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눈타령

[느티나무]

정말 세월 앞에 장사없나 보다. 젊은 시절 시력 2.0을 자랑하던 남편도 오십 넘어서 돋보기를 쓰기 시작하더니 매해 도수를 높이고 있다. 최근에는 안경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운전 면허를 갱신할 때가 다가오니까 걱정이 태산이다. 얼마 전에는 눈을 찡그리며 멀리 있는 물체의 선이 휘어져 보인다는 것이다. 유튜브에서 그게 황반변성의 증상이라고 했다며 혼자 진단을 내리고는 동네 안과 의사가 눈영양제나 처방해 주며 자신의 하소연을 시큰둥하게 듣는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돌아가신 시어머니는 백내장 수술을 실패한데다 황반변성까지 와서 매일 "내 눈, 내 눈" 하시며 어지간히 속을 끓이셨다. 달리 방도가 없다는 걸 아시면서도 포기가 되지 않으셨는지 자식들 볼 때마다 눈이 환하게 보이면 얼마나 좋겠느냐며 우는 소리를 하셨기 때문에 어머니를 뵙고 돌아온 날은 온종일 우울하였다. 그래도 눈에 좋다는 영양제를 계속 드신 덕분인지 돌아가실 때까지 시력을 그럭저럭 유지하셨다. 그런 까닭에 남편이 황반변성에 대해 과민 반응을 보이는 걸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만, 대를 이은 눈타령을 듣고 있노라면 신경이 곤두서다못해 화가 치민다. 50년 넘게 콘택트렌즈에 의지해 살고 있는 나 같은 사람도 있는데, 평생 좋은 눈으로 살았으면서 그 나이에 노화로 눈이 좀 흐려졌기로서니 그렇게 원통할 일인가 말이다. 어쩌면 나 자신도 남편의 눈이 혹시 잘못될까봐 불안해서 괜히 더 퉁명스럽게 굴었는지 모르겠다.

친정 아버지가 안경을 끼셨지만 다른 형제들은 나만큼 시력이 나쁘지 않은 걸 보면 유전적인 문제는 아닌 듯 싶다. 나는 또래보다 키가 커서 늘 교실의 뒷자리에 앉았는데, 처음 칠판의 글씨를 읽을 수 없어 불편을 느꼈던 건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일류 중학교에 보내겠다고 몸이 약한 딸을 밤 늦게까지 무리하게 과외 공부를 시킨 엄마의 과욕이 빚은 결과라고 짐작되지만, 시키는대로 고분고분 말을 너무 잘 들었던 내 탓도 없지 않으니 누굴 원망하랴. 안경을 처음 꼈을 때의 신세계도 잠깐, 급속히 시력이 나빠져 결국 중학교에 들어간 후 뱅글뱅글 도는 안경 대신 그때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된 콘택트렌즈라는 걸 하게 된 것이 오늘까지 이르게 되었다.

병은 자랑을 하라고 했다. 남편의 일로 답답해진 속을 풀려고 수필 카페에다 수다를 떨었더니 고맙게도 어느 회원님이 황반변성에 있어 권위자라는 모 대학병원의 안과 전문의를 소개해주셨다. 예약 문의를 하니 3개월 후나 겨우 한 자리가 빈다고 한다. 그때까지 지어 놓은 눈영양제를 먹으며 얌전히 기다리자고 했는데, 성질 급한 이 집안 사람들이 남편을 들쑤시는 바람에 일단 다른 대학병원에서 검사를 받아보기로 했다. 아침 일찍 아들이 예약해 둔 병원에 가서 챙겨 간 검사 의뢰서와 CD를 접수했다. 아직 진료 개시 전인데도 안센터 대기실에는 환자들로 북적였다. 남편은 검사 결과가 두려운지 얼굴이 잔뜩 긴장되었다. 산동 검사를 받으면 몇 시간 동안 눈동자가 확장되어 운전하기 힘들 거라고 해서 아들이 운전을 해주기로 했는데도 내가 보호자로 동행하길 은근히 바라는 눈치라 결국 못 이기는 척 따라 나섰다. 늙으면 애 된다더니 요즘 들어 부쩍 어디를 가든 내 손을 잡고 다니려 한다. 사실 나도 이제는 남편 없이 혼자 외출하는 게 왠지 어색하고 편치 않으니 누가 누굴 흉볼 처지가 아니다.

코디네이터의 설명을 듣고 호명하는 순서대로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았는데, 남편의 경우 안압이 높아질 위험이 있다고 해서 산동 검사는 생략했다. 아들과 함께 의사에게 검사 결과를 듣고 나온 남편의 표정이 뻘쭘한 채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차 안에서 아들이 상담한 내용을 들려주는데, 나 보기가 민망할 만도 하겠다 싶어 웃음이 터져나오는 걸 애써 참았다. 남편은 경주 안과 의사에게 그동안 왼쪽 눈이 거북해서 진료 받고 있었는데, 지난 번 내원했을 때 의사가 오른쪽 눈에 문제가 있다고 자꾸 엉뚱한 소리를 한다며 분통을 터뜨리는 바람에 나도 그 의사가 오진을 한 줄 알고 같이 분개했었다. 그런데 대학병원 검사 결과도 경주 안과와 다르지 않았다. 왼쪽 눈은 백내장으로 시력이 오른쪽 보다 좀 떨어진 상태이지만 수술할 정도는 아니고, 오른쪽 눈은 황반변성이 아니라 망막 아래 쌓인 찌꺼기로 해서 물체가 굴곡져 보이는 것인데 찌꺼기가 저절로 떨어져 나갈 수도 있으니 지켜보자는 명쾌한 설명이다. 시력도 괜찮은 편이라니 운전 면허 갱신하는데 지장은 없겠다. 남편은 안심이 되는지 이만 하길 다행이라고 하면서도 황반변성의 권위자라는 그 의사분에게 한번 더 진료를 받았으면 하고 미련을 보인다. 정말 힘든 환자를 위해 그분의 진료는 양보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내 의견에 남편은 마지못해 그렇게 하겠다고 한다. 매일같이 징징대던 그놈의 눈타령을 당분간 듣지 않게 되어 좋다고 했더니만, 의사가 어두운 데서 스마트폰이나 책을 보면 안압이 올라간다고 했다고 이제는 내 눈을 참견하며 나온다. 어젯밤에는 읽고 있던 소설책을 압수하겠다고 으름장까지 놓는 거다. 아이고, 기막혀라.

[belly진]

친구 아버지는 올해로
연세가 90세입니다.
노안으로 딱히 치료방법이
없는건지...
최근에 값비싼 주사를 1회
맞으셨다고 들었습니다.
느티나무님 글 잘 읽었습니다.

[느티나무]

제가 아는 분은 양쪽 눈에 황반변성이 왔는데, 햔쪽은 거의 실명상태라 치료할 수 없지만, 한쪽은 두달에 한번씩 주사로 시력을 유지한다고 하시더군요. 문제는 주사비가 고가라서 재력이 있는 사람만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