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 말괄량이 건녕공주
공주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면서 웃었다.
[소게자, 그대를 오랫동안 볼 수 없었는데 그 사이에 키가 많이 컸군 요. 소문에 들으니 그대는 나찰국에서 도깨비 같은 아가씨와 사귀게 되 었다고 하던데 그게 사실인가요?]
위소보는 웃었다.
[그런 일이 어찌 있을 수 있겠습니까?]
벌안간 철썩, 하는 소리가 나면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어느덧 공주에게 따귀를 얻어맞은 것이다.
[아이쿠!]
그는 펄쩍 뛰었다. 공주가 웃으며 말했다.
[그대는 솔직하지 못하군요. 감히 나에게 거짓말을 하다니.]
그녀는 다시 손을 들고 일 장을 후려치려고 했다. 위소보는 급히 고개 를 돌려 피했다. 공주는 오응웅에게 말했다.
[나는 소계자에게 심문할 일이 있으니 그대는 이곳에 더 있을 필요가 없어요.] [좋소. 나는 밖으로 나가서 무관들을 상대로 술을 마시고 있겠소.]
그는 위소보가 얻어맞는 꼴을 자신이 본다는 것이 위소보의 체면상 좋 지 않다고 생각되어 화청에서 물러났다. 공주는 손을 뻗치더니 위소보 의 귀를 비틀어 잡고는 호통을 내질렀다.
[이 죽일 꼬마야! 너는 나를 잊었지?]
그녀는 힘주어 비틀었다. 위소보는 아파서 큰소리로 부르짖으며 재빨리 말했다.
[아니오. 아니오. 나는 이렇게 그대를 보러 오지 않았소?]
공주는 다리를 들어 그의 배를 한번 걷어차더니 욕을 했다.
[이 양심도 없는 것! 내가 그대를 차 죽이지 못할 줄 알고? 내가 만약 그대를 부르지 않았다면 그대는 삼 년이 더 지난다 해도 나를 보러 오 지 않았을걸.]
위소보는 화청에 아무도 없는 것을 알고는 손을 뻗쳐 그녀를 껴안고 나 직이 말했다.
[손짓 발짓은 그만 하시오. 내일 그대와 황궁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 도록 하겠소.]
공주는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무슨 이야기를 하겠다는 거예요?]
그녀는 그의 이마에 팍, 하고 꿀밤을 먹였다. 위소보는 그녀의 두 손을 힘주어 잡고 말했다.
[나는 쌍용창주(雙龍愴珠)라는 일초를 펼치겠소.]
공주는 그의 손을 뿌리치고 물러났다. 위소보가 말했다.
[이곳에서 우리가 다정하게 군다면 부마 나리의 의심을 사게 될 것이니 내일 궁에서 다시 만나도록 합시다.]
공주는 두 뺨을 붉혔다.
[그가 무엇을 의심한다는 거예요?]
그녀는 그를 곱게 흘겨보더니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앙증스러운 꼬마야, 빨리 꺼지기나 하시지!]
위소보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대청으로 돌아왔다. 오응웅은 네 명의 무 장들과 환담을 나누고 있었다. 조양동과 왕진보는 다투고 있었는지 두 사람 모두 얼굴이 시뻘개져 있었고 음성도 높았다. 두 사람은 위소보가 나타난 것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위소보는 웃으며 물었다.
[두 분은 무엇 때문에 다투시오? 나에게 이야기해 주면 안 되겠소?]
장용이 말했다.
[우리들은 마필을 논하고 있었지요. 왕 부장은 말을 보는 눈이 독특해 서 그가 선택한 말은 틀림없이 좋은 말입니다. 왕 부장은 운남의 말이 좋다고 칭찬했지요. 조 총병은 그것을 믿지 않고 사천성과 운남에서 나 는 말은 다리가 짧아서 빨리 달리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왕 부 장은 사천성이나 운남성에서 나는 말은 지구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십 리 안에서는 다른 말보다 못하나 달리면 달릴수록 기운을 내게 된다고 말했지요.] [그렇소! 이 형제에게 몇 필의 말이 있는데 왕 부장이 잘 좀 봐주시 죠.]
위소보는 친위병에게 백작부로 돌아가서 마구간의 말들을 끌고 오도록 했다.
