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괘도포로 잘못 입혀진 제갈량
일반인들이 수양修養의 문제를 말할 때면 “영정치원, 담박명지”寧靜致遠, 澹泊明志라는 구절을 흔히 인용하는데, 이것은 제갈량이 그의 아들에게 학문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훈계하는 편지 속에서 한 말입니다. 여기에 먼저 그 원문을 소개하겠습니다.
군자의 조행操行이란 고요한 마음으로 몸을 닦고 검소함으로써 덕을 기르는 것이다. 마음에 욕심이 없어 담박하지 않으면 뜻을 밝힐 수 없고, 마음이 안정되어 있지 않으면 원대한 이상을 이룰 수 없다. 배울 때는 반드시 마음이 안정되어 있어야 하며, 재능은 반드시 배움을 필요로 한다. 배우지 않으면 재능을 발전시킬 수 없고, 마음이 고요하지 않으면 학문을 성취할 수 없다. 마음이 방자하고 오만하면 정밀하고 미묘한 이치를 깊이 연구할 수 없고, 조급하고 경망하면 자신의 본성을 제대로 다스릴 수 없다. 이치를 제대로 밝히지 못하고 본성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 사이에 나이는 시간과 함께 달려가고, 의지는 세월과 함께 사라지면서 마침내 가을날 초목처럼 시들어 갈 것이다. 그때 가서 곤궁한 오두막집에서 슬퍼하고 탄식해 본들 어찌 할 것인가? ―「제갈량 계자서」―
(君子之行:靜以修身, 儉以養德。非澹泊無以明志, 非寧靜無以致遠。夫學須靜也, 才須學也。非學無以廣才, 非靜無以成學。慆慢則不能硏精, 險躁則不能理性。年與時馳, 志與歲去, 遂成枯落, 悲嘆窮廬, 將復何及也)。 ―「諸葛亮 誡子書」―
흔히들 문인文人은 모두 이름 남기기를 좋아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어찌 문인만이 책을 써서 이름 남기기를 좋아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름을 좋아하고 이익을 좋아하는 것은 사람의 근본적인 병의 뿌리로서, 현자賢者도 이를 피하기 어렵습니다. 옛 사람은 그만두고, 오늘날만 해도 수십 년 동안 얼마나 많은 책들이 출판되었는지 모릅니다. 그 많은 책들 중에서 우리가 책꽂이에 이삼십 년 동안 꽂아 둘 만한 것이 몇 권이나 될까요? 더욱이 오늘날 유행하고 있는 구어체(白話) 글은 읽고 나면 곧 버려져 수명이 단지 3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후세에 전해질 만한 가치가 없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책은 사람들이 아까워 버리지 못하고 서가에 꽂아 둘 정도가 되어야 후세에 전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후세에 이름을 남긴다는 것은 대단히 어렵습니다. 청나라의 시인 오매촌吳梅村이 “배불리 먹기만 해서 끝내 어디다 쓰리요. 불후의 이름을 보전키 어렵네.”(飽食終何用, 難全不朽名)라고 읊은 말은 조금도 틀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옛 사람은 “책이란 널리 전해지는 데 효용이 있지 그 많음에 있지 않다.”(但在流傳不在多)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예를 들면, 제갈량이 문장으로 세상에 이름이 나지 않았던 것은 말할 것도 없이 그의 공훈 업적이 그의 문장을 가려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의 문장은 단지 두 편의 「출사표」出師表밖에 없지만, 이 두 편의 글은 문학을 위한 문학 작품이 아닌데도 천하의 명문으로 영원히 전해지고 있으니, 이는 가히 전무후무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그는 문학적 수양이 이렇게 높은데도 결코 문학가가 되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이 일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사업에 성공했던 사람은 왕왕 높은 재능을 갖추고 있어, 그 재능을 문학에 발휘했더라면 틀림없이 성공한 문학가가 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문장․도덕․사업적 공로는 본래 한 사람이 다 성취하기 어려운 것이기에 사람을 너무 가혹하게 꾸짖어서는 안 됩니다.
