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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온의 색(색온)은 몸이 아니라 갈애
노랑
http://www.accesstoinsight.org
http://w3.cbeta.org목차
1. 머릿말
1-1 색온은 번뇌, 오온은 사람이 아니라 중생식이라고 나오는 경전
2. 오온과 오취온의 관계와 색온과 색취온이 같은 의미로 쓰이는 경
3. 색취온의 사전적 정의
4. 아비담마의 색취온(색온)의 사전적 해석
5. ruppana, ruppati의 뜻
6. 외도가 설명하는 요소설
7. 불교에서 설명하는 사대란 마음법 이다
8. 사계는 깨달아야 알고 사계(지수화풍계)는 18계를 인연한다.9. 사대(사계)를 설명하는경
10. 사대(사계)의 지대(지계)를 설명하는 경
11. Upadinam아비담마의 해석
12. 색온이 마음 법임을 보여주는 경
13. 오온이 12처(心)을 인연한다는 경
14. 색온은 소멸해야하는 것으로 나오는 경
15. 색온이 번뇌라고 나오는 대승경전
16. 결론
1. 머릿말
많은 교리서에 오온은 몸물질)과 정신으로 설명하고 오취온은 몸(물질)과 정신을 탐한 취착심으로 설명합니다.오취온은 오온에 탐심이 있는 것으로 설명되는데 과연 오온이 몸(물질)과 정신이냐는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오온을 몸과 정신으로 보는 것은 아비담마(청정도론),아비달마(구사론) 불교이고 오온을 중생의 망념(번뇌)으로 보는 것은 부처님의 말씀인 근본불교입니다.늘 색온이 말썽입니다. 색온이 무엇인가를 집중적으로 알아봅니다.
먼저 외도가 어떻게 주장하였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는데 외도가 설명하는 적취설 적취설자인 유물론자 아지타케사 캄발리는 일체를 지(흙),수(물),화(불),풍(바람)로 이루어 졌다고 주장했고, 기계적 불멸론인 파쿠다 캇타야나는 일체를 지(흙),수(물),화(불),풍(바람),명아(영혼) 7요소설을, 숙명론자인 막탈리 고살라는 일체를 지(흙),수(물),화(불),풍(바람),영혼(명아),허공,득수,고,락,생,사, 12요소설, 이 밖에 자이나교조는 니간카 나타풋타는 적취,전변을 모두 합하려 했는데 명아(jiva 정신), 비명아(ajiva물질, 허공,법,)으로 일체를 나눕니다.물질, 허공,법,)으로 일체를 나눕니다. -D.N.Vol 1 47p~86p참고(다나까니까야)
그리고 "아지타 께사깜발린은 인도에서 가장 유명한 유물론자이다. 그는 지수화풍의 네 가지 물질적 원소만이 참된 실재라고 하여 영혼의 존재를 부정하였다: “인간은 네 가지 원소로 만들어졌으며, 목숨이 다하고 죽으면 땅은 땅의 세계로 돌아가고, 물은 물의 세계로 돌아가고, 불은 불의 세계로 돌아가고, 바람은 바람의 세계로 돌아가고, 모든 감각기관은 허공으로 돌아간다.” (초기불교연기성- 전재성)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비담마,달마불교에서는 오온을 인간이라 하며 지수화풍으로 이루어졌다고들 말합니다. 이리되면 적취의 외도들과 전재성 역에서 보듯 아지타 께사깜발린 유물론자와 같다고 볼수 있습니다. 또 서양철학자 데카르트도 물질정신 이원론을 주장 했습니다.아비담마가 색온을 물질이라 하면 외도설과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오온과 오취온의 관계를 알아보도록 합니다. 아함경은 동국역경원을 참고하고 니까야 빠알리본은 지면상 올리지 않고 링크로 연결합니다. http://suttacentral.net/ 이 사이트에는 빠알리어, 영어, 한문, 티벳어,산스크리트어도 있으니 참고 하세요.
초기경에는 색온이 번뇌라고 볼 수 있는 경전이 헤아랄수 없이 많은데(아함경은 주로 1,2,3권에서 많이 설함)
먼저 색온이 번뇌이고 오온이 사람이 아니라 중생식이라고 설명하는 경을 먼저 소개합니다.
1-1 색온은 번뇌(애), 오온은 사람이 아니라 중생식(번뇌)이라고 나오는 경전
<잡아함 59. 생멸경(生滅經)>
애욕(愛)과 기쁨(喜)의 발생이 곧 색의 발생이요,
애욕과 기쁨의 소멸이 곧 색의 소멸이다.
愛喜集是色集。愛喜滅是色滅。
명색(名色)의 발생이 곧 식의 발생이요,
명색의 소멸이 곧 식의 소멸이다.
名色集是識集。名色滅是識滅。
- 색의 발생을 몸의 발생이나 물질의 발생으로 설명하지 않고,애의 발생이라고 설명하지요.
또 오온(명색)의 발생도 '사람의 발생' 이라 설명하지 않고, 식의 발생이라고 설명합니다.
2. 오온과 오취온의 관계와 색온과 색취온이 같은 용도로 쓰이는 경
陰即受。為五陰異受耶。
非五陰即受。亦非五陰異受。能於彼有欲貪者。是五受陰
오온이 곧 오취온이옵니까. 오온은 오취온과 다르나이까."
오온이 곧 오취온도 아니요, 또한 오온이 오취온과 다른 것도 아니다.
다만 거기에 욕심의 탐함이 있으면 그것이 곧 오취온 이니라."
<M.N 109> <S.N.22.82 Puṇṇamā >
http://www.accesstoinsight.org/tipitaka/mn/mn.110.tha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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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ṃyeva nu kho, bhante, upādānaṃ te pancupādānakkhandhā, udāhu annatra pancahupādānakkhandhehi upādānan”ti?
"Is clinging the same thing as the five clinging-aggregates, or is clinging separate from the five clinging-aggregates?"
취(clinging)은 오취온(the five clinging-aggregate)과 같은 것인가? 그렇치 않으면 오취온과 취은 다른 것인가?
“Na kho, bhikkhu, taṃyeva upādānaṃ te pancupādānakkhandhā, nāpi annatra pancahupādānakkhandhehi upādānaṃ.
"Monk, clinging is neither the same thing as the five clinging-aggregates, nor is it separate from the five clinging-aggregates 취와 오취온과 같은 것도 아니고 오온과 다른(분리된) 것도 아니다.
Yo kho, bhikkhu, pancasu upādānakkhandhesu chandarāgo taṃ tattha upādānan”ti.
Just that whatever passion & delight is there, that's the clinging there."
비구들이여 오취온에 있는 욕탐을 취이라 한다.
- 이경은 '오온과 오취온이 같은 것도 아니지만 다른 것도 아니다' 합니다.즉 오온에 탐이 있으면 오취온이라 하는데
이말은 '탐욕이 있는 오온을 오취온'이라는 뜻입니다. 아래<법락비구경>과 비숫합니다. 그리고 눈여겨 볼문장은 '오온과 오취온이 다르지 않다' 라는 문장인데 아비담마,달마식으로 오온이 '인간존재'고 오취온이 망념이면 오온과 오취온은 동류 일수가 없으므로 '오온과 오취온은 다르다' 해야 할것 입니다.그러나 부처님은 '오온과 오취온은 다르지 않다'고 말씀 하신 것은 오온과 오취온이 동류급임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어진이여, 음(陰온)을 음이라 말하고, 성음(盛陰오취온)을 성음라 말하니, 음이 곧 성음이요 성음이 곧 음입니까.
음이 다르고 성음이 다릅니까? 법락비구니가 말하기를, 음이 성음 이기도하고 음이 성음이 아니기도 하다.
어떤 음(오온)이 곧 성음(오취온)인가.
색에 샘(번뇌)이 있고 受(탐)가 있으며 각·상·행·식에 샘(번뇌)이 있고 수(탐)가 있으면 이 음(오온)이 곧 성음(오취온)이다."
어떤 음(오온)이 성음(오취온)이 아닌가.
색에 샘이 없고 수가 없으며 각·상·행·식에 샘이 없고 수가 없으면 이 음은 성음이 아니니라.착하고 착하십니다, 어진이여."
賢聖。陰說陰盛。陰說盛陰。陰即是盛陰。盛陰即是陰耶。
為陰異.盛陰異耶。法樂比丘尼答曰。或陰即是盛陰。或陰非盛陰。
云何陰即是盛陰。若色有漏有受。覺.想.行.識有漏有受。是謂陰即是盛陰。
云何陰非盛陰。色無漏無受。覺.想.行.識無漏無受。是謂陰非盛陰。
毗舍佉優婆夷聞已。
- 이경은 '오온이 오취온인가'라고 묻자 '탐욕이 있는 색온은 색취온(망념)'이라 하고 있습니다.
'탐욕이 있는 색온'은 몸둥이(육체)가 아니라 망념입니다.
단백질인 몸둥이(육체)가 탐욕을 가지고 있다는 말은 넌센스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아래 나오는 경들은 구체적으로 색취온과 색온을 동일시 설명하고 있는 경들입니다.즉, 색취온이 무엇인가를 설명하면서 내용은 색온으로 대답하고 있습니다.그리고 색취온이란 번뇌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몸둥이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로 답변하고 있는데 번뇌가 무엇인가 묻는제 단백질 몸으로 답변하는 것은 논리가 되지 않겠습니다.그러므로 색온이 무엇을 뜻하는지 몰라도 마음의 문제인 것을 알수 있습니다.
오성음(五盛陰,오취온)이 다 괴로움이다. 어떤 것이 5성음의 괴로움인가. 이른바 색성음과 각·상·행·식성음이 그것이다.
어떤 것이 색성음인가. 이른바 저 일체 색은 사대와 사대로 지어진 것이다. 어떤 것이 사대인가.
이른바 지계와 수·화·풍계가 그것이다.
略五盛陰苦。 諸賢。云何五盛陰。謂色盛陰。覺.想.行.識盛陰。諸賢
云何色盛陰。謂有色。彼一切四大及四大造。諸賢。云何四大。謂地界。水.火.風界。
In short, the five clinging-aggregates are stressful. And which are the five clinging-aggregates? The form clinging-aggregate, the feeling clinging-aggregate, the perception clinging-aggregate, the fabrication clinging-aggregate, & the consciousness clinging-aggregate.
"And what is the form clinging-aggregate? The four great existents and the form derived from them. And what are the four great existents? The earth property, the liquid property, the fire property, & the wind property.
- 이경에선 오취온이 苦라 하면서 그중 '색취온은 사대의 색온으로 이루어 졌다'고 합니다.색취온과 색온을 같이보고 있습니다.즉 오취온과 오온이 같은 동류임을 알수 있는데 오취온이 苦라면 오온도 망념이란걸 알수 있습니다.색온이 몸둥이(육체)라면 색취온과 색온은 동류일수가 없겠습니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5수음이 있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이른바 색수음과 수수음·상수음·행수음·식수음이니라.
어떤 것이 색수음(色受陰)인가? 존재하는 색, 그 일체는 4대이거나 4대로 만들어진 색(色)이니, 이것을 색수음이라 하느니라.
또 그 색은 무상하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다. 만일 그 색수음을 남김없이 영원히 끊고, 끝까지 버리고 떠나며, 완전히 없애고, 탐욕을 떠나며, 고요히 사라지게 한다면 다른 색수음이 다시는 이어지지 않고, 일어나지도 않으며, 나오지도 않을 것이다. 이것을 묘함[妙]이라 하고, 고요함[寂靜]이라 하며, 버리고 떠남[捨離]이라 한다. 그래서 남아 있던 애정[愛]은 다하고 탐욕[欲]이 없어지며 번뇌가 완전히 소멸해 열반을 얻느니라. 어떤 것이 수수음(受受陰)인가?(이하 생략)
如是我聞。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
獨園。 爾時。世尊告諸比丘。有五受陰。何等
為五。謂色受陰。受.想.行.識受陰。 云何色受陰。
所有色。彼一切四大。及四大所造色。是名
為色受陰。復次。彼色是無常.苦.變易之法。
若彼色受陰。永斷無餘。究竟捨離.滅盡.離
欲.寂沒。餘色受陰更不相續.不起.不出。
是名為妙。是名寂靜。是名捨離一切有
餘愛盡.無欲.滅盡.涅槃。
- 이경은 '색수음(색취온)은 4대로 만들어진 색'이라 하므로 색취온과 색온이 동류임을 알수 있습니다.
<잡아함 46 삼세음식세경> <S.N.22.79. khajjani>
비구들이여, 저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색수음에 대해서 이렇게 배운다. 곧 '나는 현재에 색에게 먹히고 있다. 과거 세상에서도 이미 현재와 같이 저 색에게 먹히고 있었다'고 그는 다시 '나는 현재에 색에게 먹히고 있다. 내가 만일 다시 미래의 색을 즐겨해 집착하면 다시 현재와 같이 그 색에게 먹히게 될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그는 이렇게 생각한 뒤에는 과거의 색은 돌아보지 않고, 미래의 색은 즐겨해 집착하지 않으며, 현재의 색에 대해서는 싫증을 내고, 근심을 멸하고자 하여 멸하는 길로 향하느니라.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이 수상행식의 쌓임에 대해서도 이렇게 배운다.
彼多聞聖弟子於此色受陰作如是學。我今為現在色所食。過去世已曾為彼色所食。如今現在。復作是念。我今為現在色
所食。我若復樂著未來色者。當復為彼色所食。如今現在。作如是知已。不顧過去色。不樂著未來色。於現在色生厭.離欲.滅患.向滅。多聞聖弟子於此受.想.行.識受陰學。
- 이경에선 색취온에 대해 이렇게 배운다하면서 색온에게 먹히고 있다고합니다.
이경도 역시 색취온과 색온이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색온에게 먹히고 있다는 부분이 나오는데 색온을 몸둥이로 보면 '나는 현재 몸둥이(육체)에게 먹힌다'가 되어 넌센스가 일어나겠지요? 나는 현재 색온이란 망념에게 먹히고 있다' 라고 해석하면 자연스럽습니다.
<잡아함 41.오전경> <SN. 22.56>
"다섯까지 쌓임이 있으니 색쌓임과 수상행식의 쌓임이니라. 나는 이 다섯 가지 쌓임에 대해서 그 다섯 가지를 참다이 아나니, 곧 색과 색의 모임과 색의 맛과 색의 근심과 색을 떠나기를 참다이 안다.
