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때때옷 입은 새배는 태양숭배시대의 영향
- 색동저고리는 태양숭배시대의 산신무당의 의상에서 -
설은 음력이지만 해를 숭상하는 '새해' 명절이다. 지금은 유교문화의 영향으로 조상이나 윗 어른들에게 절하는 풍속이 되어 있지만, 보다 원천적으로는 태양에 절을 하는 태양숭배시대의 해돋이 문화였다고 할 수 있다.
오늘의 신화 이야기는 설을 맞이하여 새해 해맞이와 색동저고리 입고 절을 하는 풍속의 신화적 배경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설날이 되면 아들딸들은 '때때옷'을 입고 윗 어른들에게 새배를 했다. 색동저고리란 어른 여성이 입는 옷이고 때때옷은 어린이들이 입었다. 때때옷이란 색동저고리에 대한 우리말이다.
때때옷은 여아들에게만 입는 것이 아니라 돌날에는 남아들도 입었다.
색동저고리에 대한 유래로 고려말 신돈이 그의 사통한 아들이 돌이 되었을 때 색동저고리를 입혔다는 것을 들먹이기도 한다. 그것은 유교문화에서 태양숭배를 배격하기 위하여 조선시대에서 강조된 왜곡된 설에 불과하다.
신돈이 왜 그의 아들에게 색동저고리를 입혔겠는가? 중으로서 신돈은 아들을 낳았기 때문에 불교적 의식이 아닌 민간의 전통 신라문화의 아들의 돌잔치를 위한 색동저고리를 입힌 것이다. 신돈은 불교의 법당 뒤에 산신각 또는 칠성단에서 모시던 신라의 태양숭배 전통의 색동저고리를 아들에게 입힌 것이다.
그런데 왜 어른은 여성만 색동옷을 입었을까?
불교문화 이전 우리 민족의 토착 태양숭배시대의 여산신 무당의 복장이 오늘날까지 내려오는 유래에 연결되어 있는 색동옷의 깊은 뜻이 숨어 있다. 색동옷을 입은 전통 무당복은 신라시대의 태양숭배 문화의 풍류무속의 전통이다. 색동옷 무당은 오늘날 광고 디자인에도 나타난다.
*광고에 등장하는 전통 산신 무당의 색동옷
양팔에 오색 무지개색 무늬를 한 이 옷의 배경은 다분히 우리 민족의 오랜 태양숭배 문화의 오래도록 남아져온 잔재이다.
색동저고리는 한자로 반의(斑衣)라고도 한다. 여기에서 나온 반의지희(斑衣之戱)라는 사자성어는 늙어서도 부모에게 기쁘게 효양(孝養)하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이 말은 중국 고사에 나오는 노래자(老萊子)가 나이 일흔에 때때옷을 입고 부모 앞에 어리광을 부려 위로를 했다는데서 유래한 것이다.
때때옷에 해당하는 반(斑)자는 '王'자 문양을 '文'자의 양쪽으로 배치하고 있다. '王'자가 유교문화에 젖어 남성지배자의 의미가 강화되기 전에는 여산신령의 색동저고리의 무늬로 상징되는 태양숭배시대의 산물이라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斑'자는 그러한 태양숭배시대의 여제사장이 입었던 무당복이다.
'斑'자의 가운데가 '文'자 이다. '文'이란 오늘날 인문학이나 문학의 문으로 여기게 되겠지만, 본래는 태양숭배와 관련한 점성술의 천문(天文)에서 나온 '文'이다. 天이 태양이 솟아오르는 하늘을 의미하는 글자 모양인데 비하여 '文'은 그 하늘에 제사하는 땅의 제사장의 모습이다. '文'은 사람을 닮아 있는 것은 그때문이다. 그 사람이 특히 태양의 무지개 무늬인 색동옷을 입은 '아롱진 옷'이 '斑'으로 표현되어 있는 것이다.
'文'이 이러한 신화시대의 사람 모습이기에 '王'자는 색동옷 무늬이며 양쪽으로 나 있는 모습은 때때옷 즉 색동저고리를 입은 모습이 된다는 것에서 대단히 적합한 상형문자를 만든 것이다. 이 '斑'자를 '아롱질 반'이라고 하는 것에서도 여러 색갈이 어울려 있다는 의미를 가진다.
저고리만 때때옷이 아니라 신발도 때때신을 신었다. 양팔 양발에 색동 때때를 했다는 것은 오색이 지니는 그 무지개의 의미와 새해의 해에 대한 숭상의 의미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때때는 햇빛이 만들어내는 광선이며 무지개빛이다.
