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를 댓글로 써야 할지 답글로 써야 할지 고민하다가 첨벙이 밟은 길을 따라가봅니다.
먼저 글을 보실 분들을 염두에 두고 공손하게 글을 쓰려니까 편안하게 생각들이 이어지지 않을 것 같아서 편하게 적어 내려가보려고 하니 문장을 읽으실 때 격이 없고 산만하더라도 양해부탁드립니다.
오늘이 처음은 아니니까 : 두번째 만남 후기
이날은 <우린 다르게 살기로 했다> 서문을 읽고 발제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줄 알고 아침부터 바리바리 태블릿을 싸들고 나가면서 틈틈이 서문을 다시 읽고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 고민했는데,, 전혀 예상치 못했던 다른 글을 읽고 왔다. 보통 나는 어떤 일이 있을 것이라 하면 벌벌 떨면서 준비해야 마음이 평온해지는데 예고된 책을 읽지 않게 되자 당황한 눈동자가 몇 바퀴를 굴렀던 것 같다.
그래도 삶 나눔을 하면서 한 주간 있었던 일을 사진을 통해서 공유하고 사진과 얽힌 사정과 해설을 들으며 재미있었던 기억이 남았다. 보통 한 주를 어떻게 살았느냐는 대답에 피상적인 이야기들울 하거나 뭐 했네 뭐 했네, 나열식 안부를 전하기 마련인데, 사진을 보면서 이야기하니 훨씬 편안하게 지난 한 주간 나에게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로 구성해 내어 설명하기 쉬웠던 것 같다. 나는 이 아이디어에 반해서 냉큼 안부인사가 뜸했던 친구들에게 써먹었다. 가끔 친구들의 살갗이 그리울 때 종종 이런 식으로 스킨십을 나누게 될 것 같다.
이날 책 대신 읽은 글은 생태비평지 <녹색평론>의 창간인 김종철 선생이 쓴 녹색평론의 창간사였다. 첫눈에 알아보지는 못했지만 읽다보니 언젠가 과거에 읽은 적이 있는 것 같은 낯익은 문장들이다. 읽으면서 할머니들이 챙 넓은 모자를 쓰고 여기저기 밭두렁에 앉아서 마늘을 뽑아 널던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동무들이 진지한 목소리로 글을 읽어내리는데 나는 잠시 그게 언제였지 하고 다른 곳을 다녀왔다. 예전에 마늘 수확기가 되어서 창녕에 계신 부모님 댁에 방문했었다. 그 당시 마늘 밭 한편에 농협인지 동사무소인지 어디에서 마늘 가격 하락을 막으려면 수확량을 조절하라는 식의 현수막이 붙어 있었고,, 힘들게 키운 멀쩡한 마늘을 그냥 썩혀 버리는 집이 있었던 걸로도 기억한다. 나는 그때 그 현수막을 보면서 참 마음이 무거웠던 걸로 기억한다. 마늘 수확이 한 창인 밭들 사이를 차로 달리면서 조수석에 앉아서 핸드폰으로 구독하던 잡지 기사를 읽다가 어떤 부고 기사를 봤고 처음 보지만 한국 비평계 획을 그은 인물이라 하니 나도 모르게 클릭해서 그이의 글을 읽었던 것 같다. 뭐 그냥 기시감인가 하며 윤독을 마치며 여쭤봤더니, 아 내가 본 부고가 김종철 선생의 부고가 맞았구나 싶었다.
아, 그런데!! 집에와서 검색해 보니 김종철 선생은 2020년 6월에 돌아가신 걸로 나오고 그때 난 해외에서 직장 생활하던 때였고 6월이면 한창 코로나로 전국이 격리되어 집안에서 원격근무하며 매일 지나가는 앰뷸런스 소리에 공포에 떨며 백골이 되어도 발견해 줄 사람 없는 생활에 시들어가던 때였다. 그러니 내 기억은 잘못되었고, 여러 시기의 기억들이 뒤섞인 듯한다.
왜 이렇게 뒤섞인 기억들이 떠올랐을까 싶다. 아마 김종철 선생의 문장이 너무 절박하고 답답하고 비통하여 비슷한 기억을 호명하였나 싶다. 글을 읽으면서 내면에서 반응하는 그것들을 잘 풀어낼 구체적인 언어가 없어 내가 보고 기억하는 것들 중 엇비슷한 심정들이나 기억들을 소환해 골라내고 짜어서 타인의 문장들을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해석을 위해서 두서없이 아무렇게나 기억을 호출하고 있으니 분명 후기를 쓰는 작업을 통해서 내 기억과 생각에 왜곡된 지점들을 발견하고 분명히 해야 할 것 같다.
김종철 선생은 글에서 예민하지 않은 사람들이더라도 생태적 변화로 문화적, 도덕적, 철학적 위기가 도래한 것은 같다고 느낄 수 있을 정도라고 당시 현실을 평한다. 또 과학기술로 이런 인간종의 묵시록적 위기를 타파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술낙관론을 비평하고, 과학적 태도와 과학만능주의를 구분한다. 그러면서 인간중심의 사고를 타파하고 인간 이외의 존재들, 비인간 존재들과의 '관계' 앞에서 겸손할 것을 당부하며 글을 끝맺는다.
