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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용서하며 살리라
마태복음 18:21-35
기독교 신앙에서 용서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성경은 용서를 단순한 감정적 행위를 넘어,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필수적인 요소로 가르친다. 용서는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1. 하나님께 받은 용서
우리가 용서해야 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용서하셨기 때문이다. 로마서 5장 8절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하였다.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을 통해 성도는 죄로부터 구원받았고, 이 크고 무한한 용서를 경험했다. 성도로서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것은 성도가 받은 용서에 대한 응답이자 하나님 사랑의 모방이다.
2. 다른 사람을 향한 용서
1) 용서의 시작: 예수님의 모범을 따르기
마태복음 18장에 나오는 ‘용서하지 않는 종의 비유’는 용서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 일만 달란트 빚을 탕감받은 종이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를 용서하지 않자, 주인에게 다시 큰 벌을 받는다. 이 비유는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용서가 얼마나 큰지를 깨닫고, 그 용서를 이웃에게 베풀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용서는 상대방의 잘못을 잊는 것이 아니라, 그 잘못에 대한 복수심을 포기하고 하나님께 맡기는 행위이다.
2) 용서의 구체적인 행동: 사랑과 기도
용서는 종종 고통스럽고 어렵다. 특히 깊은 상처를 입었을 때는 더욱 그렇다. 성경은 우리가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가르쳤다(마 5:44). 이는 인간적인 힘만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용서를 실천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을 새롭게 하신다. 용서의 과정은 다음과 같을 수 있다.
❶ 용서하기로 결단하기: 감정적으로 용서가 되지 않더라도, 의지적으로 용서하겠다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결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❷ 상대방을 위해 기도하기: 그 사람의 영혼과 삶을 위해 축복하며 기도할 때, 미움의 감정은 서서히 사라질 수 있다.
❸ 하나님께 맡기기: 보복하고 싶은 마음, 상처받은 마음을 하나님께 모두 내려놓고 공의의 심판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는 것이다.
3. 용서의 유익: 자유와 치유
용서는 상처를 준 사람뿐만 아니라, 용서하는 나 자신을 위한 행위이기도 하다. 미움과 분노는 우리 영혼을 갉아먹는 독과 같다. 용서를 통해 우리는 과거의 아픔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얻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과 기쁨을 누리기 위해 용서는 필수적인 과정이다. 성도로서의 용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바로잡으며, 궁극적으로 우리 자신의 영혼을 치유하는 거룩한 행위이다. 용서가 어렵게 느껴질 때,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용서의 은혜를 기억하며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4. 용서하지 못할 때의 해로움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을 품고 있을 때, 이는 단순히 상대방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을 넘어 우리 자신에게 매우 심각하고 광범위한 해로움을 끼친다. 성경적 관점과 심리적 관점에서 볼 때, 용서하지 않음은 영혼, 정신 그리고 심지어 신체에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1. 영적/신앙적 해로움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가장 심각한 해로움) : 예수님께서는 주기도문에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고 가르치셨다(마 6:12). 또한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고 경고하셨다(마 6:15). 용서하지 않는 마음은 우리가 이미 받은 하나님의 용서를 경시하는 태도로 비춰져, 결국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영적 장벽을 만든다.
성령의 열매 상실: 용서는 사랑, 희락, 화평과 같은 성령의 열매가 맺힐 수 있는 토양을 파괴한다. 미움과 분노의 감정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거부하게 만들고, 결국 신앙의 기쁨과 평안을 잃게 만든다.
기도의 막힘: 시편 66편 18절은 ‘내가 나의 마음에 죄악을 품었더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고 말한다. 용서하지 않는 마음은 일종의 ‘죄악’이 되어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는 것을 방해할 수 있다.
2. 심리적/정신적 해로움
정서적 갇힘(Anger/Bitterness Cage): 용서하지 않음은 과거의 상처와 고통을 계속해서 현재로 끌어오는 행위이다. 이는 우리가 분노, 원한, 복수심이라는 감옥에 스스로 갇히게 만든다. 상처를 준 사람은 이미 잊고 자유롭게 살고 있을지 몰라도, 용서하지 않는 사람은 그 사건에 영원히 묶여 살게 된다.
만성적인 스트레스와 불안: 용서하지 않는 마음은 마음속에 지속적인 경보 상태를 유지하게 한다. 이는 만성적인 스트레스를 유발하며, 불안, 우울, 낮은 자존감과 같은 정신 건강 문제로 이어지기 쉽다.
