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 유대 사람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 지파 사람들을 요한에게 보내서 "당신은 누구요?" 하고 물어 보게 하였을 때에 요한의 증언은 이러하였다.
20. 그는 거절하지 않고 고백하였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오" 하고 고백하였다.
21. 그들이 다시 요한에게 "그러면, 당신은 누구요? 엘리야요?" 하고 물으니, 그는 "아니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면 당신은 예언자요?" 하고 물으니, 요한은 "아니오" 하고 대답하였다.
22. 또 그들이 말하였다. "그러면, 당신은 누구란 말이오? 우리를 보낸 사람들에게 대답할 말을 좀 해주시오. 당신은 스스로를 무엇이라고 생각하시오?"
23. 요한이 대답하였다. "나는 예언자 이사야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의 길을 곧게 하여라' 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요."
24. 그들은 바리새파 사람들이 보낸 사람들이었다.
25. 그들이 또 요한에게 물었다. "당신이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예언자도 아니면, 어찌하여 세례를 주시오?"
26. 요한이 대답하였다. "나는 물로 세례를 주오. 그런데 여러분 가운데, 여러분이 알지 못하는 이가 한 분 서 계시오.
27. 그는 내 뒤에 오시는 분이지만, 나는 그의 신발 끈을 풀 만한 자격조차 없소."
28. 이것은, 요한이 세례를 주던 요단 강 건너편, 베다니에서 일어난 일이다.
19 The Jewish authorities in Jerusalem sent some priests and Levites to John to ask him, “Who are you?”
20 John did not refuse to answer, but spoke out openly and clearly, saying: “I am not the Messiah.”
21 “Who are you, then?” they asked. “Are you Elijah?”
“No, I am not,” John answered.
“Are you the Prophet?”[b] they asked.
“No,” he replied.
22 “Then tell us who you are,” they said. “We have to take an answer back to those who sent us. What do you say about yourself?”
23 John answered by quoting the prophet Isaiah:
“I am ‘the voice of someone shouting in the desert:
Make a straight path for the Lord to travel!’”
24 The messengers, who had been sent by the Pharisees, 25 then[c] asked John, “If you are not the Messiah nor Elijah nor the Prophet, why do you baptize?”
26 John answered, “I baptize with water, but among you stands the one you do not know. 27 He is coming after me, but I am not good enough even to untie his sandals.”
28 All this happened in Bethany on the east side of the Jordan River, where John was baptizing.
마태와 누가 복음은 처녀의 몸에서 탄생하신 예수님의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정말 기이한 일입니다.
요한복음은 다른 기적을 언급합니다.
말씀으로 세상을 만드신 분이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13. 그들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욕망으로 나지 않고, 하나님께로부터 났다.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의 영광을 보았다. 그 영광은 아버지께서 주신 독생자의 영광이며, 그 안에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였다.(요1:14)
이런 요한의 예수님에 대한 말씀 증거는 그 말씀 자체가 하나님의 역사를 동반합니다.
예를 들어서 요한의 강의를 두 번 세 번 듣고 예수님에 대한 정보가 쌓이더니 그것이 신뢰로 이어지고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생각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한 바른 증거는 태초의 사건을 일으킵니다.
예수님에 대한 제대로 된 증거는 전 사람이 죽고 새 사람이 탄생하게 하시는 능력입니다.
이런 지적을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또는 무엇을 마실까 걱정하지 말고,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아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지 않으냐?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않으냐?(마6:25)
사람들은 몸을 위해서 옷과 먹을 것을 염려합니다.
교묘하지요?
사탄은 그런 식으로 사람들이 예수님을 말하면서도 생명을 주시는 예수님 자체를 잃어버리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고는 막상 옷과 음식에 온 정신이 팔리게 한다는 것입니다.
24.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한쪽을 미워하고 다른 쪽을 사랑하거나, 한쪽을 중히 여기고 다른 쪽을 업신여길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마6:24)
예수님에 대한 증거가 생명을 보장합니다.
예수님을 빙자한 옷과 음식에 대한 염려가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을 관심할 때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상하게 옷과 음식이 해결되었다는 고백은 가능합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이 그 요한에게 몰려든 것입니다.
나아가서 요한을 메시야로 오해한 것입니다.