[위 도통의 좌기(坐騎)는 강친왕이 선물한 것으로써 유명한 대완양구 (大宛良駒)이며 옥화총이라고 하지 않소? 우리 운남의 말과 어찌 비교 할 수 있겠소?]
오응웅의 말에 이어 왕진보는 말했다.
[위 대인의 말은 물론 좋은 말이지요. 대완에서 좋은 말이 많이 난다는 것을 비직 역시 들은 적이 있습니다. 비직이 감숙성과 협서성에 있을 때 적지 않은 대완양구를 타본 적이 있지요. 짧은 거리에서 독주를 할 때에는 매우 빨라 어떤 말도 견줄 수 없답니다.]
조양동은 말했다.
[그렇다면 장거리를 달려갈 경우엔 어떻게 되오? 설마 대완에서 나는 말이 운남에서 나는 말보다 못하단 말이오?]
왕진보는 말했다.
[운남 말은 본래 뛰어나지 못하지요. 하지만 지구력과 버티는 힘이 뛰 어나답니다. 비직은 몇 년 동안 운남성 북쪽에서 말을 기르며 사천성에 서 나는 말과 운남에서 나는 말을 교배시키게 되었는데 그 새로운 종자 의 말은 더욱 뛰어나지요.]
조양동이 큰소리를 쳤다.
[노형, 그것은 문외한의 말이외다. 말은 언제나 순종을 따지는 것이오. 순종일수록 더 좋다는 말은 들었지만 잡종이 오히려 좋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소이다.]
왕진보는 얼굴이 시뻘개져서 말했다.
[조 총병, 나는 잡종말들이 모두 좋다고 하는 것이 아니오. 마필은 용 도에 따라 다르오. 어떤 것은 공격하여 적진을 무너뜨리는 데 사용하고 어떤 것은 짐을 싣는 데 사용하는 것이오. 그리고 군마(軍馬)를 보아도 크게 다르오. 어떤 것은 백리마이고 어떤 것은 천리마인데 긴 거리와 짧은 거리에 따라서 달라진다오.] [흥! 잡종을 좋아하니 놀랍군!]
조양동의 말을 듣고 왕진보는 더욱 화를 내며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대는 지금 나보고 잡종이라고 욕하는 것이요? 그렇게 더러운 말을 함부로 해도 되는 거요?] [나는 말을 지칭한 것이지 사람을 말한 건 아니외다. 종자가 순종이 아 니라는 것에 대해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함부로 성질을 부릴 것까지는 없지 않소?] [이곳은 부마부의 저택이오. 그렇지 않았다면.... 흥흥!] [흥흥,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오? 그대는 나와 손을 써서 싸우겠다는 것 이오?]
장용이 말렸다.
[두 분은 처음 만난 사이인데 어째서 짐승들의 일을 가지고 화를 내시 오. 자자자, 내가 두 분을 모시고 한잔낼 테니 서로 다투지 말도록 합 시다.]
그는 제독으로 계급이 조양동이나 왕진보보다 높았다. 두 사람은 그의 체면을 섕각해 함께 술을 마셨지만 서로를 노려볼 뿐, 말이 없었다. 만 약 상관이 자리에 있지 않다면 당장에 싸움을 할 것만 같았다. 얼마 후 친위병과 마부가 좌기를 끌고 도달했다. 사람들은 함께 마구간 으로 가서 말을 살피게 되었다. 왕진보는 정말 말을 잘 감별했다. 첫눈 에 그는 모든 말들의 장점과 결점을 말했으며 심지어 그 성질까지도 칠 팔 할 정도 알아맞혔다. 위 백작부의 마부들은 모두 탄복했으며 왕 부장의 안력(眼力)이 뛰어나 다고 크게 칭찬했다. 마지막으로 위소보가 타고 다니는 말 옥화총을 보 게 되었다. 이 말은 다리가 길고 통통해서 겉모양이 그럴듯했다. 전신 의 하얀 털은 그야말로 연지를 찍어 놓은 듯 윤기가 흘러 아름답기 이 를 데 없었다. 모든 사람들이 칭찬했으나 왕진보는 아무 말도 하지 않 고 한참 동안 있다가 입을 열었다.
[이 말은 본래 매우 좋은 말이었으나 애석하게도 잘못 길렀습니다.]
위소보는 말했다.
[어째서 잘못 길렀다는 것이오? 가르침을 받고 싶구려.]
왕진보는 말했다.