관계 단절 및 고립: 미움은 다른 사람과의 건강한 관계를 맺는 데 방해가 된다. 부정적인 감정이 타인에게 표출되거나 내면화되면서, 주변 사람들과의 친밀한 관계가 어려워지고 사회적으로 고립될 수 있다.
3. 신체적/육체적 해로움
신체 질환 유발: 정신적 스트레스는 물리적 질병으로 이어진다. 연구에 따르면, 만성적인 분노와 적대감은 심장병, 고혈압, 면역 체계 약화, 만성 두통 등의 발생 위험을 높인다.
수면 방해: 깊은 분노와 미움은 밤에도 쉽게 마음을 놓지 못하게 하여 불면증을 유발하고 수면의 질을 저하시킨다.
용서하지 않는 것은 상대방을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처벌하는 독을 마시는 것과 같다. 성도에게 용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자유와 평안을 되찾고, 우리가 받은 은혜를 온전히 누리기 위한 필수적인 단계이다.
5. 용서할 때의 축복
용서할 때 얻는 축복은 단순히 마음의 평안을 넘어, 영적이고 전인적인 차원에서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 부정적인 감정의 짐을 내려놓고 관계를 회복하며, 궁극적으로 더 깊은 차원의 삶을 살 수 있게 해주는 은혜로운 선물이다.
용서가 가져다주는 주요 축복은 다음과 같다.
1. 용서의 영적인 축복(The Spiritual Blessings of Forgiveness)
1) 죄 사함과 은혜의 경험
다른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는 행위는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하는 길과 연결된다.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 우리가 다른 이를 용서할 때, 우리 역시 하나님께로부터 죄를 탕감받고 죄책감에서 벗어나는 사죄의 감격을 누리게 된다. 시편 32편 1절의 말씀처럼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라는 축복을 경험할 수 있다.
하나님을 닮아감: 용서는 사랑과 자비와 같은 고귀한 미덕을 실천하는 행위이며, 이는 우리를 창조주가 원하시는 모습에 더욱 가깝게 만든다.
2) 마음의 평화와 안식(Peace and Rest)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은 미움, 분노, 원한 같은 독소를 마음에 품고 스스로를 괴롭힌다.
내면의 감옥 해방: 용서는 우리를 앙심이라는 내면의 감옥에서 해방시킨다. 과거의 상처와 사건이 더 이상 우리의 감정을 지배하지 못하여 진정한 평안, 영적인 안식을 얻게 된다.
분노의 소멸: 분노가 사라지고 원망이 녹아내리며, 쓴 마음이 단 마음으로 변화되는 영적 치유를 경험한다.
2. 용서의 개인적 축복(The Personal Blessings of Forgiveness)
1) 건강과 행복 증진
용서는 정신적, 신체적 건강에 직접적인 축복을 가져다준다.
스트레스 해소: 만성적인 분노와 적개심은 스트레스 호르몬을 증가시키고 신체에 해를 끼친다. 용서는 이런 스트레스를 관리하고 혈압을 낮추며 신체적 건강에 좋은 영향을 준다.
자존감과 희망 회복: 피해자 역할에서 벗어나 용서를 선택하는 것은 스스로에게 자율적인 힘이 있음을 깨닫게 한다. 이는 자존감을 높이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게 한다.
3. 관계의 회복과 축복
용서는 개인의 치유에 머무르지 않고, 주변의 관계에도 긍정적인 파급 효과를 준다.
관계 개선의 문: 용서는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고, 상대방과 다시 화평하게 지낼 수 있는 화해의 기회를 열어준다. 비록 상대방이 용서를 구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용서를 통해 상대방의 삶을 축복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갖게 된다.
사랑과 친밀감 증진: 용서를 통해 갈등이 해결된 관계는 이전보다 더욱 깊고 친밀한 사랑을 나누는 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 용서의 축복은 내가 먼저 용서받은 자임을 깨닫고, 그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베풀 때 내 마음에 임하는 평화와 치유, 관계 회복의 선물이다.
결 론 (봉민근 칼럼에서)
용서를 넘어 사랑으로 / 그리스도의 위대하고 거룩한 정신은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성경은 형제를 용서하며 이웃을 사랑하라 가르친다. 용서하면 자신에게 기쁨이 넘친다. 이웃의 작은 것 하나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찌 원수를 사랑하랴! 용서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께 용서를 구할 수 있으랴! 용서하지 않는 자는 용서받을 자격이 없다. 용서가 없는 사람은 결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지 못한다.
