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0년 무과에 급제해 용양위부사과(龍驤衛副司果)로서 선전관이 되었다. 그러나 1884년 갑신정변이 일어나자 사직하고 낙향하였다. 1895년 명성황후 민씨(明成皇后閔氏)가 시해되고 단발령이 내려지자, 1896년 1월 11일 가산을 털어 문경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안동관찰사 김석중(金奭中)과 순검 이호윤(李浩允)·김인담(金仁覃)을 체포해 농암(籠巖) 장터에 운집한 군중 앞에서 효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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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44분, 이 장면은 초딩들 소풍가는게 아닙니다. ㅋㅋㅋ 안산형님이 카메라를 옮겨다니며 찍어주신건데요.
잠깐의 휴식을 가지고 후미가 오기를 기달려 같이 속리산으로 향합니다.^^
비단길이라선지 모처럼만에 4-1구간을 선두와 후미가 같이 할 수 있었습니다. 세이 총무님 젤 신나보이죠?^^
05:46분, 속리산 초입으로 들어서며 23차 리본작업합니다. 번호도 세알리고....^^
생자필멸, 회자정리, 거자필반, 성자필쇠... 이제가면 언제 보나,,, 선두와 후미가 석별의 정도 나누고.... ㅋㅋ
봉황산을 향해 고도를 높이면 우측으로 대궐터산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대궐터산
위치 | 경북 상주시 화서면 하송리, 화남면 동관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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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우리 | 두루봉 |
높이 877m로, 백두대간상 형제봉이 남쪽으로 뻗어내려 솟은 산이다. 상주시의 역사지인 <상산지>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산 아랫마을에서는 두리뭉실하게 생겼다 하여 두루봉이라고 부른다. 후백제의 견훤이 이 산에 성을 쌓고 대궐을 지었다 하여 대궐터산이라고도 하는데 대궐터산은 극락정사 뒤 삼각점이 있는 봉우리이다.
산기슭에 청계사와 후백제의 견훤이 쌓았다는 성산산성이 있다. 성산산성은 둘레가 3.3km인 토석성으로 산 아래에서 보면 바위산으로 보이는 천혜의 요새이다.
산행은 갈령에서 오르는 코스와 청계사나 서문골에서 오르는 코스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갈령 코스가 많이 알려져 있다. 갈령에서 산행을 시작하면 고갯마루에서 오른쪽 낙엽송 조림지 사이의 가파른 비탈을 올라 헬기장을 지난다. 능선을 타고 오른쪽으로 노송군락과 산불감시초소를 지나 능선을 따라가다가 바위 옆을 돌아 올라가면 정상이다.
정상에서 바위 사이를 통과하여 능선을 타고 투구봉(작은 두루봉)과 성산산성에 들렀다가 삼각점이 있는 대궐터산에 오른다. 하산은 성터를 따라 극락정사까지 내려온 뒤 주차장을 지나 도로에 내려선다.
06:51분, 동쪽으로 화령장 전투가 벌어진 동관리 마을, 그리고 대궐터산에서 내려서는 청계마을을 바라보며 헉헉대고 오르니 봉황산입니다.
봉황산에서 지맥 하나가 갈래쳐 나갑니다. 산줄기파에서는 팔음지맥, 강줄기파에서는 보청지맥이라 주장하네요.^^
- 신산경표 팔음지맥
속리산 남동쪽 백두대간 봉황산에서 남서쪽으로 가지 치는 능선이 있다. 팔음지맥이다. 팔음지맥은 천택산~팔음산八音山(771.3m)~천금산~천관산~철봉산을 지나 옥천군 이원면에 이르러 여맥들을 금강에 가라앉힌다. 팔음산에서 남쪽으로 분가되는 산릉이 있다. 이 산릉으로부터 약 10km 거리에 솟은 산이 백화산白華山 한성봉漢城峰(933.4m)이다. 한성봉에서 계속 이어지는 산릉은 약 3km 거리에 주행봉舟行峰(871.4m)을 빚어 놓은 다음, 약 6km를 더 이어지다가 영동군 황간면 용암리에 이르러 금강 지류인 석천으로 가라앉는다.
- 대한산경표 보청지맥
우리가 산경표를 얘기할 때 그 근본은 산자분수령이라고 했습니다.
한 줄기에서 다른 줄기가 가지쳐 나갈 때 그 줄기들 사이에서는 반드시 물줄기 하나가 발원되는데, 그 가지 줄기는 반드시 그 발원된 물줄기와 그 보다 상위 등급의 물이 만나는 합수점에서 그 맥을 다하게 된다. 바로 산자분수령의 제2법칙입니다.
여기에 대입을 해보면 백두대간의 봉황산에서 한 줄기 가지를 쳐 나갈 때 그 사이에서 나오는 물줄기 바로 보청천이죠.
그러면 당연히 이 봉황산에서 가지를 친 줄기는 보청천과 그보다 상위등급의 강 즉 금강과의 합수점으로 가면 됩니다.
신산경표가 산경을 중시하여 그 줄기의 이름을 가장 높은 봉우리 즉 팔음산771.3m의 이름을 차용하여 팔음지맥이라고 지은 반면 대한산경표는 물줄기를 중시하여 그 물줄기의 이름인 보청천을 따서 보청지맥이라고 명명한 것입니다.
[현오와 걷는 백두대간의 저자 권태화님의 산행기에서 발췌]
맨 뒤쪽으로 속리산라인이고요. 우측으로 백악산 라인도 살짝 보입니다.
억시기마을을 지나 화북으로 넘어가는 29번 국도 갈령터널 가는 길 양쪽으로 형제봉과 청계산이 보입니다.
07:56분, 푹 내려왔다가 다시 올라가는 급경사 고갯길....
`비` 자가 들어가면 우선 급경사다 이리 생각하면 된답니다.
그런데 최근 생태환경을 살리자는 동물이동통로도 만들고 "비조령"이라고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워지네요.
조령, 조침령의 영향이라고 하네요. 새도 쉬어 넘어가는 높은 고개란 뜻으로 잘못 받아들여진 현상이랍니다.
그 비재에서 중간 급식을 합니다.
오늘 지원 메뉴는 아침 저녁으로 삼계탕과 갈비탕을 준비했는데 삼계탕을 먼저 먹었습니다.^^
입에서 닭냄새가 난다네요.^^ 무얼 먹어도 맛있는 배고픈 참인데 같은 메뉴로 계속 먹다보니 질리는가 봅니다.
그런데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짧은 시간, 저렴한 비용으로 고객들 까다로운 입맛 맞추기가 너무 부담이 크데요.^^
저는 넘넘 맛있던데... 뼈가 부드러워 뼈까지 다 씹어먹을려니 어느 분이 보고는 야만인 같다고 발라 먹으라고... ㅋㅋㅋ~
10:57분, 중간 급유를 받고 1차 목적지 형제봉을 향하여 출발합니다. 못제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선두팀 모습인데요.