有五受陰。色受陰。受.想.行.識受陰。我於此五受陰。五種如實知。色如實知。色集.色味.色患.色離如實知
- 이경도 색취온 대해 참다이 아는것은 색온맛,근심 색온 떠나기를 참다이 안다 해서 색취온과 색온이 함께 쓰이고 있습니다.그리고 색온을 떠나라합니다. 색온이 몸둥이라면 몸둥이를 떠난다는 것 넌센스이므로 색온이란 망념을 떠나라가 되어야 겠습니다.
<장아함 11>
또 오수음의 생상과 멸상을 관하여, 이것은 색·색집·색멸 이것은 수·상·행·식·식집·식멸이다.' 라고 안다. 이것을 8인연이라 한다. 아직 범행을 얻지 못하고도 지혜가 있고 이미 범행을 얻으면 지혜는 더하고 많아진다.
又觀五受陰。生想.滅想。此色。色集.色滅。
此受.想.行.識。識集.識滅。是為八因緣。未得梵
行而有智。已得梵行智增多。
<초기오온설 - 마성스님논문중>
첫째, 순수한 오온설이다. 초기경전에서 오직 오온만 설한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다. Saṃyutta Nikāya(相應部)의 Khandha Saṃyutta(蘊相應)14)의 Khandha-sutta(蘊經)는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 경전은 五蘊과 五取蘊15)에 대한 정의를 설하고 있는 경전이기도 하다.
어떠한 色(rūpa)이든 과거의 것이든 미래의 것이든 현재의 것이든, 내부의 것이든 외부의 것이든, 거친 것이든 미세한 것이든, 열등한 것이든 우수한 것이든, 멀리 있는 것이든 가까이 있는 것이든 무엇이든 이와 같은 것을 色蘊(rūpakkhandha)이라고 부른다. 어떠한 受(vedanā)이든 … 受蘊(vedanakkhandha)이라고 부른다. 어떠한 想(sannā)이든 … 想蘊(sannakkhandha)이라고 부른다. 어떠한 行(saṅkhāra)이든 … 行蘊(saṅkhārakkhandha)이라고 부른다. 어떠한 識(vinnāṇa)이든 … 識薀(vinnāṇakkhandha)이라고 부른다. 이와 같은 것을 五蘊(pancakkhandha)이라고 부른다
어떠한 色이든 과거의 것이든 … 가까이 있는 것이든 번뇌를 속성으로 하고 집착된 것이면 무엇이든 色取蘊(rūpupādānakkhandha)이라고 부른다. 어떠한 受이든 … 受取蘊(vedanupādānakkhandha)이라고 부른다. 어떠한 想이든 … 想取蘊(sannupādānakkhandha)이라고 부른다. 어떠한 行이든 … 行取蘊(saṅkhārupādānakkhandha)이라고 부른다. 어떠한 識이든 … 識取薀(vinnāṇupādānakkhandha)이라고 부른다. 이와 같은 것을 五取蘊(pancupādānakkhandha)이라고 부른다.1
위에서 인용한 팔리경전에 대응하는 한역의 내용도 거의 비슷하다. 그런데 팔리경전에서는 이 경전을 붓다께서 사왓티(Sāvatthī, 舍衛城)에서 설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한역 『잡아함경에서는 波羅奈國(Bārāṇasī) 仙人住處(Isipatana) 鹿野苑(Migadāya)에서 설한 것으로 되어 있다. 한역의 기록이 정확하다면, 이 경전은 녹야원에서 다섯 비구들에게 설한 것이다. 그런데 이 경전에서는 오온설이 존재의 분석 방법으로 사용되지 않았다. 오온이 존재의 분석으로 체계화된 것은 후대일 것이라고 본다.17
- 이상 이경들에서는 오온과 오취온(색온과 색취온)의 구별이 없음을 알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색취온(색온)의 사전적뜻은 무엇인지 살펴봅니다.
3. 색취온(색온)의 사전적 의미
이것을 색수음이라고 하는 것으로서 걸리는 것(방해되는 것, 막히는 것)을 가리킨다.손이나 돌이나 막대기나 칼이나 추위나 더위나 갈증이나 배고픔이나 모기나 독충이나 바람이나 비에 접촉하는 것 이것을 촉핵이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걸리는 것이 색수음이다. 이 색수음은 무상하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것이니라.
是名色受陰。指(가르킬,뜻)所(바소)閡 (막힐,방해,걸림, 핵)。->색수음=걸림,방해,막힘
若手.若石.若杖.若刀.若冷.若暖.若渴.若飢.若蚊.虻.諸
毒虫.風.雨觸。是名觸閡。是故閡是色受陰。
復以此色受陰無常.苦.變易
"And why do you call it 'form'?1 Because it is afflicted(苦), thus it is called 'form.' Afflicted with what? With cold & heat & hunger & thirst, with the touch of flies, mosquitoes, wind, sun, & reptiles. Because it is afflicted, it is called form.
(왜 색이라 부르느냐? 苦이기 때문이다.그러면 그것을 색이라 부른다.)
무엇을 색이라 말하는가? 거리낀다.그러면 거기에 색이란 말이 사용된다. 무엇이 거리끼는가? 차가움에 거리끼고 뜨거움에 거리끼고, 배고품에 거리끼고 목마름에 거리끼고 날파리 뱀등과 같은 촉에 거리낀다.이와같이 거리끼면 거기에서 색이란 말이 사용된다.
- 이경을 설명하기전에 '걸리는것'이라고 해석된 해閡를 찾아보면 '방해,막힘,걸림,거리낌'이란 뜻이 있습니다.뭔가 불편한 뜻을 내포하고 있지요. 그러나 한문으로 만은 뜻이 불분명해서 니까야의 해당 단어를 찾아보면 afflicted로 사전적으로 苦(괴로움)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팔리어는 ruppati 인데 '괴로움,변화' 이란 뜻이 있습니다.
또한 色受陰無常.苦.(색취온은 고)라하여 색취온은 중생의 망상을 나타내는 부분으로 니까야의1 Because it is afflicted(苦), thus it is called 'form.외 일치하는 부분입니다.
이경은 오취온(오수음)을 설명하는 경입니다.우리가 자아라고 집착하고 있는 오취온은 실재하는 존재가 아니라 경험된 내용을 취한 것을 설명하는 경입니다.색수음, 즉 우리가 나라고 생각하는 몸은 무엇인가가 접촉할 때 그 접촉을 통해 취해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더위나 추위나 돌이나 막대기가 몸에 닿으면, 우리는 그 자극을 통해서 자신의 몸을 의식하고 그것을 자아로 취한다는 의미이지요.受는 느낀 경험을 想은 사유한 경험을 취한 것이라는 내용으로 오취온이 경험의 내용을 자아로 취착한 것이라는 것을 이 경은 계속 설명하고 있습니다.
- 1번에서 색취온과 색온은 거의 동일한 '중생의 망념'으로 설명되있습니다.그렇다면 2번 색취온의 사전적의미는 색온의 뜻과 동류라는걸 알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것이 있는데 신수의 색수음(색온)과 니까야의 form/ 걸림(걸리는것)을 아비담마에서는 어떻게 설명하는지 보고자합니다. 아비담마는 색온을 물질, 걸림(ruppati)를 변형이라고 번역합니다.
4. 아비담마의 색취온(색온)의 사전적 해석
<잡아함 46 삼세음세식경> 의 是名色受陰。指所閡。을
각묵스님은 다음과 같이 번역했습니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왜 물질이라고 부르는가? 변형(變形 ruppati)된다고 해서 물질이라 한다. 그러면 무엇에 의해서 변형되는가? 차가움에 의해서도 변형되고, 더움에 의해서도 변형되고, 배고픔에 의해서도 변형되고, 목마름에 의해서도 변형되고, 파리, 모기, 바람, 햇빛, 파충류들에 의해서도 변형된다. 비구들이여, 이처럼 변형된다고 해서 물질이라 한다.”(상윳따 니까야 삼켜버림 경(S22:79) §4) ... 중략...“‘변형된다(ruppati)’고 했다. 이것은 물질(rūpa)이라는 것은 차가움 등의 변형시키는 조건과 접촉하여 다르게 생성됨을 두고 말한 것이다.”(SAṬ.ī.210)... 중략...여기서 변형(ruppana, ruppati)은 변화(viparinnāma)와 다르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 <잡아함 46 삼세음세식경>에서는 색수음은 '거끄러움,방해,苦, afflicted' 이라고 번역 되있는데 각묵스님은 '변형'이라고 해석했습니다. 그래서 변형이라고 해석한 각묵스님의 ruppana와 ruppati 를 찾아 보았습니다.
5. ruppana, ruppati의 뜻
1.
Concise P-E Dict
ruppana
: [nt.] constant change.。(변화)
PTS P-E dictionary
Ruppana
,(nt.) [fr. rup) molestation, vexation,(짜증,괴로움) trouble J.III,368 (=ghaṭṭana dūsana kuppana C.). Frequent in allegorical exegesis of rūpa(rupa의 우회적인 주해,해석), e. g. at DhsA.52 (naman’aṭṭhena nāmaṁ ruppan’aṭṭhena rūpaṁ), 303 (rūp’ādīhi ruppana-bhāva-dīpana); VbhA.4 (ruppan’aṭṭhena rūpaṁ in expln of passage S.III,86 (mentioned under ruppati); KhA 78, 79 (ruppan’aṭṭhena . . . rūpaṁ rūpaṁ ti vuccati). (Page 573)。
パーリ语辞典
ruppana
:n. [<rup] 悩壊.。(번뇌)
ruppati
Concise P-E Dict
ruppati
: [rup + ya] is vexed or changed.。(괴로움,변화)
パーリ语辞典
ruppati
: [rup = lup] 惱害される, 圧迫される, 変壊す. ppr. ruppato, ruppataṃ. cf. lumpati.。
ruppati
, (rup+ya;rup=lup),被恼怒(to be vexed),被改变(to be changed)。
2.
ruppana - mo·les·ta·tion 〔mulestin〕
n. 방해, 괴롭힘; (부녀자) 희롱, 추행, 폭행 // vex·a·tion 〔veksin〕 n. 1 초초하게
ruppati
-- The root rup is defd at Dhtm by n?s, i. e. to destroy; another rup is given at
Dhtm 837 in meaning "ropana"]to be vexed, oppressed, hurt, molested (always with ref. to an illness or pain)
이상 살펴본 바와같이
ruppana는 괴롭힘,방해
ruppati는 어원 rup의 뜻이 'destroy부수다' 와 'hurt, molested 괴롭다, 고통스럽다' 2가지 뜻이 있습니다.
- 이상 살펴본바 ruppana와 ruppati는 '괴롭힘.시달리다.변화하다' 뜻이 있습니다.
그런데 전재성씨는 ruppati를 '변형'으로 각묵스님과 같은 이야기를 하는데 잘 보세요. 약간 애매하지요.
'ruppati :'체화된다, 변형된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Srp.II 290에서는 '방해되다, 마찰되다, 압박되다, 파괴되다'의 의미를 갖는다.그러나 Krs. III 73에 의하면 어원적으로 '물질'은 '방해되다'와 관련이 없다. 그것은 '방해되다'는 말은 rup, lup, varp에서 온것이다.한편 붓다고싸는 주석에서 이러한 여러 가지 접촉들이 이 생과 관련시키지 않고 다른 한냉지옥이나 아귀세계 등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전재성 역)
- ruppana와 ruppati에 '괴로움, 변화' 뜻이 보이는데 변화(변형)'을 택한것은 이유가 뭘까요? 전재성씨에 의하면 '색이 물질이므로 방해하다' 와 연관이 없기에 그렇다는데 설득력이 있는 걸까요? 무엇을 기준해서 누구의 마음대로 오온의 색 (form)을 물질이라 번역해서 '물질'이 '방해하다' 라는 뜻이 관련이 없다 하며 '변화(변형)' 이란 해석을 넣는걸까요? 그런데 아래 대림스님은 글의 논리가 안되지만 물질이 방해와 연관성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면 청정도론 은 어떻게 설명하는 봅니다.
청정도론 416페이지
1. 물질의 무더기(색온)
rupakkhanddhakatha
34. 그 가운데서 차가움 등으로 변하는(ruppana)225) 특징을 가진 법은 그 무엇이든 모두 하나로 묵어 물질의 무더기(
rupakkhanddhakatha, 색온) 라고 알아야한다. 이 것은 변하는 특징에 의해서는 한가지만 근본물질(bhuta-rupa)과 파생된 물질 로 두가지다.
225) ruppana 는 rup(tp break, to violate)에서 파생된 중성명사이며 rupa[색] 을 설명하는 다른 주석서에도 많이 나타나고 잇다. 산스크리뜨에 나타나는 rupa의 원의미는 '방해, 성가심'을 뜻한다고 보여진다.즉 물질이란 우리의 진행이나 시계등을 막고 방해하는 것이며 그래서 성가시게 하고 괴로움을 주는 뜻이라고 파악할수 있?다.
그러나 후대 빠알리 주석가들은 이 ruppana를 변화(vikara)로 해석하고 있다.그래서 위바위니 띠까(VT)에서는 춥고 더운의등의 반대돠는 조건들 때문에 변화(vikara)를 격고 변화를 강요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것이 남방의 전통적인 견해이며 이 견해에 따라 역자도 '변화는' 으로 옮겻다.
- 대림스님도 산스크리트어에 나타나는 ruppana는 아함경의 핵의 뜻과 같은 '방해,성가심, 괴로움' 으로 설명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ruppana를 '방해,성가심,괴로움' 으로 번역하지 못하는 것은 뭘까요? 이 책에서는 후대 빠알리 주석가들의 견해를 따랐다고 말씀하십니다.그런데 스님께서는 '물질이란 우리의 진행이나 시계등을 막고 방해하는 것이며 그래서 성가시게 하고 괴로움을 주는 뜻이라고 파악할수 있겠다.' 이러한 말씀을 하시는데 논리적으로 문제가 되는 문장 입니다.
왜냐면 물질이 성가시게 하고 괴로움을 주는게 아닙니다.물질이 성가시게 하고 방해하면 우린 차라리 도 닦지말고 몸둥이를 없애는게 낫을 것입니다.괴로움의 발생과 소멸을 설명한 12연기는 중생의 괴로움이란 의식의 집멸을 설명하는 교리이지 윤회를 설명하는 것이 아닙니다.해서 12연기를 보면 괴로움은 무명을 인연하지 물질을 인연한다고 설명하지 않습니다.