하나님 앞에서 말과 혀로만 하지 말고 진실로 용서하라. 예수님의 십자가는 용서의 최고봉이다. 하나님 앞에서 진실로 용서하지 않으면 자신의 죄도 용서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림보다 용서가 우선이다. 용서하지 못하고 하는 봉사나 섬김이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이 되겠는가? 용서하지 않는 자의 신앙생활은 외식이요 그의 기도는 가증할 뿐이다. 용서하지 않는 자가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는 것은 자기모순이다. 천국은 용서의 계단을 밝고 한 걸음씩 예수님께로 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용서가 없었다면 십자가는 무용지물이 되었을 것이다. 용서가 사랑이다. 서로 사랑하라 하시는 말씀은 서로 용납하라는 말씀이다.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 하신다. 용서하고 주께 나가면 반드시 우리의 죄와 허물도 용서하신다. 용서가 십자가의 정신이다. 용서를 넘어 사랑으로 가는 곳에 주님이 계신다. 용서하지 못하는 자가 어떻게 천국이 어울릴까? 용서하지 못하고 미워하며 사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 하늘나라에서 상 받기를 바랄까? 서로 긍휼히 여기며 사랑으로 형제를 용납해야 한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다.
용서는 사명이다 / 주님은 십자가에서 용서를 통해 자신의 사랑을 보여 주셨다. 구원받았다고 하는 것은 용서받았다는 것이다.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얼마나 우리가 구원받기를 원하시는지! 우리가 그토록 부르는 예수의 그 이름에 뜻이 구원이다. 용서는 하나님의 성품을 증명한다. 용서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용서를 넘어 사랑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닮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은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과 같다. 사랑 없는 그리스도인은 허울뿐인 종교인일 뿐이다. 용서하지 못하고 산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요 비극이다. 미워하는 마음을 품고 살면 결코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다. 사랑 없는 믿음은 거짓이며 사랑 없는 십자가는 장식품에 불과하다. 사랑하지 못하고 용서하지 못하면 자신의 죄 또한 용서받을 수가 없다. 천국에는 용서하지 않는 자가 설 자리가 없다. 용서는 반드시 해야 할 믿는 자의 사명이다. 십자가는 용서하지 못할 것까지 모든 것을 못 박는 자리다. 용서에 이유를 달지 말아야 한다. 그리스도의 정신은 조건 없는 용서다. 기도보다, 예배보다 용서가 먼저다. 용서는 사랑을 불러오고 화평을 만들어 내며 허다한 죄를 덮는다. 미움이 가득하여 용서의 마음이 일어나지 않거든 사람에게 말하지 말고 입 다물고 기도하는 것이 먼저다.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은 100% 실패한 그리스도인이다. 용서하지 않으면 자신의 마음이 늘 지옥에 갇혀 살수 밖에 없다. 사랑하고 용서하는 것이 우리가 감당해야 할 사명이요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다. 내 힘으로는 불가능하나 말씀대로 살면 생각만 해도 이루어진다(엡 3:20).
참고로 하면 유익한 글들
❙ 창세기 45장에서 요셉은 형들의 잘못을 용서해 주었다. 46장에서는 아버지를 비롯하여 온 식구들의 애굽으로 내려갔다. 이 일이 있은 후 17년의 세월이 지났을 때 아버지 야곱이 죽었다. 50장을 보면 장례가 끝나자 형들은 다시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아버지가 살아계셨을 때에는 아버지를 봐서라도 복수를 하지 않겠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안계시니까 요셉이 복수를 하지 않을까 하고 염려했기 때문이다. 형들은 이미 17년 전에 요셉으로부터 용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용서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다. 요셉이 복수할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생각이 들자 형들이 먼저 선수를 쳤다. 요셉을 찾아가서 ‘우리가 당신의 종이 되겠다’고, ‘종이 되겠으니 용서해 달라’고 빌었다. 그 말을 들을 때에 요셉은 울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오래 전에 용서했건만 아직까지도 용서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지난날 지었던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형들의 어리석은 모습 때문에 울어야 했고, 지난 17년 동안 불안에 떨며 살아야 했던 형들이 불쌍해서 울었다. 요셉의 반응을 본받자.