하늘의 태양과 관련한 국기의 깃발들에도 일종의 '때때 색동'이 등장한다. 성조기는 별들만이 있지만, 붉은 줄(striped)은 태양 빛을 의미하는 일종의 색동이다. 일본 해군기의 태양 방사선 표현 또한 그런 의미의 태양 '색동'을 의미한다. 태극기의 태극은 태양과 달의 융합을 표현하고 사괘는 일종의 때때옷인 셈이다.
설날은 때때옷과 때때신의 명절이었다. '새신을 신고 뛰어보자 팔짝..'이라는 동요가 말해주는 그 새신은 때때신이었다. 새해에 절을 한다는 것은 본래 태양에게 드리던 절이었다. 그러나 오백년 유교 문화 전통에 습합되어 조상에게 드리는 절로서 윗 어른을 대상으로 전환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때때옷은 본래부터 어린이용이 아니었다. 남성은 아닌 여성 성인만이 입는 색동저고리는 분명 태양숭배시대의 여산신 문화와 관련한 무당복에 그대로 남아 있다.
태양신은 여신이었다. 산신령도 여산신령인 것은 태양이 떠오르는 것을 맞이하는 곳이 산이며 태양과 가까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태양신에게 제사를 올리는 것은 무지개와 같은 형형색색의 천을 산정 가까이에서 날리는 것이었다.
* 세계 최고봉인 조모랑마 (Jomo langma, 에베레스트) 여산신령봉
색동저고리는 이와같은 형형색색의 룽타(Lung Ta) 색동 깃발들을
날리는 것에서 연유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히말라야 여산신령에 기원하는 룽타 색동깃발(티벳)
그 모양은 색동저고리 즉 때때옷의 시원과 관련이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히말라야의 높은 산들에는 이와같은 색색 천들과 관련이 있다. 티벳인들의 산신령에 기원하는 색색깃발 (Tibetan Prayer Flags)는 줄에 묶이어 색동깃발이 되어 항상 산 꼭대기에서 휘날리고 있다. 티벳인들을 이 색동깃발을 룽 타(Lung Ta)라고 말한다. 그 뜻은 바람 말 즉 '풍마(風馬)'라는 뜻이다.
바람(風)은 태양과 관련이 있다. 풍월(風月)이라고 할 때 그 풍(風)은 풍광(風光)에서 처럼 햇빛을 노래하는 것이다. 태양의 새 봉황의 봉(鳳)의 옛 글자가 '風'이었다. '風'자는 다분히 무지개를 두른 모습이기도 하며, 히말라야의 '룽타' 색동깃발을 둘러친듯한 이미지이기도 하다.
색동옷을 입고 새해 절을 하는 모습은 태양이 산 위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모습인 산 즉 산신령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색동옷은 태양 얼굴 아래에 팔을 벌려 땅을 잡은 절하는 모습이다.
*무지개를 닮은 때때옷 입은 새배
새해 새배란 태양숭배시대 때에 때때옷을 입고 해에게 절하던 역사가
유교문화에서 조상과 윗어른으로 그 대상이 바뀐 것이라괘 생각딘다.
새해란 새로운 해를 맞이한다는 의미에서 새해이다. 지금도 사람들은 해돋이 또는 해오름의 장관을 보기 위하여 동쪽 산이나 동해 바닷가로 수만명씩 모이기도 하는 것은 태양숭배시대의 오랜 전통을 잇고 있는 것이다.
실제는 해돋이를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해에게 절을 했던 것이 본래의 풍습이었다. 해돋이는 산상에 올라 구름을 내려다보고 멀리 바다 위에서 뜨는 해돋이를 보아야 제격인 것 같다. 필자가 토함산에 올라 해돋이를 보았던 오래전의 기억은 평생동안 잊혀지지 않는 것 같다.
토함산의 석굴암 본존불의 방향은 동짓날 해뜨는 방향 즉 동동남 15도 방향이다. 이것은 불교가 들어오기 전의 신라시대 초기의 토함산이 태양숭배의 중요한 해맞이 성산이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동짓날이란 '작은설'이라는 말과 같이 새해의 의미가 있다.