충북알프스가 달라붙는 "못제"....는 대간에서 보기 힘든 습지입니다.
여기에 거대한 전설이 전해져 내려옵니다.
신라말 후삼국시대 상주 토호 견훤(후백제 왕, 황간윤씨의 시조)과 보은의 토호세력 황충의 패권다툼 이야기.... 1천년 하고도 400년 전의 일이니깐...아주 오래된 이야기죠.
견훤하고 싸우기만 하면 패하니 황충이 부하를 시켜 견훤의 뒤를 미행했답니다.
그랬더니 이 못에서 목욕을 하며 힘을 보충하더라는 거죠.
견훤의 지렁이 태생 설화를 알고있는 황충이 충북 보은에서 충북알프스 길을 따라 야심한 밤에 소금을 들머지고 백두대간까지 이동하여 못에다 잔뜩 뿌렸답니다. ㅋㅋㅋ~
믿거나 말거나... 역사는 그렇게 산자 위주로, 이긴 자 위주로 용과 지렁이로 기록되어지니깐요.
인물이 좋은걸까요, 날씨가 좋은 걸까요?^^
이곳 형제봉에 이르기 직전 갈령삼거리가 있는데요. 그곳에서 갈령으로 대간을 하는 분들이 접근로로 많이 이용하는 곳입니다. 그곳 갈령에서 작약지맥(산줄기파), 이안지맥(강줄기파)이 가지쳐 나갑니다.
작약지맥이란
백두대간 속리산 형제봉 동쪽 0.6km지점의 721봉에서 동쪽으로 분기하여,
북으로 영강, 남으로 이안천을 가르며 영강과 이안천이 합해지는 상주시 함창읍 태봉리에서 맥을 다하는 48km의 산줄기다.
영강은 태봉리에서 이안천 물을 보탠 다음 5km 더 흘러 낙동강에 들어간다.
북으로는 백두대간과 운달지맥, 남으로는 숭덕지맥을 건너보며, 두루봉(874m), 칠봉산(597m), 작약산(774m), 수정봉(486.5m)을 거쳐 함창읍 태봉리 논 한가운데 섬처럼 솟은 태봉산(106m)을 끝으로 산줄기를 마감한다.
시원시원하고 서글서글한 인상만큼 성격 또한 낙천적이신 안산형님!
23차 대간길에서는 총대장님의 최측근 특보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J3 수도권의 샛별, 떠오르는 신예 밤도깨비님도 안산 상록구라 야밤에 수리산을 넘어다니시죠~^^
속리산을 중심으로 꾼들이 좋아하는 주옥같은 장거리 종주코스가 즐비합니다.
43.9km 충북알프스를 연장한 신충북알프스 61km를 비롯, 50km 속리산 태극종주, 40km 우복동천 환종주도 있습니다.
작년 8월 천지 힐할까님 공지로 우복동천 환종주를 완주하고, 중부지부 황금산님 공지 덕분에 작년 10월 신충알을 완주하였습니다.
12:30분, 이곳에서 30분 거리 만수동에 대간꾼들의 쉼터 "피앗재산장"이 있습니다. 연속 산행을 하는 대간꾼들이 많이 이용하는 장소...
12년전, 산장지기 다정님이 저하고 같은 시기 같은 산모임인 "홀대모"에서 앞뒤로 대간을 뛰셨습니다. 제가 다녀오면 이분이 바로 뒤따라 가셨죠.^^
산장지기이신 다정님과 다감님은 부부입니다. 같이 대간을 진행하셨고,,,,
부천에서 사시다 산이 좋아 만수동으로 들어가 인생 이모작을 하고 계시는데 한번 찾아뵐 기회를 얻지 못하네요.^^
대간 23차의 총대장님과 동급이신 하이디대장님이십니다.^^
속리산 천왕봉 아래 석간수 천왕샘이 있네요. 말로만 듣고 처음 확인을 하였습니다.
갈수기라 흐르지 않고 괴어있어 갈증은 해소하지 못했지만 유용하게 쓰일 수 있겠더군요.
속리산 俗離山 1,058m
충청북도 보은군, 충청북도 괴산군, 경상북도 상주시
<속리산> 설화는 금산사(金山寺)에 거주하던 진표율사가 구봉산(九峰山, 속리산의 옛 이름)으로 오면서 시작된다. 진표율사가 보은에 다다랐을 때, 들판에서 밭갈이를 하던 소들이 모두 무릎을 꿇고 율사를 맞았다. 농부들은 이 기이한 광경을 보고 율사에게 까닭을 물었다. 그러자 율사는 “이 소들이 겉으로는 어리석으나 속으로는 현명하여 내가 깨우친 불법을 중히 여기기 때문입니다.”라고 했다. 농부들은 이 말을 듣고 곧바로 낫을 들어 스스로 머리카락을 자르고 진표율사의 제자가 되었다고 한다. 속리산의 봉우리와 바위에는 다양한 설화가 전한다.
입석대는 옛날 신라 진평왕의 왕비인 마야부인이 서라벌을 향해 기도를 올릴 때 세웠다고 하며, 배석대는 진평왕이 이곳에서 신라 왕실을 배향했다고 한다. 그 아래에 있는 경업대는 조선 인조 때 임경업 장군이 수련했던 바위이며, 임 장군이 수련하던 토굴 아래의 샘은 장군수라 부른다. 신선대는 그 바위 봉우리에 백학이 수없이 날아오르며 춤을 추고, 그 가운데 백발의 신선들이 앉아 놀았다고 한다. 한편 속리산은 조선시대 7대 임금인 세조와 관련해서 다양한 설화가 전승한다. 세조가 속리산으로 오는 도중 넘었던 말티고개, 비를 피하게 하고 연(輦)이 지나가는 것을 도와주어 벼슬을 받은 정이품송, 세조를 호송하던 관군들이 진을 쳤던 진터, 책을 읽었던 문장대, 질병을 치료한 목욕소, 그 보답으로 땅을 내리기 위해 돌을 끌었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은구석(恩救石)이 있다.
레드캡님과 세이총무님 상고외석문 고릴라바위에서 동물원 원숭이 구경하듯 신기한 모습으로 살펴봅니다.^^ ㅎㅎㅎ~
속리산은 오래전부터 광명산(光明山)·지명산(智明山)·미지산(彌智山)·구봉산(九峯山)·형제산(兄弟山)·소금강산(小金剛山)·자하산(紫霞山)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속리산(俗離山)은 봉우리 아홉이 뾰족하게 일어섰기 때문에 구봉산(九峯山)이라고도 한다. 신라 때는 속리악(俗離岳)이라고 일컬었다.”라고 되어 있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는 “속리산은 산세(山勢)가 웅대하고 꼭대기는 모두 돌봉우리가 하늘에 나란히 솟아서, 옥부용(玉芙蓉)을 바라보는 것 같아 세속에서는 소금강(小金剛)이라 부른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높이는 1,058m이다.
