들을 핍박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요 코로나는 우리에겐 이제 심판입니다. 저주고요. 그러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이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 우리 교회에게 그리스도 인들에게 교훈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이제 겸손해라. 낮아져라 섬기고 헌신의 자리로 내려오라고 하는 주님의 음성을 주는 것입니다. 모세의 자리에서 내려와 이제 사랑과 겸손의 인격을 보여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살라. 또한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향해서도 더 겸손한 마음으로 자연을 보호하고 환경을 아름답게 지켜냄으로써 진정한 코로나 종식 시대를 준비하는 교회와 그리스도 인이 되어라 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코로나를 통해 우리에게 주는 하나님의 교훈 첫 번째입니다.
하나님은 코로나로 우리가 겸손을 깨우치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게 하면 겸손의 길을 걸어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더욱 새로운 때를 준비하고 예배하는 저와 여러분 우리 연동교회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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