결국 산헤드린은 요한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을 요한에게 보낸 것입니다.
19. 유대 사람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 지파 사람들을 요한에게 보내서 "당신은 누구요?" 하고 물어 보게 하였을 때에 요한의 증언은 이러하였다.
19 The Jewish authorities in Jerusalem sent some priests and Levites to John to ask him, “Who are you?”
그래서 저의 주장은 예수님만 정확히 전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씀을 통해 생명이 태어났던 태초의 하나님 역사를 경험하라는 것입니다.
전도한다고 호객행위를 하듯이 세탁소 주인에게 빨래 주문이 많아질 것이니 우리 교회 오라는 식으로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옷과 음식을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세탁소 주인이 제 발로 나왔는데 집사님이 곧바로 찾아가서 그 말을 했던 것이 아닙니까?
잘 나오셨다고 세탁소 잘 될 것이라고........
그 말을 들은 세탁소 주인이 다음 주일부터 발을 끊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산헤드린이 요한에게 제사장과 레위인을 파송했던 것은 산헤드린에게 거짓 선지자를 구별해 주어야 할 책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의 중요성은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교회가 감당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교회가 교인들에게 이단을 명확하게 규정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요한에게 당신이 누구냐고 물었던 것입니다.
다시 이르지만 이것은 종말의 목회자가 갖아야 할 과제입니다.
왜냐하면 종말이란 이 문제로 사람들이 헷갈리는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6.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는 '내가 그리스도다' 하면서, 많은 사람을 속일 것이다.(막13:6)
그 질문을 받고 보인 요한의 태도를 주목하십시오!
20. 그는 거절하지 않고 고백하였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오" 하고 고백하였다.
20 John did not refuse to answer, but spoke out openly and clearly, saying: “I am not the Messiah.”
산헤드린의 보냄을 받은 이들이 요한에게 당신이 그리스도이신지를 물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메시야가 아님부터 감춤 없이 분명하게 밝힌 것입니다(John--spoke out openly and clearly, saying: “I am not the Messiah.”).
여러분은 구원을 위해 오직 예수님만 믿어야 합니다.
또 오직 예수님만 믿기 위해서는 올바른 목자만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거짓 목자를 단호히 거부해야 하는 것입니다.
올바른 목자를 구별하는 첫째 주의입니다.
그 목자가 스스로를 두고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밝히는지 주의해야 합니다.
얼마 전에 거창 시장에 갔습니다.
하나님을 어머니라고 부르는 어떤 여인들이 저에게 전도를 했습니다.
교주가 죽으니 그 아내가 하나님 어머니가 된 것입니다.
웃기지 않습니까?
나를 웃기는데.......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자신을 두고 그리스도라고 하는 사람은 예외가 없습니다.
100% 사탄입니다.
그러고 보니 예수님조차 자신을 두고 직접 자신을 그리스도라고 그리스도 고백을 강제하신 적이 없습니다.
요한이 옥에 갇힌 때 그는 예수님을 의심했습니다.
그 요한에게 예수님은 이 말씀을 전하신 것입니다.
4. 예수께서 대답하여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너희가 듣고 본 것을 요한에게 알려라.
5. 눈먼 사람이 보고, 저는 사람이 걷고, 나병 환자가 깨끗해지고, 귀먹은 사람이 듣고,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가난한 사람이 복음을 듣는다.(마11:4,5)
이 예수님의 말씀을 전해 듣고 그를 그리스도로 신앙고백하는 것은 요한의 몫이었습니다.
더욱이 재림하시는 그리스도는 자신의 입으로 자신을 두고 증거하시는 일이 전혀 필요 없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분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방식으로 등장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11.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하늘을 쳐다보면서 서 있느냐? 너희를 떠나서 하늘로 올라가신 이 예수는, 하늘로 올라가시는 것을 너희가 본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 하고 말하였다.(행1:11)
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친히 하늘로부터 내려오실 것이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사람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다음에, 살아 남아 있는 우리가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이끌려 올라가서,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을 것입니다.(살전4:16,17)
의도적으로 백구두를 신고 흰 양복을 입고 흰말을 타고 유치찬란하게 그리스도로 화장한 자들을 거부하십시오.
어떤 자들은 이제 총을 들고 예배를 드리던데.......
그들은 100% 사탄들입니다.