창 50:19-21 /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21)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아무 조건 없이 용서받은 일만 달란트(6,000만 데나리온) 빚진 자이다. 이웃이 내게 백 데나리온(당시 일군의 하루 품삯이 1데나리온, 20만원)의 빚을 졌다면, 나는 하나님께 일만 달란트의 빚을 졌다. 미련하고 어리석은 이 사람은 2~3백만원을 받으려다가 12조원을 손해본 것이다. 신구약 성경에 대략 500번 이상 은혜라는 단어가 나온다. 바울이 쓴 서신서에만 무려 80번이나 나온다. 성경은 은혜로 시작해서 은혜로 마친다. 하나님은 은혜로우시고 우리는 은혜를 받아야 산다.
❙ 대학생선교회 CCC를 운영하면서 한국교회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키신 김준곤 목사님의 실화이다. 예수 믿는다는 것 때문에 목사님의 가족이 다 공산당에게 끌려가서 갖은 고초를 겪었다. 목사님의 눈앞에서 목사님의 부친과 아내가 공산당에게 맞아 죽는 것을 보아야 했다. 목사님도 너무 매를 많이 맞아 혼수상태에 빠졌다. 그때 미군 함정이 나타나는 바람에 겨우 위기를 벗어나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급기야 김목사님의 가족을 죽인 공산당원들을 미군들이 잡아들였다. 그런데 목사님은 빵을 들고 미군에게 찾아가서 공산당원에게 주고, 미군에게 사정사정해서 풀어달라고 하였다. 미군이 목사님의 간청에 못 이겨서 풀어주었다. 그런데 그 공산당원들이 산 속에 들어가서 계속 게릴라전을 벌였다. 그때 김목사님은 성경책을 들고 산속에서 게릴라전을 벌이는 공산당원들을 찾아 들어갔다. 그 결과 그들 공산당원들이 회개하고 돌아와 108명이 모이는 시골교회를 설립할 수 있었다. 김목사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아버지를 죽이고, 아내를 죽인 사람까지도 용서했다.
❙ 작가 정연희씨가 쓴 [원수사랑] / ‘원수를 사랑하라 원수를 사랑하여라.’ / ‘무슨 말입니까? 주여! 내 하나님이여! 이 무슨 말씀입니까? 내게는 그리도 엄격하시면서 어찌 내 원수에게 그리 관대하십니까?’ / ‘보아라! 나와 함께 하는 것아. 네가 원수와 똑같은 얼굴이 되는 것을 나는 참을 수 없구나.’
❙ 용서의 기적 / 미국 캘리포니아에 오션게이트교회가 있다. 이 교회는 갑자기 성장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어느 날 밤, 마을의 불량 10대 소년 9명이 일제히 교회를 향해 돌을 던졌다. 문화재로 지정된 아름다운 교회의 형형색색 유리창이 무려 73장이나 파손됐다. 재산상의 손실도 엄청났다. 당연히 소년들은 이 일로 경찰에 체포되어 모두 법원으로 이송되었다. 그때 웰스 목사와 교인들이 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교회에 돌을 던진 소년들은 나이가 어립니다. 우리 지역의 소년들을 우리 교회가 바르게 가르치지 못한 잘못도 큽니다. 소년들을 용서해주세요.’ 교회의 간절한 탄원 덕분에 소년들은 모두 석방되었다. 그러자 소년들이 동네를 다니며 외쳤다. ‘우리가 교회 유리창을 깨뜨린 소년들입니다. 그런데 웰스 목사님과 교인들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용서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교도소를 가지 않고 풀려났습니다. 목사님과 교인들을 만나보세요. 이 교회야말로 사랑과 은혜가 넘치는 교회입니다.’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다. 소년들은 마치 전도특공대가 된 것처럼 이 소식을 알렸고 교회가 부흥되기 시작했다.