만약, 괴로움이 몸,물질을 인연한다면 혜탈은 괴로움의 인연인 몸을 없애야 가능 할 것입니다.그러나 혜탈하신(괴로움을 멸한) 부처님도 몸을 가지고 계시지 않았습니까? 괴로움은 중생의 전도된 무명에서 인연하지 몸둥이에서 인연한다고 볼수 없습니다.
- 이상 색취온에 대해 알아보았는데 색취온과 색온은 망념이란걸 알았고 색취온(색온)은 부딧쳐(촉)같게된 느낌(해,걸리는것,苦,afflicted)라는 걸 알았습니다.그리고 아비담마에서는 afflicted(苦)를 독자적 해석인 '변형(ruppati, ruppana)'라고 해석하여 니까야와 뜻이 다름을 알았습니다. 아비담마와 아함경,니까야가 불일치되는 부분입니다. 그렇다면 색온은 마음법이 아니라 물질이란 뜻인데 이렇게 되면 색온을 마음 법으로 설명된 아래 수 많은 아함경은 난관에 봉착합니다. 이 문제는 아래에 가서 보도록하고 이번엔 색온이 무엇인가 알아봅니다. 색온은 사대와 사대소조로 설명됩니다.사대를 지수화풍으로 흔히 흙,물,불,바람 이라고 하는데 머리말에서도 밝혓지만 이렇게 설명하면 외도의 유물론의 적취설임을 먼저 밝힙니다.
6. 외도가 설명하는 적취설
적취설자인 유물론자 아지타케사 캄발리는 일체를 지(흙),수(물),화(불),풍(바람)로 이루어 졌다고 주장했고,
기계적 불멸론인 파쿠다 캇타야나는 일체를 지(흙),수(물),화(불),풍(바람),명아(영혼) 7요소설을,
숙명론자인 막탈리 고살라는 일체를 지(흙),수(물),화(불),풍(바람),영혼(명아),허공,득수,고,락,생,사, 12요소설,
이 밖에 자이나교조는 니간카 나타풋타는 적취,전변을 모두 합하려 했는데 명아(jiva 정신), 비명아(ajiva물질, 허공,법,)으로 일체를 나눕니다.물질, 허공,법,)으로 일체를 나눕니다. -D.N.Vol 1 47p~86p참고(다나까니까야
아지타 께사깜발린은 인도에서 가장 유명한 유물론자이다. 그는 지수화풍의 네 가지 물질적 원소만이 참된 실재라고 하여 영혼의 존재를 부정하였다:
“인간은 네 가지 원소로 만들어졌으며, 목숨이 다하고 죽으면 땅은 땅의 세계로 돌아가고, 물은 물의 세계로 돌아가고, 불은 불의 세계로 돌아가고, 바람은 바람의 세계로 돌아가고, 모든 감각기관은 허공으로 돌아간다.” (초기불교연기성- 전재성)
- 12처와 색온을 눈,코,귀,입,몸,뜻,형상,소리,냄새,맛,감촉,법,몸둥이로 생각하면 종류만 다르지 외도와 같음을 알수 있습니다.또 정신, 물질이라고 해도 외도설입니다. 흔히 오온을 인간이라 하며 지수화풍으로 이루어졌다고들 말합니다. 이리되면 전재성 역에서 보듯 아지타 께사깜발린 유물론자입니다.그렇다면 불교에서 사대(사계)는 어떻게 설명될까요? 아비담마가 색온을 물질이라 하면 외도설과 같음을 알수 있는 대목입니다.
7. 불교에서 설명하는 사대란 마음법 이다
<중아함 75경>
또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이렇게 관찰한다. '만일 색이 있으면 그 일체는 사대(四大)로 된 것이다. 사대(四大)는 이 무상의 법이요 괴로움이요 멸하는 것이다'라고.
多聞聖弟子作如是觀。若有色者。彼一切四大及四大造。四大者是無常法。是苦.是滅。
- 사대는 苦라 합니다. 사대가 흙,물,불,바람이면 흙,물,불,바람이 苦가 되고 고소멸은 흙,믈,불,바람을 없애는게 되는 넌센스가 일어납니다.
<잡아함 171. 아정단경>
"무엇이 있기 때문에 무엇이 일어나고, 무엇에 매이어 집착하며, 무엇에서 <我>를 보기에,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만일 이 거칠은 네 가지 것의 색이 끊어지고 무너져 아무 것도 없어지면 이것을 <我>가 바로 끊어진 것이라 한다.
何所有故。何所起。何所繫著。何所見我。令諸眾生作如是見.如是說。若麁四大色斷壞.無所有。是名我正斷。
- 사대가 끊어지면 我가 끊어진 것으로 혜탈이라 합니다.흙,물,불,바람이 멸하는 것이 我가 끊어진 혜탈은 아니겠지요?
사대가 마음 법 임을 잘 보여주는 경입니다.
- 사대란 마음법임을 보여주는 경입니다.이곳 역시 아비담마 식으로 색온을 물질이라 하면 위 두 경에 反하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이 2경으로 부족하겠지요.구체적으로 사대(사계)가 무엇인지 살펴봅니다.
8. 사계는 깨달아야 알고 사계(지수화풍계)는 18계의 사계.
<중아함 13. 도경(度經)><A.3.61>
내가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달은 바의 법을 너를 위해 설명한다면, 사문·바라문이나 하늘·악마·범과 다른 세간은 아무도 능히 항복 받지 못하고, 아무도 능히 더럽히지 못하며, 아무도 능히 제어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달은 바의 법을 너를 위해 설명한다면, 사문·바라문이나 혹은 하늘·악마·범과 다른 세간은 아무도 능히 항복 받고, 능히 더럽히며, 능히 제어하지 못하는 것은 어떤 법인가. 이른바 6처(處)의 법이 있다. 그것은 내가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달은 바로써 너를 위해 설명하면, 사문·바라문이 혹은 하늘·악마·범과 다른 세간은 아무도 능히 항복 받고, 능히 제어하지 못할 것이다. 다시 6계(界)의 법이 있다. 그것은 내가 스스로 깨달은 바로써 너를 위해 설명하면, 사문·바라문이나 혹은 하늘·악마·범과 다른 세간은 아무도 능히 항복 받고, 능히 더럽히며, 능히 제어하지 못할 것이다. 어떤 것이 6처의 법으로써 내가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달아 너를 위해 설명하는 것인가. 이른바 안처와 이·비·설·신·의의 처가 그것이다. 이것을 6처의 법이라 하며, 내가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달은 바로써 너를 위해 설명하는 것이다. 어떤 것이 6계의 법으로써 내가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달아 너를 위해 설명하는 것인가. 이른바 지계와 수·화·풍·공·식의 계가 그것이다. 이것을 6계라 하며, 내가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달은 바로써 너를 위해 설명하는 것이다.
-> 이경에서 육계는 12처와 마찬가지고 깨달아야 안다고 합니다.그렇다면 적취의 흙,물,불,바람,공간,식을 깨달아 안다고 볼수 없습니다.즉 육계는 중생의 번뇌이지 과학으로도 알수 있는 6가지 요소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중아함 181.다계경(多界經)><MN 115>
세존께서는 대답하시었다.
"아난아, 만일 어떤 비구가 경계를 알고, 곳을 알고, 인연을 알며, 그런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알면 아난아, 이러한 비구는 지혜로워 어리석지 않느니라."
"세존이시여, 그런 비구는 지혜로워 어리석지 않나이다. 세존이시여, 어떤 비구가 경계를 아나이까."
"아난아, 혹 어떤 비구는 18계(界)를 보아 참다이 아나니, 곧 안의 경계·빛깔의 경계·안의 식의 경계와 이의 경계·소리의 경계·이의 식의 경계와 비의 경계·성의 경계·이의 식의 경계와 설의 경계·미의 경계·이의 식의 경계와 신의 경계·닿음의 경계·신의 식의 경계와 뜻의 경계·법의 경계·뜻의 식의 경계이다. 아난아,이 18계를 보아 참다이 알고, 아난아, 6계를 보아 참다이 아나니, 곧 땅의 경계·물의 경계·불의 경계·바람의 경계·허공의 경계·의식의 경계이다. 아난아, 이 6계를 보아 참다이 알며, 아난아, 6계를 보아 참다이 아나니, 곧 탐욕의 경계·성냄의 경계·해침의 경계·탐욕이 없는 경계·성냄이 없는 경계·해침이 없는 경계이다. 아난아, 이 6계를 보아 참다이 알고, 아난아, 6계를 보아 참다이 아나니, 곧 즐거움의 경계·괴로움의 경계·기쁨의 경계·근심의 경계·버림의 경계·무명의 경계이다.
-> 18계를 참다이 알아 6계를 참다이 아는 것이란 6계란 18계의 6계(4계)임을 알수 있습니다.이리되면 18계는 중생의 식이므로 6계도 자연히 중생의 식이겠죠.
<중아함 187.설지경(設智經)><MN 112>
그렇다 하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한 뒤에는 다시 그 비구에게 '현자여, 세존께서는 눈의 곳·귀의 곳·코의 곳·혀의 곳·몸의 곳·뜻의 곳 등의 이 안(內)의 6처(處)를 말씀하신다. 현자여, 이 안의 6처를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아야 집착함이 없고 번뇌가 다하여 마음이 해탈한 줄을 알게 되는가.'고 물어 보라. 번뇌가 다한 비구로서 범행을 알고 법을 세운 자면 응당 대답하기를 '여러분, 나는 눈과 눈의 식에 대해서 눈의 식으로 아는 법을 함께 알아 두 법을 다 알아 마친다. 여러분, 만일 눈과 눈의 식과 눈의 식으로 아는 법의 즐거움이, 이미 다하여 그는 욕심이 없어 마음이 멸하고 쉬고 그치면 집착함이 없고 번뇌가 다하여 마음이 해탈한 줄을 알게 된다. 이와 같이 귀의 식·코의 식·혀의 식·몸의 식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하며, 뜻과 뜻의 식에 대해서도 뜻의 식으로 아는 법을 함께 알아 두 법을 다 알아 마친다. 여러분, 만일 뜻과 뜻의 식에 있어 뜻의 식이 아는 법의 즐거움이 이미 다하여 그는 욕심이 없어 마음이 멸하고 쉬고 그치면 집착함이 없고 번뇌가 없어 마음이 해탈한 줄을 알게 된다. 여러분, 나는 안의 6처를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았기 때문에 집착함이 없고 번뇌가 다하여 마음이 해탈한 줄을 알게 된다.'고 말할 것이다. 번뇌가 다한 비구로서 범행을 알고 이미 법을 세운 자는 응당 이렇게 대답할 것이니, 너희들은 그 말을 듣고는 마땅히 그렇다 하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여야 하느니라.
그렇다 하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한 뒤에는 다시 그 비구에게 '현자여, 세존께서는 땅 경계·물 경계·불 경계·바람 경계·허공 경계·식 경계등의 육계(六界)를 말씀하신다. 현자여, 이 6계를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아야 집착함이 없고 번뇌가 다하여 마음이 해탈한 줄을 알게 되는가.'고 물어 보라. 번뇌가 다한 비구로서 범행을 알고 이미 법을 세운 자는 응당 대답하기를 '여러분, 나는 땅경계를 내 소유라고 보지 않고, 나는 땅 경계의 소유도 아니며, 땅 경계는 신(神)도 아니다. 그런데 이른바 3수(受)는 땅 경계를 의지하여 머무르고 식의 사자(使者)의 집착하는 곳이다. 그러나 거기에 욕심이 없어 마음이 멸하고 쉬고 그치면 집착함이 없고 번뇌가 다하여 마음이 해탈한 줄을 알게 된다.
이와 같이 물 경계·불 경계·바람 경계·허공 경계도 또한 그러하며 식 경계는 내 소유가 아니요, 나는 식 경계의 소유도 아니며, 식 경계는 신도 아니다. 그런데 3수는 식 경계를 의지하여 머무르고 식의 사자의 집착하는 곳이다. 그러나 거기에 욕심이 없어 마음이 멸하고 쉬고 그치면 집착함이 없고 번뇌가 다하여 마음이 해탈한 줄을 알게 된다. 여러분, 나는 이 육계를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기 때문에 집착함이 없고 번뇌가 다하여 마음이 해탈한 줄을 알게 된다.'고 말할 것이다. 번뇌가 다한 비구로서 범행을 알고 이미 법을 세운 자는 응당 이렇게 대답할 것이니, 너희들은 그 말을 듣고는 마땅히 그렇다 하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여야 하느니라.
-> 이 경은 12처를 도입부에 설명하면서 18계를 대신해서 6계를 설명합니다.그런데 3수(受)는 지,수,화,풍,공,식계에 의지 한다고 합니다.그렇다면 3수(受)가 의지하는 것은 6계란 번뇌이지 땅,물,불,바람,공간,식이 이닐겁니다.
그리고 아래 경은 사성제와 사계를 비유하여 6계(사계)를 끊는 것이 깨달음이라고 설명합니다.
<중아함 31 분별성제경>
여러분, 사랑을 떠나는 고통을 말하는 것은 무엇 때문에 말하는가. 사랑을 떠나는 고통이란 무엇인가. .........
중생에게는 실로 6계(界)가 있으니, 사랑하는 지계와 수·화·풍·공·식계가 그것이다.그들은 서로 달라 흩어져 서로 응하지 못하게 된다. 서로 떠나 모이지 못하고 사귀지 못하며, 가까이 하지 못하고 화합하지 못하여 괴로워한다.
이것을 사랑의 떠남이라 한다
諸賢。說愛別離苦者。此說何因。諸賢。
愛別離苦者。.....諸賢。眾生實有六界。
愛地界。水.火.風.空.識界。彼異分散。不得相應。
別離不會。不攝.不習.不和合為苦。是名
愛別離。諸賢。愛別離苦者。謂眾生別離時。
- 고통이 곧 6계라고 설명합니다.
어떤 것이 애집고집성제인가?.......
중생에게는 실로 사랑하는 6계가 있으니, 지계와 수·화·풍·공·식계가 그것이다. 그 중에서 만일 애정이 있고 더러움이 있으며, 물듦이 있고 집착이 있으면, 이것을 집이라 한다.여러분, 많이 아는 성인의 제자는 내가 이렇게 이 법을 알며, 이렇게 보고 이렇게 환히 알며, 이렇게 자세히 보고 이렇게 깨달은 것을 안다. 이것을 애집고집성제라 한다.