[위 대인의 이 말은 그야말로 천하에서 보기 드문 준마입니다. 이런 좋 은 말은 매일 타고 십리 길은 빨리 달리고 수십리 길은 천천히 달리도 록 하는 등 단련을 시킬수록 좋습니다. 그러나 위 대인께서는 너무나 아까워해서 말을 제대로 타지 않으셨습니다. 이 짐승은 너무나 편한 나 날을 보내며 일 년에 한두 번도 제대로 달리지 못했습니다. 아! 애석합 니다. 애석합니다! 그야말로 부잣집 귀한 자제가 총애를 너무 받는 바 람에 망치게 된 것과 같습니다.]
오응웅은 그 말을 듣고 안색이 변해서는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위소 보는 이 같은 광경을 보고 왕진보의 마지막 몇 마디가 오응웅의 비위를 거슬린 사실을 알고 생각했다. (이 기회에 이들을 이간질시켜 운남의 장수들이 화목하지 못하도록 만 들어야겠다.) 그는 말했다.
[왕 부장의 말은 아마도 반밖에 맞지 않는 것 같구려. 부잣집의 귀한 자제도 재간이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있소이다. 예를 들자면 오 부마 나으리는 그대들 왕야의 세자로서 어릴 적부터 금 밥그릇에 밥을 담아 먹고 옥그릇에 국을 담아 마셔 왔지만 망친 일은 조금도 없지 않소?]
왕진보는 얼굴이 시뻘개져서 재빨리 말했다.
[예, 왕야의 세자는 물론 다릅니다. 비직은 결코 부마 나으리를 두고 말씀드린 것이 아닙니다.]
조양동은 냉랭히 말했다.
[그대는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야.] [조 총병! 그대는 어째서 자꾸 나의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려고 하는 것 이오? 이 형제는 그대에게 잘못한 것이 없소.]
위소보는 웃었다.
[좋소, 좋아. 그까짓 사소한 일 때문에 서로의 감정을 상해서야 되겠 소? 무관 노릇을 하는 사람들이 종종 조정의 나이 젊은 대신들을 업신 여기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오.] [도통대인께 말씀드립니다. 비직은 감히 도통대인을 업신여긴 적이 없 습니다.]
왕진보의 말에 조양동이 대꾸했다.
[그대는 부마 나으리를 업신여겼겠지.]
왕진보는 큰소리로 말했다.
[그런 일은 없소.]
위소보가 말했다.
[왕 부장, 그대가 키운 좋은 말들은 애석하게 모두 운남에 남겨 두었구 려.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들도 한번 구경을 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 오.] [제가 키운 말들은....예, 예, 감당할 수 없습니다.]
위소보는 속으로 이상하게 생각했다. (무엇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일까?) 조양동이 말했다.
[어찌되었든 왕 부장의 말들은 모두 운남에 있어 대질할 수가 없는 것 이 아니겠습니까? 위 도통, 소장은 관외에서 수백 필의 좋은 말들을 키 운 적이 있습니다. 그 말들은 낮에 삼천 리를 가고 밤중에 이천 리를 갔었지요. 그러나 애석하게도 너무 멀리 있어서 도통대인께서 구경을 하실 수 없군요.]
사람들은 껄껄 소리내어 웃었다. 모두 다 그가 일부러 왕진보를 비웃는 것임을 알았던 것이다. 왕진보는 치미는 울화에 안색이 시퍼래졌다. 그 는 왼쪽의 마구간을 가리키며 큰소리로 말했다.
[저 수십 필의 말들은 바로 이번에 내가 운남에서 끌고 온 것이외다. 조 총병, 그대가 열 필의 말을 선택하고 내가 키운 저 말들 가운데 열 필을 아무렇게나 뽑아서 어느 말들의 발걸음이 빠른가 시합을 시켜 보 도록 합시다.]
조양동은 운남성의 말들이 비쩍 마르고 털이 벗겨진 데다 가죽이 메말 라 있는 것을 보고 생각했다. (이 따위 말들이 뭐가 대단하다고.) 그는 말했다.
[말은 꽤 많지만 약간 폐병기가 있는 모양이군. 위 도통 저택에서 아무 렇게나 끌고 온 말이라 해도 왕 부장이 친히 키웠다는 그 보배 같은 말 은 능히 이길 수 있을 것이오.]
위소보는 웃었다.