❙ 리스트의 제자? / 독일의 어느 작은 마을에 피아니스트가 살았다. 그는 피아노 독주회를 준비하고 지방신문에 광고를 내는데, 당시의 유명한 음악가인 리스트의 제자라고 했다. 물론 거짓말이다. 리스트를 만나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연주회가 있기 며칠 전 리스트가 이 마을에 오게 되었다. 큰일이 났다. 거짓이 탄로 나면 음악가로서의 자신의 일생은 끝장나고 만다. 전전긍긍하며 후회해도 달리 도리가 없었다. 리스트가 마을에 왔을 때 리스트를 찾아가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다. ‘제가 선생님의 이름을 도용했습니다. 제가 아직 부족함이 많은 피아니스트인 주제에 감히 당신의 제자라고 하였습니다. 저의 죄를 용서해주십시오.’ 그러자 리스트가 조용히 웃으면서 말했다. ‘당신은 크게 잘못했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당신이 얼마나 부끄러워하고 고통스러워하고 괴로워했는지 알 것 같습니다. 내 앞에서 한번 연주해보시오.’ 그는 벌벌 떨면서 리스트 앞에서 피아노를 쳤다. 리스트는 연주를 들으면서 중간 중간 멈추게 하고 고쳐주었다. 연주를 마치자 리스트가 그에게 말하였다. ‘단 한번이라도 내가 당신을 가르쳤으니 이제 당신은 분명히 내 제자입니다. 그리고 연주회에서 당신 연주가 끝나면 제가 한 곡을 연주하겠습니다. 관객들에게 그렇게 소개하십시오.’ 그 연주회는 엄청난 기쁨과 영광의 연주회가 되었다.
❙ 빠삐용과 샤리에르 / 영화 빠삐용의 실제 주인공 ‘앙리 샤리에르'는 20세 때 파리 시내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당했다. 검사는 거짓 증인을 내세워 살인자로 누명을 씌웠고 샤리에르는 중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그는 검사에 대한 복수심으로 탈옥을 결심했고 탈옥 후에는 남미 곳곳을 다니면서 갖은 일을 하며 돈을 모았다. 그리고 30년이 지나 자신에 대한 공소시효가 지나자 그 검사를 죽이기 위해 파리로 돌아왔다. 과거에 대한 향수와 복수에 대한 다짐으로 누명을 당했던 거리를 거닐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이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는 고민에 빠져들었다. 그는 무릎을 꿇었다. ‘하나님! 내가 복수를 포기한 대가로 다시는 이런 비극이 생기지 않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자신을 향해 이렇게 소리쳤다. ‘나는 이겼다. 친구여. 너는 자유롭고 사랑받는 네 미래의 주인공으로 여기에 있다. 내 원수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더 이상 알려고 하지 마라. 그들은 과거의 한 부분일 뿐이다.’ 37년 동안 자기를 가두어 두었던 감옥에서 탈출하는 순간이었다.
❙ 용서해야 하는 이유 / 한 자매님이 신분 상승을 꿈꾸면서 부잣집 아들과 결혼을 했다. 그런데 시어머니로부터 말끝마다 ‘거지 근성은 버릴 수 없다’는 면박을 받았다. 신분 상승은커녕 큰 상처를 입고 살아가면서 자신도 모르게 부정적 자아상을 갖게 되었다. 그는 시댁 식구들 만나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고, 남편과의 사랑도 점차 식기 시작했다. 사람 만나는 것도 싫어지고, 시어머니를 죽이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길에서 복음지 한 장을 받게 되었다. 용서와 화해에 대한 말씀이었다. 그 말씀 속에는 ‘용서는 선택이다, 용서는 용서하지 않았을 때의 처참한 결과로부터 자신을 풀어주는 것’이라는 말에 전율을 느꼈다. 자신을 위해 용서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날 이후, 시어머니를 용서하기로 했다.
❙ 진정한 용서, 증오, 미움 / 누구든지 하나님의 자비와 평화를 의지할 때 ‘증오의 사슬’에서 자유 할 수 있다. 영국의 의사이며 저술가인 T. 브라운 박사(1605-1682)는 용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해 지도록 분노를 품지 말고 즉시 재처럼 날려 버리라. 당신의 상처받은 마음에 망각의 커튼을 치라. 하나님께서 벌주실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원수를 용서하는 것은 완전한 용서가 아니다. 원수를 무조건 용서하고 하나님께서도 용서를 베풀어주시기를 기도하는 사람만이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얻을 수 있다. 당신의 적들을 일말의 여지없이 전적으로 용서하라.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다.’