云何愛習苦習聖諦。.....眾生實有愛六界。地界。水.火.風.空.識界。於中若有愛.
有膩.有染.有著者。是名為習。諸賢。多聞聖弟子知我如是知此法。
如是見。如是了。如是視。如是覺。是謂愛習苦習聖諦。
- 애집고집성재란 6계중에 애정,더러움,집착이 있으면 집성제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애집고집성제라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어떤 것이 애멸고멸성제(愛滅苦滅盛諦)인가. ....
중생에게는 실로 사랑하는 6계가 있으니, 지계와 수·화·풍·공·식계가 그것이다. 그가 만일 해탈하여 물들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으며, 끊어서 버리고 다 뱉아서 욕을 아주 없애 버리면, 이것을 고멸이라 한다. 많이 아는 성인의 제자는 내가 이렇게 이 법을 알며, 이렇게 보고 이렇게 환히 알며, 이렇게 자세히 보고 이렇게 깨달은 것을 안다. 이것을 애멸고멸성제라 한다.
是謂愛滅苦滅聖諦。......
眾生實有愛六界。地界。水.火.風.空.識界。彼若解脫。不染不
著.斷捨吐盡.無欲.滅.止沒者。是名苦滅。諸賢。
多聞聖弟子知我如是知此法。如是見。如
是了。如是視。如是覺。是謂愛滅苦滅聖諦。
- 애를 멸하고 고를 멸하는 성제란 사랑하는 6계(4계)를 끊는것이 괴로움을 끊는 것(고멸)라하여 고멸성제라 합니다.
4계가 적취의 요소가 아니라 마음법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고집멸도 사성제는 중생의 마음에 관한법임을 누구나 알것입니다. 해서 이경은 사성제의 고집멸도를 통해 사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성제를 통해 사계가 적취설의 흙,물,불,바람이 아니라 마음법임을 잘 설명합니다. 색온을 사대(사계)라 불리우는데 아비담마식으로 색온을 물질이라 하면 고집멸도라는 중생의 생각을 설명하는 이 경과도 합일이 되지 않음을 알수 있습니다. 그럼 이제 구체적으로 색온이 마음법이라고 설명하는 경을 봅니다.
9. 사대(사계)를 설명하는경
<중아함 30 상적유경>
오성음(五盛陰,오취온)이 다 괴로움이다. 어떤 것이 5성음의 괴로움인가. 이른바 색성음과 각·상·행·식성음이 그것이다.
略五盛陰苦。 諸賢。云何五盛陰。謂色盛陰。覺.想.行.識盛陰。諸賢
In short, the five clinging-aggregates are stressful. And which are the five clinging-aggregates? The form clinging-aggregate, the feeling clinging-aggregate, the perception clinging-aggregate, the fabrication clinging-aggregate, & the consciousness clinging-aggregate.
saṃkhittena, pancupādānakkhandhā dukkhā. Katame cāvuso, pancupādānakkhandhā? Seyyathidaṃ— rūpupādānakkhandho, vedanupādānakkhandho, sannupādānakkhandho, saṅkhārupādānakkhandho, vinnāṇupādānakkhandho.
어떤 것이 색성음인가. 이른바 저 일체 색은 사대와 사대로 지어진 것이다. 어떤 것이 사대인가.
이른바 지계와 수·화·풍계가 그것이다. (-> 이 문구를 보면 색성음(색취온)이 무엇인가 하고 저 일체의 색은 사대와 사대로 지어진것이라 합니다. 색취온과 색온이 같음을 보여주는 문구죠)
云何色盛陰。謂有色。彼一切四大及四大造。諸賢。云何四大。謂地界。水.火.風界。
"And what is the form clinging-aggregate? The four great existents and the form derived from them. And what are the four great existents? The earth property, the liquid property, the fire property, & the wind property.
1056Katamo cāvuso, rūpupādānakkhandho? Cattāri ca mahābhūtāni, catunnanca mahābhūtānaṃ upādāya rūpaṃ.
1057Katamā cāvuso, cattāro mahābhūtā? Pathavīdhātu,(지계) āpodhātu,(수계) tejodhātu,(화계) vāyodhātu. (풍계)
어떤 것이 지계인가. 지계에 두 가지가 있으니, 내지계(內地界)가 있고 외지계(外地界)가 있다. 어떤 것이 내지계인가.
이른바 몸 안에 있는 것, 몸에 속하는 단단한 것, 단단한 성질의 것, 몸 안에 있는 것으로 취해진 것을 말한다. 그것은 어떤 것들인가? 즉 (.... 간 위 심장 등이 내지계이다.)
諸賢。云何地界。諸賢。謂地界有二。有內地界。有外地界。諸賢。云何內地界。
謂內身中在。內所攝堅。堅性住內之所受。
"And what is the earth property? The earth property can be either internal or external. Which is the internal earth property? Whatever internal, within oneself, is hard, solid, & sustained [by craving]:
1058Katamā cāvuso, pathavīdhātu? Pathavīdhātu siyā ajjhattikā, siyā bāhirā. Katamā cāvuso, ajjhattikā pathavīdhātu? Yaṃ ajjhattaṃ paccattaṃ kakkhaḷaṃ kharigataṃ upādinnaṃ, seyyathidaṃ—
어떤 것이 수계(水界)인가. 이른바 수계에 두 가지가 있으니, 내수계가 있고 외수계가 있다. 어떤 것이 내수계인가.
몸안에 있는 것, 몸에 속하는 습한 것, 습한 성질을 것, 몸안에 있는 것으로 취해는 것이다. 그것은 어떤 것들인가.
云何水界。諸賢。謂水界有二。有內水界。有外水界。諸賢。云何內水界。
謂內身中在。內所攝水。水性潤。內之所受。
"And what is the liquid property? The liquid property may be either internal or external. What is the internal liquid property? Whatever internal, belonging to oneself, is liquid, watery, & sustained:
1063Katamā cāvuso, āpodhātu? Āpodhātu siyā ajjhattikā, siyā bāhirā. Katamā cāvuso, ajjhattikā āpodhātu?
Yaṃ ajjhattaṃ paccattaṃ āpo āpogataṃ upādinnaṃ, seyyathidaṃ—
어떤 것이 화계(火界)인가. 이른바 화계에 두 가지가 있으니, 내화계(內火界)가 있고 외화계(外火界)가 있다. 어떤 것이 내화계인가. 몸안에 있는 것, 몸에 속하는 따뜻한것, 따뜻한 성질을 것, 몸안에 있는 것으로 취해는 것이다.그것은 어떤 것들인가.
云何火界。諸賢。謂火界有二。有內火界。有外火界。諸賢。云何內火界。
謂內身中在。內所攝火。火性熱。內之所受。
"And what is the fire property? The fire property may be either internal or external. What is the internal fire property? Whatever internal, belonging to oneself, is fire, fiery, & sustained:
1065Katamā cāvuso, tejodhātu? Tejodhātu siyā ajjhattikā, siyā bāhirā. Katamā cāvuso, ajjhattikā tejodhātu?
Yaṃ ajjhattaṃ paccattaṃ tejo tejogataṃ upādinnaṃ, seyyathidaṃ—
또 어떤 것이 풍계(風界)인가. 풍계에 두 가지가 있으니, 내풍계(內風界)가 있고 외풍계(外風界)가 있다. 어떤 것이 내풍계인가. 이른바 몸안에 있는 것, 몸에 속하는 움직이는 것, 움직이는 성질을의 것, 몸안에 있는 것으로 취해는 것이다. 그것은 어떤 것들인가.
諸賢。云何風界。諸賢。謂風界有二。有內風界。有外風界。諸賢。云何內風界。
謂內身中在。內所攝風。風性動。內之所受。
"And what is the wind property? The wind property may be either internal or external. What is the internal wind property? Whatever internal, belonging to oneself, is wind, windy, & sustained:
1067Katamā cāvuso, vāyodhātu? Vāyodhātu siyā ajjhattikā, siyā bāhirā. Katamā cāvuso, ajjhattikā vāyodhātu?
Yaṃ ajjhattaṃ paccattaṃ vāyo vāyogataṃ upādinnaṃ, seyyathidaṃ—
- 이상 사대설명입니다. 이곳을 보면 팔리어의 upadana(取,집착)가 사대에 각각 모두 들어있는 단어임을 알 수 있습니다.이곳은 사대가 흙,물,불,바람이 아니라 '망상' 임을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그렇다면 이곳에선 지면 관계로 사대의 지(지계), 수(수계), 화(화계), 풍(풍계)중 '지(지계)만 자세히 살펴봅니다.지계는 내지계와 외지계로 나누는데 내지계를 보도록 합니다.
10. 사대(사계)의 지대(지계)를 설명하는 경
<중아함30> http://w3.cbeta.org/cgi-bin/goto.pl?linehead=T01n0026_p0464b17
사대란 무엇인가. 지,수,화,풍계 사계를 말한다... 중략....그러면 여러분, 지계란 어떤 것인가? 지계는 내적인 것이 있을 수 있고, 외적인 것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러분, 어떤 것이 내지계인가? 몸 안에 있는 것, 몸에 속하는 단단한 것, 단단한 성질의 것, 몸 안에 있는 것으로 취해진 것을 말한다. 그것은 어떤 것들인가? 즉 (.... 간 위 심장 등이 내지계이다.)
四大造。諸賢。云何四大。謂地界。水.火.風界。
諸賢。云何地界。諸賢。謂地界有二。有內
地界。有外地界。諸賢。云何內地界。謂內身中在。內所攝堅。堅性住內之所受。此為云何。
<MN28 Mahāhatthipadopama > http://studies.worldtipitaka.org/tipitaka/9M/3/3.8
[ "Katama cavuso, pathavidhatu? Pathavidhatu siya ajjhattika, siya bahira. Katama cavuso, ajjhattika pathavidhatu? Yam ajjhattam paccattam kakkhalam kharigatam upadinnam, seyyathidam– ....]
<MN28 Maha-hatthipadopama Sutta> http://www.accesstoinsight.org/tipitaka/mn/mn.028.than.html
[.......Whatever internal, within oneself, is hard, solid, &sustained [by craving]
<잡아함 39. 종자경(種子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다섯 종류의 종자가 있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이른바 뿌리가 종자인 것[根種子]·줄기가 종자인 것[莖種子]·마디가 종자인 것[節種子]·절로 떨어지면 그것이 곧 종자인 것[自落種子]·열매가 종자인 것[實種子]이니라. 이 다섯 종류의 종자가 비록 끊어지지도 않고, 부서지지도 않고, 썩지도 않고, 바람을 맞지 않고, 새로 익은 단단한 열매라 하더라도 땅만 있고 물이 없다면, 그 종자는 성장하고 뻗어나가지 못할 것이다.
또 그 종자가 비록 새로 익은 단단한 열매로서 끊어지지도 않고, 부서지지도 않고, 썩지도 않고, 바람을 맞지 않았더라도 물만 있고 땅이 없다면, 그 종자도 또한 성장하고 뻗어나가지 못할 것이다.
만일 그 종자가 새로 익은 단단한 열매로서 끊어지지도 않고, 부서지지도 않고, 썩지도 않고, 바람을 맞지도 않았으며 땅과 물이 있다면, 그 종자는 성장하고 뻗어나갈 것이다.
비구들아, 그 다섯 가지 종자는 식(識)을 포함한 5취음(取陰)을 비유한 것이고, 지계(地界)는 식이 머무르는 네 곳[四識住]을 비유한 것이며, 수계(水界)는 탐욕[貪]과 기쁨[喜]을 비유한 것이다.
(생략)
<29 중아함 대구라치경(大拘緻羅經)>
신수장경 : 1-461b
한글장경 : 중-1-143
남전장경 : a.9.13
있소. 존자 사리불이여, 이른바 어떤 비구는 음식의 참뜻을 알고 음식의 원인을 알며, 음식의 멸함을 알고 음식이 멸하는 도의 참뜻을 아오. 어떻게 음식의 참뜻을 아는가. 이른바 4식(食)이 있는데, 첫째는 단식의 거칠고 맛나는 것이요, 둘째는 갱락의 음식이며, 셋째는 의사(意思)의 음식이요, 넷째는 식(食) 음식이라고 아오.
一者摶食麤。二者更樂食。三者意思食。四者識食謂有四食。。
이것이 음식의 참뜻을 안다는 것이오. 어떻게 음식의 원인의 참뜻을 아는가. 이른바 사랑으로 말미암아 음식이 있다고 아오. 이것이 음식의 원인의 참뜻을 안다는 것이오.云 是謂知食如真。何知食習如真。謂因愛便有食。是謂知食 習如真。
어떻게 음식의 멸함의 참뜻을 아는가. 이른바 사랑이 멸하면 음식이 곧 멸한다고 아오. 이것이 음식의 멸함의 참뜻을 안다는 것이오. 어떻게 음식을 멸하는 도의 참뜻을 아는가. 云何知食滅如真。謂愛滅食便滅。是謂知食滅如真。云何知食滅道如真。
이른바 팔정도이니, 바른 소견과 내지 바른 정을 8이라 한다고 아오. 이것이 음식을 멸하는 도의 참뜻을 안다는 것이오. 존자 사리불이여, 만일 어떤 비구가 음식의 참뜻을 알고 음식의 원인을 알며, 음식의 멸함을 알고 음식을 멸하는 도의 참뜻을 알면, 이것이 이른바 비구가 소견을 성취하여 바른 소견을 얻고, 법에 있어서 불괴정을 얻어 바른 법 가운데 들어간다는 것이오."
謂八支聖道。正見。乃至正定為八。是謂知食滅 道如真。尊者舍梨子。若有比丘如是知食 如真。知食習.知食滅.知食滅道如真者。是 謂比丘成就見。得正見。
- <잡아함 39>에서 지계는 식이 머무르는 네가지 사식이라 하는데
<중아함 29>에서 사식(단식,촉식,위사식,식식)을 음식이라 칭하고
음식(사식)을 멸하는게 도의 참뜻을 안다합니다.즉 지계는 멸해야할 사식(음식)이죠.그러므로 지계는 욕탐입니다.
