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에도 실린,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의 전설
양진형 님의 스토리• 3시간
지리산을 비롯한 남녘 명산의 단풍은 10월 말에서 11월 초에 절정을 이룰 것이라고 한다. 서울 친구들과 이달 말 무박으로 장거리 지리산 단풍산행(성삼재~노고단~반야봉~화개재~뱀사골)을 앞두고 있던 나는, 예행연습 삼아 여수에서 가까운 순천 조계산(888m)을 몇 차례 찾았다.
교과서에도 실린,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의 전설
조계산은 산림청이 지정한 100대 명산이자 도립공원이다. 예로부터 소강남(小江南)이라 부른 명산으로 장군봉을 주봉으로 산세가 수려하며, 자락에 송광사와 선암사라는 두 대찰(大刹)을 품고 있다. 두 절 주변의 빼어난 경관은 2009년 국가명승으로 지정됐다. 백두대간에서 갈라진 호남정맥이 지나는 산이기도 하다.
엊그제 내린 가을비로 숲은 촉촉했지만, 조계산의 단풍은 아직 한창이 아니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단풍이 30%쯤 물든 모습이다. 하지만 한적하고 호젓한 산길을 걸으며 자신을 성찰하기에는 더없이 좋았다.
국가명승 조계산, 6개 코스 중 가장 기억에 남은 길
조계산에는 송광사와 선암사를 기점으로 한 등산로만 6개 코스가 있다. 가장 널리 알려진 길은 송광사~송광굴목재~큰굴목재~선암사를 잇는 '천년불심길'(4시간)이다. 이 밖에도 8~17km에 이르는 코스들이 잘 관리되어 있다.
교과서에도 실린,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의 전설
큰굴목재 아래 보리밥집은 지친 산행객이 점심을 먹으며 쉬어가기 좋은 곳이다. 예전에는 윗집과 아랫집이 가까이에서 함께 성업했지만, 지금은 아랫집만 오후 2시 30분까지 문을 연다. 시간적 여유를 갖고 보리밥집을 거쳐 가면 산행의 기쁨이 배가된다.
교과서에도 실린,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의 전설
송광사는 고려시대 16국사(國師)를 배출한 승보사찰로, 우리나라 삼보사찰의 하나다. 이 명찰에서 출발하는 산행이 모두 좋았지만, 내게 가장 기억에 남은 곳은 산행 중에 만난 불일암(佛日庵)과 천자암(天子庵)이었다.
법정스님 '무소유' 철학의 산실, 불일암
송광사 주차장에서 '승보종찰조계산송광사' 표지석을 지날 무렵, 소슬바람에 은은한 향이 코끝을 감쌌다. 흰 쌀밥 같은 꽃송이를 달고 있는 은목서였다. 이곳에서 왼쪽 비포장도로로 접어들면 '무소유길'이다. 편백 숲을 지나며 길이 조금씩 높아지는데, 딱따구리 한 마리가 염불하듯 연신 나무를 쪼는 소리가 들렸다.
교과서에도 실린,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의 전설
소나무와 편백, 신우대가 번갈아 길손을 맞는 길을 20여 분 오르자 고즈넉한 불일암이 나타났다. 법정스님이 설파한 무소유 정신을 마음에 새기며 흔들리는 청춘의 좌표를 잡아 온 나로서는, 그 산실에 닿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감회가 새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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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입적 16주기를 맞은 법정스님의 체취는 지금도 암자 곳곳에 남아 있다. 스님이 직접 심은 태산목과 후박나무, 정갈하게 조성된 부도에서도 그 흔적이 느껴진다. 암자 한쪽에는 스님이 즐겨 앉았던 소박한 나무의자가 놓여 있고, 그 위에 옛 사진이 걸려 있다. 유해 일부를 뿌렸다는 후박나무에 한참 손을 얹고 선 사람들의 모습도 보였다.
송광사 제7대 자정국사가 창건한 자정암이 폐사된 터에 법정스님은 1975년 불일암을 중건하고 편액을 내걸었다. 스님은 이곳에 머물며 「무소유」, 「산방한담」, 「텅빈 충만」, 「인도기행」, 「버리고 떠나기」 등 수필집과 역서를 집필했다.
