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중국연구소 개혁개방 40주념 심포지엄 참관기(17/06/02)
"변하는 중국 변하지 않는 중국"
1978년 11기 3중전회에서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천명한 이래 40년이 지났다. 그 사이 중국은 개발도상국에서 G2로 올라섰고, 세계패권을 두고 미국과 경쟁하려는 움직임을 보일 정도로 성장했다고 평가받는다. 그렇다면 개혁개방 이후 40여 년에 이르는 시간동안 중국이 변한 것은 무엇이고 변하지 않은 것은 무엇일까? 이 변화와 연속성이라는 과제를 가지고 서울대 중국연구소에서 심포지움을 개최한다길래 참관하고 왔다. 올 한해 총 3번에 걸쳐 심포지움을 개최할 예정이라는데, 모든 내용을 모아서 학부2-3학년용 교재를 만들어서 출판할 예정이라니 참 스케일이 큰 발표회구나 싶었다. 1차는 역사, 외교, 경제, 정치 분야에서의 변화와 지속성을 논하는 자리였다.(개인적 사정으로 외교분야는 제대로 듣지 못했다.)
서울대 역사교육과 유용태 교수님은 ‘현실중국의 역사적 이해’를 위해 크게 세 가지 키워드를 들고 나오셨다. 공화제로부터 일당체제로 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이당치국以黨治國, 정치적 사회주의와 시장경제가 공존하는 혼합경제, 한족과 소수민족을 엮어 중화민족으로 범주화하려는 다원일체多元一體의 세 가지 주제를 통해 청말에서 민초로부터 시작된 중국의 근대사가 어떻게 현실의 중국을 형성하였는지에 대한 과정을 굉장히 개괄적으로 설명하셨다.
중화민국 초기 중국은 공화제 실험을 시작하였는데, 정당중심의 의회제를 실시하였다. 1913년에서 1924년까지 정당정치를 실험하지만, 군벌체제의 난립이라는 정치적 환경 때문에 의회는 들러리에 불과하게 되었고, 해산을 밥먹듯이 하게 되었으며, 의원들은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하는 모습을 보여 대중의 신임을 잃게 된다. 결국 중국국민당도 중국공산당도 소련모델의 일당체제, party-state 시스템을 수용하게 되면서 당정군 일체화라는 지금 중화인민공화국의 원형이 되는 정치시스템이 발생하게 된다. 다만 중화민국 당시 일당제의 대안으로서 사단社團이 직업별로, 혹은 직능별로 조직되는데, 이는 민의를 직접적으로 대표한다는 점, 자치, 분권, 공화의 이론에 충실하다는 점에서 신민주주의라고 불리었고, 일당제의 독선을 완화해 주는 측면(일당공화제, 黨主社補)에서 최근 주목받고 있는 주제라고 한다. 그리고 현실의 중국은 당정군을 일체화하는 일당제와 당주사보의 형태를 지속시켜 온 가운데 제도적 측면에서, 그리고 개인의 경제적 자유가 조금은 더 보장되었다는 측면에서는 변화가 있었다고 평가하셨다.
혼합경제는 이미 쑨원과 국민당이 1949년 이전에 국영과 사영의 합작경제를 국민당이 주도하고, 서구식 의회정치에 소련식 계획경제를 혼합하는 방식으로 국가주도의 경제개발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현재의 개혁개방 이후 혼합경제와의 연속성으로 볼 수 있다. 다만 그 사이 마오시기에 계획경제에 바탕을 둔 단일국유제에 실패하면서 시장경제와 정치적 사회주의를 혼합하는 경제체제를 형성하였다는 점에서는 변화했음을 엿볼 수 있다.
사실 국민당과 공산당 모두 중화민족론을 내세워 소수민족들과 그들의 영역까지를 중화민국 혹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지배아래 두는 정책을 취했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다만 국민당의 중화민족론이 기존 소수민족들을 개조하여 한족화함으로서 동일한 정체성을 지닌 중화민족을 형성하겠다는 입장인 반면, 공산당의 중화민족론은 다원일체이념으로서 자치론을 표방하여 통일적 다민족국가를 형성하려 한다는 측면에서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이 경우에 소수민족들의 문화적 자율성은 인정되지만(다원), 그들만의 국가형성은 불허한다(정치적 일체성 강조).
