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 영산 만년교(昌寧 靈山 萬年橋) 보물 제564호
마을 실개천 위에 무지개 모양으로 만들어 놓은 돌다리로, 실개천이 남산에서 흘러내린다 하여 ‘남천교(南川橋)’라고도 불리운다.
개천 양쪽의 자연 암반을 바닥돌로 삼고 그 위에 잘 다듬어진 화강암 석재를 층층이 쌓아 무지개 모양의 홍예(虹霓)를 이루고 있다. 그 위로는 둥글둥글한 자연석을 쌓아 올리고 맨 위에 얇게 흙을 깔아 다리 위로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길을 만들어 놓았다. 노면은 곡선을 그리며 양 끝을 길게 늘이고 있어 다리의 분위기를 한결 아늑하게 해준다.
조선 정조 4년(1780)에 처음 쌓은 것을 고종 29년(1892)에 다시 쌓아 놓은 것으로, 지금도 마을 사람들이 통행할 만큼 튼튼하여 홍수 등에도 전혀 피해가 없다고 한다.
창녕보림사지삼층석탑(昌寧寶林寺址三層石塔)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46호
보림사에 있었던 3층 석탑으로, 절은 임진왜란 때 불 타 없어지고 탑만 빈터에 그대로 방치, 훼손되어 오던 것을, 1915년 영산초등학교로 옮겼다가 1927년 학교를 지금의 자리로 옮겨 오면서 함께 옮겨 세웠다.
형태는 기단(基壇)위에 탑신(塔身)의 1층 몸돌과 지붕돌 3개를 올리고 있는 상태로, 2·3층의 몸돌은 사라지고 없다.
통일신라의 일반적인 석탑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탑을 다듬은 솜씨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영산법화암다층석탑(靈山法華庵多層石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69호
법화암 경내에 있는 고려시대 다층석탑으로, 통일신라말에서 고려초에 유행한 청석탑(靑石塔) 또는 와탑(瓦塔)의 형태를 띠고 있다. 본래 영취산 위 보림사 소속 암자에 있던 것을 현재의 법화암으로 옮겨 놓은 것이라 전한다.
탑은 해인사 원당암 다층석탑과 같은 독특한 모습으로, 기단부(基壇部)는 화강암이고 탑신부(塔身部)는 점판암(벼루를 만들 때 사용되는 돌)으로 되어 있다. 연꽃을 새긴 기단은 불단과 비슷한 형태로 보인다.현재 탑신은 몸돌 1개와 지붕돌 7개만 남아있다. 각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을 상징하는 선이 그어져 있고, 얇게 만든 지붕돌은 밑면에 3단씩의 받침을 두었다. 꼭대기에 있던 머리장식은 모두 없어지고,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을 대신한 다른 종류의 자연석이 놓여 있다.
석재를 많이 잃어버렸지만 원래 9층이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점판암이라는 특별한 재료를 사용한 것으로 보아 고려 중기 이전에 세운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