교과서에도 실린,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의 전설
불일암에서 멀리 바라보니 우뚝 솟은 천자암봉이 눈에 들어왔다. 그 남쪽 기슭에 송광사의 명물 쌍향수(雙香樹)가 있는 천자암이 자리한다. 천자암으로 가기 위해 불일암 대숲을 지나는데, 소슬바람에 댓잎 부딪치는 소리가 "남은 삶이라도 무소유를 실천하라"라는 스님의 죽비 소리처럼 들려왔다.
송광사 3대 명물 쌍향수와 천자암 가는 길
송광사 3대 명물 가운데 하나인 쌍향수(곱향나무)는 1962년 천연기념물 제88호로 지정됐다. 교과서에도 실려 낯익은 나무다.
교과서에도 실린,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의 전설
천자암으로 오르는 길은 두 갈래다. 걸어서 가려면 송광사에서 선암사로 갈리는 수석정교 삼거리에서 오른쪽 산길로 1시간 20분쯤 올라야 한다. 삼거리에서 운구재까지는 가파르지만, 그 뒤로는 오솔길 같은 능선을 오르내리며 걷게 된다. 송광사에서 천자암까지는 약 4km다. 자동차로는 순천시 송광면 상이읍마을에서 1.5km 비탈진 임도를 오르면 주차장에 닿는다.
교과서에도 실린,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의 전설
깊은 산중을 걸어 오르면 중규모의 절이 모습을 드러낸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법왕루와 요사채, 법당 일부가 돌올하게 솟아 비범한 도량의 기운이 느껴진다.
암자 뒤쪽 산기슭의 쌍향수 앞에 서니 저절로 숙연해졌다. 수령 800년으로 추정되는 두 그루가 나란히 서서 줄기를 엿가락처럼 서로 꼬고 있었다. 제자가 스승에게 예를 갖추는 모습이라는데, 내게는 두 마리 용이 하늘로 오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쌍향수를 올려다보니 자연의 신비로움과 인생의 유한함이 밀려왔다. 어찌하여 이 깊은 산중에 작은 씨앗이 떨어져 800년 세월 동안 서로를 감싸 안으며 생명을 지켜 오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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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무에는 전해 오는 이야기가 있다. 송광사 정혜결사를 이끈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이 금나라 제6대 황제의 태자를 제자로 삼아 송광사로 돌아왔는데, 쌍향수가 두 사람이 짚고 온 지팡이가 자란 것이라는 전설이다. 금나라는 1115년 만주와 북중국을 중심으로 건국된 나라다. 태자 담당(湛堂)은 훗날 송광사 16국사 가운데 제9대 국사가 됐고, 금나라 왕자가 세운 암자라 하여 '천자암(天子庵)'이라 부르게 됐다고 한다.
'조계산 호랑이' 활안스님의 원력이 일군 천자암
천자암을 지금의 모습으로 중창한 이는 활안(活眼) 스님이다. 쇠락해 가던 암자를 일으켜 세운 주인공이다. 스님은 1977년부터 천자암 조실로 머물며 하안거(夏安居)와 동안거(冬安居) 때마다 용맹정진하고, 해마다 100일씩 폐관정진(閉關精進)하는 등 선객들의 본보기가 되어 '조계산 호랑이'라는 별명을 얻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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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은 오랜 세월 이곳에 주석하며 암자를 수행 도량으로 복원하기 위해 손수 노동과 수행에 힘썼다. 그 결과 종각과 법왕루, 나한전, 천자암 등이 제 모습을 갖췄다. 2019년 9월 입적한 스님의 부도는 절 인근에 모셔져 있다.
교과서에도 실린,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의 전설
해발 600여 m에 자리한 천자암은 전망 명소이기도 하다. 천자암에서 내려다보는 남쪽 풍경은 가히 절경이다. 발치 아래로 아스라이 펼쳐진 보성, 장흥 등지의 출렁이는 산들을 바라보니 마음속 티끌이 홀연히 사라지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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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사 불일암·천자암 하루 여행 일정]
① 불일암·천자암 트레킹(난이도 중급)
10:00 송광사 주차장 도착(승용차)
10:10~11:30 송광사 매표소~무소유길~불일암~감로암~송광사 대웅전 (3km, 1시간)
11:40~15:20 수석정교 삼거리~운구재~천자암~천자암봉~송광굴목재~토다리~송광사 주차장 (9.4km, 3시간 40분)
② 승용차로 천자암 가기
송광사 주차장에서 불일암을 왕복한 뒤, 내비게이션에 '천자암'을 입력해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