토함산에서 동짓날 해돋는 곳을 바라보면 그 방향은 감은사 앞바다의 대왕암(해중릉)으로 솟아오른다. 해중릉은 여성의 음부를 닮은 명당이다. 신라인들은 새해에 바다의 여신으로부터 새로운 해가 솟아오르는 것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특히 토함산 꼭대기에서 바라보는 해돋는 장면은 구름이 약간 있는 날이 더욱 장관이다. 서운(瑞雲)이란 햇빛이 구름 사이로 비치는 모습인데 雲上(구름위)에서만이 볼 수 있다. 김홍도의 운상신선도(雲上神仙圖)는 분명 태양숭배시대의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고 하겠다.
해와 산은 하나일 때 태양숭배사상은 해돋이만큼 대단한 힘을 발휘한 것 같다. 신라시대에 태양숭배문화는 크게 꽃을 피웠다. 그뒤 고려시대 불교숭배는 태양숭배를 약화시켰으나 태양숭배 문화는 무속으로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
<정선아리랑>에 나오는 민요는 "강원도 금강산 일만이천봉 팔만구암자 유점사 법당뒤 칠성단 도두모고 팔자에 없는 아들딸 낳아달라고 석달 열흘 노구에.."로 표현하는 내용은 법당 뒤의 '칠성단'이 중심이다. 칠성단은 태양숭배시대 문화이다. 이 노래 가사의 금강산 일만이천봉의 팔만구암자 모두가 산신과 융화된 불교문화를 보여주고 있다.
금강산을 노래한 태양숭배 문화가 등장하는 <정성아리랑>이라면 그와 짝이 되는 노래가 <월악산>이라는 노래이다.
금강산은 기암괴석 봉우리가 많은 것 이상 해가 솟아오르는 동해를 바라보는 곳에 있다. 그만큼 옛날부터 태양숭배시대의 중요한 성산이었다. 신라가 멸망하자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麻衣太子)가 월악산을 거쳐 금강산으로 들어가는 이야기는 오늘날까지도 대중가요에서 노래할 만큼 전설적이다. 가수 주현미의 노래 <월악산>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월악산 난간머리 희미한 저 달아
천년사직 한이 서린 일천삼백리 너는 아느냐
아바마마 그리움을 마애불에 심어놓고 떠나신 우리님을
월악산아 월악산아 말 좀 해다오 그님의 소식을
금강산 천리 먼길 흘러가는 저 구름아
마의태자 덕주공주 한많은 사연 너는 아느냐
하늘도 부끄러워 짚신에 삿갓 쓰고 걸어온 하늘재를
월악산아 월악산아 말좀해다오 그님의 소식을
그렇다. "짚신에 삿갓쓰고 걸어온 하늘재"는 분명 신라의 태양숭배사상의 상징을 담고 있다. 이것은 본래는 화려한 신라문화가 꽃피고 있을 때는 '때때신을 신고 때때옷을 입고 올라간 해에게 절을 하러 올라간 하늘재'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태양이 만드는 무지개 대신 해를 가리고 비를 맞을 '삿갓'을 쓴다는 것은 그 신발도 '짚신'에 옷은 '마의'를 걸친 마의태자의 모든 행색 속에서 신라의 위대한 태양숭배문화가 그렇게
쓸쓸히 퇴색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 신라의 마지막 왕자인 마의태자가 특히 금강산으로 들어갔다는 것은 신라의 태양숭배문화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고 보아야 한다. 금강산은 신라인들이 태양제를 지내던 오악 중에서도 중요한 산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의태자(麻衣太子)란 말은 금강산에서 허름한 삼베같은 마(麻)로 옷을 해 입었다고 하여 나온 말이다. 본래는 오색 비단으로 만든 '때때옷'을 입었을 마의태자는 아마도 그 이름이 '때때왕자'였어야 하는 의미가 '마의태자(麻衣太子)'라는 말 속에 숨어 있다고 하겠다.
마의태자는 신라의 마지막 화랑이었다. 그가 금강산 최고봉 비로봉에 올라 마지막 생을 마쳤다는 전설은 분명 그곳에서 바라다보이는 동해 바다에서 솟아오르는 해를 향하여 절을 하며 신라의 화려했던 '때때문화'를 그리워했던 의미를 담고 있을 것이다.
* 태양숭배 풍류도의 전통을 잇고 잇다고 생각되는 무속인의 복식
태앙을 머리에 이고 일종의 때때옷을 입고 있다.
화랑은 본래 여산신령을 중심으로 한 태양숭배사상을 배경하고 나온 여성적 풍류도였다. 전통 무속의 무당복식은 본래 태양숭배문화의 여화랑(源花) 여제사장의 복장이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