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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칼 세이건)
8장 시간과 공간을 가르는 여행
해안에서 부서지는 물결의 출렁임은 태양과 달의 중력 작용이 만드는 조석 작용의 결과이다.
태양과 달이 지구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만 그들이 주는 중력의 영향을 우리는 지구에서 분명하게 느낀다. 중력은 자연의 실체이다. 큼직한 바위 덩이 들이 서로 부딪쳐 깨지고 그 조각들이 다시 파도에 부대껴 고운 모래가 되기까지 얼마나 긴 세월이 흘러야 했을까?
바닷가 모래밭은 우리에게 시간의 흐름을 실감케 하고 세상이 인류보다 훨씬 더 오래됐음을 가르쳐 준다. 모래를 한 줌 움켜쥐면 그 속에서 약 1 만 개의 모래알들을 헤아릴 수 있다 맨눈으로 볼 수 있는 별은 실재하는 별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고대 천문학자와 점성술사들은 하늘에 보이는 밝은 별들을 이어서 여러 가지 모양을 만들어 내고자 했는데 이것이 별자리이다. 별들 사이의 평균 거리가 3~4광년이므로 별자리의 모양은 몇 광년은 족히 움직여야 알아볼 수 잇을 정도로 변할 것이다. 1광년이 거의 10조 킬로미터에 이르는 거리인데 비하여 지구의 지름은 겨우 1만 3000킬로미터에 불과하다.
별자리의 모양은 공간적으로만 변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적으로도 바뀐다. 즉 별자리를 이루는 별들과 관측자의 상대 위치가 바뀌어도 주어진 별자리의 모양이 변하지만 관측자가 한 장소에서 충분히 오랫동안 기다리기만 해도 별자리가 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별들이 무리를 지어 한 덩어리로 함께 움직일 뿐 아니라 때로는 어떤 별 하나가 주위 동료들 보다 훨씬 빠르게 달아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 별은 본래 있던 별자리를 떠나 결국 다른 별자리로 편입된다. 예를 들어 쌍성계를 이루던 두 별 중 하나가 폭발하여 우주 공간으로 흩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렇게 되면 나머지 동반성은 상대방과 이루던 중력의 속박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되므로 폭발 이전의 궤도 속도로 우주 공간에 내팽개쳐진다. 별도 새로 태어나서 진화하다가 죽어 사라진다. 무거운 별들이 태어나고 죽는 주기는 몇 천만년 정도이다. 대부분의 별들은 쌍성계 또는 다중성계의 구성원으로 존재한다. 안드로메다자리 베타별은 태양에서 75광년 전에 그 별을 떠난 것들이다. 암흑의 성간공간을 가로질러 우리에게 도착하는 별빛의 광자들은 사실 75년이 걸렸다는 이야기다.
공간과 시간은 서로 얽혀 있다. 시간적으로 과거를 보지 않으면 공간적으로 멀리 볼 수가 없다. 지금 이 순간에 우리가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어떤 천체를 들여다보고 있다면 시간적으로 그 천체의 과거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다.
천체들의 경우에만 시간과 공간이 얽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천체들 사이의 거리를 생각할 때 비로소 우리는 광속의 유한성을 실감하게 된다. 지구에서 여태껏 발사된 물체들 중에서 그래도 가장 빨리 움직이는 것이 두 대의 보이저 우주선이다. 지금은 광속의 약 1만분의 1의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다는 켄타우루스자리 알파별까지 가는 데에도 4만년이 걸인다. 그렇다면 적정 기간 이내에 이 별까지 간다는 것이 과연 실현 가능한 일인가? 도대체 어떻게 해야 광속에 버금가는 속도로 움직일 수 있을까 빛이 그리고 광속이 무엇이기에 우리가 빛보다도 더 빨리 움익일 수 잇는 날이 우리에게 오기나 할 것일까? 아인슈타인은 특수 상대성 이론으로 정리했다. 어떤 물체에서 반사되거나 방출된 빛은 그 물체가 움직이든 움직이지 않든 상관없이 동일한 속도로 진행한다. 어떠한 물체도 빛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없다.
