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라진 요오드와 살아남은 나트륨
요오드가 사라졌다.
우리몸에 요오드가 부족하면 갑상선호르몬이 충분히 분비되지 않아 갑상선자하증이 나타나고, 더 악화되면 목이 크게 부어오르는 갑상선종으로 발전한다.
요오드가 사라지면 건강에 심각한 위협이 되니 여기저기서 경고가 나올 법도 한데 아직 그런 경고가 들리지 않는다.
다시마와 미역에 가장 많이 들어있고, 멸치에도 많이 들어 있다는 요오드가 사라지다니 뭔가 이상한 일이다.
이 원소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이 원소를 가리키는 이름이 사라진 것이다.
요즈음 교과서에서는 '요오드'가 사라졌다.
그리고 그 자리를 '아이오딘'이 대체하고 있다.
아이의 이름은 부모가 짓듯이 원소의 이름도 발견자가 짓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렇게 지어진 이름은 남들도 다 그렇게 부르고, 외국에서도 그렇게 부른다.
그런데 요오드는 사정이 조금 복잡하다.
요오드는 프랑스에서 발견되어 자주색을 뜻하는 그리스어 이오데스(iodes)에서 이름을 따왔다.
프랑스에서는 iode였던 것이 독일에서는 Jod로 표기되었고 이 독일어 표기와 발음이 일본으로 수입되어 '요오드'가 된 것이다.
물론 우리는 일본을 통해서 이 이름을 받아들여 써 왔다.
그런데 상황이 바뀌었다.
독일어는 예전만큼의 위세를 떨치지 못하게 되었고, 미국이나 영국에서 공부하는이가 느어나게 되었다.
영어로는 요오드를 아이오딘(iodine)이라 하니 아이오딘이 익숙한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들이 교과서를 쓰면서 옛날 사람들이 쓰던 요오드를 밀어내고 그 자리에 아이오딘을 집어넣은 것이다.
영어가 만국 공통어로 쓰이는 상황이니 이러한 변화가 당연한 것으로 이해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꼭 그런 것만은 아니어서 소금의 주성분인 나트륨은 여전히 나트륨이다.
나트륨(Natrium)은 독일어이고 영어로는 소듐(Sodium)이라고 한다.
영어로 공부를 한 이들은 소듐이 훨씬 더 익술할 텐데 나트륨을 교과서에서 밀어내지 못한 것이다.
◈ 닭과 치킨의 자리싸움
음식의 이름도 원하든 원하지 않는 개명을 하게된 사례가 있는데 바로 닭으로 만든 음식이 대표적이다.
'닭도리탕'은 일본어에 대한 과도한 경계심으로 인해 엉뚱하게 "닭볶음탕"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도리'가 일본어의 '토리'에서 왔을 것이라는 억측 때문에 '도리'를 빼고 '볶음'을 넣은 것이다.
음식의 기본을 아는 사람이라면 '볶음탕' 이란 말이 있을 수 없는 말인 줄 알 텐데 이것이 순화어로 지정이 되어 께름직하지만 어쩔 수 없이 쓰게 된 것이다.
'닭'을 뜻하는 영어의 '치킨(chicken)'은 더 극적인 변신을 보여준다.
그저 흔한 영어 단어의 하나였던 치킨은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이 국내에 들어오면서부터 새로운 용법으로 쓰이게 된다.
닭고기를 토막 낸 후 옷을 입혀 튀겨낸 것을 '후라이드 치킨'이라고 부르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치킨'으로 줄여 부르게 되었다.
여기에 양념을 한 것을 '양념 치킨'이라고 부르게 됐으니 '치킨'은 튀긴 닭 요리란 듯이 된 것이다.
그 결과 전기 오븐에서 통째로 구워낸 것은 '통닭'이란 이름을 가지게 됬고, 닭을 푹 쪄서 소금에 찍어 먹는 전통적인 요리는 '백숙'이란 이름으로 국어지게 되었다.
나아가 '치킨'이 '맥주'와 어우러져 '치맥'이란 말에도 쓰였으니 치킨의 위력을 실감할 만하다.
◈ 필요한 곳에 필요한 만큼
우리말의 역사 전체를 살펴봐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이름이 바뀌는 사례는 흔하다.
지금은 '서사(瑞士)와 '서진(瑞典)'이란 나라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그러나 스위스와 스웨덴이 한자로 이렇게 적혀 우리 땅에 처음 알려졌고 꽤나 오랫동안 이렇게 불렀다.
한자가 대신 다른 외국어에 익숙한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비로소 요즘 익숙한 이름으로 대치되었다.
프랑스를 가르키는 '불란서(佛蘭西)'도 촌스럽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아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이 그런 것은 아니다.
같은 계통인 '영국'과 '독일'이 '유나이티드 킹덤……'과 '도이치란트'로 바뀔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미국'도 '아메리카 합중국'이나 '유에스에이'로 바뀔 것 같지는 않다.
요오드가 아이오딘으로 이름이 바뀐다고 해서 그것이 가리키는 물질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소다움이라고 해야 할 것을 나트륨이라고 한다고 해서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국제화 시대에 살고 있으니 세계 나라의 말이 서로 자리를 바꾸는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요오드가 아이오딘으로 바뀌었지만 우리는 미역과 다시마를 먹으면서 건강을 지키고 있다.
나트륨은 소듐에 밀려나지 않았지만 경계의 대상으로 바뀌었다.
나트륨은 소금을 이루는 원소일 뿐인데 '나트륨 함량'이란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나트륨은 우리의 건강을 위협하는 소금 그 자체로 취급되기도 한다.
이름이 바뀌거나 보존하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꼭 필요한 것이 필요한 만큼 필요한 자리에 있는 것이 중요하다.
이름의 운명이 엇갈린 요오드나 나트륨도 그렇다.
한성우 / 한국어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