- 이경은 단단한것을 오장육부의 예를 들어 설명하는데 이것을 그대로 믿고 사대가 간,지라,위로 되었다고 생각하면 아래에 나오는 경들과 反하게 됩니다. 물론 경에선 간혹 몸이 사대로 되어있다는 표현이 나옵니다만 그것은 일반적 이야길 할 뿐입니다. 이경은 생물전서가 아닙니다. 해서 간,위,지라 라는 설명은 단단함을 보여주는 상직적 표현일뿐 지계가 마음법임이 곧 나오는데 먼저 앞서 색취온(망념)과 색온은 망념이라는 걸 경을 통해 확인했으므로 색온(색취온)이 망념이면 이경에서 간,지라,위를 생물학적 그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누가 보아도 넌센스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지계를 설명하기전 이 경 도입부에
<중아함 30 상적유경>
오성음(五盛陰,오취온)이 다 괴로움이다. 어떤 것이 5성음의 괴로움인가. 이른바 색성음과 각·상·행·식성음이 그것이다.
어떤 것이 색성음인가. 이른바 저 일체 색은 사대와 사대로 지어진 것이다. 어떤 것이 사대인가.
이른바 지계와 수·화·풍계가 그것이다.
略五盛陰苦。 諸賢。云何五盛陰。謂色盛陰。覺.想.行.識盛陰。諸賢
云何色盛陰。謂有色。彼一切四大及四大造。諸賢。云何四大。謂地界。水.火.風界。
라고 오취온을 苦라는 번뇌임을 시사하고 색취온은 사대 색온으로 이루어졌다 하므로 색취온과 색온이 苦라는 망념임을 보여줍니다. 해서 색온이 苦라는 망념임을 잘 알수 있으므로 간,지라,위를 그대로 이해해서는 안됨이 보입니다.
먼저 <중아함30>에서 중요한 글자는 堅性住內之所受。의 受 입니다.
受를 한자사전에서 찾으면
1. 받다 2. 거두어 들이다, 회수하다(回收) 3. 받아들이다, 받아들여 쓰다, 배우다 4. 얻다(得), (이익을)누리다 5. 주다, 내려주다, 수여하다(授與) 6. 담보하다(擔保) 7. 응하다(應), 들어주다.
그에 상응하는 upadana을 위키에서 찾아보니
1.clinging(짐척성,잘들러붙는), 2.attachment(집착), 3.grasping(잡는,쥐는,욕심많은,탐욕스런), 4. fuel(연료)" 이렇게 나옵니다. 해서 upadana는 짐척, 집착, 잡은, 탐욕, 연료 이런뜻이 있습니다.
또 그에 상응 하는 니까야에서는 carving(욕망) 라고 나옵니다.
受의 뜻은
[4. 얻다(得), (이익을)누리다] 와 [grasping (잡는,쥐는,욕심많은,탐욕스런)]
에서 잘 나타나는데 取의 집착이란 의미도 포함되 있군요. 결국 受와 取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受(取)는 <팔리MN28> upadinnam와 <MN28 Maha> craving 에 해당됩니다.
단어의 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受(取) = Upadinnam = attachment (애착, 집착) = craving(갈망, 집착)
*Kharigatam= khari ; rough, hard, sharp, painful +gata (=gone 여기서는 became 의 뜻으로 봄) ; 단단하게 됨.'
팔리어를 그대로 직역하면 kharigatam (단단한 것) upadinnam (집착)이 됩니다.
니까야도 직역을 하면 단단한것(hard,soild...)[by craving(집착)] 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직역된 '단단한 것을 집착한다'는 것은 '단단한 돌맹이를 갖고 싶어 한다'라고 생각할분이 있을까요?
이리되면 사대란 단단한것 축축한것 따뜻한것 움직이는것을 갖고 싶어한다가 되어 더욱 이상하게됩니다.
팔리어 (upadinnam)나 영어(carving)모두 '애착,갈망,집착' 이란 뜻을 의미하는데 '애착,갈망,집착'은 중생의 망념입니다. 해서 '단단한것'과 '집착'을 연결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즉, 지계란 외부세계의 요소 적취설로써의 '흙' 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단단하다고 취해진 생각(取, carving, upadinnam)'이라는걸 알 수 있습니다.
'단단하다고 취해진 생각(取, carving, upadinnam)'은 중생의 망념이겠지요?
<팔리 350> upadinnam와 <니까야> craving <중아함 30>의 受 를 유심히 살펴야 합니다.
지면상
[地(지계)는 요소로써 적취 '흙(단단함)' 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단단하다고 취해진 생각(갈애)內所攝堅。堅性住內之所受。)']지계만 설명드렸지만
水(수계)도 물이라는 요소의 적취가 아니라 '축축하다고 취해진 생각(갈애),
火(화계)도 불이라는 요소의 적취가 아니라. '따뜻하다고 취해진 생각(갈애),
風(풍계)도 바람이라는 요소의 적취가 아니라 '움직인다고 취해진 생각(갈애) 입니다.
이제 地를 두고 흙이란 物로 보는 것을 위 유물론자라고 밝혔고
경의 뜻을 통해 '단단하다고 취해진 생각' 임을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아비담마에서는 집착의 의미인 Upadinnam을 어떻게 설명하는가 보지요.
11. Upadinna 아비담마의 해석
*upadinna : 원래 '집착된 것, 의착된 것'의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역자는 여기서 파생된 물질(소조색, upadayarupa)과 같은 어원적인 의미로서 '파생된 것'이라고 번역한다. 아비달마에서는 업에 의해서 생성되는 신체적인 현상에 적용하는 용어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나의 것'으로 파악되거나 자아로 오해된 모든 신체에 적용된다. 아비달마적인 분석에 따르면 사대는 분리될 수 없는 것이어서 각각의 요소들은 종속적인 역할을 하는 다른 세계를 포함한다.... 각주에서 p554.
- 전재성씨는 upadinna은 원래 취착이라고 쓰는데 아비담마는 파생된 물질이라고 한다 하네요.그 이유를 찾아보니[업에 의해서 생성되는 신체적현상]이라는데 비판받고 있는 삼세양중인과의 식이 윤회의 주체가 되어 모태(명색)에 들어 육입이(감각기관) 나타나는 부분으로 '실유' 관점에서 보는 해석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태생적 12연기 해석은 잘못된 것이므로 이곳에 비유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고 원래 '집착' 이라하면 그대로 따르면 될일인데 '물질'을 염두 하니' 파생' 이라고 왜곡된 해석을 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 아비담마에서 upadinna 를 파생된것이라고 번역하는건 물질을 염두하고 해놓은 해석으로 보입니다.그럼 이제 사계가 확실히 마음법임을 소개합니다.
12. 색온이 마음 법(苦)임을 보여주는 경
<잡아함 58 음근경>
"다시 여쭈옵나이다. 세존이시여, 무슨 인(因)과 연(緣)으로 색쌓임(색온)이라 하며, 무슨 인과 연으로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의 쌓임이라 하나이까?" 부처님께서는 그 비구에게 말씀하시었다. "네 가지 것을 인연으로 하나니, 이것을 색온이라 한다. 무슨 까닭인가? 모든 색온은 다 네 가지 것이요, 네 가지 것으로 인연하여 되었기 때문이다...(생략)
색은 덧없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라면
(생략)
색은 항상한 것인가, 항상됨이 없는가?"
비구들은 대답하였다.
항상됨이 없나이다. 세존이시여.
항상됨이 없는 것이라면 그것은 괴로운 것인가?"
그것은 괴로운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항상됨이 없고 괴로운 것이라면 그것은 변하고 바뀌는 법이다.
世尊。何因何縁。名爲色陰。何因何縁。名受想行識陰。佛告比丘。四大因四大縁。是名色陰。所以者何。諸所有色陰。彼一切悉皆四大。縁四大造故。色為常耶。為非常耶。
若色無常. 苦. 變易法。答言。
無常。世尊。
若無常者。是苦耶。
答言。是苦。世尊。
若無常.苦。是變易法。
- 이경은 색온은 苦라고합니다.苦는 중생의 마음에 관한 이야기(망념)란것 다 아시겠지요.
<잡아함 42 칠처경><S.N 22.57>
"어떻게 색을 참다이 아는가. 모든 색은 모두가 네 가지 것과 네 가지 것으로 된 색로서 이것을 색이라 하나니, 이렇게 색을 참다이 아느니라. 어떻게 색의 모임을 아는가. 애정과 기쁨으로서 이것을 색의 모임이라 하나니, 이렇게 색의 모임을 참다이 아느니라. 어떻게 색의 멸함을 참다이 아는가. 애정과 기쁨의 멸하는 것으로서 이것을 색의 멸함이라 하나니, 이렇게 색의 멸함을 참다이 아느니라.
- 이경은 색온은 애정과 기쁨으로 되어 있으니 애정과 기쁨을 멸하는게 색온을 멸하는거라 합니다.색온이 애정과 기쁨으로 되어 있다는것은 색온이 몸둥이가 아니라 탐욕이란걸 알수 있습니다.
<중아함75>
[또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이렇게 관찰한다. '혹은 현세의 욕이나 후세의 욕이나, 혹은 현세의 색이나 후세의 색이나, 혹은 현세의 욕심이란 생각이나 후세의 욕심이란 생각이나, 혹은 현세의 색이란 생각이나 후세의 색이란 생각이나 그 일체의 생각은 이 무상의 법이요 괴로움이요 멸하는 것이다'라고. 그는 그 때에는 반드시 움직이지 않는 생각을 얻을 것이다. 그는 이렇게 행하고 이렇게 배우며, 이렇게 닦아 익히어 널리 편다.
若現世欲及後世欲。若現世色及後
世色。若現世欲想.後世欲想。若現世色想.後
世色想及不動想.無所有處想。彼一切想是無
常法.是苦.是滅。彼
- 이경은 <색>이 몸둥이가 아니라 일체 생각이라고 설명합니다.
<잡아함 77>
"마땅히 색에 대한 탐욕을 끊어라. 탐욕을 끊고 나면 곧 색이 끊어지고, 색이 끊어진 뒤에는 끊은 줄을 알며, 끊은 줄을 알고 나면 곧 근본이 끊어지나니, 마치 타알라 나무의 줄기를 끊은 것과 같아서 미래에 다시 나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이 수상행식에 대한 탐욕을 끊으면···내지 미래 세상에 다시 나지 않을 것이니라."
世尊告諸比丘。當斷色欲貪。欲
貪斷已。則色斷。色斷已。得斷知。得斷知
已。則根本斷。如截多羅樹頭。未來不復
更生。如是受.想.行.識欲貪斷。乃至未來世
不復更生。 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
歡喜奉
- 이경은 색온에 대한 탐욕을 꼲으면 색온도 끊어진다고 색취온이 끊어지면 색온도 끊어진다는 경입니다.색온이 몸둥이면 몸둥이에 대한 탐욕을 끊으면 몸둥이가 끊어진다가 되어 넌센스가 일어납니다.
<잡아함 삼세음식경>
그래서 멸하고서 더하지 않고, 물러나고서 나아가지 않으며, 멸하고서 일으키지 않고, 버리고서 잡음하지 않나니, 무엇을 멸하고서 더하지 않는가. 색을 멸하고서 더하지 않고, 수상행식을 멸하고서 더하지 않는다. 무엇에서 물러나고서 나아가지 않는가. 색에서 물러나고서 나아가지 않으며 수상행식에서 물러나고서 나아가지 않는다. 무엇을 멸하고서 일으키지 않는가. 색을 멸하고서 일으키지 않고, 수상행식을 멸하고서 일으키지 않는다. 무엇을 버리고서 잡음하지 않는가. 색을 버리고서 취하지 않으며 수상행식을 버리고서 잡음하지 않느니라. 멸하고서 더하지 않나니 고요하고 멸하여 머무르고, 물러나고서 나아가지 않나니 고요하고 물러나 머무르며, 멸하고서 일으키지 않나니 고요하고 멸하여 머무르고, 버리고서 잡음하지 않나니 얽매이고 집착하지 않는다. 얽매이고 집착하지 않으면 스스로 <열반>을 깨달아 ..
- 이경은 색온을 멸하면 열반이라고 합니다.색온이 몸둥이면 죽음이 열반이란뜻인데 부처는 살아서 깨달았습니다.
<잡아함음근경>
"네가지 요소를 인연으로 하나니, 이것을 색음이라 한다. 무슨 까닭인가. 모든 색음은 다 네 가지 요소요, 네 가지 요소를 인연하여 되었기 때문이다. 닿임을 인연하여 수상행이 생기나니, 이것을 수상행음이라 한다. 무슨 까닭인가. 모든 수상행음은 모두 닿임을 인연하기 때문이요, 명과 색을 인연하기 때문에 의식이라 하나니, 무슨 까닭인가. 모든 의식은 모두 명과 색을 인연하기 때문이니라."
"그 말씀은 훌륭하시나이다!"
그 비구는 말씀을 따라 기뻐하면서 다시 여쭈었다.
"다시 여쭙나이다. 어떤 것을 색의 맛이라 하고, 색의 근심이라 하며, 색을 떠남이라 하나이까. 어떤 것을 느낌·생각·지어감·의식의 맛이라 하고, 그것들의 근심하며 그것들을 떠남이라 하나이까.
四大因.四大緣。是名色陰。所以者何。諸所有色陰。彼一切悉皆四大。緣四大造故。
- 이<경>은 색은 괴로움으로 끊으라 합니다.
<잡아함 35. 삼정사경>
신수장경 : 2-8a
한글장경 : 잡-1-30
남전장경 :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지제에 있는 대나무 동산절에 계시었다. 그 때에 집을 나온 지 아직 오래지 않은 세 정사가 있었다. 즉 존자 아니룻다, 존자 난다, 존자 킴빌라였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그들이 마음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을 아시고 곧 훈계하여 말씀 하시었다.
"비구들이여, 이 마음과 이 뜻과 이 의식을 생각하여 항상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이 욕심을 끊고 이 색을 끊고 몸으로 완전히 진리를 증득하여 거기에 머물러야 한다. 비구들이여, 과연 색은 항상있어서 변하거나 바뀌지 않고 바르게 머무르는 것인가."
비구들은 부처님께 여쭈었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착하고 착하다! 색은 덧없어 변하고 바뀌는 것인데, 거기서 바르게 머무를 수 있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착하고 착하다! 색은 덧없어 변하고 바뀌는 법으로서 그것을 싫어하고 욕심을 떠나면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색은 본래부터 그 일체가 덧없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다. 이렇게 그것을 안 뒤에는 그 색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모든 번뇌의 해로움과 불꽃처럼 일어나는 걱정과 번민은 모두 끊어져 없어진다. 그것이 끊어져 없어진 뒤에는 벌써 집착할 것이 없게 되고, 집착할 것이 없어진 뒤에는 안락하게 머무르게 되며, 안락하게 머무른 뒤에는 열반을 얻게 되나니, 느낌·생각·지어감·의식도 또한 그와 같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그 세 정사(正士)는 여러 번뇌를 일으키지 않고 마음의 해탈을 얻었다. 그리고 모든 비구들도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如是我聞。 一時。佛住支提竹園精舍。 爾
時。有三正士出家未久。所謂尊者阿[少/兔]律陀.