광속에 가까운 속력으로 여행을 하면 당신은 나이를 거의 먹지 않지만 당신의 친구나 친척 들은 여전히 늙어 간다. 당신이 상대론적인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친구들은 몇 십 년씩 늙어 있겠지만 당신은 전혀 늙지 않았을 것이다. 특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빛의 속도에 가깝게 움직일 때 시간의 흐름이 지연된다. 하지만 공학적인 의미에서 빛의 속도에 가깝게 움직인다는 실제로 실현 가능한 일일까 우주선을 타고 태양계가 아닌 항성계오의 이주가 과연 가능할까?
어떤 우주선이 1g의 가속을 받으면서 비행을 적정 시간 동안 계속하여 목표의 중간 지점쯤에 도달했을 때 비행 속도가 거의 광속과 같아졌다고 하자 거기서부터는 가속의 방향을 반대로 돌려야 할 것이다. 즉 –1g의 가속도를 받으며 지금까지 오는 데 걸린 시간만큼 더 비행하면 목표 천체에 도착하게 될 것이다. 이 우주선은 여정의 상당 부분에서 거의 광속과 비슷한 속도를 유지했으므로 우주선을 타고 움직으는 사람에게는 시간이 매우 느리게 흘렀을 것이다. 행성을 동반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 되는 바너드의 별은 태양에서 약 6광년 떨어져 있다. 당신이 우주선을 타고 앞에서 이야기한 식으로 이 별을 향해 달린다면 약 8년 후면 이 별에 도착할 수 있다. 여기서 8년은 우주선에 실린 시계로 잰 당신의 시간이지 우주여행의 장도에 오르는 당신에게 환송했던 사람들의 시간이 아니다. 은하수 은하의 중심까지 가는 데에는 21년이 걸리고 안드로메다 은하에서 28년이면 도착한다. 그러나 우주에서의 21년이 무려 3만년에 해당하는 장구한 세월이다. 그러므로 우주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당신을 환송했던 사람들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56년의 우주선에서의 시간은 지구인의 시간으로는 수백억 년에 해당하는 시간이다. 우주여행에서 돌아올 때쯤이면 지구 자체가 없어졌을 것이다. 지구는 이미 까맣게 타 버린 숯덩이로 변해 있을 것이며 태양은 아주 오래전에 빛의 방출을 멈쳤을 것이다.
9장 별들의 삶과 죽음
대개 원자의 외곽부는 전자의 구름으로 둘러싸여 있다. 전자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전하를 따는데 우리는 전자의 전하를 음전하로 부르기로 약속했다. 이 전자가 원자의 화학적 성질을 결정한다. 예를 들면 황금의 번쩍이는 광채, 철의 차가운 느낌, 탄소로 이루어진 금강석의 단단한 결정 구조 등을 전자들이 좌우한다. 원자의 저 깊숙한 내부, 전자구름 속 깊숙한 곳에는 핵이 숨어 있다. 핵은 양전하를 띠는 양성자들과 전기적으로 중성인 중성자들로 구성된다. 원자는 매우 작다. 원자 1억개를 일렬로 늘어놓아 봤자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가 겨우 새끼손톱 끝만 하다 원자의 핵은 원자 전체의 겨우 10만분의 1 정도이다. 원자핵이 발견되기 어려웠던 이유가 이렇게 작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자의 질량은 거의 전적으로 이 조그마한 핵에 모여 있다.
애플파이를 오븐에 너무 오래 두면 파이가 아니라 숯이 된다. 숯의 성분은 거의 전부 탄소이다. 숯이 된 파이를 90번 연속해서 반으로 나누면 탄소 원자를 만날 수 있다. 탄소의 핵에 양성자와 중성자가 각각 여섯 개씩 들어 있고 핵에서 한 덩어리를 떼어 내면, 그것은 더 이상 탄소 원자가 아니라 헬륨 원자가 된다. 이렇게 원자핵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현상이 핵폭탄과 원자력 발전소에서 실제로 발생한다.