「출사표」 이외에 제갈량이 남긴 글은 모두 짧은 글이지만 문체나 내용이 대단히 간단하고 세련되어 있는데, 이는 그가 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 몇 마디 말이면 족할 만큼 간단하고 신중했던 것과 똑같습니다. 그의 전기傳記를 보면 손권孫權이 그에게 물건을 보냈을 때, 그가 불과 대여섯 마디로 자신의 뜻을 아주 분명하게 표현하여 회신함으로써 해결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위에 소개한 한 편의 편지글도 제갈량의 유가사상 수양을 충분히 나타내고 있습니다. 후세의 많은 사람들이 심신 수양의 도리를 말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모두 다 제갈량의 손바닥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후세인들은 제갈량의 이 편지에 담긴 사상을 한 벌의 옷으로 바꿔 입혀 유가儒家로 변모시켰습니다. 그래서 이 편지는 대단히 유명한 작품이 되었습니다. 제갈량은 이처럼 문자로 수양의 도리를 말하고 있는데, 그 문학적 경지가 아주 높고, 구성도 아름답고 뛰어나며, 문장은 모두 대구對句가 잘 짜여 있습니다.
시를 지을 때, 봄꽃(春花)은 가을달(秋月)과, 대륙大陸은 가없는 하늘(長空)과 각각 대구對句를 잘 이루지만, 학술성이나 사상성을 지닌 내용을 대구를 써서 지어 보려면 아주 어렵습니다. 그러나 제갈량은 자신의 사상을 훌륭하게 문학화했습니다. 후대의 팔고문八股文도 이러했습니다. 먼저 제목을 표시하는데, 이것을 파제破題라 하여 주제의 사상 내용을 먼저 한두 구절로 밝히는 것입니다. 제갈량은 자기 아들에게 고요한 마음으로 학문을 하고, 검소한 생활로 수신修身을 하라고 가르치고 있는데, 검소함은 단지 돈을 절약하라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신체와 정신을 잘 보양하라는 것입니다. 간단 명료하고 모든 것이 깔끔한 것이 바로 검소함입니다.
“비담박무이명지”非澹泊無以明志는 덕을 기르는 이치이며, “비영정무이치원”非寧靜無以致遠은 수신치학修身治學의 이치입니다. “부학수정야, 재수학야”夫學須靜也, 才須學也는 학문을 탐구하는 이치인데, 마음이 차분해야 비로소 학문을 탐구할 수 있고, 학문에 의거해야 재능을 양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공자 사상 속에서 이야기했던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며,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는다.”(學而不思, 思而不學)는 논점과 “재능은 반드시 배움을 필요로 한다.”(才須學也)는 이치는 같은 것입니다.
“비학무이광재”非學無以廣才는 비록 천재라 할지라도 학문이 없으면 위대한 천재가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타고난 재능이 있더라도 해박한 학문이 있어야 합니다. 학문은 어디서 올까요? 탐구에서 오는데 “비정무이성학”非靜無以成學, 즉 마음이 고요하지 않으면 학문을 성취할 수 없습니다. 의미가 층층이 연관되어 있으며, 연속적인 대우 구절입니다.
“도만즉불능연정”慆慢則不能硏精의 ‘도만’慆慢은 ‘교오’驕傲의 ‘교’驕자와 같은 뜻입니다. 이 ‘교’驕자를 말하자면 퍽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 선인들은 수양을 함에 있어 교오를 힘써 경계하여 조금이라도 교오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교오驕傲는 원래 두 글자로 나뉘어 사용되던 것으로, 내용이 없으면서도 스스로를 대단하게 여기는 것이 ‘교’驕이며, 내용이 있으면서 남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이 ‘오’傲인데, 뒤에 와서 한 단어가 되었습니다. 우리 문화에서는 아무리 큰 학문이나 권위를 가졌다 하더라도, 사람이 교오하면 인격 수양 면에서 실패한 것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공자는 논어 속에서 이렇게 말한 바가 있습니다. “사람이 주공周公같이 성취한 바가 있더라도, 교만하고 인색하여 사람을 사랑할 줄 모른다면 그 사람은 더 볼 것이 없다.”(如有周公之才之美, 使驕且吝, 其餘不足觀也已).
