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마 원폭 후, 이제 두번 다시는 과학이 법, 관습, 권위, 애국심 등과 엄격히 독립해 있는 객관적인 진리의 구현이자, 사회의 관습 원리들과 동떨어져 있는 객관적 사유의 대들보라는 주장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원자폭탄은 과학이 착상해낸 것이었고, 전적으로 과학의 힘으로 제조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지식을 국가의 각종 군사제도와 시설에 결합시켜야겠다고 결정한 사람들도 바로 과학자들이었다. 그 누구도 그들에게 그렇게 할 것을 강요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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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과학자들이 순종하기만 하면 그들의 욕망을 한껏 채워줄 수도 있고 그들을 안전하게 보호해줄 수도 있는 신성한 존재였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과학자들은 오랫동안 과학이 소중하게 생각해왔던 학문적 독립성이 급속히 사라져가고 있음을 금방 알아채게 되었다.
* 독일 나치
1942년 독일 다카우의 강제수용소에서는 실험실 공기압을 대기권의 수준까지 내려 사람이 얼마나 생존할수 있는지 실험하기 위해 유대인을 밀어넣었다. 그 유대인은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 속에서 죽어갔고, 시체는 쓰레기 소각장에 버렸다.
이 광경을 녹화하고 있던 과학자들에게 그 유대인은 인간 쓰레기나 다름 없었다. 그는 전쟁 실험용으로 죽어갔던 수백명의 수감자중 한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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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피트의 고도에서 생존 시스템을 실험대상으로 자원하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그러나 철조망속에 수많은 열등한 인간들이 있었으며, 아무 꺼리낌없이 이들을 의학 실험재료로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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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체온증을 연구하기 위해 다카우 수감자들을 벌거벗겨 얼음같이 차가운 물탱크속으로 내던진 다음, 체온이 떨어져 죽기 까지 내버려두었다. 심지어 붙잡힌 소련 여성들을 벌거벗겨, 체온이 내려간 이들을 안아줘서 친밀한 인간접촉이 저체온증 효과를 뒤집을 수 있는 확인하는 실험도 실시했다.
게다가 실험자들을 벌거벗겨 호스로 잔뜩 물을 뿌린다음 차가운 겨울 날씨에 그대로 서있게 해서 동사하는데 몇시간이 걸리는지 확인하는 실험도 있었다. 이 실험으로 80명의 다카우 수감자들이 죽어갔고, 100명 이상은 평생 불구가 되었다.
독일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의사, 임상병리학자, 미생물학자 200명은 다카우의 감압실에서 지독한 고통 속에 몸부림치며 죽어갔던 수많은 실험 대상자들을 그저 말없이 보고 있었다.
이런 잔인무도한 행위를 접한 실험 회의 참석자들에게서 분노의 울부짖음 같은 것도 전혀 나오지 않았다. 회의에 참석한 과학자들 중 그 누구도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오지 않았으며, 그런 실험을 그만두라고 요구하지 않았고, 양심의 가책을 눈꼽 만큼도 느끼지 않았다.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수백명의 과학 엘리트들이 동시다발적으로 각자의 분야에서 원칙과 이상을 배반하기 바빴다. 정신병리학자들과 의사들은 정신질환을 앓고있는 사람들을 살해했다. 국가가 그런 사람들은 생존에 부적합하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화학자들은 소위 '인간 살충제' 독사스를 개발했다. 국가가 수백만의 열등한 인간을 제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인류학자들은 아리안 종족의 우월성에 대한 괴상한 이론을 개발했다. 무엇보다 끔찍한 것은 괴상한 의학이론을 검증하기 위해 전염병학자들이 어린이들을 실험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푸른 눈을 다른 아이에게 이식하는 실험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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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법률, 관습, 권위, 충성 등과 무관한 엄격하게 객관적인 실체이며, 국가의 절박한 사정이 어떻든 전혀 개의치 않는 학문이라는 주장은 마침내 종지부를 찍고 말았다.
20세기에 벌어진 민족국가 성립과정에서의 엄청난 권력투쟁은 과학이 객관적 사유의 보루이자 객관적인 실체라는 생각을 영원히 산산조각 내버렸다. 국가의 사회, 정치 기관들을 믿고 따르는 것이 새로운 종교가 되어버린 시대에 과학은 더 이상 독립성을 유지할 수 없었다.
과학과 국가의 짯짓기가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 가를 증명하려면 나치 독일이면 충분하다. 나치 독일이 과학의 역사에서 그저 일탈의 역사로 쉽게 치부하는 경향이 있으나, 독일 나치가 유일한 사건이 아니었다.
* 731 부대
독일의 의학이 다카우의 수감자들을 살해있을 바로 그 시점에, 동쪽에서 7천킬로 떨어진 곳에서는 일본군 일명 731 부대 에 의한 훨씬 더 사악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독일에서 그랬던 것처럼 흰색 가운을 입고, 수천명의 포로를 학살한 그 일본 사람들은 괴물도 아니었고, 가학주의자도 아니었다. 그들은 사실 일본에서 가장 뛰어난 세균학자와 미생물학자로서, 치명적인 질병을 이겨낼 수 있는 면역성을 찾아내려는 헌신적인 과학자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이제 그런 과학을 수백만명을 한번에 쓸어버릴수 있는 일본의 비밀계획에 참여하고 있었다. 이들 과학자들은 한 사람의 과학자에게 특히 감명을 받았다. 그는 바로 일본 최고의 세균학자이자 731부대의 창설자 이시이 시로 박사였다.
이런 잔혹한 인간 실험을 실시한 과학자들은 인류에 대한 중대 범죄자로 전범 처리가 되어야 했지만, 자국과학발전에 눈에 어두워진 미국의 음흉한 비밀 계획에 의해 아무일 없이 풀려났다.
/ 어니스트 볼크먼 '전쟁과 과학, 그 야합의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