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하 팔순 회고담"을 읽고서
노종해(CM리서치)
고 신경하 목사님 1주기를 맞으며 팔순 회고담을 다시 읽어 보았다.
"신경하 팔순 회고담"을 택배로 받고 놀라웠다.(2020. 11. 26.) 택배봉투를 열어보니, "주님의 평화!"란 제목의 안부서신이 보였다.
[제가 인생의 한 매듭을 짓는다는 심정으로 회고담을 만들었습니다. 부끄러운 마음으로 "신경하 팔순 회고담"을 전해드립니다. 그간 베푸신 사랑과 기도에 대해 아름답고 소중한 기억이 되었으면 합니다.
다가오는 성탄에 교회와 가정 모두 두루두루 주님의 은총이 함께하길 소망합니다. 고맙습니다.
2020년 11월 25 일신경하 목사 드림]
따스한 노란 표지의 회고담을 열어보니 첫 장에 친필싸인이 보였다.
아! 내가 이러한 소중한 책을 선물 받을 존재인가?라는 생각에 놀랍고 참 감사했다.
나는 1978년 군목 제대하고 서울동지방 돈암교회 부목사로 부임한 때부터 도봉교회를 담임하시던 신경하 목사님을 접하게 되었다. 그 후 틈틈이 교류하였고 선배목사로 존경하게 되었다. 따듯한 친밀감으로 조용히 다가와 손을 잡아주시며, 돈키호테 같은 거침없는 말도 경청해 주고 격려해 주시던 선배의 성품이 어느덧 가슴에 젖어들어왔다.
내게 각인된 그분의 성품은 목사 특유의 자기 자랑, 과시, 전시, 허식이 없이 늘 진솔하게 다가오는 온화한 성품이셨다.
회고담을 받고 읽기 시작하여 다음날 완독하였다. 23세 젊음으로 첫 목회지인 서울동지방 군남교회에서부터, 도봉교회, 우이교회, 아현교회 목회시절을 잔잔히 회고하고 있다.
한 마디로 "온유, 겸손, 섬김"을 목회자의 덕목으로 삼고, 묵묵히 자신의 의지를 굽힘 없이 지켜 펼쳐 온 목회를 회고하고 있다.
"고난 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자세는"희망"을 넣어주고, 공정과 정의, 공평사회를 지향하며, 평화를 위해 일하며, 건강한 교회를 고심하며 분투하신 목회를 회고하고 있다.
감독회장에서 방 한 칸도 마련없이 은퇴하신 후, 형님의 배려로 마련해 준 강화도 고향땅에서 집과 텃밭에서 10년을 자연과 함께 지내 온 삶을 그리고, 그것마저도 팔순이 되며 은퇴하여 녹번동에 자리 잡으심을 잔잔히 회고하신다.
이젠 팔순 이후의 삶은 걸으며 기도하는 "걷기도"를 하시며, "자유로운 꿈을 펼치시고, 당당한 노인"으로 삶을 다짐하고 계신다. 날마다 걷고 걸으며 기도하시며 건강을 돌보시고, 어디에 집착, 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영혼으로 꿈을 펼치는 건강한 삶을 기도하고 계신다.
회고록을 다 읽고 선배의 부드러움과 온화한 모습이 떠올라 지난 상념에 젖어들었다.
나는 해외에서 30년을 지냈기에 그분이 활발하게 활동하시던 시기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다.
90년도, 2천 년 초기의 고뇌찬 교계와 사회 현실에 대처하는 온유하면서도 단아한 선배와 마주하여 회고를 들음을 실감하였다. 선배님! 감사합니다. 동참, 동행하며 평화를 위해 부르시는 그날까지 나아가겠습니다!
저도 은퇴 후, 날마다 자연과 함께하며, "걷기도"로 건강하게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귀한 선물, 감사합니다.(노종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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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9월 22일 소천한 신경하 감독은 경기도 강화 출생으로, 감리교신학대학교를 나와 우이교회와 아현교회 등에서 시무했으며, 2004년 최초의 4년 전임 감독회장에 취임 해 감리교회를 이끌었다.
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회장, 교단장협의회 상임대 표, 아시아감리교협의회 의장 등 국내외 다양한 직책을 맡아 교회의 연합과 협력사업을 주도했다. 소천하기까지 평화 통일 운동,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활동에 시민사회 단체들과 앞장 서시었다.
정부에서도 이러한 공로를 인정해 고인에게 국민훈장 모란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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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신경하 팔순 회고담에서 캡처
★신경하지음:「신경하 팔순 회고담'」(발행, 밀알라이플 2020.11.1. 초판) 양장 331쪽, 정가 20,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