[모두들 서로 다투어 봤자 아무 소용없는 일이오. 부마 나으리, 우리 각기 열 필의 말을 뽑아서 시합을 가지기 전에 쌍방이 내기를 걸면 어 떻겠소?]
오응웅은 말했다.
[위 도통의 대완양구를 운남의 작은 말들이 어떻게 뒤쫓을 수 있겠소. 시합할 것 없소이다. 당연히 우리가 지는 거지.]
위소보는 왕진보가 시무룩하니 얼굴 가득히 승복할 수 없다는 표정을 띤 것을 보고 말했다.
[부마 나으리께서 졌음을 시인한다 해도 왕 부장은 승복하지 않는구려. 이렇게 합시다. 내가 만 냥의 은자를 걸 터이니 부마 나으리도 만 냥의 은자를 걸고 말들을 바로 성 밖으로 데리고 나가 달리게 합시다. 그래 서 어느 쪽이든 여섯 번을 이기게 된다면 그 이후는 더 비교할 것도 없 겠지요. 어떻소?]
오응웅은 계속 사양하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 다. (이 녀석은 나이가 젊어 승부욕이 강하다. 내가 일부러 져 주어 이 녀 석이 기뻐하도록 해야겠다.)
[좋소. 그렇게 합시다. 위 대인, 그대가 지게 된다 해도 화는 내지 마 시오.]
위소보는 웃었다.
[만약에 이길 경우 멋지게 행동하고 지게 되면 훌훌 털어 버려야지 어 찌 화를 내겠소?]
힐끗 보니, 왕진보의 두 눈에 기쁜 빛이 완연했다. (아이쿠! 저 왕 부장의 표정을 보니 자신이 대단한 것 같다. 혹시 이 폐병쟁이 같은 말들이 정말 지구력이 대단한 것이 아닐까? 안 되지, 안 돼. 반드시 수작을 부려 봐야겠다.) 그는 한평생 도박을 하면서 수작 부리기를 좋아했다. 그는 이번 시합에 서 반드시 이긴다고 볼 수 없었기 때문에 나쁜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오늘 당장 시합을 가지면 수작을 부릴 여유가 없다고 생각되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왕 내기를 걸고 시합을 한다면 나는 좋은 말 열 필을 뽑아 와야겠 소. 내일 내기를 하는 것이 어떻겠소?]
오응웅은 시합에서 져 주려고 작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오늘 시합을 하 나 내일 시합을 하나 관계가 없어 승낙을 했다. 위소보는 부마의 저택 에서 술을 먹고 창극을 들었으며 다시는 말 시합에 관해 들먹이지 않았 다. 그러다 저녁 무렵이 되자 오응웅과 장용, 왕진보, 손사극 네 사람 을 자기 집으로 초청해서 술을 마시자고 했다. 오응웅이 기꺼이 응했으 므로 일행은 바로 위소보의 백작부로 가게 되었다. 모두들 자리에 앉아 차를 마실 때 위소보가 말했다.
[잠깐 실례하겠소. 형제는 가서 음식을 준비해야겠군요.]
오응웅은 웃었다.
[모두 한집안 사람인데 겸손해 할 것 없소이다.]
위소보는 말했다.
[그래도 귀한 손님이 왕림하셨는데 너무 초라한 꼴을 보일 수는 없지 요.]
그는 후당으로 들어가 총관에게 창극하는 사람들을 준비하도록 분부했 다. 그리고 백작부의 마구간 책임자를 불러서 그에게 삼백 냥의 은자를 건네주며 말했다.
[나의 옥화총과 다른 말들이 아직도 부마 댁에 있으니 그대가 가서 끌 고 오고, 부마 댁의 마부들에게 술을 한턱 사서는 제기랄! 곤죽이 되도 록 마시게 하게나.] [그런데 말에게 무엇을 먹여야 다리에 맥이 빠져서 달릴 때 기운이 없 게 될까? 하지만 죽여서는 안 돼.]
마구간 책임자는 의아해 하였다.
[백작 나으리께서 어떻게 하시려고 그러는지 모르겠군요. 분부를 내리 신다면 소인이 애써서 시헹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대에게는 말해도 상관이 없겠지. 부마에게 말들이 있는데 그것은 최 근에 운남에서 데리고 온 것이라더군. 그런데 그 말들의 지구력이 대단 히 좋다고 칭찬을 하길래 내일 우리 말과 시합을 하기로 했네. 우리가 져서 창피를 당할 수는 없지 않은가?]
