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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6.주일오전 예배설교
설교본문/ 마가복음 2:18~22(신약56쪽)
설교제목/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서론/
오늘 주일오전 예배말씀은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라는 제목으로 전하고자 합니다. 다같이 설교제목을 두번 읽겠습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2회.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말씀의 열쇠, 핵심은 자기 신념과 믿음입니다. 자기 신념이란 자기 생각이나 어떤 사상을 굳게 믿으며 그것에 따라 살아가는 것인데, 자기신념에 갇히거나 빠질 때, 자기신념으로 다른 사람을 비난하게 되고 다른 것이 아무리 옳고 좋은 것이어도 받아드리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잘못된 신념이 큰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하지만 믿음은 자기 신념과 비슷한 점도 있으나 믿음의 대상을 믿고 따르는 것인데, 우리 기독교의 믿음은 예수님과 그의 보내신 분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들이 믿음을 갖고 신앙적인 활동을 하고 행위를 한다고 다 하나님께 합당한 것이 아닐 수 있는데, 우리들도 바른 믿음과 삶을 위해서 늘 가르침을 받아서 참된 믿음과 삶을 이루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모습도 다양함을 보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모습으로 즐겁게 신앙생활을 하고, 어떤 사람은 항상 금식을 한 사람처럼 인상쓰고 괴로운 모습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어떤 사람은 자기 기분과 감정과 형편에 맞춰서 자유분방하게 신앙생활을 합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새포도주는 새 부대에>라는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생활이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하는지, 새롭게 해야 할 점은 없는지 돌아보며 잘 배워야 하겠습니다. 아멘.
본론/
1. 왜 금식에 대한 논쟁을 하였을까?
첫번째로 살펴볼 점은 금식에 대한 논쟁을 한 이유입니다.
16절을 보면, 금식문제로 논쟁한 내용이 나오는데, 이 금식에 대한 논쟁때문에 예수님께서 오늘의 말씀을 하시게 된 것입니다.
당시에 세례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금식하고 있었습니다. 금식은 슬픈 일이나 위기나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음식을 먹지 않고 하나님께 매달리기 위해서 하였는데, 구약성경을 보면 하루 금식, 삼일금식, 일주일 금식이 나오고, 스가랴 8장을 보면, 넷째 달의 금식, 다섯째 달의 금식, 일곱째 달의 금식, 열째 달의 금식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세례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이 어떤 경우에 금식을 하였는지는 알려지지 않은 것을 보면, 그들은 그들이 정해놓은 금식기간에 금식을 한 것으로 짐작할 수 있는데, 상당히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 또는 자신들의 경건성을 드러내기 위해서 금식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렇게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의 제자들이 열심히 금식을 하고 있을 때, 어떤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와서 따지듯이 물었습니다.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금식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합니까?>
이렇게 예수님의 제자들이 금식을 하지 않는 것을 따지는 사람들은 요한의 제자들과 바래새인의 제자들보다 경건하지 못하고 수준이 떨어지는 제자들이라고 비난한 것이며, 결국은 스승된 예수님을 비난한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들이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을 비난하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태도입니다. 예수님을 세상의 선생중의 한 사람이나 일반목회자로 생각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누구도 예수님에 대해서 비난할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누가 감히 예수님을 비난하며 따질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신앙형태나 겉모습을 보고 비교해서 비난하는 것은 잘못 판단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금식을 하거나 열심히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그렇지 못한 사람을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은 것입니다.
특히 자신은 하지도 않으면서 다른 사람을 비난하면 안됩니다. 어찌하여 누구 누구는 금식하며 기도하는데, 당신은 금식도 안하고 뭐하요~ 어디 교회와 어디 교회는 금식하며 기도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교회 성도들은 기도도 하지 않습니까?
만일 저기 어떤 교회에서 제게 찾아와서 여기 어느 교회와 어느 교회는 금식하며 작정기도를 하고 있는데, 어찌하여 소망교회는 금식기도도 하지 않고 뭐하요~ 한다면, 자기교회도 하지 않으면서 비난조로 말한다면, 좋은 마음으로 받아들이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정말 다른 사람이나 다른 교회에 대해서 어떤 권면이나 말을 하여 도와주고 싶다면, 겸손히 신중하게 말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비판과 권면은 엄연히 다른 것입니다. 권면은 온유한 마음과 사랑으로 그 사람을 돕기 위해서 말하는 것이지만, 비판은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자신을 높이려고 다른 사람의 허물을 비난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마태복음 7장 1절과 2절에서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누가 뭐라해도 예수님의 제자로서 사는 것이 참되게 사는 것입니다. 아멘.
2.혼인 집 손님들이 금식할 수 있을까?