탄소 원자를 한번 더 쪼갠다면 작은 탄소 원자가 안라 다른 종류의 원자, 즉 탄소와는 전혀 성질이 아른 원자가 만들어진다. 원자를 자르면 원소의 돌연변이가 생기는 것이다. 원자는 양성자 중성자 전자로 이루어져 있다. 파라켈수스와 아이작 뉴턴과 같이 연금술을 아주 진지하게 연구한 학자들을 통하여 인, 안티몬, 수은, 같은 원소들을 새로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상 현대 화학은 연금술사의 실험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자연에는 화학적 성질이 뚜렷하게 다른 원소가 92종이 있다. 물론 대부분의 물질은 이 아흔두 가지 원소로 구성된 각종 분자의 형태로 존재한다. 예를 들어 생명현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물은 산소와 수소 원자로 만들어진 분자이다. 지구대기는 질소, 산소, 탄소, 수소와 아르곤으로 형성된 분자를 주요 구성 성분으로 한다. 흙은 규소, 산소, 알루미늄, 마그네슘, 철 등의 원자들로 구성된 매우 다양한 분자들이 주성분이다. 불은 화학 원소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원자가 고온의 상태에 놓이면 전자를 잃고 전리된다. 이렇게 전리된 고온의 플라스마가 내는 전자기 파동이 우리에게 불로 보이는 것이다. 연금술의 시대 이후 새로운 원소들이 발견됐다. 상온에서 어떤 원소는 고체로, 일부는 기체로 존재하며, 브롬과 수은같이 액체 상태인 것들도 있다. 원자에는 복잡한 정도에 따라 번호가 매겨져 있다. 가장 간단한 수소가
1번 가장 복잡한 우라늄이 92번이다.
모든 원자가 양성자, 중성자, 전자의 세 가지 소립자들로 구성됐다는 사실은 최근에 밝혀졌다. 중성자가 발견된 것도 1932년이었다. 양성자, 중성자, 전자의 구성비에 따라서 원자의 종류가 결정되고 그 원자들이 적당히 모여서 분자들을 생성하고 이 분자들이 조합을 이뤄 지구상의 모든 물질을 만든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중성자는 전하를 띠지 않는다. 양성자와 전자는 똑같은 크기의 양전하와 음전하를 갖는다. 부호가 다른 전하들 사이에 작용하는 인력이 원자를 원자로 남아 있게 하는 요인이다. 원자는 전체적으로 중성이므로 핵에 있는 양성자의 개수와 전자구름을 이루는 전자의 개수가 정확하게 일치한다. 한 원자의 화학적 성질은 전자의 개수에 따라 좌우되는데, 원자 번호가 바로 양성자나 전자의 개수이므로 원자 번호에서 그 원자의 화학적 특성을 쉽게 점칠 수 있다. 원자번호 92의 우라늄은 양성자와 전자를 각각 아흔두 개씩 갖는다.
원자핵에 전하를 띤 입자라고는 양성자뿐인데, 핵이 와해되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핵에는 또 다른 종류의 힘, 즉 핵력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핵력의 정체는 중력도 전자기력도 아니다. 핵력은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만 작용하므로 갈고리에 비유될 수 있다. 양성자와 중성자가 아주 가까이 있을 때 핵력이라는 이름의 갈고리가 서로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 맨다. 둘 사이의 거리가 갈고리보다 멀면 갈고리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핵과 같이 좁은 영역에서 중성자가 양성자와 함께 들어 있으므로 핵에서는 핵력이 발동하여 향성자들 사이의 척력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이다. 중성자는 전하를 갖고 있지 않으므로 전기력은 발휘할 수 없지만 핵력을 발동하여 핵을 전체적으로 붙잡아 묶는 풀의 역할을 한다. 원래 떨어져 살기를 좋아하는 양성자가 핵력의 달변과 애교 덕분에 마음 안 맞는 이웃과도 오순도순 지내고 있는 셈이다. 우라늄보다 원자 번호가 높은 것들은 대개 지구상에 자연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이 합성한 이 원자핵들의 거의 대부분은 그냥 내버려 두면 순식간에 붕괴하는 방사는 원소들이다. 원자 번호가 94인 플루토늄 원자핵은 가장 유독한 불질 중 하나이다. 이 물질은 아주 느리게 붕괴하기 때문에 인간에게 큰 재앙을 가져 올 수 있는 위험한 존재이다.
우주 어디를 보든 존재하는 물질의 99퍼센트가 수소와 헬륨이다. 가장 간단한 두 가지 원소가 우주에 가장 흔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헬륨은 사실 지구에서 발련되기 전에 태양에서 먼저 검출됐다. 간단한 핵에서 복잡한 핵을 만들려면 양성자와 중성자를 첨가하면 된다. 이때 방해의 요인인 전기적 척력을 어떻게 적절히 상쇄시킬 수 있느냐가 문제의 핵심이다. 핵력의 발동은 핵자들이 매우 가까이 접근해야 가능한데 극도로 고온인 상황에서는 핵자들의 근거리 접근을 기대할 수 있다. 온도가 대략 100만도 이상의 상황에서는 핵자들이 전기적 척력이 위력을 발휘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빠르게 충돌하기 때문이다. 이 고온의 조건은 별의 중심부에서 쉽게 구현된다.