마부 책임자는 대뜸 알아차리고 웃었다.
[백작 나으리께서는 부마의 말에게 무엇을 먹여 내일 시합 때 우리들이 이기도록 하자는 것입니까?] [맞았네. 그대는 매우 총명하군. 내일 말 시합을 가질 때 내기를 걸기 로 하였으니, 이기면 그대에게 상금을 나눠 주기로 하지. 그러니 그대 는 살그머니 일을 처리하되 결코 부마 댁의 마부들이 알게 해서는 안 되네. 이 삼백 냥의 은자는 가서 술을 사는 데 쓰도록 하고 도박을 하 거나 기녀집에 가든지 제기랄! 무슨 짓이든 해도 좋네. 그들을 어리벙 벙하게 만들어 놓고 약을 쓰는 거야.] [안심하십시오, 나리. 절대 틀림없습니다. 소인이 가서 수십 근의 파두 (巴豆)를 사서 먹이에 섞어 오 부마의 말에게 먹이겠습니다. 그 말들은 모두 밤새도록 설사를 하게 될 것이며 내일 시합 때는 거북이도 그 말 들보다 빠르게 될 것입니다.]
위소보는 즉시 대청으로 나가서 오응웅 등을 상대로 해서 술을 마셨다. 그는 오응웅 등이 돌아가고 왕진보가 다시 말을 살피게 되었을 때 어떤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될까봐 은근히 접대하면서 끊임없이 술을 권했 다. 조양동은 주량이 대단해서 왕진보와 술 시합을 하였는데 심야까지 마시자 위소보와 오응웅 등 네 사람은 모조리 술에 곯아떨어지고 말았 다. 이튿날 아침, 위소보는 궁으로 들어가 황제를 배알했다. 강희는 웃음을 가득 띄우고 무척 기분이 좋은 듯 이렇게 말했다.
[소계자, 그대에게 좋은 소식을 알려주지. 상가희와 경정층은 모두 조 서를 받고 번왕에서 물러나기로 했네. 일간 출발하여 서울로 오게 될걸 세.] [황상께 축하드립니다. 상가희와 경정충 두 번왕이 조서를 받들게 됐다 면 오삼계라는 늙은 녀석이 한 손으로 손뼉을 쳐봤자....]
강희는 웃으며 위소보의 말을 받았다.
[고장난명(孤掌難嗚)이지.] [맞습니다, 고장난명입니다. 우리는 그를 낙화유수처럼 때려부술 수 있 을 것입니다.]
강희는 웃었다.
[만약 그 역시 조서를 받들어 번왕에서 물러난다면?]
위소보는 어리둥절해서 말했다.
[물론 좋은 일이지요. 그가 북경에 온다면 황상께서 그를 둥글게 만들 려 하면 그는 결코 납작해지지 못할 것이고, 황상께서 납작하게 만들고 자 하신다면 둥글게 되지 못하겠죠.] [그대도 그만한 도리는 알고 있었구먼.] [그때 그는 마치 용이 모래 벌판에 갇히고 호랑이가 평지로 떨어지 듯....]
거기까지 말한 그는 혓바닥을 내밀고 자기의 이마에 꿀밤을 한대 쥐어 박았다. 강희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호랑이가 평지에 들어서자 사람들에게 업신여김을 당하는 셈이지. 그 때 그가 감허 나의 비위를 건드릴 수 없는 것은 물론, 그대에게도 꼼짝 못하게 될 것이네.]
위소보는 말했다.
[예, 그거야말로 더없이 재미있는 노릇이 될 것 같습니다.] [양주 층렬사를 세우게 할 글은 이미 내가 지어 놓았으며 한림학사에게 정리해서 쓰라고 했으니, 그 글을 그대는 양주로 가져가 비석에 새겨 두도록 하게. 좋은 날짜를 잡아서 출발하도록 하게.] [예, 그런데 세 번왕이 모두 조서를 받들어 번왕의 직에서 물러나게 된 다 해도 충렬사는 여전히 세우시겠습니까?] [오삼계가 조서를 받들어 행할 것인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 아니겠는 가? 더군다나 충렬의 일을 널리 알리고 칭찬하는 것은 본래 좋은 일이 네. 설사 오삼계가 반란을 일으키지 않는다 해도 충렬사는 세워야 한다 네.]
