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지 않은 미드웨이
지금 미국 샌디아고 항에는 핵 항공모함시대를 맞이하여, 47년간 大洋을 누비며 사명을 다하고 명예롭게 취항을 마친 항공모함 미드웨이(MIDWAY)號가 해상박물관으로 문을 열어 새로운 명물로 등장했다. 미드웨이는 중부 태평양 하와이제도 북서쪽 2천키로 지점에 있는 면적 5평방 킬로에 인구 2천명이 사는 작은 섬이다. 1859년 미국인 N. 브룩스선장이 발견하여 1867년 미국령이 되었고 1903년부터는 미 해군이 관할하는 군사기지가 되었다.
태평양 전쟁의 초기인 1942년 6월 5-7일까지 미드웨이섬 해역에서 미국과 일본이 태평양 전쟁의 운명을 가늠하는 海戰을 벌였다. 미국 측 함정 35척(항공모함 3척)과 일본 측 함정 47척(항공모함 4척)이 미드웨이 섬을 방어하고 뺏기 위해서였다. 이 해전에서 일본의 해군 명장 야마보토 이소로쿠(山本五十六)대장이 이끄는 일본연합함대의 작전 암호가 미 해군에게 해독되어, 일본은 항공모함4척 전부와 중순양함 1척과 구축함 초계정이 침몰되고 항공모함 탑재기와 승무원들을 다 잃었다. 미국은 항공모함 1척과 몇 척의 함정과 탑재기를 잃으면서 大勝하여 太平洋해전의 주도권을 잡게 되었다.
미국정부는 미드웨이 해전 승리를 기념하여 1945년 당시 9천만 달러를 드려서 최신형항공모함 미드웨이를 건조하여, 1966년부터 5년 동안 2억 6천만 달러를 더 들여 대대적인 개조를 하여 재취항 시켰다. 航母미드웨이는 무계 6만 9천톤 길이 305미터 넓이 70미터 엔진의 힘이 무려 21만 2천 마력으로 디젤연료 34백만 개론을 실고 1마일 가는데 260개론을 소비하면서 하루에 10만 개론씩을 소비하였다. 60여대의 함재기를 탑재하고 2백 명의 항공기 조종사와 6백 명의 기술자, 2명의 일반의사와 1명의 치과의사 225명의 요리사를 포함하여 4천여 명의 승무원을 실고, 하루에 10톤의 음식물과 3천여 개의 감자를 소비하는 바다에 떠있는 작은 도시와 같았다.
미드웨이는 1950년 한국전에 참전하여 많은 활략을 하였으며, 1976년 8월18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안에서 유엔군 제3초소의 시야를 가리는 미루나무 가지치기를 할 때, 북한 경비병들이 도끼와 곡갱이를 들고 달려와 미군장교 2명을 살해한 사건이 발생하자. 76년 8월22일 포드 미대통령 명령으로 태평양 미7함대소속 미드웨이 항공모함은 중무장한 호위함 선단을 거느리고 한국해역에 나타나 북한의 만행을 응징하려 했다.
이때로부터 미드웨이는 일 년에 두어 번씩 부산을 찾아왔다. 선체가 너무 커서 내항에 못 들어오고 태종대 앞 외항에 정박해있으면서 복장을 사복으로 자유롭게 한 4천여 명의 승무원이 2개조로 나누어 부산시내에 쏟아져 들어와 거리를 누비고 다녔다. 때를 같이하여 의정부 동두천 전곡 인천 부평 대구 왜관 등 전국에서 미군을 상대로 돈벌이를 하던 상인들과 색시들이 원정을 내려와 초량의 텍사스촌에 진을 쳤다. 이때 부산의 기존 하야리아부대 미군들은 미드웨이가 출항하기까지 텍사스촌 근처에는 얼씬도 안했다.
미드웨이 항공모함은 주로 여름 가을에 찾아와 태종대 앞에 정박하였는데 함상의 공격용 함재기들은 미국의 군사적 위용을 한껏 자랑 하는 것 같았다. 작은 섬이 하나생긴 것 같기도 한 항공모함을 구경하려는 사람들 틈에 나도 아이들을 데리고 태종대 전망대로 갔었는데, 태종대입구에서는 아예 돈을 받고 항공모함을 한 바퀴씩 도는 유람선이 등장 했다. 마치 미국의 작은 도시를 옮겨 놓은 것 같은 분위기에 부산시내는 호황의 불을 밝히고, 떼를 지어 서면일대로부터 광복동 남포동을 거쳐서 국제시장으로 쇼핑을 가고 오는 승무원들 때문에 거리가 총천연색이 되었다.
역사의 아이러니인가! 미드웨이는 돌아오지 않고 기존 미군들마저 떠나가자 한산해진 텍사스 골목에는 공산주의 종주국 노릇하다가 파산하여 우리에게 30억불의 빚을 진 舊소련의 러시아인들이 찾아들기 시작했다. 미군들이 있을 때는 생기가 돌았던 거리에 허름한 러시아 선원들과 러시아 보따리 장사들이 찾아들자, 그래도 장사를 해서 먹고살겠다는 술집과 잡화상점들이 영어입간판을 내리고 그 자리에 어지러운 러시아어간판을 달았다. 그리고 미군을 상대로 하던 한국여인들은 속절없이 다 떠나고 그 빈자리에 백인 러시아여인들이 달려와 돈을 벌려고 서성거리는 모습이 씁쓸하고 처량해 보인다.
아, 아! 돌아오지 않는 미드웨이여! 그대의 명예로운 이름은 우리의 마음속에 영원히 잊혀 지지 않으리라. 맥아더 장군이 우리 곁을 떠나면서 “노병은 죽지 않고 사라질 뿐”이라고 했는데, 우리의 친한 벗 미드웨이도 廢船이 되지 않고 새롭게 단장을 하고 우리를 기다린다고 하니. 이제는 그대를 잊지 않고 우리가 찾아가리라 미드웨이여!! 그대이름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리라!!
2006년 12월 부산 텍사스를 돌아보면서…
청교도 (순담) 최 건 차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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