또 옷과 이상한 장식들만이 아닙니다.
그 행위를 주목하십시오.
자신의 영적인 권위를 내세우면서 하나님과 동일시하는 사이비를 주의하셔야합니다.
그 사탄적 영적 권위에 눌렸다가는 죽는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이성과 상식을 마비시키는 아편입니다.
자신의 종교적 발언이 하나님의 말씀과 동일한 것처럼 맹종을 요구하는 사이비들을 주의하라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이 분명히 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설교하는 죄인이 있고 설교를 듣는 죄인이 있을 뿐입니다.
10.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의인은 없다. 한 사람도 없다.
11. 깨닫는 사람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사람도 없다.
12. 모두가 곁길로 빠져서, 쓸모가 없게 되었다.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은 없다. 한 사람도 없다."(롬3:10-12)
이 말씀에 자신을 예외로 두는 자가 사탄입니다.
이 말씀에 예외가 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바울은 오히려 자신을 죄인의 두목이라고 했습니다.
15.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다고 하는 이 말씀은 믿음직한 말씀이고, 모든 사람이 받아들일 만한 말씀입니다. 나는 죄인의 괴수입니다.(딤전1:15)
이런 바울의 자기표현은 아주 합리적입니다.
제가 일생 목회를 하다 보니 평신도보다 하나님을 더 잘 아는 구석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는 더 크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하는 당위성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똑같은 짓거리를 하는 것입니다.
저에게는 더 큰 모순이 있습니다.
그가 죄인의 괴수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요한은 예수님을 소개하기 전에 계속 요한 자신을 소개하는데 계속 반복하는 말이 있습니다.
나는 아니라는 것입니다.(20, 21, 27, 30, 31, 33절)
역설입니다.
요한이 자신을 두고 내가 아니라고 하니까 그 때 그에게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던 것입니다.
나타나는 그 능력을 보고 사람들이 오해한 것입니다.
그는 시종일관 나는 아니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21. 그들이 다시 요한에게 "그러면, 당신은 누구요? 엘리야요?" 하고 물으니, 그는 "아니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면 당신은 예언자요?" 하고 물으니, 요한은 "아니오" 하고 대답하였다.
21 “Who are you, then?” they asked. “Are you Elijah?”
“No, I am not,” John answered.
“Are you the Prophet?”[b] they asked.
“No,” he replied.
그리스도는 물론 아니고 더 나아가서 엘리야도 선지자 중 하나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22. 또 그들이 말하였다. "그러면, 당신은 누구란 말이오? 우리를 보낸 사람들에게 대답할 말을 좀 해주시오. 당신은 스스로를 무엇이라고 생각하시오?“
22 “Then tell us who you are,” they said. “We have to take an answer back to those who sent us. What do you say about yourself?”
미국의 어느 작은 시골 마을이었습니다.
어니스트는 거대한 얼굴 모양의 바위산을 보고 자랐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그에게 바위산을 닮은 위대한 사람이 나타날 것이라고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그는 어머니의 이야기처럼 그런 인물을 기대했는데 한 재력가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비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장군을 만났는데 그는 의지와 힘만 강했습니다.
그는 덜 된 사람이었습니다.
세월이 흘러서 성공한 정치인을 만났습니다.
그는 권력과 명예욕에 찌들어 있었습니다.
그는 한 시인에게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어니스트가 그 시인을 만나보니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시에서 만난 그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현실과 타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시인이 어니스트를 보더니 당신이 저 바위 얼굴의 그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어니스트는 그럴 리가 없다고 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일리 없고 엘리야 선지자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요한을 두고 엘리야라고 하신 것입니다.
13. 모든 예언자와 율법서는 요한에 이르기까지, 하늘 나라가 올 것을 예언하였다.
14. 너희가 그 예언을 받아들이고자 하면, 요한 바로 그 사람이 오기로 되어 있는 엘리야이다.(마11:13,14)
23. 요한이 대답하였다. "나는 예언자 이사야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의 길을 곧게 하여라' 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요."
23 John answered by quoting the prophet Isaiah:
“I am ‘the voice of someone shouting in the desert:
Make a straight path for the Lord to travel!’”
먼저 요한은 광야를 그의 삶의 자리로 택한 사람이었습니다.
거기는 메마른 곳입니다.