개혁개방 이후 눈부시다고까지 일컬어지는 중국의 경제발전은 크게 세 시기로 나뉜다. 초기 시장경제 체제로 전환되는 과정(천안문 사태와 남순강화를 포함하여)에서 1997년 이후 동아시아형 발전국가 모델을 거쳐, 2008년 리먼 브라더스발 세계 경제위기 이후 ‘새로운 구조전환기’를 맞이하면서 중국은 굴기하였고 미국과 함께 G2에 속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중국 경제 발전의 유형을 추격이론으로 설명한 이근 교수님(서울대 경제학과)은 각종 경제적 지표를 통해 중국이 현재 중진국함정에 빠져있을지도 모른다고 진단한다. 중진국 함정에 빠져있다고 하는 기준은 흔히 1인당 GDP가 미국 대비 20-40%에 10년 넘게 머물러 있는 상태를 말하는데, 중국은 2010년대 들어 20%를 돌파하였고 아직까지는 40%를 넘지 못하고 있다(2016년 기준 26.8%). 중진국 수준에 10년이 넘게 빠져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중국이 개도국에서 현재의 중진국으로 진입하기까지는 워싱턴 컨센서스(서구적 근대화 모델), 동아시아 발전 모델(수출주도, 기술집중의 발전 모델), 중국 특유의 베이징 컨센서스(적극적 M&A, 해외기업 투자유지, 토착기업 육성을 통한 대체) 등등의 요소들을 혼합한 형태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럼에도 중국은 현재 전체 경제규모로 보았을 때는 G2에 진입했으나 1인당 GDP로 보았을 때는 여전히 중진국에 머물러 있다.(이를 근거로 서구의 주류 경제학계는 중국의 민주화만이 돌파의 답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중국은 과연 이 중진국 상태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이근 교수님은 그 가능성을 3가지 기준에서 탐색한다. 혁신(innovation), 대기업(big business), 분배(inequality)가 그것이다. R&D 투자비율과 특허 수의 증가율을 봤을 때 중국이 혁신을 추구하는 경제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이것은 토론자이신 김시중 교수님도 인정한 사항이다.) 물론 그 수준이 높은 건 아니지만, 그 증가추세만은 독보적이다. 즉, 앞서가는 미국을 따라잡기 위해서 중국은 경쟁과 체증이 심할 것이 분명한 쉬운 길(섬유, 철강, 반도체 산업 등)에만 집중하는 것보다는 비록 멀고 돌아가는 길이라 하더라도 기술 혁신 중심의 분야(제약, 기초과학 등)에 투자하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최고속도로 따라잡는 길일 것이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성장 측면에서는 포츈지가 발표하는 세계 500대 기업 가운데 중국기업만 103개라는 점이 잘 보여준다.(다만 김시중 교수님이 지적하신 것처럼, 이 가운데 90%가 국유기업이라는 점은 분명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문제는 분배다. 이근 교수님께서 보여주시는 각종 데이터들(도농간 임금 불균형, 지니계수, 잉여노동력 수 등등)이 중국에서 분배가 이루어지지 않는 증거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마치 쿠즈네프의 성장 분배 곡선에서 아직 분배로 이어지는 전환점에 도달하지 않은 것처럼, 그리고 루이스의 도농간 노동력 이동 이론에서 아직 전환점에 다다르지 않은 것처럼. 이근 교수님께서 중국이 미국을 따라잡는 시기를 기존에는 2030년으로 봤는데, 각 종 지표를 보면 최소 2040년 이후로 미뤄야 된다고 하신 말씀이 바로 이 때문인가 싶기도 하다. 구체적으로 도농간 임금 불균형이 나아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점점 심해지는 경향을 보이는 것, 그 심한 정도가 지역별로 따지면 서부내륙지역으로 갈수록 더욱 심해진다는 것, 지니계수 역시 2008년을 기준으로 약간 줄어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2015년에 이르면 다시 소폭 증가한다는 점 등등이다. 다만 잉여노동력 수에서 동부연안, 중부 및 서부 내륙 지역 모두 감소하는 추세라는 점에서 루이스의 전환점을 상기해 낼 수는 있겠다.(그러나 여기에는 황쫑쯔의 반론도 있어 더 두고 볼 일이다.)
과연 중국은 미국을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인가? 이근 교수님에 따르면 몇 가지 측면에서 가능할 수도 있다. 혁신주도, 지역간 균형추세, 교육주도, 임금상승을 통한 분배 효과 등등의 추세가 그 증거다. 다만, 여기에도 리스크가 있는데, 기업을 중심으로 급증하고 있는 부채비율(지난 주 무디스가 중국의 신용등급을 하향조정한 이유), 지방정부의 적자, 환율절상 등등의 경제적 분야뿐 아니라 비경제적 분야, 특히 민주화 요구라는 도전에 직면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하셨다. 중국이 미국을 추월하기 위해서는 추격하여 추월하는 경로를 창조해 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한데, 그러려면 미국과 비슷해지려 하기 보다는 미국과 다른 체제를 창출해 낼 수 있어야 한다. 미국이 가고 있는 길을 뒤따르기만 한다면 ‘제논의 역설’처럼 영원히 따라잡지 못할 것이다. 이 때문인지 시진핑은 최근 뉴 노멀을 얘기하였지만, 분명 권위주의와 민주주의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질 가능성 역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는 향후 중국 경제의 최대 불확실성 요소라는 것이 이근 교수님의 판단이다.