태양은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별이다. 그러므로 태양이 내놓은 복사를 길게는 전파 대역에서부터 짧게는 가시광선 대역을 거쳐 엑스선 대역에 이르기까지 속속들이 관찰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눈으로 관측하는 빛은 전부가 태양의 최외각부에서 나오는 것이다. 태양은 한때 아낙사고라스가 생각했던 대로 붉게 달궈진 돌이 아니라 수소와 헬륨으로 구성된 고온의 기체 덩어리인 것이다 기체 덩어리가 빛을 발하는 것은 높은 온도로 가열된 낙화 인두가 붉은 빛을 발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태양의 수소와 헬륨 기체도 뜨겁게 가열돼 있기 때문에 빛을 낼 수 있는 것이다. 태양 표면에서 일어나는 격렬한 폭발 현상은 플레어를 동반한다. 플레어는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각종 전파 통신에 심각한 장애 요인으로 작용한다. 프로미넌스도 태양에서 볼 수 있는 거대한 폭발 현상이다. 홍염을 내놓을 수 있을 정도로 뜨거운 물질이 자기장의 안내를 받아 무지개 모양을 이루면서 분출하는 현상이 프로미넌스다 그래서 이를 홍염이라고도 부른다. 흑점은 태양이 서쪽으로 질 때 육안으로도 식별할 수 있다. 흑점은 강한 자기장을 동반하며 온도가 주위보다 낮다. 우리가 가시광선f 통해서 볼 수 있는 온대는 절대 온도로 6000도인다. 우리에게 절처하게 숨겨진 태양의 저 깊숙한 내부의 온도는 1570만도에 이른다. 이렇게 뜨거운 조건에서는 핵융합 반응이 일어나고 그 결과로 빛이 만들어진다. 수소 핵 융합 반응이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다. 태양이건 별이건 간에 핵융합 반응이 일어날 수 있는 지역은 고온 고압의 중심부 일부일 뿐이며, 핵반응의 연료로 쓸 수 있는 수소가 그 지역에 한없이 많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별의 운명, 별의 최후는 그 별이 얼마나 큰 질량을 갖고 태어났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별은 진화하는 과정에서 자기 질량의 일부를 공간으로 서서히 방출한다. 방출하고 남은 질량이 태양의 2배 내지 3배 정도에 이른다면 그러한 별들은 우리 태양과는 판이하게 다른 최후를 맞게 된다.
태양의 최후는 앞으로 50억 또는 60억 년이 더 지나면 태양의 중앙부에 있던 수소가 모두 헬륨으로 변하게 되므로 중심핵 부분에서는 핵융합 반응을 더 이상 디대할 수 없다. 반응에 쓰일 연료 ㅁ불질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태양의 자체 중력은 헬륨으로 가득 찬 중심핵에 짓눌려 다시 수축하게 한다. 헬륨으로 구성된 중심핵은 다음 단계의 핵융합 반응을 일으키기에는 아직 충분한 여건을 갖주지 못해서 다시 수축하게 되는 것이다. 수축이 진행될수록 그 지역의 온도와 밀도가 지속적으로 상승한다. 따라서 헬륨 원자들 사이의 간격이 좁아지고 이에 따라 원자핵 세계의 갈고리가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정도로 밀착하여 핵력이 발동하게 되면 드디어 헬륨의 핵융합 반응이 시작된다. 수소가 타고 남은 재에 불과했던 헬륨에 다시 불이 붙은 것이다. 이렇게 해서 핵융합 반응의 잔치가 태양의 중심핵 부분에서 또 한 차례 벌어진다. 태양은 세 연료인 헬륨을 태워서 추가 에저지를 얻는 동시에 탄소와 산소를 헬륨에서 함성해 낸다. 자신의 재에서 다시 불꽃을 피울 수 있으니 별이야말로 불사조이다. 그러나 중앙에서 멀리 떨어져 상대적으로 저온 상태에 있는 외부의 얇은 껍질에서는 수소가 타고 고온 상태에 있는 한복판에서는 헬륨이 연소중이니 외부가 급격히 팽창하고 대신 온도는 하강한다. 태양은 이제 적색 거성이 된다. 가시광선으로 드러나는 태양 표면이 중심으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외각부에서 느끼는 중력은 미약하기 이를 데 없다 그 까닭에 적색 거성이 된 태양의 바깥 대기층은 항성풍의 형태로 공간에 서서히 흩어져 나간다. 