尊者難提.尊者金毘羅。 爾時。世尊知彼心中
所念。而為教誡。比丘。此心.此意.此識。當
思惟此。莫思惟此。斷此欲.斷此色。身作
證具足住。比丘。寧有色。若常.不變易.正住不。
比丘白佛。不也。世尊。 佛告比丘。善哉。善
哉。色是無常.變易.正住不。 比丘白佛。不也。
世尊。 佛告比丘。善哉。善哉。色是無常.變易
之法。厭.離欲.滅.寂沒。如是色從本以來。一
切無常.苦.變易法。如是知已。緣彼色生
諸漏害.熾然.憂惱皆悉斷滅。斷滅已。無所著。
無所著已。安樂住。安樂住已。得般涅槃。受.想.
行.識亦復如是。 佛說此經時。三正士不起
諸漏。心得解脫。 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
所說。歡喜奉行。
<잡아함 35. 삼정사경>
"착하고 착하다! 색은 덧없어 변하고 바뀌는 법으로서 그것을 싫어하고 욕심을 떠나면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색은 본래부터 그 일체가 덧없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다. 이렇게 그것을 안 뒤에는 그 색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모든 번뇌의 해로움과 불꽃처럼 일어나는 걱정과 번민은 모두 끊어져 없어진다. 그것이 끊어져 없어진 뒤에는 벌써 집착할 것이 없게 되고, 집착할 것이 없어진 뒤에는 안락하게 머무르게 되며, 안락하게 머무른 뒤에는 열반을 얻게 되나니, 느낌·생각·지어감·의식도 또한 그와 같느니라."
善哉。善哉。色是無常.變易
之法。厭.離欲.滅.寂沒。如是色從本以來。一
切無常.苦.變易法。如是知已。緣彼色生
諸漏害.熾然.憂惱皆悉斷滅。斷滅已。無所著。
無所著已。安樂住。安樂住已。得般涅槃。受.想.
行.識亦復如是。
<잡아함 36, 십륙비구경>
본래부터 모든 색은 덧없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인 줄을 안 뒤에는 혹 색을 인연하여 걱정·슬픔·번민·괴로움이 생기더라도 그것을 끊고, 그것을 끊은 뒤에는 집착할 것이 없다.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안온한 즐거움에 머무르고, 안온한 즐거움에 머무르게 되면 그것을 열반이라 하나니, 느낌·생각·지어감·의식도 또한 그와 같느니라."
一切色無常.苦.變易法知已。若色因
緣生憂悲惱苦斷。彼斷已無所著。不著故
安隱樂住。安隱樂住已。名為涅槃。受.想.行.
識亦復如是。
<잡아함 37. 아경>
신수장경 : 2-8b
한글장경 : 잡-1-31
남전장경 : s.22.94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나는 세상과 다투지 않는데 세상이 나와 다투는구나. 무슨 까닭인가. 비구들이여, 만일 법다이 말하는 사람이라면 세상과 다투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의 지혜로운 사람이 그렇다고 말하면 나도 또한 그렇다고 말한다. 세상의 지혜로운 사람이 그렇다고 말하면 나도 또한 그렇다고 말하는 것은 어떤 것인가. 비구들이여, 색은 덧없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니, 세상의 지혜로운 사람이 그렇다고 말하면 나도 또한 그렇다고 말한다. 이와 같이 느낌·생각·지어감·의식은 덧없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니, 세상의 지혜로운 사람이 그렇다고 말하면 나도 또한 그렇다고 말하느니라.
如是我聞。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
獨園。 爾時。世尊告諸比丘。我不與世間諍。
世間與我諍。所以者何。比丘。若如法語者。
不與世間諍。世間智者言有。我亦言有。云
何為世間智者言有。我亦言有。比丘。色無
常.苦.變易法。世間智者言有。我亦言有。如
是受.想.行.識。無常.苦.變易法。世間智者言
有。我亦言有。
<잡아함 38 비하경>
저 세간의 눈먼 장님들을 낸들 그것을 어떻게 하겠는가.
비구들이여, 어떤 세간의 세간법을 나는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달아···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한다고 말하는가. 이른바 색은 덧없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니 이것이 세간의 세간법이다. 느낌·생각·지어감·의식은 덧없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니 이것이 세간의 세간법이니라. 비구들이여, 이 세간의 세간법을 나는 스스로 알고 스스로 보아···저 눈먼 장님들은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 것을 낸들 어떻게 하겠는가."
比丘。云何世間世間法。我自
知自覺。乃至不知不見。色無常.苦.變易法。
是為世間世間法。受.想.行.識。無常.苦.變易法。
是世間世間法。比丘。是名世間世間法。
<잡아함 124 마경>
"비구들은, 색로써 과거거나 미래거나 현재거나 안이거나 밖이거나 굵거나 가늘거나 좋거나 더럽거나 멀거나 가깝거나 그 일체는 다 악마라고 관찰하여야 한다. 느낌·생각·지어감·의식으로써, 과거거나 미래거나 현재거나 안이거나 밖이거나 굵거나 가늘거나 좋거나 더럽거나 멀거나 가깝거나 그 일체는 다 악마라고 관찰하여야 하느니라. 라다여, 너의 생각에는 어떠하냐. 색은 항상된 것인가. 항상되지 않은 것인가."
"항상되지 않나이다. 세존이시여."
"만일 항상되지 않은 것이라면 그것은 괴로운 것인가."
"그것은 괴로운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덧없고 괴로운 것이라면 그것은 변하고 바뀌는 법이니라. 그런데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로서 과연 거기서 <나>를 보겠는가."
諸比丘。有色。若過去.若未來.若現在。
若內.若外。若麁.若細。若好.若醜。若遠.若近。
彼一切當觀皆是魔。受.想.行.識。若過去.若
未來.若現在。若內.若外。若麁.若細。若好.若
醜。若遠.若近。彼一切當觀皆是魔。羅陀。
於意云何。色為常耶。為無常耶。 答曰。無
常。世尊。 若無常者。是苦耶。 答曰。是苦。世尊。
若無常.苦者。是變易法。多聞聖弟子寧於中
見我不。 答
<증일아함2-41 막외품>
비구들은 대답하였다.
"만일 그들이 와서 묻는다면 우리는 이런 니치로 대답하겠습니다. 즉 색은 덧없는 것이다. 덧 없으면 괴로움이요 괴로움이면 <나>가 없으며 <나>가 없으면 공이다. 그러므로 색은 공이요. <나>가 없으면 <나>가 없으면 그것은 공이다. 이것이 지혜로운 이가 보는 것이다.
느낌·생각·지어감·의식도 또 덧없고 괴로우며 공이요. <나>가 없다. 그것이 진실로 공이면 그것은 <나>가 없고 공이다. 이것은 지혜로운 이가 공부하는 것이다. 이 다섯 가지 쌓임은 다 공하고 고요하다.
。色者無常。其無常者即是苦
也。苦者無我。無我者空。以空無我.彼空。
如是智者之所觀也。痛.想.行.識亦復無常.苦.
空.無我。其實空者彼無我.空。如是智者之所
學也。此五盛陰皆空.
<잡아함 106. 아누라도경>
신수장경 : 2-32C
한글장경 : 잡-1-130
남전장경 : s.22.86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왕사성의 칼란다 대나무 동산에 계시었다. 그 때에 아누라다라는 비구는 기사굴산에 있었다. 때에 집을 나온 외도들은 아누라다가 있는 곳으로 가서 서로 인사한 뒤에 한 쪽에 서서 아누라다에게 사뢰었다.
"물어 보고 싶은 일이 있사온데 혹 한가하시면 해석해 주시겠습니까."
아누라다는 여러 외도들에게 말하였다.
"마음대로 물으라. 아는 것은 대답하리라."
"어떻습니까. 존자여, 여래는 죽은 뒤에도 있습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신대로 하면 그것은 무기(無記)니라."
"여래는 죽은 뒤에는 없습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면 그것도 또한 무기니라."
"여래는 죽은 뒤에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합니까.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습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면 그것도 또한 무기니라."
외도들은 다시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존자여, '여래는 죽은 뒤에도 있습니까'고 물으면 무기라 말하고, '죽은 뒤에는 없습니까'고 물어도 무기라고 말하며, '죽은 뒤에는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합니까.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습니까.'고 물어도 무기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떻습니까. 그러면 사문 고오타마는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합니까."
아누라다는 대답하였다.
"사문 고오타마께서는 알지 못하는 것도 아니요 보지 못하는 것도 아니니라."
때에 모든 외도들은 아누라다의 말을 불쾌히 생각하고 그를 꾸짖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다.
때에 아누라다는 모든 외도들이 떠난 줄을 알고 곧 부처님이 계신 곳에 나아가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한쪽에 서서 모든 외도들이 물은 일을 부처님께 자세히 말하고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들은 그렇게 묻고 저는 그렇게 대답하였나이다. 그것은 모든 법의 말씀과 맞는 것입니까. 세존을 비방한 것이 되지나 않나이까. 법을 따른 것입니까. 법을 어긴 것입니까. 누가 와서 힐난함으로써 그의 꾸짖음을 받지나 않겠나이까."
부처님께서는 아누라다에게 말씀하시었다.
"나는 이제 너에게 물으리니 묻는 대로 대답하라. 아누라다여, 색은 항상된 것인가. 항상되지 않은 것인가."
"항상되지 않나이다."
"느낌·생각·지어감·의식은 항상된 것인가. 항상되지 않은 것인가."
"항상되지 않나이다. 세존이시여."
(염마경 104경에서 널리 말한 것과 같다.)
"···내지 의식이 여래인가."
"아닙니다."
부처님께서는 아누라다에게 말씀하시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모든 법의 말을 따랐고 여래를 비방하지 않았으며, 차례를 뛰어넘은 것이 아니다. 여래가 말한 것처럼 법을 따라서 말한 것이다. 그래서 아무도 와서 힐난하거나 꾸짖지 못할 것이다. 왜 그러냐 하면 나는 색을 참다이 알고 색의 모임과 색의 멸함과 색을 멸하는 길을 참다이 알기 때문이다. 아누라다여, 만일 여래의 한 일을 버리고 아는 것도 없고 본 것도 없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당치도 않은 말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아누라다는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잡아함 6 염리경>
"색은 항상됨이 없다. 항상됨이 없는 것은 곧 괴로움이요, 괴로움은 곧 <나>가 아니며, <나>가 아니면 또한 <내 것>도 아니다. 이렇게 관찰하는 것을 진실한 바른 관찰이라 하느니라. 이와 같이 느낌·생각·지어감·의식도 또한 항상됨이 없다. 항상됨이 없는 것은 곧 괴로움이요, 괴로움은 곧 <나>가 아니며, <나>가 아니면 또한 <내 것>도 아니다. 이렇게 관찰하는 것을 진실한 바른 관찰이라 하느니라. 거룩한 제자로서 이렇게 관찰하면, 그는 곧 색을 싫어하고 느낌·생각·지어감·의식을 싫어하느니라. 싫어하기 때문에 즐겨하지 않고, 즐겨하지 않기 때문에 해탈하게 되며,
色無常。無常即
苦。苦即非我。非我者亦非我所。如是觀者。
名真實正觀。如是受.想.行.識無常。無常即
苦。苦即非我。非我者亦非我所。如是觀
者。名真實觀。 聖弟子。如是觀者。厭於色。
厭受.想.行.識。厭故不樂。不樂故得解脫。解
脫者真實智生。
"
<증일아함 2-37 육중품>
범지여, '그 색은 덧없는 것이다. 덧없는 것은 괴로운 것이요, 괴로운 것은 <나>가 없으며 <나>가 없으면 곧 공한 것이다. 공이라면 그것은 내 소유가 아니요 나도 그의 소유가 아니다'고 하는 것이 지혜로운 이의 배우는 것이다.
梵志。色者無常。無常者即是
苦。苦者即是無我。無我者即是空也。空者彼
不我有。
<잡아함 염마경>
사리불은 말하였다.
"나는 이제 너에게 물으리니 너는 마음대로 대답하라. 어떤가. 야마카여, 색은 항상된 것인가. 항상되지 않은 것인가."
"존자 사리불님이여, 그것은 항상되지 않나이다."
"만일 항상되지 않은 것이라면 그것은 괴로운 것인가."
"그것은 괴로운 것입니다."
"만일 덧없고 괴로운 것이라면 그것은 변하고 바뀌는 법이다.
舍利弗言。我今問汝。隨
意答我。云何焰摩迦。色為常耶。為非常
耶。 答言。尊者舍利弗。無常。 復問。若無常
者。是苦不。 答言。是苦。 復問。若無常.苦。
是變易法。
<중아함 설무상경>
"색은 무상(無常)이다. 무상은 곧 괴로움이요, 괴로움은 곧 신(神)이 아니니라. 각(覺)도 또한 무상이다. 무상은 곧 괴로움이요, 괴로움은 곧 신이 이니니라. 상도 또한 무상이다. 무상은 곧 괴로움이요, 괴로움은 곧 신이 이니니라. 행도 또한 무상이다. 무상은 곧 괴로움이요, 괴로움은 신이 이니니라. 식도 또한 무상이다. 무상은 곧 괴로움이요, 괴로움은 곧 신이 아니니라. 이것을 색은 무상이요, 괴로움은 곧 신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니라.
色者無常。無常則
苦。苦則非神。覺亦無常。無常則苦。苦則非神。
想亦無常。無常則苦。苦則非神。行亦無常。無
常則苦。苦則非神。識亦無常。無常則苦。苦則
非神。是為色無常。覺.想.行.識無常。無常則苦。
苦則非神。
<잡아함 64>
그러나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물질은 <나>다. 나와 다르다. 둘의 합한 것이다'라고 보지 않고 '생각·지어감·의식은 <나>다. 나와 다르다. 둘의 합한 것이다'라고 보지 않는다. 또한 '아는 것도 아니요, 보는 것도 아니다. 이 색은 덧없는 것이요, 느낌·생각·지어감·의식도 덧없는 것이다. 색은 괴로운 것이요, 느낌·생각·지어감·의식도 괴로운 것이다.
