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관 시인이 본 53 선지식 30차 42, 허준묘에 차를 올렸네
한국에 이상한 괴질에 죽은 영혼
그들을 위로하려고 단오날
찾아간 곳이 파주에 있는
허준의 유댁에 갔다
그날은 비도 오지 않아 청명한 날
그날에 허균의 묘에 차를 올리고 있는데
사진을 찍은 단월이 놀랬던 것이네
허준의 묘에 차를 올리고 축원을 하였을 때
허균의 무덤 산 숲속에 무지개가 떠나
차를 올리는 나에게 빛을 쭈었다고
사진속에 무지개를 보여주었네
나는 신비스러운 것도 모르고 오직 여래 잎에
법화경 사경을 중시하려고 서원을 세우고
법화경을 사경을 하면서 코로나 종식에 대한
시집을 간행하려고 서원원을 세우고 있음을
허준에게 고하려고 왔던 것이데
허준은 나에 뜻을 알아차렸는지는 모르지만
생명이 대한 소중함을 성찰하고 특효약을
개발하려 인간의 생명을 수중히여기는 힘
그러한 힘을 주기를 바라는 뜻에서 차를 올렸다,
허준의 고양을 말하려고 하는 것은 양천이라고 하는데
양천에서 태어났다고 하면 허씨가족은 바로 허황후의
자손이라고 말할 수 있는대 허황후는 인도의 아유타국에
공주의 가문이라고 말한다면 금관가야의 국토에
거주하게 함은 금수로왕의 자손이라는 말
양천 허씨라고 말하고 있음을 기억하려는 것은
인도에서 차시를 가저 왔다는 이야기를 전하려고
허준의 무덤에와서 차를 올리고 있음이네
허준은 경기도 장단군 대강면 우근리에서 태어났는데
어린 시절에는 아버지를 따라서 평안도 응천 경지고 양천
경기도 파주 경기도 연천에서 살았던 지역을 중심으로
양천 허씨의 시조허선문의 20세손할아버지는 허곤
무관으로 경상우수사지냈고 허준의 아버지는
용천 부사허론이라고 말한다
허준은 의학에 대하여 언제 학습을 했는지에 대하여
알 수 없지만 1570년 선조 3년 허중 31세 때
부재학 유희준의 부인을 치료하기 위하여
한성부에서 유희준의 부인의 병을 고첬다
유희준은 이조판서 홍담에게 허준을 소개하였는데
홍담과 유휘준의 천거로 내의원에 들어가 궁중의사
의관으로 출사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음을 보면
한성부에서는 허준의 명성이 널리 펴진 것이네
1578년 내의원청점으로 있었다라고 한다
조선의 내의원 어의 들 가운데 책임자였던 양예수 안덕수
공빈 김씨 남동생 구안와를 치료하였던 것이며 신성군에 치료하여
당산관 에 올라 승진하였는데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에서 탄핵을
그러나 선조는 이라한 탄핵에 대하여 거부하였다는 말
이같은 일을 기억하려고 하는 것은 허준의 의술에 있어
경지를 이루고 있었다는 것을 말하려고 함이다,
허준은 임진왜란이러난 시기에 선조를 호위하며
그의 의학에 대한 관심을 더욱 신임하였는데
양예수의 병사함에 허준이 그 책임을 다하였으니
선조의 죽음에 유배를 당해 광해군 2년에
동이보감을 저술하여 석망하였다
2024년 9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