속리산은 충청북도 보은군 내속리면에 위치한 백두대간의 한 봉우리로 충북 보은군과 괴산군, 그리고 경상북도 상주시 경계에 걸쳐 있다. 명승고적이 보은군에 많이 있어 ‘보은 속리산’이라고 부른다. 속리산에는 호서에서 제일 큰 가람인 법주사(法住寺)가 자리하고 있으며, 속리산의 지질은 화강암을 기반으로 하여 변성퇴적암이 군데군데 섞여 있다. 변성퇴적암은 깊게 패이고, 화강암은 날카롭게 솟아올라 깊은 계곡과 높은 봉우리를 이룬다.
속리산은 수려한 경치와 다양한 동식물, 대규모 사찰인 법주사와 여러 암자가 있어 1970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법주사는 신라 진흥왕 14년에 의신조사(義信祖師)가 창건한 절로 ‘부처님의 법이 머문다’는 뜻이다.
경내에는 쌍사자 석등(雙獅子石燈, 국보 제5호)·팔상전(捌相殿, 국보 제55호)·석련지(石蓮池, 국보 제64호)·사천왕 석등(四天王石燈, 보물 제15호)·마애여래의좌상(磨崖如來倚坐像, 보물 제216호)·대웅보전(大雄寶殿, 보물 제915호)·원통보전(圓通寶殿, 보물 제916호)·신법 천문도 병풍(新法天文圖屛風, 보물 제848호)·괘불탱(掛佛幀, 보물 제1259호)·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塑造毘盧遮那三佛坐像, 보물 제1360호)·목조관음보살좌상(木造觀音菩薩坐像, 보물 제1361호) 등이 있다. 법주사는 사적과 명승 제4호로 지정되어 있다.
04:49분, 속리산은 법주사 팔상전(捌相殿)을 중심으로 숫자 8과 관련한 곳이 많다.
최고봉인 천왕봉(天王峯)을 중심으로 비로봉(毘盧峰)·길상봉(吉祥峯)·문수봉(文殊峯)·보현봉(普賢峯)·관음봉(觀音峯)·묘봉(妙峯)·수정봉(水晶峯) 등 8개의 봉(峯)과 문장대(文藏臺)·입석대(立石臺)·경업대(慶業臺)·배석대(拜石臺)·학소대(鶴巢臺)·신선대(神仙臺)·봉황대(鳳凰臺)·산호대(珊瑚臺) 등 8개의 대(臺)가 있다.
내석문·외석문·상환석문·상고내석문·비로석문·금강석문·추래석문으로 여덟 개의 문이 있다. 또한 속리산에는 ‘여덟 다리’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수정교와 환선교, 그리고 태평교만 남아 있다. 이는 속리산이 불교와 밀접하고, 현실 세계와 분리되어 있는 불국토임을 의미하는 것이며, 속리산과 관련한 설화들을 통해 부처님의 신력(神力)을 보여 주고 있다.
대부분의 봉과 대가 보은 쪽에 있는 반면, 은폭동(隱瀑洞)을 제외한 용유동계곡(龍遊洞溪谷)·쌍룡폭포(雙龍瀑布)·오송폭포(五松瀑布)·장각폭포(長角瀑布)·옥량폭포(玉梁瀑布)·용화온천(龍華溫泉) 등은 상주 쪽에 있다.
속리산에는 정이품송(正二品松, 천연기념물 제103호)·망개나무(천연기념물 제207호) 등 1,055종의 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또한 까막딱따구리(천연기념물 제242호)·하늘다람쥐(천연기념물 제328호) 등 희귀동물을 포함하여 1,831종의 동물이 서식하고 있다.
1984년에는 속리산의 줄기인 화양동도립공원과 쌍곡계곡 일대가 속리산국립공원에 편입되었다. 추가로 편입된 괴산군 청천면의 화양동계곡에는 송시열(宋時烈)이 은거하며 필적을 남긴 화양구곡(華陽九曲)과 이황(李滉)이 찾아왔다가 도취되어 노닐었다는 선유동구곡(仙遊洞九曲)이 있다.
박대천(博大川)의 지류인 화양천(華陽川)을 따라 좌우로 산재한 경승지를 화양구곡이라 하는데, 한줌의 흙도 보이지 않는 흰 반석에 맑은 물이 흐르고 있으며 울창한 숲과 조화를 이룬 모습이 장관이다. 화양구곡은 경천벽(擎天壁)·운영담(雲影潭)·읍궁암(泣弓岩)·금사담(金沙潭)·첨성대(瞻星臺)·청운대(淸雲臺)·와룡암(臥龍岩)·학소대(鶴巢臺)·파관(巴串)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선유동구곡은 선유동문(仙遊洞門)·경천벽(擎天壁)·학소암(鶴巢岩)·연단로(鍊丹爐)·와룡폭(臥龍瀑)·난가대(爛柯臺)·기국암(碁局岩)·구암(龜岩)·은선암(隱仙岩)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법주사 일원은 명승 제61로 지정되어 있다. 그 외에도 복천암(福泉庵)·중사자암(中獅子庵)·상환암(上歡庵) 등의 암자와 여덟 개의 석문(石門)이 있다. 법주사 입구 내속리면에는 호텔을 비롯한 숙박시설·상가 등이 밀집하여 관광취락을 형성하고 있다. 여기에서 법주사까지 이르는 약 2㎞의 길을 오리숲[五里林]이라 하며 계절에 따라 변하는 경치가 일품이다. 속리산의 특산물로는 머루주와 송이버섯이 유명하다.
05:03분, 오늘 구간의 하이막스~!!
사실 대간구간중에 오늘 지나는 문장대-늘재구간, 대야산구간이 제일 험준합니다.
산악사고가 많아 국공에서 비탐지역으로 정해놓고 접근 들머리에 카메라와 울타리로 철통 경계를 하고 있는데요.
그물이 촘촘해도 바람까지 잡을 수는 없고, 한강에서 낚시한다고 바다의 고기까지 다 잡는건 아니죠~^^
우리 대원 중에 백두대간을 한줄에 꿰고 있는 백전노장 구구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저들이 알랑가 모르겠습니다. ^^
위험구간을 낮에 통과하니 진기명기 기암괴석과 마주합니다.
돌과 공생하는 저 이끼....! 장군의 가슴에 매달린 세월의 흉장처럼 보이네요.