此色是無常。受.想.行.識是無常。色
是苦。受.想.行.識是苦。
<잡아함 해탈경>
"색은 항상됨이 없다. 항상됨이 없는 것은 곧 괴로움이요, 괴로움은 곧 <나>가 아니며, <나>가 아니면 또한 <내 것>도 아니다. 이렇게 관찰하는 것을 진실한 바른 관찰이라 하느니라. 이와 같이 느낌·생각·지어감·의식도 항상됨이 없다. 항상됨이 없는 것은 곧 괴로움이요,
色無常。無常即
苦。苦即非我。非我者即非我所。如是觀者。
名真實觀。如是受.想.行.識無常。無常即苦
- 이상 색온을 苦, 멸하라,떠나라 하여 마음법임을 충분이 보여주고있습니다.
이번에는 색온이 12처를 연한다는 경을 소개합니다.
13. 오온이 12처를 인연한다고 설명하는경
<잡아함 1-57 질루진경>
신수장경 : 2-13C
한글장경 : 잡-1-53
남전장경 : s.22.81
....(생략)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아야 빨리 번뇌가 다하게 될까'고.
그 때에 세존께서는 그 비구가 마음으로 생각하는 바를 아시고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만약 어떤 비구가 좌중에서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아야 빨리 누漏를 다하게 될까?’ 라고 생각한다면 나는 이미 그것에 대하여 설한 바가 있다. 마땅히 여러 가지 음陰(五蘊)을 잘 관찰하여야 한다. 사념처, 사정단, 사여의족, 오근, 오력, 칠각분, 팔성도분이 오음을 잘 관찰하는 길이다.
그런데 아직도 착한 남자로서 부지런히 하고자 하지 않고 부지런히 즐겨하지 않으며, 부지런히 생각하지 않고 부지런히 믿지 않으면서 스스로 게으르면 그는 더욱 나가지 못해 모든 누를 다할 수 없느니라. 그러나 만일 어떤 착한 남자로서 내가 설명한 법에서 모든 陰(오온)을 잘 관찰하여 부지런히 하고자 하고, 부지런히 즐겨하며, 부지런히 생각하고, 부지런히 믿는다면 그는 능히 모든 누를 다할 수 있을 것이다.
어리석은 범부는 (色蘊)을 자기라고 보나니 만약 자기라고 본다면 이것을 행行이라고 부른다. 저 행行은 무엇이 인因이고 무엇이 집기한 것이고, 무엇이 낳은 것이고 무엇이 발전한 것인가? 무명촉이 애를 낳고 애를 연으로 하여 저 행이 일어나는 것이다. 저 애는 무엇이 인因이고, 무엇이 집기한 것이고 무엇이 낳은 것이고, 무엇이 발전한 것인가?
저 애는 수가 인이고, 수가 집기한 것이고 수가 낳은 것이고, 수가 발전한 것이다. 저 수는 무엇이 인因이고, 무엇이 집기한 것이고, 무엇이 낳은 것이고 무엇이 발전한 것인가? 저 수는 촉이 인因이고, 촉이 집기한 것이고 촉이 낳은 것이고, 촉이 발전한 것이다. 저 촉은 무엇이 인因이고, 무엇이 집기한 것이고, 무엇이 낳은 것이고. 무엇이 발전한 것인가? 저 촉은 육입처가 인因이고, 육입처가 집기한 것이고, 육입처가 낳은 것이고, 육입처가 발전한 것이다.
저 육입처는 무상하고 유위이며 마음에서 연기한 법法이다.
저 촉이나 수나 애나 행도 무상하고 유위이며 마음에서 연기한 법法이다.
云何知.云何見。疾得漏盡。爾時。
世尊知彼比丘心之所念。告諸比丘。若有
比丘於此座中作是念。云何知.云何見。疾
得漏盡。者。我已說法言。當善觀察諸陰。
所謂四念處.四正勤.四如意足.五根.五力.
七覺分.八聖道分。我已說如是法。觀察諸
陰。而今猶有善男子不勤欲作.不勤樂.
不勤念.不勤信。而自慢惰。不能增進得
盡諸漏。若復善男子於我所說法。觀察
諸陰。勤欲.勤樂.勤念.勤信。彼能疾得盡諸
漏。愚癡無聞凡夫於色見是我。若見我
者。是名為行。彼行何因。何集。何生。何轉。無
明觸生愛。緣愛起彼行。彼愛何因。何集。何
生。何轉。彼愛受因.受集.受生.受轉。彼受何因。
何集。何生。何轉。彼受觸因.觸集.觸生.觸轉。彼
觸何因。何集。何生。何轉。謂彼觸六入處因.六
入處集.六入處生.六入處轉。彼六入處
無常有為。心緣起法。彼觸受.行受。亦無常
有為。心緣起法。如是觀者
- <질루진경>은 오온의 근원을 찾아가 보니 12처라는마음에서 인연하고 있다는 중요한 경입니다.
중간부분을 보면 색온(오온)을 我라 하는 것을 행이라 하는데 행은 무명촉-애-행이고, 애는 육입-촉-수-애 라고 설명합니다.
즉 색온(오온)은 육입처를 인연한다고 볼수 있는데 오온의 색 (색온)이 몸(물질)이면 몸의 근원을 찾아가보니 12처라는 마음일까요? 몸의 근원은 단백질이라 하는게 더 어울리겠지요.
<잡아함 68. 육입처경>
어떻게 참다이 관찰하는가. '이것은 색이요, 이것은 색의 모임이며, 이것은 색의 멸함이다. 이것은 느낌·생각·지어감·의식이요, 이것은 그것들의 모임이며, 이것은 그것들의 멸함이다'라고 참다이 관찰하는 것이다. 어떤 것이 색의 모임이며, 어떤 것이 수상행식의 모임인가. 안과 색을 인연하여 안의 식이 생기고, 이 세 가지가 서로 합하여 <촉>이 생기며, 촉을 인연하여 수가 생기고, 수를 인연하여 애가 생기며···이리하여 내지 순수한 큰 괴로움의 무더기가 생기나니, 이것을 색의 모임이라 하느니라. 이와 같이 이비설신과 향미촉을 인연하는 것도 그러하며, 뜻과 법을 인연하여 뜻의 색이 생기고, 이 세 가지가 서로 합하여 촉이 생기며, 촉을 인연하여 수가 생기고, 수를 인연하여 애착이 생기며···이리하여 내지 순수한 큰 괴로움의 무더기까지 생기게 되나니, 이것을 색의 모임과 수상행식의 모임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색의 멸함과 수상행식의 멸함인가. 안과 색을 인연하여 안의 의식이 생기고 이 세 가지가 서로 합하여 <촉>이 생긴다. 그러므로 <촉>이 멸하면 느낌이 멸하나니···이리하여 내지 순수한 큰 괴로움의 무더기까지 멸하게 되느니라. 이와 같이 이비설신과 향미촉을 인연하는 것도 그러하며, 뜻과 법을 인연하여 뜻의 의식이 생기고 이 세 가지가 화합하여 <촉>이 생긴다. 그러므로 촉이 멸하면 수가 멸하고, 수가 멸하면···이리하여 순수한 큰 괴로움의 무더기가 멸하게 되나니, 이것을 색의 멸함과 수상행식의 멸함이라 하느니라.
云何如實觀察。如
實知此色.此色集.此色滅。此受.想.行.識。此
識集.此識滅。 云何色集。受.想.行.識集。緣眼及
色眼識生。三事和合生觸。緣觸生受。緣受
生愛。乃至純大苦聚生。是名色集。如是。緣
耳.鼻.舌.身.意。緣意及法生意識。三事和合
生觸。緣觸生受。緣受生愛。如是乃至純
大苦聚生。是名色集。受.想.行.識集。 云何色滅。
受.想.行.識滅。緣眼乃至色眼識生。三事和
合生觸。觸滅則受滅。乃至純大苦聚滅。如
是耳.鼻.舌.身.意。緣意及法意識生。三事和
合生觸。觸滅則受滅。愛滅。乃至純大苦聚
滅。是名色滅。受.想.行.識滅。
- 이경은 색의 멸함은 12처,18계,촉수상사 멸함이라 설명합니다.
- 마지막으로 색온소멸경을 소개합니다.
14. 색온은 소멸해야 하는것으로 나오는경
<잡아함 1 무상경>
신수장경 : 2-1a
한글장경 : 잡-1-1
남전장경 : s.22.12~14
"색은 항상됨이 없다고 관찰하라. 이렇게 관찰하면 그것은 바른 관찰이니라. 바르게 관찰하면 곧 싫어하여 떠날 마음이 생기고, 싫어하여 떠날 마음이 생기면 즐겨하고 탐하는 마음이 없어지며, 즐겨하고 탐하는 마음이 없어지면 마음의 해탈이라 하느니라
當觀色無常。如是觀者。則為正觀。正觀者。則生厭離。厭離者。喜貪盡。喜貪盡者。說心解脫
<잡아함1-2 정사유경>
신수장경 : 2-1a
한글장경 : 잡-1-1
남전장경 : s.22.15~17
"색에 대하여 바르게 생각하여 색은 항상됨이 없다고 참다이 알라. 왜냐 하면, 비구들이여,색에 대해서 바르게 생각하여 그것은 항상됨이 없다고 관찰하여 참다이 알면, 그는 색에 대해서 탐욕이 끊어지고, 탐욕이 끊어지면 마음의 해탈이라 하기 때문이니라.
於色當正思惟。色無常如實知。所以者何。比丘。於色正思惟。觀色無常如實知者。於色欲貪斷。欲貪斷者。說心解脫。
<잡아함1-3 무지경 1,2,3,4경>
신수장경 : 2-1a
한글장경 : 잡-1-2
남전장경 : s.22.24
..비구들이여, 만일 색에 대해서 잘 알고 밝으며 잘 끊고 탐욕을 떠나면, 그는 능히 괴로움을 끊느니라.
諸比丘。於色若知.若明.若斷.若離欲。則能斷苦
<잡아함1-7 어색희락경>
신수장경 : 2-1C
한글장경 : 잡-1-4
남전장경 : S.22.29
"색을 사랑하고 즐겨하는 것은 곧 괴로움을 사랑하고 즐겨하는 것이요, 괴로움을 사랑하고 즐겨하면 곧 괴로움에서 해탈하지 못하게 되느니라.(於色愛喜者。則於苦愛喜。於苦愛喜者。則於苦不得解脫)
<잡아함1-9 염리경>
신수장경 : 2-2a
한글장경 : 잡-1-5
남전장경 : s.22.15
"색은 항상됨이 없다. 항상됨이 없는 것은 곧 괴로움이요, 괴로움은 곧 <나>가 아니며, <나>가 아니면 또한 <내 것>도 아니다.
...그는 곧 색을 싫어하고 느낌·생각·지어감·의식을 싫어하느니라. 싫어하기 때문에 즐겨하지 않고, 즐겨하지 않기 때문에 해탈하게 되며,..(色無常。無常即苦。苦即非我。非我者亦非我所。...厭於色。厭受.想.行.識。厭故不樂。不樂故得解脫)
<잡아함 41경>
신수장경 : 2-9b
한글장경 : 잡-1-35
남전장경 : s.22.56
어떤것이 색을 여실히 아는 것인가? 모든 색은 일체의 사대와 사대를 취하고 있는 것이며, 이것을 색이라 부른다.이와같이 색을 여실히 안다.어떤 것이 색의 집을 여실히 아는 것인가? 색에 대하여 희탐과 갈애가 있으면 아것을 색의 집이라고 부른다. 이와같이 색의 집을 여실하게 안다.어떻게 색의 맛을 참다이 아는가. 곧 색을 인연하여 기쁨과 즐거움이 생기는 것으로서 이것을 색의 맛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색의 맛을 참다이 아느니라. 어떻게 색의 근심을 참다이 아는가. 곧 만일 색이 덧없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라면 이것을 색의 근심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색>의 근심을 참다이 아느니라. 어떻게 색을 떠나기를 참다이 아는가. 곧 만일 색에 대해서 탐욕을 항복받고 탐욕을 끊으며 탐욕을 뛰어나면 이것을 색을 떠남이라 하나니, 이렇게 나는 색을 떠나기를 참다이 아느니라.
諸所有色。一切四大
及四大造色。是名色。如是色如實知。云何色
集如實知。於色喜愛。是名色集。如是色集
如實知。云何色味如實知。謂色因緣生喜樂。
是名色味。如是色味如實知。云何色患如實
知。若色無常.苦.變易法。是名色患。如是色
患如實知。云何色離如實知。若於色調伏
欲貪.斷欲貪.越欲貪。是名色離。如是色
離如實知。
<잡아함 42 칠처경>
신수장경 : 2-10a
한글장경 : 잡-1-38
남전장경 : s.22.57
"어떻게 색을 참다이 아는가. 모든 색은 모두가 네 가지 것과 네 가지 것으로 된 색로서 이것을 색이라 하나니, 이렇게 색을 참다이 아느니라. 어떻게 색의 모임을 아는가. 애정과 기쁨으로서 이것을 색의 모임이라 하나니, 이렇게 색의 모임을 참다이 아느니라. 어떻게 색의 멸함을 참다이 아는가. 애정과 기쁨의 멸하는 것으로서 이것을 색의 멸함이라 하나니, 이렇게 색의 멸함을 참다이 아느니라.
<Saṃyutta Nikāya 16 1. Kassapavagga 12. >
빠알리 니까야 http://suttacentral.net/sn16.12/pi/
영어 본 역 http://www.metta.lk/tipitaka/2Sutta-Pitaka/3Samyutta-Nikaya/Samyutta2/15-Kassapa-Samyutta/01-Kassapavaggo-e.html
신수한문 대장경 http://www.cbeta.org/cgi-bin/goto.pl?linehead=T02n0099_p0226a13
<잡아함 905. 외도경(外道經)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의 가란다죽원에 계셨다.
그 때 존자 마하 가섭(摩訶迦葉)과 존자 사리불(舍利弗)은 기사굴산(耆??山)에 있었다. 그 때 많은 외도 출가자들이 존자 사리불에게 나아가 존자와 서로 문안하고 위로한 다음 한쪽에 물러나 앉아서 존자 사리불에게 말했다.
어떻습니까? 사리불이시여, 여래께서는 후세(後世)에 나고 죽음이 있습니까?
사리불이 말했다.
외도들이여, 세존께서는 그것에 대해서 확실하게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無記].
또 물었다.