위소보는 강희와 한담을 나누게 되자 건녕 공주가 보기를 원한다는 사 실을 이야기했다. 강희는 고개를 끄덕이고 태감에게 분부하여 건녕 공 주를 즉시 불러들이도록 했다. 강희는 기분이 무척 좋은 듯했다. 위소보에게 나찰국의 풍토와 인물에 대해서 상세히 물었다. 당시 화창수가 어떻게 반란을 일으켰으며 소비 아 공주는 어떻게 난을 평정하고 대소 사황을 어떻게세웠는가를 물었 다. 한참 동안 이야기하고 있는데 공주가 서재에 이르렀다. 공주는 대 뜸 강희의 발치에 엎드려서 그의 다리를 얼싸안고 대성통곡을 하였다.
[황제 오라버니! 나는 이제부터 궁에서 황제 오라버니를 모시고 살 거 예요. 다시는 나가지 않을래요.]
강희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어떻게 된 것이냐? 부마가 너를 못살게 굴더냐?] [그가 어찌 감히 그러겠어요. 그는....그는....]
그녀는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강희는 속으로 생각했다. (네가 그의 고환을 잘라 냈으니 그가 너의 남편 노릇을 할 수 없는 일 이다. 이것은 네 스스로 자초한 셈이 아니냐?) 그는 그녀에게 몇 마디 위로의 말을 하고 달랬다.
[좋아, 좋아. 울지 말아라. 너는 나와 같이 밥을 먹자.]
황제가 식사를 하는 것은 일정한 시간이 없었으며, 그가 하고 싶을 때 에 언제든지 밥상을 차리게 할 수 있었다. 즉시 어선방의 태감이 수라 상을 차렸다. 위소보는 옆에서 시중을 들었다. 그는 비록 황제의 총애 를 받고 있었으나 함께 식사를 할 수는 없었다. 강희는 그에게 열몇 그릇의 찬을 내리고 태감을 시켜 그의 자작부로 보 내 집으로 돌아간 후에 먹도록 해주었다. 공주는 몇 잔의 술을 마시자 얼굴이 불그레졌으며 두 눈에 물기를 담고 위소보를 힐끗 쳐다보았다. 황제 앞이라 위소보는 감히 무례한 행동을 할 수가 없어 내내 공주의 시선과 맞닿는 것을 피했다. 그러나 가슴이 매우 두근거렸다. (공주가 술을 마신 후 조금이라도 이상한 소리를 하여 황제가 알아차리 게 된다면 나의 이 머리통은 제대로 붙어 있지 못할 것이다.) 그는 성지를 받들어 공주를 호송하여 운남으로 데려간 것인데 공주를 지켜 줘야 할 그가 사사로운 정을 맺게 되었으니 이 죄명이야말로 엄청 난 것이다. 그는 속으로 후회막급이었으며 황제에게 공주가 배알하고자 한다는 사실을 알리지 말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공주는 갑자기 입을 열었다.
[소계자, 나에게 밥을 담아 줘요.]
그녀는 빈 밥그릇을 그의 앞으로 내밀었다. 강희는 웃으며 말했다.
[너의 먹성은 팬찮은가 보구나.] [황제 오라버니를 만나자 식욕이 당기네요.]
위소보는 밥을 담아서 두 손으로 공손히 받쳐들고 공주 앞의 탁자에 내 려놓았다. 공주는 왼손을 내려뜨리고 힘주어 그의 허벅지를 꼬집었다. 위소보는 아팠으나 감히 소리를 내지 못했고 얼굴에 띄우고 있던 웃음 을 거둘 수도 없었다. 그는 속으로 욕을 했다. (이 죽일 갈보 같으니! 언젠가는 내가 너를 심하게 꼬집어 갚을데니 두 고 봐라.) 그가 욕을 다 끝내기도 전에 갑자기 머리가 뒤로 제쳐졌다. 바로 공주 가 등 뒤로 손을 뻗어 그의 땋은 머리를 힘주어 잡아당긴 것이다. 강희 도 그 광경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공주는 시집을 갔는데도 여전히 장난이 심하구나.]
공주는 위소보를 손가락질하며 웃었다.
[그는....그는....]
위소보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할지 알 수가 없어 불안했다. 그러나 다행 히 공주는 그저 깔깔거리고 몇 번 웃더니 말했다.