세상 풍요에 눈먼 사람들은 거기를 택하지 않을 것입니다.
누구인가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사람마다 예외 없이 가슴 깊은 곳에 빈방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 방은 오직 하나님으로만 채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그 말씀을 했습니다.
애초에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그렇게 만드셨던 것입니다.
7. 주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의 코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창2:7)
하나님은 심장 신장 창자 그것을 흙으로 지으신 것입니다.
또 그 깊은 방 하나를 두셨는데 거기는 하나님의 생명 기운으로 채워야만 하도록 만드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는 예외 없는 바로 그 빈방을 채우려는 요구(NEED)가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바로 이 부분을 채우는 일을 할 뿐입니다.
그것은 오직 말씀 즉 외침으로 되는 일일 뿐입니다.
교회에 무슨 헬스장을 만들고 수영장을 만들고.......
요한의 광야 교회는 그런 헷갈리는 일을 일절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요한은 오히려 반대의 행동을 했습니다.
자신의 외침 외에 들리는 것이 없을 모래밭을 택한 것입니다.
그 외침은 돈이 드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노동이 요구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교회 예산이 많아야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다고 말할 것은 틀린 것입니다.
학교 지어주고 병원 지어주고 헬스장까지........
그 일이라면 돈 많은 지자체에서 더 잘 합니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외침은 분명한 성경적 근거를 가져야 합니다.
요한은 특별히 이사야의 근거를 가지고 외쳤던 것입니다.
정말입니다.
성경 한 구절 읽고는 한 시간 동안 제 소리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요한이 한 일은 자신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에 관한 것입니다.
주님이 하시는 일에 자신은 봉사를 할 뿐이었습니다.
그 일을 이미 성경에서 정하신 일입니다.
내 안에서 유래하는 나의 비젼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내 종교적인 비젼을 위해서 성경을 여기 저기 인용해대지 말라는 것입니다.
2024년에 나에게서 유래된 내 비젼이 아니라 주전 700년인가? 이사야 시대에 이미 하나님께서 정하신 주의 길 그 하나님의 비젼에 봉사하라는 것입니다.
그 비젼은 아마 십자가를 지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24. 그들은 바리새파 사람들이 보낸 사람들이었다.
24 The messengers, who had been sent by the Pharisees,
정부 고위 관리를 뽑기 위한 청문회가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딸에게 수억을 빌려주더니 그 돈으로 아내 명의 재산을 사게 했습니다.
그렇게 기술적으로 상속세를 떼먹었습니다.
법을 잘 아니까.......
자신 회사의 운전사로 고용했다면서 제 아내에게 수억의 임금을 지불했습니다.
그는 판사였습니다.
이번 일만 잘되면 이제는 더 높은 고위 공무원 차장인지 사장인지 회장인지 될 것입니다.
그는 더 높은 고위직의 공무원이 될 것입니다.
그는 제가 알고 있는 공적인 동기의 법을 제 사욕을 챙기는 일에 제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실실 웃으면서.......
아마 자구적으로 본다면 범범한 것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니면 자신은 압수수색 안 당할 빽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요한은 그 반대입니다.
그는 그 직위를 부인했지만 그 내용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요한을 따랐던 것입니다.
하지만 직위가 없는 요한이 판사보다 더 훨씬 공정했으니 정말 이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도 이상해서 이번에는 또다시 바리새파 사람들이 사람을 보낸 것입니다.
또 요한에게 물었습니다.
요한은 정말 이상한 사람입니다.
25. 그들이 또 요한에게 물었다. "당신이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예언자도 아니면, 어찌하여 세례를 주시오?“
25 then[c] asked John, “If you are not the Messiah nor Elijah nor the Prophet, why do you baptize?”
요한은 내세울 직급도 없습니다.
그런 사람이 세례를 베풀었던 것입니다.
요한은 신앙의 중심 주제를 세례로 본 것입니다.
신앙은 죄를 씻는 문제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상 일류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이름으로 사장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이름으로 GNP 올리는 것이 아닙니다.
죄를 씻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이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실실 웃으면서 합법적인 방식으로 제 실속을 챙기는 독사의 무리들이었습니다.