저곳에 천년만년 세월의 힘이 더해지면 나무가 자라 바위를 덮을 수도 있습니다. 그늘지고 습도가 높은 지역일 수록 잘 자라죠~^^
이끼는 생각이상으로 우리삶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데요,
식물이 살수없는 바위에 이끼가 먼저 정착함으로서 다른 생물이 살 수 있는 습도 및 토지 상태를 만들어줄 수 있고
비를 저장하는 역할도 합니다.
이로 인해 홍수나 강의 침식등을 예방하는데도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또한 이끼는 1차 세계대전에 지혈을 위한 외과치료용으로 사용되기도 했으며
중국에서 선류라는 이끼 종류를 식물기름과 혼합해서 상처 치료 등에도 사용했습니다.
예전에는 이끼가 침대의 속재료 및 건축재료로 사용되기도 했었습니다.
단점으로는 이끼는 수분을 머금고 있다보니 미끄러워 간혹 사고의 위험이 되기도 합니다.
지의류는 균류와 조류가 조합을 이루어 상리공생하는 식물군을 말합니다.
흔히 이끼류로 오인하기 쉬우나 현미경으로 관찰하면 균체라고 부르는 곰팡이류의 균사로 형성된 기질 안에 지의조라고 부르는 수백만개의 조류가 엮어져 있습니다.
[네이양 출처]
내리는 길 우측으로 칠형제봉이 보입니다. 속리산에 유명한 "산수유릿지"도 아마 그곳에 있지 않을까 싶구요.
이강년(李康秊)
1880년 무과에 급제해 용양위부사과(龍驤衛副司果)로서 선전관이 되었다. 그러나 1884년 갑신정변이 일어나자 사직하고 낙향하였다. 1895년 명성황후 민씨(明成皇后閔氏)가 시해되고 단발령이 내려지자, 1896년 1월 11일 가산을 털어 문경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안동관찰사 김석중(金奭中)과 순검 이호윤(李浩允)·김인담(金仁覃)을 체포해 농암(籠巖) 장터에 운집한 군중 앞에서 효수하였다.
06:32분, J3대원은 이런 평지길은 발을 땅에 디디지 않습니다.^^ ㅎㅎ~
위험지대를 다 내려왔다 싶으면 무덤 직전에 있는 바위에 희미하게 우측으로 견훤성으로 가는 길이 안내되어 있습니다.
화서면 속리산과 견훤성
견훤의 전설은 문경시 가은읍과 농암면, 상주시 화서면 하송리 등지에 펼쳐져 있다.
가은읍의 갈전리 아차마을은 삼국유사가 전하는 견훤의 고향이다. 견훤이 태어났다는 곳이 금하굴이다. 아차마을은 오리가 호수에 앉은 형국과 금비녀가 땅에 떨어진 형국이라는 명당이 있는 곳이다.
견훤성은 문경시 농암면 농암리 성재산과 상주시 화서면 하송리 대궐터산과 속리산 문장대 입구의 장바위산 정상에 있다. 옛 모습이 가장 잘 보존된 성이다.
성재산 견훤성은 겨우 흔적이 남아 있을 뿐이지만 농암면 농암리에서 오르면 30여분이면 오를 수 있고 견훤과 견훤의 누이가 힘을 겨뤘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다.
정월 기세배가 이뤄지던 모산굴은 가은읍 성저1리에 있다. 마을 사람들이 신성시하는 곳이니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
‘후백제대왕신위’라고 적힌 위패를 모신 산제당은 상주시 화서면 하송리 청계마을에 있다. 청계사를 지나 대궐터산으로 오르면 견훤성이 있다. 견훤이 용마를 얻었다는 말바위는 농암면에서 궁기리로 들어가는 길목인 연천리에 있다. 궁기리는 중궁의 느티나무를 빼놓지 말아야 한다. 절골에 절터라고도 하고 궁터라고도 하는 축대가 남아 있다. 폭포와 약수는 인근에서는 알아주는 명소라고 한다.
문경 백두대간이 이렇듯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것은 승천하는 용의 몸짓을 닮은 탓이다.
눈으로는 손을 뻗으면 닿을 것만 같은 지척인 산봉우리도 막상 걸어보면 끝없는 시간과 체력을 요구한다. 동과 서를 잇던 산줄기가 급작스레 남과 북으로 방향을 바꿀 정도로 굴곡이 심한 탓에 그 산줄기가 품어내는 계곡 또한 깊었다.
문경 백두대간의 남쪽 끝 청화산(984m)과 조항산(951m)이 어깨를 나란히 한 하늘 금에 등을 기댄 궁기리 역시 긴 골짜기에 발을 뻗고 견훤의 전설을 들려주고 있다.
역사는 왕건에 무릎 꿇은 견훤을 도적 무리의 두목쯤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문경시 가은읍과 농암면, 상주시 화서면 등 궁기리 인근의 마을에서 견훤은 잊을 수 있는 인물이 아니다. 아차, 말바위, 연천, 궁터, 대궐터 등 땅이름에 견훤은 살아 있다.
삼한 통일의 꿈을 달구던 청년 견훤의 웅비가 1천년도 넘는 긴 세월 강을 흘러오면서도 잊지 못하는 것은 무슨 연유인가. 고향이기 때문이라는 답변에 고개를 끄덕이기에는 견훤의 흔적은 너무나 깊고 넓다. 게다가 전설은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의 자취와 견훤의 자취를 혼동하고 있었다.
궁기리 견훤의 자취와 함께 묻어나는 경순왕 행궁의 이야기를 보면 궁기리 초입의 연천리 이름의 유래를 왕의 가마(연, 輦)가 내(천, 川)를 건넜기 때문에 생긴 이름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연천리를 건너 북으로 올라가면 희양산 봉암사에 닿을 수 있다. 봉암사 극락전에는 경순왕이 머물렀다는 기록이 전하고 있다. 경순왕이 궁기리에 피난을 왔다가 장수의 전사소식을 듣자 불길하다며 봉암사로 자리를 옮겼다는 것이 전해들을 수 있는 전설의 한 갈래였다.
견훤은 천년 세월 이전의 사람이다. 그 긴 세월은 견훤을 역사의 질곡에서 건져내 신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농암면 청암중학교 운동장에 남아 있는 골맥이에, 상주시 화서면 하송리 송내마을의 골맥이 정수리 부분에 서 있는 자연석은 견훤의 다른 모습이다.