전체적으로 김종철 선생의 글은 사회문제나 생태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읽어야 그 의도하는 바를 충분히 곱씹을 수 있을 것 같은 집약적인 글이라고 느꼈다. 전반적으로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작금의 사고방식을 전복하는 사유를 할 것을 요청하고, 그런 사유를 통해 더 큰 존재에 통합될 것을 촉구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천지인 사상(?)-과 유사하게 느껴지는 대안 사상-을 받아들이는 농업중심의 경제생활- 생태학적으로 건강한 생활을 조직하는 일-을 복원할 것을 요청한다. 나는 이 글이 쓰인 문제의식에 공감하고 요청하는 태도에 크게 공감하지만 자기 초월 문화 정착을 위한 자기 쇄신이 과연 작금의 위기에 해결책이 될 것인가 하는 생각에 휩싸였다.
요즘 나오는 책들의 내용이나 시장에 '동물복지' 상품의 유통량이 늘어나는 모습, 더 이상 생김새나 몸매를 두고 평가하거나 놀리지 않는 점, 미생물과도 관계를 생각하는 농사가 유행하는 등등 요즘 사회의 모습을 보면 이 글이 쓰인 지 24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페미니즘이나 생태주의 운동, 포스트휴먼은 이성적인 휴머니즘 단계에서 훌쩍 점프한 것 같기는 하다. 그러나 그런 흐름이 사람 몸의 현실로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으며, 여전히 인간이 동물, 자연 또 기계와 동등하게 내려선다는 구두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람의 존엄성은 모든 사물보다 우위에 서 있는 것 같다. 오늘 아침에는 하버드 대학의 소장품 중 19세기에 인피로 만든 책에서 인간 피부를 벗겨냈다는 기사를 봤다. 인간이 비인간과 같이 내려선다면 굳이 그 피부를 첨단기술을 동원해 벗어내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왜 여전히 다른 존재의 먹이가 되는 일에는 이토록 방어적인 것이지?너무 급진적인가 싶어서 반성하다가.. 급진적이라고 내 생각을 단속하는 또 다른 내 안의 내 자신이 구시대 교육의 산물이고, 적폐구나 싶어서 어디 가서 말하기는 힘들겠다며 생각을 접었다.
또 생태적으로 '건강한'에서 건강함을 정의하는 주체는 무엇인가, 우리가 도덕적 지위를 자연물에게로 동일하게 부여할 수 있을까,, '나'의 정체성에 우주 만물을 연결하는 일이 성숙한 시민사회를 형성하기 위한 사회적 요청이라면,, 우리는 더 말 잘 듣는 자주의 노예이며 평화로운 대안만을 취급하여 체제를 위협하지 않는 안전하고 귀여운 인민이 되는 것은 아닌가,, 문제적 사고체계를 전복하는 일은 결국 (기존의 사고체계 입장에서) 폭력적이지 않은가,, 어떤 폭력은 허용되어야 하는(필요한 것)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으로 두 번째 만남을 기억한다.
집에 돌아와서 청년활동가 양성과정에서 공유하려고 하는 문제의식이 여기 담겨있다고 하니 나는 집에 와서 다시 한번 글을 읽으며 찜찜한 기분이 왜 들었는지 계속해서 곱씹고 있는 중이다. 아마도 김종철 선생이 제안하는 대안이 가질 수 있는 한계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한다는 생각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동시에 나는 생태적 위기를 궁극적으로 정치적 문제라고 여기기 때문이 아닌가 하며, 나의 정치적 적대 대상은 현재 내가 몸담고 있는 체제들 즉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가 부추기는 환상'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사유와 명상과 자기 쇄신은 내가 가진 환상과 위치를 인식하기 위한 매우 중요한 준비운동이 되기는 할 것이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준비운동일뿐일 것 같아서 이어지는 질문들이 치렁치렁 길게 달리는 것 같다. 도대체 생태적으로 건강한 공동체라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 보다..'건강한'이라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환원을 요리조리 잘 피해서 전환으로 이어지는 실험에 많이 참여해보아야 할 것 같다.
다음 만남에서 지저귐을 반복하다 보면 분명 또 새로움이 태어날 것이라 믿으며 다음 만남을 기다린다.
또 만나요 동무들.
첫댓글 영성, 수행, 나를 넘어서는 공동체와 우주 세계와 연결하는 일이 과연 진정 해답인 것일까?
물음이 제 안에서도 맴돌때가 있어요. 현실은 참혹하고, 위기는 곧 도래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수많은 생명이 신음하고 있는데 한가롭게 평화, 비폭력, 마을공동체.. 따위를 말하는 것이 왠지 도피로 느껴지기도 하고요..
우리가 거래적관계를 넘어서고 서로를 대상, 수단으로 바라보지 않으며 체제가 조작하는 거짓욕망에 휘둘리지 않고 서로를 귀하게 여기며 현재를 살아간다면.. 그렇게 모인 사람들이 소규모지역공동체를 만들고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간다면 지금의 체제가 유지되어야만 하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껄끄럽고 거슬리는 일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국회나 시청에서 시위하는 일만큼이나..
그렇게 세상은 차츰차츰 변하다 어느 순간 자본주의 작동방식을 넘어설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막연하게 꿈꾸고 있답니다.
하지만 흔들릴때가 있어요.
비름님의 글을 읽으며 저와 비슷한 물음을 만나서 반가웠어요
우리 계속 만나서 이야기 나누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