[황제 오라버니, 황제 오라버니의 명성은 갈수록 높아지더군요. 저는 궁 안에서는 모르고 있었는데 이번에 운남에 갔다오는 동안 백성들이 하는 소리를 들었어요. 오라버니가 황제가 된 이후 천하의 백성들이 태 평성대를 만나게 되었다고들 했어요. 그리고 저 녀석은 말이에요....]
그녀는 위소보를 흘겨보며 말했다.
[벼슬이 갈수록 높아지지 않아요? 그런데 오직 황제 오라버니의 누이동 생만 갈수록 팔자가 사납게 되는군요.]
강희는 무척 기분이 좋았다. 건녕 공주의 이 몇 마디는 그를 추켜세우 기 위해 한 말이었다.
[너는 시집간 몸으로 남편을 따라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이 아니냐? 오 응웅 그들 부자 두 사람이 순순히 말을 듣고 번왕에서 물러나 천하가 태평해진다면 그의 벼슬을 올려 줄 것을 약속하마.]
공주는 작은 입술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황제 오라버니가 오응웅이라는 녀석의 벼슬을 올리든 올리지않든 저와 는 상관이 없는 일이에요. 저는 황제 오라버니가 저의 벼슬을 올려 뒀 으면 좋겠어요.] [너는 무슨 벼슬을 하고 싶으냐?] [소계자는 나찰국의 공주가 무슨 섭정여왕이 되었다고 하더군요. 황제 오라버니는 저를 대원수에 봉하셔서 오랑캐 나라를 치도록 해주세요.]
강희는 껄껄 소리내어 웃었다.
[하하하! 여자가 어떻게 대원수가 되겠느냐?] [옛날 번이화, 여태군(余太君), 목계영(穆桂英) 같은 여자는 모두 대원 수였어요. 그런데 어째서 그녀들은 대원수가 될 수 있고 저는 될 수 없 다는 거예요? 황제 오라버니, 저의 무예가 뛰어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우리 서로 견주어 보도록 해요.]
그녀는 싱글싱글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강희는 웃으며 말했다.
[너는 책을 읽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에 소계자와 똑같이 학문이 없고 그저 연극 이야기만 알고 있구나. 옛날에 여자가 원수가 된 적이 있었 던 것은 사실이지. 당태종 이세민의 누이는 평양(平陽) 공주라고 하는 데 그녀는 당태종을 도와 천하를 평정했지. 그녀가 원수였을 때 통솔하 던 한 떼의 군사를 낭자군(娘子軍)이라고 불렀으며 그녀가 군사를 주둔 시킨 관구(關口)는 낭자관(娘子關)이라고 했는데 대단히 무서웠지.]
공주는 손뼉을 쳤다.
[바로 그거예요! 황제 오라버니, 황제 오라버니는 이세민보다 뛰어나 요. 그러니까 저는 평양 공주의 흉내를 내도록 하겠어요. 소계자, 그대 는 무엇을 하고 싶지? 고력사(高力士)를 본뜨고 싶어? 아니면 위층현 (魏忠賢)을 본뜨고 싶어?]
강희는 껄껄 웃으며 연신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말했다.
[또 터무니없는 소리를 지껄인다. 소계가의 태감 노릇은 가짜야. 더군 다나 고력사와 위충현은 모두 바보 황제의 태감들로 네가 그렇게 말하 는 것은 나를 욕하는 것이 되지 않겠느냐?] [미안해요, 황제 오라비니. 너무 탓하지 마세요. 저는 몰랐어요.]
그녀는 소계자의 태감 노릇이 가짜라는 말을 생각하며 슬쩍 위소보를 쳐다보았는데 마음속이 크게 설레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말했다.
[저는 마땅히 태후에게 인사를 드려야겠군요.]
강희는 어리둥절해져서 속으로 생각했다. (가짜 태후는 이미 진짜 태후로 바뀌었으며 너의 어머니는 궁에서 도망 쳤다.) 그는 이 누이동생을 귀여워했기 때문에 그녀가 창피한 꼴을 당하는 것 을 차마 볼 수 없어서 말했다.
[태후께서는 이 며칠 동안 몸이 편찮으시니 그 어르신을 번거롭게 하지 말고, 자녕궁 밖에서 큰절이나 하고 문안이나 올리도록 해라.] [황제 오라버니, 그러면 저는 자녕궁으로 가 보겠어요. 나중에 다시 이 야기를 나누도록 하지요. 소계자, 그대는 나를 따라 나와요.]