❙ 이별의 노래(박목월 작사, 김성태 작곡) ❶ 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리 바람이 싸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 후렴 : 아아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❷ 한낮이 끝나면 밤이 오듯이 우리의 사랑도 저물었네 ❸ 산촌에 눈이 쌓인 어느날 밤에 촛불을 밝혀 두고 혼자 울리라 - 6.25. 전쟁이 끝날 무렵 박목월 시인이 중년이 되었을 때 그는 제자인 여대생과 사랑에 빠져 모든 것을 버리고 종적을 감추었다. 가정과 명예 그리고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 자리도 버리고 빈손으로 홀연히 사랑하는 애인과 자취를 감추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목월의 아내는 그가 제주도에서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남편을 찾아 나섰다. 부인은 남편과 함께 있는 여인을 마주한 후 살아가는 궁한 모습을 본 후 두 사람에게 힘들고 어렵지 않나며 돈 봉투와 추운 겨울을 따듯하게 지내라며 겨울옷을 내밀고 아내는 서울로 올라 왔다. 목월과 그 여인은 그 모습에 감동하고 가슴이 아파 두 사람의 사랑을 끝내고 헤어지기로 했다. 목월이 서울로 떠나기 전날 밤 이 시를 지어 사랑하는 여인에게 이별의 선물로 주었다. 다방에서 만난 김성태 교수께 이별의 아픔을 이야기하며 이 시를 보여 주었다. 김성태 교수는 즉석에서 이 시에 곡을 붙여 세간에 발표함으로 그 유명한 가곡 ‘이별의 노래’가 불려지게 되었다.
❙ 진정한 용서는 ‘그 일 자체를 잊어버리는 것’ / 에스키모인들에게는 ‘용서’라는 단어 자체가 없었다. 그래서 모라비안 선교사들이 ‘용서’라는 뜻을 설명해주었다. 에스키모 말로 ‘이쑤 마기주 중 나이 너미크(Issu Magigou jung nai nermilk)’라고 가르쳐주었다. 그 뜻은 ‘더 이상 그 일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진정한 용서는 ‘그 일 자체를 잊어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말은 하지 않지만, 남편의 일, 아내의 일, 이웃의 일, 교우의 일을 마음에 차곡차곡 쌓아놓는다. 그래서 때때마다 ‘네가 그랬지!’ 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말하고 또 말한다. 이것은 용서의 태도가 아니다.
❙ 네덜란드의 코리텐 붐이라는 87세의 할머니는 1974년 스위스 로잔느에서 열린 국제 대회에서 간증을 했다. 그녀의 간증 내용은 가족이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유대인을 숨겨준 죄로 나치스의 강제수용에 끌려가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여동생이 학살당했지만 크리스천이 된 후로 독일교회에 나가 간증하면서 이제는 내 마음속에서 독일인에 대한 미움이 사라졌다며 그들을 완전히 용서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간증을 마친 후 회중 속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얼굴이 보였다. 그녀는 마음이 흔들렸는데 수용소에서 여동생을 죽이는 일을 거들었던 간호원을 발견했던 것이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녀에게 개인적으로 용서한다고 말했다.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깨달았기에 부모 형제를 죽인 독일인을 용서할 수 있었던 것이다.
❙ 미국 뉴옥에서 가장 존경받는 시장은 리콰디아라는 시장이다. 이 시장의 이름을 따서 뉴욕에는 리콰디아 공항이 생겼다. 리콰디아는 뉴욕시장이 되기 전 판사로 있었다. 그가 법원의 즉결판사로 있던 어느 날 한 노인이 법정에 섰다. ‘당신은 왜 이 법정에 섰습니까?’ 노인은 ‘네, 남의 가게에서 빵을 훔쳤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리콰디아 판사는 ‘왜 남의 가게에서 빵을 훔쳤습니까?’라고 물었다. 노인은 ‘너무 배가 고파서 저도 모르게 남의 빵을 훔치게 되었습니다. 용서해주세요!’라고 말하자 리콰디아는 그에게 벌금형 10불을 선고했다. 그리고 그는 판사복을 벗고 내려와서 ‘이런 배고픈 사람이 뉴욕 거리를 헤매고 있을 때, 나는 배가 부른 채로 있었으니 내가 죄인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벌금을 내겠습니다.’하고 벌금을 낸 다음, 모자를 벗어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지신 분들이 계시다면 같이 동참해주시지 않겠습니까?’라고 하며 모자를 돌렸습니다. 그 법정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같은 마음으로 벌금을 냈고 47불이 걷혔다. 리콰디아 판사는 47불을 그 노인에게 주었다. 용서의 사람 리콰디아를 하나님께서 높여주시고 존귀하게 만드셨다.