그곳에서 견훤은 마을의 허전한 지세를 누르고 사람들에게 용기를 북돋워준다. 매년 정월이면 ‘동고사를 잡숫는 신’의 반열에 올라서서 산골마을 사람들의 “상부상조하는 사촌지정(四寸之情)”을 나누게 한다. 하송리 청계마을 산제당에서 만나는 ‘후백제대왕신위’라 적힌 위패는 신으로서 견훤의 위상이 얼마나 확고했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이 모든 것은 과거일 뿐이다. 골맥이 돌산 위에 금줄을 두르고 곧추산 자연석이 견훤의 다른 모습임을 아는 이들도 자꾸만 줄어만 간다. 전국에서도 으뜸이었다는 풍물은 소리를 잃은 지 오래다. 멀리 상주까지 견훤의 전설을 간직한 마을 사람들의 유대감을 다져주던 정월 기세배 풍습도 이제는 기록으로만 전달되는 사라진 무형의 문화재가 돼 버렸다.
07:57분, 제가 끝날 무렵 해지기 전에 4-2소구간 늘재에 도착하였습니다.
밤티재는 산으로 오르지 못하도록 울타리가 쳐져 있습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신선대 휴게소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음료를 보충했지만 밤티재에 푸른바다님이 대포시켜둔 콜라와 음료를 꺼내 재차 요긴하게 사용하였습니다.
청화산 오름길 속리산의 조망이 최고로 좋은 곳에 청화산농장 사장님이 만들어 두었다는 정국기원단입니다.
일본풍이라 하더군요. 어쨌든 최고의 조망지를 야등으로 올랐습니다.
이곳에서 속리산에서 밤티재로 내리는 화북 장암면 견훤성 아래 이강년선생 묘까지 살펴본다면 대단하신 겁니다.
청화산을 오르며 `청화산인`으로 불리우며 사대부를 집중 해부한? 청담 이중환선생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조선후기 문신으로 본관은 여주(驪州). 자는 휘조(輝祖), 호는 청담(淸潭)·청화산인(靑華山人)이다. 이숭진(李崇鎭)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영(李泳)이고, 아버지는 참판 이진휴(李震休)이며, 어머니는 오상주(吳相胄)의 딸이다. 성호 이익(李瀷)의 재종손(再從孫)이자 문인으로 그의 문하에서 실사구시(實事求是) 학풍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조선후기 문신으로 본관은 여주, 자는 휘조(輝祖), 호 청담(淸潭)·청화산인(靑華山人)이다. 아버지는 참판을 지낸 이진휴(李震休)이며, 어머니는 오상주(吳相胄)의 딸이다. 성호 이익의 그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워 일찍부터 실사구시의 학풍을 이어받았다.
1713년(숙종 39)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를 거쳐 1717년 김천도찰방(金泉道察訪), 1719년 승정원주서, 1722년(경종 2) 병조정랑·전적을 역임하였다.
영조가 즉위하자 목호룡(睦虎龍)의 당여로 구금되어 1725년(영조 1) 2월부터 4월까지 네 차례나 형을 받았고, 이듬 해 12월 섬에 유배되었다가, 다음 해 10월에 석방되었으나 그 해 12월에 사헌부의 탄핵으로 다시 유배되었다.
유배에서 풀려나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일정한 거처도 없이 이곳 저곳을 떠돌아다니면서 세상의 온갖 풍상을 다 겪으면서 살았다 한다. 그리하여 전라도와 평안도를 제외한 우리 나라 전역을 두루 답사했으며, 이 과정에서 당시 전국의 인심과 풍속 및 물화의 생산지·집산지 등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 방면에 특히 관심을 가지게 된 동기는 관직에서 물러난 사대부들이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보자는 데 있었다. 그가 가장 좋은 곳을 선정하는 기본 관점은 인심과 산천이 좋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 교류가 좋은 곳이었는데, 이러한 것을 바탕으로 쓴 저서가 바로 『택리지』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이중환 [李重煥]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01:05분, 어떻게 올라왔는지 청화산 오름이 이렇게 힘들 줄이야~^^
충분히 휴식을 취해 덜 힘들어야 할 청화산 오름이, 순진하게 보았는데 사람 잡더군요.
청화산에서 이정표가 번연히 있음에도 청화산농장으로 내려갔던 일, 중간쯤 내려오다 원적사로 알바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청화산( 靑華山 984.3m )은 경북 상주시 화북면,문경시 농암면, 충북 괴산군 청천면등 3개시군의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그 중앙에 우뚝 솟아 있다. 경상북도 문경시의 농암면 화산리와 상주시 화북면 입석리,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 삼송리 경계에 있는 산이다(고도 : 984m). '청화' 지명은 『택리지』에 "청화산은 내외 선유동仙遊洞)을 뒤에 두고 앞에는 용유동(龍遊洞)을 임하였다. (중략) 모양이 단정하고 좋으며 빼어난 기운이 나타나서 가리는 것이 없으니 자못 복지이다."라는 기록에 등장한다. 우복동(牛腹洞)이라는 명당이 있다고 전해지며, 청담(淸潭)·청화산인(靑華山人)이란 호를 갖는 이중환(1690~1752)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기도 한다. 가령 『상주지명총람』(2004)에는 이중환이 이 산을 좋아해 여러 해 머물렀고 그 호까지 청화산인으로 지었다고 소개하고 있다. 『해동지도』에는 대야산으로부터 맥을 이어 청화산이 있는데 그 아래에 용유동이 표시되어 있고, 『청구도』에는 청화산 바로 옆에 내선유동(內仙遊洞)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청화산
03:51분, 조항산으로 가는 등로가 험합니다.
중간에 시간도 벌겸 30분만 눈을 감았다가 가자고 누웠는데, 중간조 일산님과 하이디장군님에게 잡혀버리고 말았습니다.^^
03:57분, 낮이었다면 삼송리 저수지가 훤히 보였을텐데.... 헤드랜턴 불빛에 흠칫 놀라 쳐다보면 노란 달이 환하게 웃고 있네요.
조항산[鳥項山, Johangsan]
충청북도 괴산군의 청천면 삼송리와 문경시 농암면 궁기리의 경계가 되는 산이다(고도:954m). 백두대간 줄기에 속하는 산으로 북으로 대야산과 남으로 청화산과 이어져 있다. 이 조항산과 청화산 사이에 난 남쪽의 가파른 고개가 갓바위재로서, 청천면 삼송리에서 문경시 농암면 궁기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궁기리에는 견훤의 아버지 아자개의 고향인 궁터마을이 있다. 괴산의 명산 35곳 중의 하나이다. 조항산(鳥項山)이란 이름은, 봉우리가 새의 목처럼 생겨서 붙여졌다고 한다. 『구한말지형도』에는 이 산의 지명이 표기되어 있지 않지만, 『조선지형도』에서는 현재와 같은 지명으로 표기되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조항산
04:29분, 서서히 날은 밝아오고,,, 고모샘의 위치를 알아야 짐이 줄고 여로가 편안합니다.
바위속에서 구슬이 구르듯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리네요. 수량도 풍부하고 물맛도 좋습니다.