위소보는 대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강희는 곁눈질을 하며 방법을 강구 해서 공주를 저지하여 태후를 만나지 못하도록 하라는 뜻을 비췄다. 위 소보는 그 뜻을 알아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공주를 모시고 자 녕궁으로 갔다. 위소보는 소태감에게 먼저 달려가서 자녕궁에 통보하도 록 했다. 아니나다를까 태후는 분부를 내리셨는데 몸이 불편하니 인사 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공주는 오랫동안 모친을 뵙지 못한 터 라 여간 그립지 않아 말했다.
[태후께서 몸이 편찮으시다면 더더욱 문안을 드려야지.]
그녀는 다짜고짜 태후의 침전으로 달려들어가려고 했다. 태감들과 궁녀 들이 어찌 그녀의 앞을 막을 수 있겠는가? 위소보는 다급해 졌다.
[전하, 태후 어르신께서는 감기가 들으셔서 찬바람을 쏘이시면 안 됩니 다.]
공주는 말했다.
[나는 천천히 들어가겠어요. 바람이 조금도 들어가지 않도록 하겠어 요.]
그녀는 침전의 문을 열고 휘장을 들췄다. 그곳에는 비단 휘장이 드리워 져 있고 태후는 침대 위에 누워 있었는데, 네 명의 궁녀가 침대 앞에 서 있었다. 공주는 나직이 말했다.
[태후, 딸이 태후께 인사를 올리러 왔어요.]
그녀는 무릎을 꿇고 가볍게 몇 번 큰절을 했다. 태후는 모기장 안에서 음음, 하는 소리를 냈다. 공주가 침대가에 다가가서 손을 뻗쳐 휘장을 들추려고 하자 한 명의 궁녀가 말했다.
[전하, 태후께서는 그 누가 와도 깨우지 말라는 분부를 내리셨습니다.]
공주는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 휘장을 살짝 들추고 안을 들여다 보았다. 태후는 얼굴을 안쪽으로 하고 누워 있었는데 깊이 잠이 든 것 같았다. 공주는 나직이 불렀다.
[태후마마.]
태후는 대답이 없었다. 공주는 어쩔 수 없어 휘장을 내려놓고 살그머니 물러섰으나 마음이 쓰려 눈물을 흘렸다. 위소보는 그녀가 진상을 제대 로 알아보지 못한 것을 보고 크게 안도의 숨을 내쉬고 말했다.
[공주께서는 이 북경에 살고 계시니 때때로 긍 안으로 들어와 문안을 드릴 수 있겠지요. 태후께서 병이 완쾌되시면 이후 다시 자녕궁으로 오 도록 하시지요.]
공주는 그 말에 일리가 있다고 느끼고는 즉시 눈물을 닦고 말했다.
[내가 거처하던 곳이 어떤지 모르겠구나. 한번 가 봐야지.]
그녀는 옛 자기의 침궁 쪽으로 걸어갔다. 위소보는 그 뒤를 따를 수밖 에 없었다. 공주가 예전에 거처하던 건녕궁은 바로 자녕궁의 옆에 있어 서 삽시간에 도달할 수 있었다. 공주가 시집간 후에도 태감과 궁녀들이 먼지를 털고 비질을 하며 지키 고 있었기 때문에 전과 다름이 없었다. 공주는 위소보가 침전의 문 옆 에 이르러 싱글벙글 웃기만 할 뿐, 들어오려는 눈치를 보이지 않자 얼 굴을 붉히며 말했다.
[이 죽일 놈의 태감, 그대는 어째서 들어오지 않지?]
위소보는 웃었다.
[이 태감은 가짜이니 공주의 침전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공주는 손을 뻗쳐 그의 귀를 붙잡고 호통을 쳤다.
[진짜 태감이라면 들어올 필요도 없다. 가짜니까 들어오라는 거야. 그 대가 들어오지 않는다면 그대의 개 같은 귀를 비틀어 놓겠어.]
공주는 힘주어 잡아당겨 그를 안으로 끌어들이고는 침실의 문을 닫고 빗장을 걸었다. 위소보는 놀라 가슴이 쿵쿵 뛰는 것을 느끼며 나직이 말했다.
[공주, 궁에서는 함부로 행동할 수가 없소이다. 나는....나는....이렇 게 되면 목이 잘리게 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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