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돼지들이 사라졌다. 노란 우의를 입은 사나이가 피리를 불었다고 했다. 꽥꽥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돼지들이 따라나섰다고 했다. 돼지를 몰고 가는 바람의 목관에 몇 개의 구멍이 있었다고 했다. 그 구멍 속으로 돼지들이 산 채로 묻혔다고 했다. 마을에 낯선 투명한 음계들이 떠다닌다. 마을의 지하 군데군데가 팽창하고 증오는 모두 네 개의 발자국을 가졌다는 소문이 돌고 막걸리잔에 붉은 핏발들이 가라앉았다. 골목엔 안개가 돌아다니곤 했다고 했다. 그 위로 은하 같은 봄꽃이 떨어지고 몇몇은 돼지발굽 모양이라고 우기기도 했다. 돼지들이 사라진 마을에 꽥꽥대는 고요가 돌아다닌다고 했다. 텅 빈 돈사마다 기르던 예의를 가두고 조용히 문을 닫았다고 했다. 병든 발굽을 하고 봄이 지나가고 음계의 어느 쉼표에도 돼지들이 살지 않는다. 포클레인 몇 대가 지방도를 따라 꽥꽥거리며 지나갈 뿐 사라진 돼지들이 우적우적 마을을 먹어치우고 있다. 그리고 어제 최씨 성을 가진 한 사내가 빈 돈사에 목장을 맸고 오늘 마을 입구로 포클레인 한 대가 천천히 들어오고 있다.
- 2011년 <창작과비평> 신인상 당선작
■ 이지호 시인 - 1970년생 - 충남대 식품영양학과 졸업 - 시집 <말끝에 매달린 심장> 외
《 심사평 》
이지호의 시는 현실을 아우르는 탄탄한 서정성이 가장 큰 장점이다. 소도시나 농촌을 배경으로 한 그의 시는 전통적인 서정의 운행을 하면서도 현실에 대한 팽팽한 인식을 놓지 않는다. 운문과 산문을 적절히 교직하여 리듬을 만들어내는 능력 역시 높이 살 만했다. 또한 많은 편수를 투고했음에도 골고루 수준 이상의 성취를 보여준 것이 장점으로 부각되었다. 꽤 오랫동안 공들인 것이 틀림없는 이 신인의 시세계가 앞으로 더욱 무르익을 것임을 의심치 않기에 그를 신인상 수상자로 선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