두번째로 살펴볼 점은 혼인 집 손님들이 금식할 수 있느냐고 반문하신 이유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신념으로 금식을 이해하고 경건의 척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세 가지 비유로 말씀해주셨는데, 먼저 19절과 20절에서 나오는 혼인 집 손님들이 금식문제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제자들이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이 금식할 때 금식하지 않은 이유에 대한 설명을 해주셨는데, 혼인 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때에는 금식하는 경우가 없고, 신랑을 빼앗길 날이 되면 그때에 금식할 것이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무리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금식일이라 하더라도 결혼식을 하게 되면, 결혼식 손님들은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는 금식하지 않고 함께 먹고 즐기는 것은 상식이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신랑을 빼앗기는 슬픔의 날에는 당연히 금식할 것이라고 말해준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서 신랑은 누구이며, 혼인 집 손님들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이며, 신랑을 빼앗길 날은 어떤 날을 의미할까요? 예수님은 자신을 신랑에 비유하고, 혼인집 손님들은 제자들과 신랑을 축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을 가리키고, 신랑을 빼앗길 날은 예수님 자신이 붙잡혀서 십자가에 죽으신 날을 의미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서 자신과 함께 있는 제자들이나 당시 따르는 자들이 금식할 필요가 없지만, 자신이 죽고 떠난 후에는 스스로 금식하게 될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혼인 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는 금식할 수 없다는 것과 신랑을 빼앗길 날이 되면 금식할 것이다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해서 무슨 교훈을 얻어야 할까요?
우리는 신랑의 친구이며 신랑의 손님들로서 신랑과 함께 즐거움을 누리며 신랑을 진심으로 축하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옛날 이스라엘인들, 유대인들의 결혼식은 인생의 최고로 경사스러운 행사였는데, 일주일동안 축하잔치를 했다고 합니다. 일주일동안 잔치는 맛있는 음식과 축하 행사가 계속되었는데, 일주일내내 모두가 즐거워하는 최고의 잔치였습니다.
여러분,
신랑되신 예수님과 함께 삶은 혼인 집 잔치와 같은 삶이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한편으로는 혼인집 밖에서의 삶, 세상에서의 삶은 때로 슬프고 괴로운 일도 많고, 불신과 죄악이 가득한 세상에서 살기 때문에 때로는 금식하며 주님께 간절히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는 이런 즐거운 잔치를 맛봐야 하고, 세상에서는 금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주님을 의지함으로 극복해 나가야 합니다.
어떤 목사님의 한 주간의 일정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는데, 월요일에는 병원심방가고, 화요일에는 임종예배드리고, 수요일과 목요일에는 장례예배드리고, 금요일에는 약혼예배드리고, 토요일에는 결혼예배드리고, 주일 저녁에는 추모예배를 드릴 때도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성도의 삶은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말할 수 없는 기쁨의 때도 있지만, 슬퍼하며 눈물지으며 고통스러울 때도 있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교회에 다니고 믿음생활을 하면, 어려움은 전혀 없고 기쁜 일만 있다고 말하지만, 그렇지 않고 괴롭고 힘들때도 있습니다. 다만 성도의 슬픔과 고통은 주님의 위로와 소망으로 극복되기에 어떤 상황속에도 결국에는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주와 함께 라면, 가난해도 좋아, 참된 부요함이 이 내 맘에 가득하니까/ 주와 함께 라면 병들어도 좋아, 참된 강건함이 내맘에 가득하니까, 때로는 날 유혹하려고 세상바람 휘몰아쳐와도 나는 결코 잊을 수 없어 자비로운 주의 음성을~~>
3.생베 조각과 낡은 옷, 새 포도주와 낡은 부대 비유
세번째로 살펴볼 점은 생베 조각과 낡은 옷, 새 포도주와 낡은 부대 비유를 하신 뜻입니다.
예수님은 금식논쟁에 대한 답으로 혼인집 손님들 비유에 이어서 생베 조각과 낡은 옷비유, 새 포도주와 낡은 부대 비유를 해주셨는데, 많은 들은 내용이지만, 잘 들으시길 바랍니다.
21절을 보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은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사람이 없다고 하시면서, 만일 그렇게 하면 기운 새 것이 낡은 그것을 당기어 헤어짐이 더하게 된다고 하신 것입니다.
생베 조각과 낡은 옷은 전혀 어울리 않는데,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여서 수선하게 되면, 그 옷이 더 헤어지고 터져서 입을 수 없게 되는 상황을 비유로 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수선하려다가 더욱 나쁜 결과를 낳게 된다는 것입니다.