06:35분, 밀재를 넘어 대야산으로 오릅니다.
06:39분, 예전에 대야산 정수리에서 곧바로 8m정도 급전직하 양발을 벌리고 줄 하나에 의지해 내려섰는데 지금 보니 정확하니 그 지점을 카메라가 주시하고 있습니다. 카메라를 피해 옆으로 돌았는데 계속하여 대야산 내림길이 유격훈련장입니다.^^
높이는 931m이다.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과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에 걸쳐 있는 산이다. 속리산국립공원에 속해 있으며 백두대간의 백화산과 희양산을 지나 속리산을 가기 전에 있다. 계곡이 아름다운 산으로 경상북도 쪽에는 선유동계곡과 용추계곡, 충청북도 쪽으로 화양구곡이 있다. 대하산·대화산·대산·상대산 등으로도 불리지만 1789년 발행된 문경현지에 대야산으로 적혀 있다.
산행은 일반적으로 이화령을 넘어 문경시를 지나 가은읍 벌바위에서 시작한다. 계곡을 따라 난 신작로를 걸어가면 서쪽으로 기암이 두드러진 산이 올려다보인다. 이 계곡이 용추계곡인데 입구에 '문경팔경'이라고 새긴 돌비석이 있다. 용추계곡의 비경 중 으뜸으로 꼽히는 용추폭포는 3단으로 되어 있으며 회백색 화강암 한가운데로 하트형의 독특한 탕을 이루고 있다. 용추의 양쪽 옆 바위에는 신라시대 최치원이 쓴 세심대·활청담·옥하대·영차석 등의 음각 글씨가 새겨져 있다.
용추에서 약 20분을 오르면 바위와 계곡에 달빛이 비친다는 월영대가 나온다. 이곳은 다래골과 피아골의 합수점이다. 계곡을 따라 약 2시간이면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정상 부근은 경사가 심하고 길도 험해서 바위를 기어오르고 수풀을 헤치며 가야 한다. 정상은 10평 정도의 바위로 삼각점과 산 이름을 적은 나무푯말이 서 있고 백두대간의 올망졸망한 봉우리들이 조망된다. 정상을 가운데 두고 북쪽에는 불란치재, 남쪽은 밀재가 있다.
하산은 촛대봉을 거쳐 불란치재로 갈 수도 있지만 길이 험하며 이 코스로 갈 경우 총 산행시간이 약 7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대부분 남쪽 능선을 따라 밀재 쪽으로 내려가며 총 산행시간은 5시간 안팎이 걸린다. 밀재는 경상북도와 충청북도의 경계를 이루는 고개이다. 문경시내에서 가은읍까지 직행버스를 이용한 뒤 가은읍에서 벌바위행 시내버스로 갈아 탄다. 산과 가까운 가은읍 완장리에는 의병장 이강년의 생가가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대야산 [大耶山] (두산백과)
07:28분, 촛대봉을 오르다 뒤돌아 대야산을 바라봅니다. 구름까지 거느리고 있어 신령스런 분위기네요.
저 깍아지른 절벽을 안전장치도 없이 한줄기 밧줄에 의지해 내려왔습니다. 매우 위험하니 웬만한 분들은 접근하시면 안되겠죠~
07:31분, 미륵바위가 있는 촛대봉을 지나고 마지막 곰넘이재는 정상석을 찾을 수 없네요.
곰넘이재에서 버리미기재로 나가는 탈출로는 작전과장이신 구구님이 바닥지로 편안하고 안전하게 유도해 주셨습니다.
어느 사이에 지름길로 오셔서 곰넘이재까지 올라 선두를 유도해 주시네요. 작전의 귀재이십니다.^^
08:40분, 4구간 버리미기재에 도착하였습니다.
구구님 덕분으로 울타리를 넘지 않고 이렇게 옆으로 나올 수가 있었지요. 자연보호란 이렇게 울타리를 훼손하지 않고 등로를 완결하는 것입니다.^^
버리미기에서 저수리치를 넘어 쌍곡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작년에 쌍곡환종주로 한바퀴 돌아보아 반갑기만 합니다.
다만 가뭄으로 계곡에 수량이 풍부하질 못하네요. 서둘러 다리 밑으로 가서 간단하게 몸을 씻고, 회식 준비에 나섭니다.
쌍곡계곡[雙谷溪谷]
삼국시대에는 이 지역에서도 한반도의 패권을 노리는 전투가 벌어졌다.
백제군과 신라군이 칠성평야에서 맞붙었는데, 싸움에서 진 장군이 느티나무에 머리를 받고 자결했다고 한다.
그 때부터 이곳은 괴주(槐州), 괴양(槐壤) 등으로 불리다가 조선 초기부터 괴산(槐山)으로 불리게 됐다는 것이 괴산군 지명의 유래다.
괴산군 칠성평야 남쪽으로 우뚝 솟은 산이 군자산(君子山·948.2m·큰군자산)으로 속리산 국립공원 쌍곡분소 관할이다.
이 산의 옛 이름은 군대산(軍垈山)이었다.
이 산에서 기도를 하면 옥동자를 얻는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지금도 산자락에는 돌을 던져 바위를 맞추면 아들을 낳는다는 아들바위가 있고, 또 음기가 세어 자식을 잘 낳는다는 전설이 있어 무속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군자산은 이 산에서 멀지 않은 백두대간(장성봉)으로부터 가지를 친 능선상의 최고봉이다.
장성봉 방면에서 서쪽으로 가지를 치는 능선의 첫 봉우리가 지난 주 산행한 막장봉(868m)이고, 계속 서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제수리치를 만나 가라앉았다가 다시 남군자산(南君子山·827m)을 일으켜 세운다.
군자산 남쪽에 있다고 불리어지는 남군자산에서 능선은 두 갈래로 갈라진다.
북쪽으로 가지를 뻗어 약 4.5km 거리에다 세차게 들어올린 산은 큰군자산이고, 남군자산에서 계속 서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칠성면과 청천면 경계를 이루며 675m봉에 이르면 또 두 갈래로 갈라진다.
북서쪽으로 갈라진 능선은 옥녀봉(玉女峰·604m)과 아가봉(雅佳峰·541m)을 지나 산막이옛길이 있는 달천에 모두 가라앉힌다.
달천에 내려앉기 전 옥녀봉 우측으론 유명한 갈론9곡이 있다.
675m봉에서 남으로 갈라진 또하나의 능선은 분맥을 하여, 한 자락은 갈모봉(582m)에서 관평천 선유동(仙遊洞)으로, 또 한 자락은 가령산~사랑산을 빚은 다음 화양구곡으로 가라앉는다.