7. 요한은 자기에게 세례를 받으러 나오는 무리에게 말하였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다가올 징벌을 피하라고 일러주더냐?(눅3:7)
요한은 세례라는 종교 형식을 통해서 막상 의의 실천을 도피하려는 그들의 의도를 경고한 것입니다.
요한의 지적을 따르면 삶 속에서 정말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의를 실천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10. 무리가 요한에게 물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11. 요한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옷을 두 벌 가진 사람은 없는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먹을 것을 가진 사람도 그렇게 하여라."
12. 세리들도 세례를 받으러 와서, 그에게 말하였다. "선생님,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13. 요한은 그들에게 말하였다. "너희에게 정해 준 것보다 더 받지 말아라."
14. 또 군인들도 그에게 물었다. "그러면 우리들은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요한은 그들에게 말하였다. "남의 것을 강탈하거나 거짓 고발을 하지 말고, 너희의 봉급으로 만족해라."(눅3:10-14)
요한의 주장은 나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과 예수님을 비교합니다.
예수님이 창조자이시라면 그는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나는 아닙니다.
26. 요한이 대답하였다. "나는 물로 세례를 주오. 그런데 여러분 가운데, 여러분이 알지 못하는 이가 한 분 서 계시오.
26 John answered, “I baptize with water, but among you stands the one you do not know.
요한으로써는 정말 답답한 일이었습니다.
그들이 정말 알아야 할 자를 모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모르고 있는 그 일은 지나가 버린 과거의 일이 아닙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일이 아닙니다.
그 일은 현재 그들 앞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들은 그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벌여놓으신 그 역사를 현재에 세워두고(stands)도 그를 못 알아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일은 그들을 위한 일이고 또 그들이 죽고 사는 일입니다.
그렇게 죽어가는 그들을 보면서 요한은 외쳤던 것입니다.
그 분 예수께서 하시는 일은 요한이 베풀었던 바로 그 세례입니다.
즉 사람들의 죄를 씻기시는 일입니다.
그렇게 죄인들로 하여금 의인이 되어 하나님 나라의 입장을 가능하게 하신 것입니다.
바로 이 일에 있어서 요한은 자신의 세례 행위와 예수님의 세례를 비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요한의 세례란 예수님의 세례의 상징 행위에 불과했습니다.
그는 물로 사람의 죄를 씻을 것입니다.
주님은 불로 사람의 죄를 태우시는 세례를 베푸실 것입니다.
그들이 알지 못하는 그 분은 세례를 통해서 사람 안에 있는 죄들을 불살라 태우실 것입니다.
요한은 자신의 세례와 예수님의 세례를 분명하게 구분하신 것입니다.
27. 그는 내 뒤에 오시는 분이지만, 나는 그의 신발 끈을 풀 만한 자격조차 없소."
27 He is coming after me, but I am not good enough even to untie his sandals.”
사람들이 예수님을 제대로 못 알아보는 데는 그 이유가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오히려 요한의 뒤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광야에서 낙타 털옷을 입고 메뚜기와 석청으로 음식을 삼았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보다 못하신 것입니다.
2. 그는 주 앞에서, 마치 연한 순과 같이, 마른 땅에서 나온 싹과 같이 자라서, 그에게는 고운 모양도 없고, 훌륭한 풍채도 없으니,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모습이 없다.
3. 그는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고, 버림을 받고, 고통을 많이 겪었다. 그는 언제나 병을 앓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돌렸고, 그가 멸시를 받으니, 우리도 덩달아 그를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사53:2,3)
그렇게 보임에도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요한은 그 분의 종의 역할조차 자신에게 버겁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육신의 눈으로 내 앞에 있는 돌멩이도 피하고 웅덩이도 피하면서 사는데 영적인 부분에서는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히려 방해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육신의 눈은 뒤에 있는 사람은 무시하라고 하니 그 분을 알아볼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육신의 눈이 백구두 신고 백말을 타고 나타나면 그가 그리스도인 줄로 알게 하는 것입니다.
요한은 자신의 뒤에 오시는 이를 자신의 앞 사람으로 소개한 것입니다.
그 분은 창조자이시며 자신은 그 분의 피조물이었습니다.
28. 이것은, 요한이 세례를 주던 요단 강 건너편, 베다니에서 일어난 일이다.
28 All this happened in Bethany on the east side of the Jordan River, where John was baptiz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