벌겋게 부풀어 적색 거성이 된 태양은 수성과 금성을 집어 삼키고 종내에는 구리 지구까지 자신의 품안에 넣어버린다. 그러므로 내행성계가 완전히 태양 안에 들어가게 된다. 내행성계의 최후인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수 십억 년 후 어느날 지구는 최후의 날을 맞게 될 것이다. 태양은 점점 더 붉게 변하면서 팽창하고 지구에서는 남.북 양극 지방조차 땀이 뻘뻘 흘러내리는 더운 날씨로 변하기 시작할 것이다. 남극과 북극의 빙산이 녹아서 해수면이 높아지고 해안 지대는 바다 속으로 점점 더 깊이 잠겨 들어 간다. 바닷물의 온도가 상승하므로 대기 중에는 수증기의 함량이 증가하고 구름의 양이 많아진다. 이 구름 덕에 태양의 빛을 어느 정도 차단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시시각각 다가오는 최후의 순간은 면할 길이 없다. 태양은 자신의 진화과정을 밟아 간다. 바다가 끓어 올라 물이 모두 증발하고 그 다음 대기마저 완전히 증발하여 사라지면 우리의 상상력으로는 예상할 수 없는 최악의 재앙이 행성 지구를 뒤덮는다.
생명의 기원과 진화는 별의 기원과 진화와 그 뿌리에서부터 서로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첫째, 우리를 구성하는 물질이 원자적 수준에서 볼 때 아주 오래전에 은하 어딘가에 있던 적색 거성들에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태양은 제2세대 또는 제3세대의 별일지 모른다.
둘째, 지구에서 발견되는 무거운 원소들 가운데 어떤 동위 원소는 태양이 태어나기 직전에 근처에서 초신성의 폭발이 있었음을 강력하게 시사하기 때문이다. 초신성에서 유래한 충격파가 성간 기체와 성간운을 통과하면서 그곳의 밀도를 증가시킴으로써 중력 수축이 유발됐을 것이다. 그 결과로 태어난 것이 우리 태양계이다.
셋째, 우리는 생명의 탄생에서 별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새로 생긴 태양에서 쏟아져 나온 자외선 복사가 지구 대기층으로 들어와서 그곳에 있던 원자와 분자에서 전자를 떼어내면서 대기 중에는 천둥과 번개가 난무하게 됐고 이것이 복잡한 유기 화합물들의 화학 반응 에너지원으로 작용했다. 바로 이 과정에서 생명이 태어났던 것이다.
넷째,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생명 활동이 결국 태양 에너지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식물은 태양의 빛을 받아서 빛 에너지를 화학 에너지로 변환시킨다. 따지고 보면 모든 동물은 식물에 기생하여 사는 존재이다. 농사가 무엇인가 태양 광선을 조직적으로 추수하는 방법에 다름이 아니다. 마지 못해 응하는 식물을 매개체로 하여 태양 광선의 에너지를 긁어 모으는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이 농업이다. 따라서 인류는 전적으로 태양의 힘에 기대어 살아가는 존재이다.
끝으로 유전의 관점에서도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돌연변이라고 불리는 유전 형질의 변화가 진화를 추동한다. 자연은 돌연변이를 통해서 생명의 새로운 존재 양식을 찾아내는데 고에너지의 우주선 입자들이 돌연변이를 촉발하기도 한다.
우리는 가장 근본적 의미에서 코스모스의 자녀들이다. 태양은 우리 지구와 1억 5000만 킬로미터 저 멀리 떨어져 있어 우리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듯하지만 우리는 태양의 위력을 매 순간 생생하게 체험하며 살아간다. 태양은 우리를 따뜻하게 해주고 먹여 주고 우리가 사물을 볼 수 있게 해 준다. 태양은 땅을 비옥하게 하여준다. 그렇지만 별들의 세상에서 태양의 위치는 보통,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또 그 별들도 은하의 바다에서는 작은 점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