으와~~ 배가 억시로 고픈데 오늘 뒤풀이는 소고기로 준비해주셨네요.^^
띠리띠리~ 후미가 곧 도착하니 고기를 구워라 오바~~
잠결에 무전연락을 받고 부리나케 일어나 고기를 굽고 계시는 막내님!!^^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몸을 씻으러 가기 바쁠텐데도 짐을 다 꺼내고 회식할 준비를 먼저 하시네요.
항상 유머러스하시고, 힘도 장사이시고, 배낭 빵빵하시고.... 막내님의 새로운 면을 또 발견하였습니다.^^
이번 산행에서 너무너무 많은 변화도 보여주셨습니다.
첫째 술을 많이 드시지 않았다는 점, 둘째 짐이 가벼워졌다는 점, 셋째 졸지 않았다는 점,,,,,
후미가 곰넘이에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고,
푸른바다님과 대대장님이 시원한 맥주와 음료를 준비하여 버리미기재로 마중을 나가 후미를 인솔하여 돌아왔습니다.
이 자리에서 총대장님이 선두가 넘 빠르다는 말씀....과
대간을 마치게 되면 일정금액의 찬조금을 준비하는 관례가 있다는 말씀,
23차 대간을 마쳤을때 세레모니에 와주시는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하자는 말씀
버스기사에게 안전한 운행외에 큰 도움을 바래서는 안된다는 말씀과 더불어 23차 버스를 섭외해주신 분께 사례를 해야 한다는 말씀...
같은 23차 안에서 마음을 열고 통하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열띤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선두가 너무 빨리 마쳐 선두후미 갭이 많이 생기고 이로 인해 기사님의 수면시간이 없다며 선두를 나무라는 듯한 말씀이 먼저 나오고,
후미가 너무 지체되는게 불만인 선두로선 일단 선두와 후미 모두를 만족하는 진행이 먼저이고 찬조금과 세레모니는 나중의 문제라고 말씀을 드리는 과정에서 목소리가 커지기도 하였습니다.^^
선두와 후미가 서로 다른 불만을 가지고 있는데도 4차까지 오면서 이를 해소하고 간극을 좁힐 자리가 마련되지 못했다는 점...
후미보고 조금 더 산행에 집중해 달라고 채근하면 스트레스일 수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선두에게 속도를 자꾸 늦추라고 말씀하시면 그 또한 스트레스입니다.
산행 스타일이야 다를 수 있습니다.
선두와 후미가 서로 인정하고 속도와 페이스대로 걸으며 동기로서 일체감을 가지면 되는 것을.... 크게 어럽지 않은 문제입니다.^^
뒤풀이에서 많은 대화를 나눴고, 버스에서도 시끄럽게 뒤에서 떠들지나 않았는지 반성합니다. ㅠㅠ
총대장님이 그냥 가기 섭섭하다고 사당동에서 2차를 외쳐 주셔서 마지막 술꾼들이 남았습니다.^^
무동처사로 그냥 살아가기가 더 어려운 세상입니다.^^
총대장이신 우리 고문님은 세월따라 시대 따라 100세 인생을 살고 계십니다.
현재도 청년으로 일선에서 의욕에 찬 활동을 하실 수 있는 연세라는 거죠.
이름만 수도권이지 활동하는 분은 소수에 그치고 있습니다. 고문님을 중심으로 패권을 이루고 있는 분들이 계십니다.
쉽게 나왔다가 빠져 나가고 오고가기 편해야 산방이 살아납니다.
기존 관행을 내세워 J3의 법도를 따르라고 하면 좋아할 사람 없습니다. 물이 흐르지 않고 환기가 막히면 썩게 됩니다.^^
깊게 관여하고 싶은 마음 없습니다. 다만, 산을 좋아하고 장거리 종주가 좋아 J3를 찾았습니다.
광신도 처럼 맹목적으로 J3에 열광하는 정도는 아닙니다. 또 그것을 원해서도 안됩니다.
어차피 이어진 인연, 보편 타당한 상식이 건강하게 자리하는 J3가 되길 바랄 뿐입니다.^^ J3 힘~~~~!!!^^ 아자아자!!!^^
비가 오거나 겁나 더우면 클리어입니다~^^
거기들렀다 후미에 쫒기면 또 달려야합니다
그게 더 힘들지 않을까요??
청명 형님...너무 욕심이 과하시네요..
2개 정도 악휘봉.갈미봉 정도만 하시죠
아 ..당연 희양산은 가야 합니다
소림사주방장이 지키고 있음 우짜지요? 케이님 단증 많음 나눠주세요~ ㅋ^^
난 퐁라라가 언급한 곳들 다 가봐서 또는 안갈거임. ^^;;
형님! 후기 마감 지키셔야죠~
목빼고 기다리고 있어요~^^
모두 선두들은 봉 찍고 오샴 후미 오랫만에 선두 해 보아야겠네여 야호 신난다.뒷풀이에 늦기만 해봐라 걍 팍 ~~경위서 10장씩 써오라 해야겠어~~ㅋㅋ
세이님 헨폰 나 줘....
내가 배지 다~받아 올테니..
ㅎㅎ 별루 의미없음 걍경의서 쓸 준비하샴 ㅋㅋ
무박 이틀의 산행, 그 기록 작성하시는 것도 무박 이틀은 걸려셨을 듯 합니다.^^ 하여 읽는 사람도 밤새워 읽어야 도리가 될 듯 합니다만 밤은 새우지 않고 정독에 정독을 합니다.^^
무지개가 아름다운 것은 각자의 빛깔을 갖고 있으되 함께 할 때 더 빛나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팀이란 여러 빛깔의 사람이 모여 하나가 되는 일이지요.
저의 소견에는 최고의 팀은 무지개와 같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서로의 빛깔을 존중하면서... 함께 할 수 있는 것, 결코 쉬운 일이 아니겠지요.^^
대간23차님들은 어떤 무지개가 될지 기대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원나라에 끌려간 공녀들 있자나여~
그곳에서 황실로 들어간 여자도 있고,
되돌아 오면 환향녀가 되는거고~
요즘은 국제결혼도 빈번한데... ㅠ
몽골에선 우리나라를 "솔롱고스"의 나라라 부른데요.
무지개처럼 아름다운 고향을 그리며,
동쪽 하늘을 바라보며 노스텔지어를 달랜 그 여인네들의 애환도 읽혀지죠~
정작 무지개 나라, 삼천리 금수강산에 살고있는 우린 행복을 잘 모르는것 같아서~^^
수행중님 댓글도 무쟈게 길어서 아는 얘기 함 히봤슈~~^^
무지개가 그런 의미가 있었군요.
이 글은 퍼다가 좀 써 먹을께요. ㅎㅎ~
함께 어우러져
대간길 걷는모습
보기좋고 부럽습니다
항상 즐건 산행되길 바랍니다
네, 대장님!