❙ 화해의 악수 / 미국 부통령을 역임한 험프리 의원의 장례식이 있었다. 미망인의 옆자리에는 놀랍게도 평생의 정적(政敵)이었던 닉슨 대통령이 앉아 있었다. 험프리 상원의원은 평소에 닉슨 대통령을 가장 괴롭힌 정치인이었다. 험프리 의원은 죽기 사흘 전에 잭슨 목사에게 부탁하였다. ‘목사님, 죽기 전에 닉슨 대통령을 만나게 해주세요. 그에게 용서를 구해야 편히 눈을 감을 수 있어요.’ 닉슨 대통령은 잭슨 목사님을 통하여 이런 소식을 듣고 급히 비행기로 달려와 손을 마주잡고 화해하였던 것이다.
❙ 빌레몬서에 보면 바울은 오네시모를 아들이라고 불렀다. 옥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바라보는 바울의 안목이 무척 흥미를 끈다.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저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몬 1:11)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집에 살던 노예였는데 집안의 재물을 훔쳐 먼 도시로 도망가 살다가 또 죄를 짓고 감옥에 들어왔다. 거기서 바울 만나 거듭났다. 빌레몬서는 그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교회에 내려오는 전설에는 에베소교회의 감독중에 오네시모라는 이름이 있다. 도둑질해서 도망다니던 노예가 교회의 중요한 일꾼이 된 것이다. 어떻게 가능할까? 진정한 용서가 교회의 유익한 주춧돌을 세우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 2005년 5월 31일, 기네스북은 1925년 6월 1일 결혼한 영국인 퍼시 애로스미스(105세)씨와 그의 부인 플로렌스(100세)씨가 결혼기간(80년)과 부부 나이 합산(205년)에서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고 발표했다. 80회 결혼기념일을 맞은 애로스미스 씨 부부를 BBC에서 인터뷰를 했다. 기자가 행복한 부부관계를 유지하는 비결을 묻자 부인 플로렌스는 ‘배우자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을 결코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라고 대답했다.
❙ 용서는 이렇게 / 미국 교계에서 하나님 앞에 귀하게 쓰임을 받고 있는 탐 스키너라는 부흥사가 있다. 그는 뉴욕 할렘가의 불량 청소년 갱단 두목이었다. 어느 날 그는 홀연히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복음을 접하게 되었다. 그로 인해 그의 영혼과 삶이 뒤바뀌었으나 그가 변화되었다는 이 사실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옛날의 동료 하나가 탐 스키너를 시험했다. 지나가는 탐 스키너의 뺨을 한 대 후려쳤다. 탐 스키너가 일어나면서 그 사람을 향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에 친구여 나는 너를 용서하노라.』
❙ 용서받은 젊은 목사 / 35세 된 목사님이 사냥을 갔다가 멀리 노루 한 마리를 보고 조준하여 쐈는데 달려가 보니 노루가 아니라, 사람이 총에 죽은 것이다. 법의 심판도 받아야 하지만, 윤리적, 도덕적 책임을 지고 목사직을 사임해야만 하는 극심한 절망감에 빠졌다. ‘이제 내 인생은 내 목회는 끝났구나!’ 교회와 언론이 들끓었다. 교인들은 ‘사람을 죽인 목사가 어떻게 목회를 할 수 있느냐? 담임목사직을 사임하고 나가라’라고 난리가 났고. 교회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중직들 중 한 사람이 말했다. ‘여러분! 사람 죽인 젊은 목사님을 어느 교회가 받아주겠습니까? 우리가 용서하지 않으면 목사님은 평생 갈 곳이 없습니다. 우리가 목사님을 한번 용서합시다!’ 이 한 사람의 용서의 제안을 온 교인들이 받아들이고, 믿어주고, 용서를 베풀어서 그 교회에서 계속 44년(어떤 글에는 50년 이상)동안 목회하였다. 그 뒤로 목회 철학은 ‘용서’가 되었다. 목사님이 십자가의 용서와 사랑을 설교할 때마다 교회는 울음바다가 되었다. 이 교회는 미국 최대의 교회로 성장했을 뿐만 아니라, 이 목사님은 미국 침례교 총회장, 세계 침례교 총재를 지냈고, 54권의 저서를 쓴 크리스웰 목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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