이처럼 선인들은 교만을 삼가는 데 힘썼건만, 오늘날 외국 문화가 들어와서는 “내게 누군가 있는 것이 정말 자랑스럽다.”와 같은 말이 대단히 유행하고, 또 ‘자랑스럽다’는 뜻으로 ‘교오’驕傲라는 단어를 쓰고 있는데, 이것은 외국어 번역이 잘못되어 교만을 좋은 뜻으로 여기게 된 때문입니다. 우리 문화의 의미대로 단정하고 예의바르게 번역한다면, ‘기쁘고 위안된다’는 뜻인 ‘흔위’欣慰라는 단어를 써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수십 년 동안 번역이 잘못된 것인 줄 알면서도 계속 사용해 온 결과, 잘못된 것이 오히려 맞는 것처럼 되어 버려 단번에 고칠 방법이 없습니다. 장차 우리 문화의 전통 정신을 지켜 나가기 위해서는 방법을 연구하여 잘못된 것들을 고쳐나가 이 사회의 풍조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이 이야기는 ‘도만’慆慢을 말하다 보니 하게 된 것입니다.
“도만즉불능연정”慆慢則不能硏精의 ‘慆’(도)는 바로 ‘자만’自滿을 말하며, ‘慢’(만)은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주관主觀이 너무 강하면, 학문을 자세히 연구할 수 없습니다. “험조즉불능이성”險躁則不能理性, 여기서 왜 ‘험조’險躁를 썼을까요? 사람이란 다 남의 덕을 입어 지름길로 가기를 좋아하는데, 지름길로 가는 일은 위험하고 요행을 바라는 일입니다. 이것은 범하기 쉬운 나쁜 버릇입니다. 특히, 젊은이들이 조급하고 성격이 급하면 이성적이 될 수 없습니다.
“연여시치, 지여세거”年與時馳, 志與歲去. 이 부분은 어떤 책들에는 ‘뜻 지’(志)자가 아니라 ‘뜻 의’(意)자로 되어 있는데, ‘뜻 의’(意)라야 맞을 것 같아서 바꿔 보겠습니다. 이 말의 뜻은, 세월이 가서 나이를 먹다 보면, 서른한 살 때는 서른 살 때와 다르고, 서른두 살 때는 서른한 살 때와 또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생각은 나이에 따라 변해 갑니다. “수성고락, 비탄궁려, 장부하급야”遂成枯落, 悲嘆窮廬, 將復何及也, 이 말은 소년 시절에 노력하지 않으면 중년에 이르러서는 후회하게 되어 이미 어쩔 방법이 없게 돼버린다는 뜻입니다.
자식을 훈계하여 쓴 이 한 편의 편지글을 보면, 제갈량의 풍격과 같아 무엇이든지 다 간단 명료합니다. 이 도리를 위정에 응용하면, 바로 공자가 말한 ‘簡’(간)이 되고, 몸가짐에 응용하면 본문에서 말한 ‘儉’(검)이 됩니다. 그렇지만 문학적 수양은 단지 학문의 한 부속물에 지나지 않으니, 학문하는 데 특히 이 점을 유의해야 합니다. 역사 문화의 입장에서 살펴본 제갈량의 학문과 수양 이야기는 여기서 일단락을 짓고 다시 본문을 계속하겠습니다.
남회근 선생 논어별재에서
첫댓글 제갈량에게 팔괘도포를 입힌 것은 <삼국지연의>로 생각이 됩니다. 대부분 지어낸 얘기로 제갈량을 귀신 같은 사람으로 묘사해 놓았으니까요.
고맙습니다 지심귀명 아미타불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