조영남 교수님의 발표는 근본적으로는 지난번 현대 중국학회와 결을 같이 하는 내용이었다. 다만 두 번째 듣는 발표이다 보니 단순히 친중적인 시각이라고 생각했었던 것이 오해였음을 알 수 있었다. 현실 중국의 정치체제를 설명하기 위한 핵심질문은 경제발전 과정에서 정치의 역할은 무엇인가? 경제가 그렇게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왜 민주화되지 않았는가? 일 것이다. 민주주의로는 중국의 개혁개방, 경제발전을 설명할 수 없다. 중국의 경제성장을 설명할 수 있는 정치체제는 국가건설(state-building)이다. 권위주의에 기반 한 국가건설로 대표되는 중국 정치개혁의 특징은 엘리트 정치인데, 90년대 중반 이후 중국은 카리스마적인 한 명의 지도자(예를 들면 마오쩌뚱)에 기대는 것이 아닌 집단지도체제를 형성하여 정책결정을 할 수 있도록 제도화하였고, 여기에는 덩샤오핑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그리고 그 목표는 경제발전이었다. 고로 현 시기 중국의 사회주의는 경제개발을 정당화하기 위한 이념에 불과하다. 사회주의 초급단계론, 사회주의 시장단계론 등등. ‘흑묘백묘론’이 잘 보여주는 것처럼 중국의 정치체제는 기본적으로 현 체제를 정당화하여 경제발전을 이룩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중국에는 딱히 이거다 할 만한 통치이념이 없이 그냥 짬뽕식이다. 거기에는 사회주의, 시장경제, 유교, 민족주의, 국민국가 개념 등이 그때그때 필요할 때에 강조되고 이용될 뿐이다. 그러므로 중국 정치체제를 비판하면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것은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격이라고 할 수 있다.
만일 조영남 교수님의 말씀처럼 자오즈양과 덩샤오핑이 설정한 중국 국가체제와 정치개혁이 싱가포르 모델을 참고한 장기 프로젝트라고 한다면, 중국의 궁극적 목적은 무엇인가? 싱가포르의 정치체제가 근본적으로 일당독재의 권위주의, 엘리트 중심의 집단지도체제인 것은 맞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당제와 보통선거라고 하는 절차적 민주주의를 통해 민의를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절차를 거치기는 거친다. 다만 정교하게 짜여진 법과 제도, 규범, 언론통제, 사회문화적 인식, 경제시스템 등을 통해 공동체 구성원들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자발적으로 지지하도록 유도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최소 90%이상의 시민들, 그것도 각 종 매체를 통해 외국의 정보를 자연스럽게 접한 시민들이 말이다. 중국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목표가 싱가포르 모델이라면 언젠가는 절차적 민주화(요식적으로라도 민의를 반영하는 과정)가 이루어진다는 말일까? 교수님께서는 최근 중국 내부에서 사회적 자본과 공공재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가 주요 문제 중의 하나라고 하셨다. 즉, 아래로부터의 민의를 표출하고 싶은 욕구가 점차 쌓이고 있다는 것. 질의응답시간에 나온 바에 따르면 최근 중국 내부에서는 하루 평균 500건의 소요사건이 일어난다고 한다. 새로이 출현한 빠링허우, 지우링허우들(곧 성인이 될 링링허우)은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어떻게든 국가에 전달하고자 하는 데에 거리낌이 없다. 이들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가 결국 중국 정치체제의 과제일 것이다. 완전 민주화가 답일 것인가? 싱가포르 모델이 답일 것인가? 아님 그대로 권위주의 체제를 유지할 것인가?
여러 전문가 분들의 발표를 들으면서 떠오른 생각은 중국의 현실은 너무나 복잡하다는 것이다. 무엇이 변하였고, 무엇이 변하지 않았는지 불분명하다. 분명 변화했다고 생각한 사항이 알고보면 변화하지 않았고, 연속성에서 바라봤던 부분이 어느 순간 다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확실히 중국은 넓은 나라다. 서구의 충격이전 이미 수천년의 역사를 바탕으로 그들만의 정치 사회 경제 문화적 정체성이 확고히 형성된 한편, 그 넓은 땅내에 어느 하나의 기준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다양한 가치들이 공존해 온 '문명' 단위의 공동체이기 때문에 단순하게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느낀 점은 결국 현실 중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회주의’를 기준으로 변화와 연속성을 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엘리자베스 페리 교수는 사회주의가 중국에 도입되는 과정에서 이 외국의 생소한 이데올로기가 일반 대중들에게 어떻게 이해되는지, 그리고 초기 공산당의 엘리트들이 그 이론을 이해시키기 위해, 그리고 농민들과 친밀하게 만들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기울이는지를 연구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사회주의에 중국적 가치가 스며들게 되고,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중국식 사회주의는 변화와 연속성을 동시에 가지고 출발하였다. 가끔 역사학자들은 이 사회주의의 영향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지만, 안치영 교수님의 말씀처럼 (마오시기를 포함하여)사회주의라는 이념이 현실 중국 사회에서 가지는 의미는 우리의 생각보다 매우 크다. 현실 중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설명하는 데에 있어서 사회주의를 빼놓고는 얘기 자체가 불가능하니까. 결국 현실중국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회주의라는 연결고리를 가지고 모든 분야를 종횡무진하면서 한꺼번에 보는 이 같은 기회들이 많아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