어떻습니까? 사리불이여, 여래는 후세에 나고 죽음이 없습니까?
사리불이 대답하였다.
외도들이여, 세존께서는 그것에 대해서도 확실하게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또 물었다.
사리불이여, 여래께서는 후세에 나고 죽음이 있기도 하고 나고 죽음이 없기도 합니까?
사리불이 대답하였다.
세존께서는 그것에 대해서도 확실하게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또 물었다.
사리불이여, 여래께서는 후세에 나고 죽음이 있는 것도 아니고, 후세에 나고 죽음이 없는 것도 아닙니까?
사리불이 대답하였다.
외도들이여, 세존께서는 그것에 대해서도 확실하게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러자 여러 외도 출가자들이 존자 사리불에게 또 물었다.
무슨 까닭에 저희가 여래께서는 후세에 나고 죽음이 있는지, 후세에 나고 죽음이 없지, 후세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지, 후세가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은지를 질문하였는데, 매번 답하기를 '세존께서는 그것에 대해서 확실하게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라고 대답하십니까? 무슨 까닭에 상좌(上座)께서는 어리석고 미련한 사람처럼 잘 대답하지도 못하시고 분별하지도 못하시며, 마치 어린애처럼 자기 주장이 뚜렷한 지혜가 없습니까?
이렇게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버렸다.
그 때 존자 마하 가섭과 존자 사리불은 서로의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나무 밑에 앉아서 제각기 낮 선정에 들어 있었다. 존자 사리불은 여러 외도 출가자들이 떠나버린 것을 알고 나서, 존자 마하 가섭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 서로 문안하고 위로한 뒤에 한쪽에 물러나 앉아서 여러 외도 출가자들과 이야기했던 일을 존자 마하 가섭에게 자세히 말했다.
존자 마하 가섭이시여, 무슨 인연(因緣)으로 세존께서는, 후세에 나고 죽음이 있는지, 후세에 나고 죽음이 없는지, 후세에 나고 죽음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지, 후세에 나고 죽음이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은지에 대해 확실하게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존자 마하 가섭이 사리불에게 말했다.
만일 여래께서 후세에 나고 죽음이 있다고 말씀하신다면 그것은 색(色)이 되는 것이요,
만일 여래께서 후세에 나고 죽음이 없다고 말씀하신다면 그것도 색(色)이 되는 것입니다.
만일 여래께서 후세에 나고 죽음이 있다던가, 후세에는 나고 죽음이 없다고 말씀하신다 해도 그것은 색이 되는 것이요,
만일 여래께서 후세에 나고 죽음이 있지도 않고 후세에 나고 죽음이 없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씀하신다면 그것도 색이 되는 것입니다.
여래께서는 색이 이미 다하셨고 마음이 잘 해탈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후세에 나고 죽음이 있다고 말하면 그것은 옳지 못하고, 후세에 나고 죽음이 없다거나, 후세가 있기도 하고 후세가 없기도 하다거나, 또는 후세에 나고 죽음이 있는 것도 아니고 후세에 나고 죽음이 없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씀하시더라도 그것도 또한 옳지 않습니다.
여래는 색이 이미 다하였고 마음이 잘 해탈하셨으며, 매우 깊고 넓고 크며 한량이 없고 헤아릴 수도 없는 분으로서 적멸열반(寂滅涅槃)에 드셨기 때문입니다.
사리불이여, 만일 여래께서 후세의 나고 죽음이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곧 수(受)가 되고, 상(想)이 되며, 행(行)이 되고 식(識)이 되며, 움직임[動]이 되고 생각함[慮]이 되며, 헛된 속임수[虛?]가 되고 유위(有爲)가 되며 애욕[愛]이 되고,……(내지)……후세가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다는 것에 대해서도 또한 그렇게 말할 것입니다. 여래는 애욕[愛]이 이미 다하셨고 마음이 잘 해탈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후세가 있다고 말하는 것도 옳지 않고, 후세가 없다고 말하거나, 후세가 있기도 하고 후세가 없기도 하다고 말하던가, 후세는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한다면 그것도 옳지 않습니다. 여래는 애욕이 이미 다하셨고 마음이 잘 해탈하여, 매우 깊고 넓고 크며, 한량이 없고 헤아릴 수 없으며, 적멸열반에 드셨기 때문입니다. 사리불이여, 이와 같은 인(因)과 이와 같은 연(緣)이 있기 때문에 누가 세존께 '여래는 있는가 없는가, 혹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가, 또 후세에 나고 죽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가?' 하고 물어도 정확하게 말씀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그 때 두 정사(正士)는 서로 이야기하기를 마치고 제각기 본래 있었던 곳으로 돌아갔다.
1) 이 소경은 『별역잡아함경』 제6권 14번째 소경과 같은 내용이다.
2) 여래는 사후(死後)에도 존재하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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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경은 외도가 사리불에게
사리불이시여, 여래께서는 후세(後世)에 나고 죽음이 있습니까?
사리불이여, 여래는 후세에 나고 죽음이 없습니까?
사리불이여, 여래께서는 후세에 나고 죽음이 있기도 하고 나고 죽음이 없기도 합니까?
사리불이여, 여래께서는 후세에 나고 죽음이 있는 것도 아니고, 후세에 나고 죽음이 없는 것도 아닙니까?
라고 물으니 사리불이 '부처님께서 답을 않하십니다.' 라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외도들은 세존이 이것도 답변을 못한다고 비웃고 떠나자 사리불이 있었던 일을 마하가섭에게 묻습니다.
그러자 마하가섭이
여래가 후세에 태어나 죽음이 있다는 견해,
여래가 후세에 태어나 죽음이 없다는 견해,
여래가 후세에 태어나 죽음이 있다. 혹은 없다.
여래가 후세에 태어나 죽음이 있지도 않고, 죽음이 없지도 않다
이 4견해들은 오온(색수상행식)이라고 설하고 있습니다.
한편 아비담마,달마에서는 오온을 '인간' 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견해가 '인간' 일까요? 견해를 인간이라고 할순 없겠지요.
해서 말인데 아비담마,달마에서는 색온을 몸(물질)이라 하는데 아비담마,달마식대로
색을 몸둥이라고 보고 경전에 대입해보면
" 만일 여래께서 후세에 나고 죽음이 있다고 말씀하신다면 그것은 몸둥이(육체)(色)가 되는 것이요, 만일 여래께서 후세에 나고 죽음이 없다고 말씀하신다면 그것도 몸둥이가 되는 것입니다. 만일 여래께서 후세에 나고 죽음이 있다던가, 후세에는 나고 죽음이 없다고 말씀하신다 해도 그것은 몸둥이가 되는 것이요, 만일 여래께서 후세에 나고 죽음이 있지도 않고 후세에 나고 죽음이 없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씀하신다면 그것도 몸둥이가 되는 것입니다.
여래께서는 몸둥이이 이미 다하셨고 마음이 잘 해탈하셨습니다."
가 되는데 저러한 4견해가 몸둥이가 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 되겠지요.
그렇다면 색온을 '번뇌'로 보고 대입하면 어떻게 될까요?
" 만일 여래께서 후세에 나고 죽음이 있다고 말씀하신다면 그것은 번뇌(사견)(色)가 되는 것이요, 만일 여래께서 후세에 나고 죽음이 없다고 말씀하신다면 그것도 번뇌가 되는 것입니다. 만일 여래께서 후세에 나고 죽음이 있다던가, 후세에는 나고 죽음이 없다고 말씀하신다 해도 그것은 번뇌가 되는 것이요, 만일 여래께서 후세에 나고 죽음이 있지도 않고 후세에 나고 죽음이 없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씀하신다면 그것도 번뇌가 되는 것입니다.
여래께서는 번뇌이 이미 다하셨고 마음이 잘 해탈하셨습니다."
어떤가요?
이러한 견해들은 번뇌라 하므로 해서 이러한 5견해들은 '번뇌'이고,
여래는 번뇌를 다하셨다 가 되니 글이 논리적으로 하자가 없습니디.
살펴본바 인간을 '오온, 색온을 몸둥이라 하면 경구의 논리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오온은 '인간' 색온은 '몸' 이 될 수 없으므로 아비담마,달마의 오온교리는
근본불교와 어긋남을 알 수 있습니다.
15. 색이 번뇌라고 나오는 대승경전
<돈오입도요문론 24 즉색시공>
어떤 것이 색에 즉하고 공에 즉함이며
어떤 것이 범부에 즉하고 성인에 즉한 것입니까?"
"마음에 물듦이 있음이 곧 색이요,
마음에 물듦이 없음이 곧 공이며,
마음에 물듦이 있음이 곧 범부요
마음에 물듦이 없음이 곧 성인이니라.
問 云何是卽色卽空 云何是卽凡卽聖
答 心有染 卽色 心無染 卽空 心有染 卽凡 心無染 卽聖
<반주삼매경 6. 사배품(四輩品) >
그것은 보살이 색(色)을 구하는 것이다.
색을 구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 사람이 ‘이 공덕으로 나는 다음 생에 천신이나
혹은 전륜성왕으로 태어나리라’고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16. 결론
오취온은 오온이란 망념을 '나의 것'으로 취한 망념으로 '현존' 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취온은 六觸연기설에서 잘 알수 있습니다. 취에는 애착하고 취할 대상이 있어야 합니다.취는 항상 六觸-受(想, 思)-愛 다음에 나타납니다.촉을 통해 受(상사)가 발생하여 오온이 형성되면 오온에 대해 愛가 생기며, 오온에 대하여 愛가 생기면 그 오온을 취하여 그것을 중생의 자아로 취해진 오온이 오취온이고 이 오취온은 오온 가운데 갈애의 대상이 된 것이므로 욕탐이 있는 오온이 됩니다.
위 경들을 살펴본바
색취온과 색온이 동류로 쓰임을 통해 망념임을 알게되어 색온이 몸둥이란 것이 잘못된 것임을 살펴 보았고 (2번),
색취온의 사전적 의미를 통해 감촉되어져 생겨난 느낌으로 색취온이 苦임을 알게 됨과 동시에 색온과 색취온이 망념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3번),
색온을 물질, 걸림을 변형이라고 아비담마식으로 해석하면 수 많은 경에 反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4번,5번),
사계(사대)를 흙,물,불,바람 혹은 즉物의 성질로 알고 있는것은 외도설이며 (6번),
사계(사대)란 마음 법임을 경을 통해 알게 되었고 (7번)
사계(사대)란 깨달아야 아는 법이며, 18계를 인연하고,
사계(사대)를 끊는것은 苦소멸이라는 '애멸고멸제'라는 설명을 통해 사계(사대)가 망념임을 알게되었고 (8번),
사계(사대)란 단단한것,습한것,따뜻한것,움직이는것에서 인식된 생각, 지계는 식이 머무는 사식주이며(9번,10번)
구체적으로 색온이 마음법임을 위 경전을 통해 알게 되었으며 (12번),
색온은 소멸하는 것이 혜탈이라고 나오는 경들도 알게 되었습니다. (13번).
마지막으로 아비담마 해석을 따르면 아함경의 수많은 경과 일치하지 않음을 알았습니다.
이상 경을 통해 살펴본 바 색온은 '마음 법'임이 잘 설명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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觸因.觸緣。生受.想.行。是故名受.想.行陰。所以者何。若所有受.想.行。彼一切觸緣故。名色因.名色緣。是故名為識陰。所以者何。若所有識。彼一切名色緣故。 比丘白佛。善哉所說。歡喜隨喜。
更有所問。云何色味。云何色患。云何色離。云何受.想.行.識味。云何識患。云何識離
- 이경은 색온을 떠나라 합니다.색온이 몸둥이면 몸둥이를 떠난다라는 말인데 몸둥이가 무슨죄라고 떠날것이며 혜찰을 하신 부처도 몸둥이 가지고 평생을 사셨으므로 몸둥이를 떠나는 것은 넌센스가 됩니다. 그러므로 색온을 떠나라는 것은 몸둥이가 아니라 망념을 떠나라하는 것이 바른 이해임을 알수 있습니다.
<잡아함 113 단색고경>
신수장경 : 2-38a
한글장경 : 잡-1-150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마구라산에 계시었다. 때에 라다라는 시자 비구가 있었다. 그 때에 집을 나온 많은 외도들은 존자 라다에게 가서, 서로 인사한 뒤에 한 쪽에 물러 앉아 그에게 물었다.
"너는 무슨 까닭으로 집을 나와 사문 고오타마 밑에서 법행을 닦는가."
존자 라다는 대답하였다.
"나는 괴로움을 끊기 위해 집을 나와 세존 밑에서 범행을 닦는다."
"너는 어떤 괴로움을 끊기 위해 집을 나와 사문 고오타마 밑에서 범행을 닦는가."
"나는 <색>의 괴로움을 끊기 위해 집을 나와 세존 밑에서 범행을 닦고, 느낌·생각·지어감·의식의 괴로움을 끊기 위해 집을 나와 세존 밑에서 범행을 닦는다."
때에 집을 나온 외도들은 존자 라다의 말을 듣고 마음이 불쾌하여 자리에서 일어나 꾸짖고 떠나갔다. 그 때에 존자 라다는 모든 집을 나온 외도들이 떠나간 줄을 알고 이렇게 생각하였다. 즉 '내가 아까 그렇게 말한 것은 과연 세존을 비방한 것이나 아닌가. 말답게 말했던가. 법답게 말하고 법과 법을 따르는 말이었는가. 또는 다른 사람이 와서 힐난하고 꾸짖을 때 지지나 않을까'고.
그 때에 존자 라다는 해질녘에 선정에서 깨어나 부처님께 나아가 그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나 한 쪽에 앉아 위의 일을 자세히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아까 한 말에 잘못이나 없나이까. 과연 세존을 비방한 것이나 아니겠습니까. 또는 다른 사람이 와서 힐난하고 꾸짖을 때에 지지나 않겠나이까. 말답게 말하였나이까.법답게 말하였고 법과 법을 따르는 말이었나이까."
부처님께서는 라다에게 말씀하시었다.
"너는 진실을 말하였다. 여래를 비방하지 않았다. 말답게 말하였고 법답게 말하였으며 법과 법을 따르는 말이었다. 왜 그러냐 하면, 라다여, 색은 괴로움이다. 그 괴로움을 끊기 위해 집을 나와 범행을 닦는 것이요, 느낌·생각·지어감·의식은 괴로운 것이다. 그것들의 괴로움을 끊기 위해 집을 나와 범행을 닦는 것이기 때문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라다 비구는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