좀더 이해하기 쉽게 말씀을 드리면, 새옷감이나 천을 가지고 그것을 조금 잘라서 낡은 옷, 찢어지고 헤어진 옷에 붙여서 꾸매서 입을 것이 아니라 새옷감이나 천은 당연히 새옷을 만들어 입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비유되고 있는 생베조각, 새옷감은 예수님이 가르치시는 새로운 교훈이나 복음의 진리를 가리키고, 낡은 옷은 수명이 되고 역할이 다 된 낡은 율법주의나 유대주의적 가르침을 가리킨 것인데, 두 가르침은 붙여질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례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의 특징인 옛 유대교적 경건형식과 메시야 시대의 복음이 절대로 합해질 수 없다는 것을 생베조각과 낡은 옷 비유로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을 통해서 복음의 말씀을 들은 우리가 과거 유교의 가르침이나 불교의 가르침에 짬뽕을 해서 이해한다면, 이상한 신앙형태가 되어버릴 것입니다.
이번주에 설명절이 있는데, 우리집은 종교자유가 있으니 자기식대로 하자고 하여, 새벽에는 기독교식, 낮에는 유교식, 저녁에는 불교식으로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는 낡은 것을 버리고 새로운 복음진리를 따라서 새로운 가치관을 가지고 믿음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오늘 마지막 비유 새 포도주와 낡은 가죽부대 비유는 오늘 말씀의 결론이 되는 데, 다같이 22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리라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하시니라>.
<새 포도주는 낡은 가죽부대에 넣은 자가 없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는다>는 말은 그 지역 사람들에게 격언처럼 많이 듣는 말입니다. 오늘날 단체나 회사나 기관에서 새해에나 새롭게 출발하는 시점에도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라는 말을 많이 인용하곤 합니다.
항아리나 그릇이 없었던 시대에 그 지역에서는 염소나 양의 가죽으로 부대를 만들어서 물이나 포도주나 기타 술을 담아두었는데, 낡은 가죽부대에 새포도주를 넣게 되면, 새포도주가 발효될 때 팽창을 하기 때문에 터져지게 되어 포도주도 버리게 되고 부대도 버리게 되기 때문에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는 것은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상식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누구나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격언으로 중요한 진리를 가르쳐주셨습니다.
여러분
그러면 새 포도주는 무엇을 비유한 것이고, 낡은 가죽부대와 새 가죽부대는 무엇을 비유한 것일까요?
앞서 생베 조각과 낡은 옷 비유에서 언급한 것처럼, 새포도주는 예수님의 가르침, 예수님이 전해주신 천국 복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가리키고, 낡은 가죽부대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 의해서 변질되고 왜곡된 유대교의 전통과 종교생활에 빠져 있는 사람들의 마음이고, 새 가죽부대는 새로운 마음, 복음을 믿음의 마음을 가리킨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가르침과 복음은 우리를 구원해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해주고, 향기나게 해주고, 가치있고 아름답고 복되게 해주고, 영광스럽게 해주는 보배와 진주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 금일소망교회 성도님들은 낡은 가죽부대를 가감하게 던져버리고 새 가죽부대를 준비하여 새포도주와 같은 복음을 담아서 복음의 은혜를 충만히 누리며 살아갈 수 있길 바랍니다.
결론/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오전에 우리는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라는 주제로 말씀을 들었습니다.
우리는 금식논쟁에서 비롯된 예수님의 세 가지 가르침을 배웠는데, 각각의 의미도 알아야 하고, 결론적인 가르침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우리는 율법의 가르침이나 세상의 어떤 탁월한 가르침보다도 항상 예수님의 가르침을 우선시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가르침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고, 예수님의 가르침은 참된 가르침이요 완전한 가르침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구약성경과 율법에 대한 말씀을 들을 때 예수 그리스도의 관점으로, 예수님안에서 해석하고 이해하고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금식이 잘못된 것이 아니고 영적인 유익이 있는 것이지만, 예수님안에서 해야지 유익한 것입니다.
우리는 신랑되신 예수님과 즐거워할 수 있어야 하고, 예수님때문에 금식하며 슬퍼하며 힘들고 어려운 일도 극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거나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부대에 넣지 말아야 합니다.
복음과 예수님의 가르침은 놀라운 발효력이 있고, 변화의 능력이 있는데, 낡은 가죽부대와 같은 옛 생각이나 율법적인 생각이나 인간적인 마음을 버리고 성령안에서 새로운 마음의 그릇을 만들어야 합니다.
여러분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넣듯이 복음의 놀라운 것들을 새 마음에 담아서 맛깔나고 향기나고 기쁘고 행복한 성도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길 축원합니다. 아멘.
<공동기도> 다같이 따라서 기도하겠습니다.
1)하나님 아버지,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넣는 것처럼 주님의 복음을 새 마음에 담을 수 있게 도와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