나이가 한두 개도 아니고 재미가 없으면 까이꺼 만들면 되는거구요.^^
그나저나 대장님은 언제 오실련지... 세총님이 몹시 기다리던데요~ ㅋ^^
산행기 읽다가 시간 다갑니다. 읽기도 힘든데 이런 산행기 작성하느라 인터넷 서핑하고, 글쓰고 하시느라 정말 수고가 많으십니다.
글쓰기를 즐기지 않으면 절대로 할 수 없는 글이 나오는군요.
험난한 속리산 구간 잘 지났으니 큰 어려움은 다 지난 듯 합니다.
항상 안전하게 즐기는 산행을 하시기 바랍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네 총대장님!!^^
건질건 모두 건지며 가고픈데 읽기에 부담스런 애로가 있네요. 조화롭게 연구를 해보겠습니다.^^ 긴글 다 읽으셨다니 죄송하고 감사하고~^^
백두여지승람을 편찬 하셔야할 듯 합니다 가는 곳곳 사연을 기록해 주셔서 공부 많이 하고 갑니다 고구려의 기상 까마귀 대장님의 보이지 않는 영향력이 느껴집니다 원기회복하신 고구려의 수상 대대로님의 숨은 힘이 느껴 집니다 9988님의 활약상이 보일들 한 악휘봉 기대됩니다 산에산에 깨소금이 쏟아지는 23차 인듯 합니다 다음구간의 9988님의 활약상 보여야 하는데
총대장님과 기존 수도권 인맥이 단합이 잘 되어 저흰 다른 걱정은 없습니다만 오래 활동한 기득권을 중심으로 수도권 패권 잔치엔 개입되고 싶지 않습니다.^^
사람이 정치적 동물인지라 패를 나눠 친목을 다지는게 넘 당연한 겁니다만
얽키고설키고 하는 사람관계 그만 했음 싶어 전 빠지고 싶습니다.^^ 그냥 순수하게...
23차 안에서 수도권지부 정치적인 부분과 순수하게 산행을 위해 모인 분과의 괴리를 극복하기 위한 과정이었다고 보여지고요.
중심이 산행 외적인 곳에 있다보니... 금새 바로 잡히네요. 그만큼 건강하다는 겁니다.^^
구구님은 이미 4차 비탐지역 두곳에서 충분한 활약을 보이셨고 배식의 중책도 담당하시는지라..^^
산행기가 아니라 동국여지승람을 읽는듯한 해박한 인문.지리학 강의.. 공부잘하고 갑니다.
서로를 인정하며 전체를 아우르며 조화롭게 진행하는것 대장.대원의 공동책임이라 생각되며
다음구간도 즐거운분위기에서 션하게 진행하리라 믿습니다.
23차 전대원의 무탈완주를 빕니다. 더위에 고생하셨습니다.
전국지부 많은 회원님들이 관심과 힘을 주신다면 23차 단합하여 걷는거야 문제될게 없습니다~^^ 관심과 응원 감사드립니다. 풀모리님!! ^^
백두대간을 통틀어 三派水(삼파수)로 불리는곳은 속리산이 유일하죠
천왕봉에서 왼쪽으로 흐르는물은 한강으로
동쪽으로는 흐르는물은 상주를 거처 낙동강으로
남쪽으로 흐르는물은 금강으로 흘려 보내는곳입니다.
흐르는 물처럼
막히면 돌아가고 낮은곳으로 흐르는 물처럼
모든 사물에 생명을 주고 흐르지만 정작 물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흐르죠
대간팀들도 흐르는 물처럼 진부령으로 유유히 흘러 가시길 기원드립니다.
더운날 고생 많으셨구요
네~ 방장님!^^ "상선약수" 입니다~^^
그러고보니 길게 잡았는데도 후기에 삼파수가 빠졌네요.ㅋㅋ
흘러흘러 기맥, 분맥, 단맥 다 찾고 싶은데 여의치가 않습니다.
어떤때는 머리 깍고 산속에 들어가 살고싶어요~^^ 깨끗하고 정갈한 환경에서 염불이나 하는 스님들이 부럽습니다.^^
힘든두간도 여유롭게 즐기는 선두조가 부럽네요
수고많이했어요^^
신중하신 안산형님!^^
후미조 덕분에 무리는 안되는거 같아요.^^
죽자사자 거리로 간다면 아무래도 탈 날 수도 있을텐데요.^^
과유불급

말미에 좀 신중했어야지 싶네요
99님도 참!!!^^
졸업논문 준비차 설문조사 한건데 잘 나왔습니다~^^
다들 50이 넘은 장성한 애기들이에요~^^
ㅠㅠ
책읽기 시러하는 나 장편소설을 다 일었내요.
공부 잘하고 갑니다.
남은 길도 즐겁게 동행 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해피맨형님!^^
오탈자가 없나 세번은 살펴봤습니다.
틀린 데가 있어도 이제 더는 수정을 안 할려고요.^^ ㅋㅋ~
풍님의 글 정독을 하였습니다
쓰시느라 애써셨습니다.
산이야 시간 가면 늦고 빠름이 차이 날뿐 별로 앞선다고 자랑할것도 좀 늦는다고 기죽을 일도 없더이다
저하고 산 다니는 선배님들 산길 4~50년 전설같은 분들에게 여러모로 느끼고 배웁니다
풍님의 후기도 배우고 싶네요.
저는서울 살면서 j3 활동은 안하는데 한번은 뵙고싶네요.
다음 후기도 기다려 집니다.
건강 하십시요.
네~ 동선님^^ 빠르고 늦고 차이보다는 리듬이 깨질뿐....
운영상의 문제로 보여집니다.^^
최소한으로 먹고, 최소한으로 쉬고, 자연샘터를 찾아 최소한으로 가볍게....
휘파람 불며 자유롭게 홀로 걷기로 하였습니다.^^
다만, 23차가 계획대로 끝나야 하니 제 짜깁기식 후기는 더이상 전해드리지 못해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아이구 ㅡ이제 후기가 없다니 아쉽네요
역시 산길은 홀산이 좋습니다
제가 오지산행을 주로하는데 10에 7은 혼자 합니다
가고싶은데로 가고싶은 만큼 가다 옆길로도 빠져보고
가끔씩은 길잃고 삼밭에 들어갔다가 오해밭고 티격태격 할때도 있지만^-^
또 가끔씩은 산악회도 그리고 봉따먹기. 작명의 대가분들 하구 산행때는 피식 웃음이 나올때도 여럿이 가는것도 나름 즐겁더이다.
앞으로 염천 대간길 건강조심 하시고 무탈 마치십시요.
네~ 다행히 제가 더위에 무척 강합니다.^^
오가는 분들과 인사하며 현명하게 진행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