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선물 5○
여름을 스쳐온 가을이
비가 되어 찾아온 날
어둠을 닮은 두 어깨에
가을비를 얹고서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서는 한 남자가 있었다
"식당 영업 끝났심더"
카운터에 앉아 하루 매상을 정리하던
중이었던 식당 주인으로 보이는 할머니는
입구에 서 있는 남자가
밥을 먹으러 온 사람이 아니란 걸
알아버린 눈동자엔 두려움으로 가득했다
눌러쓴 모자와 가냘픈 옷가지에서
떨어지는 빗방울들이
가게 안을 가득 채워져 가고 있는
모습을 보며 할머니는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보아하니 밥 무러 온 사람은
아인 것 같은데 이유나 한번 들어 보입시다"
덩그러니
놓인 탁자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남자는
할머니와 눈조차 마주치지 못한 채
칼을 쥔 두 손은 떨고 있었다
"할머니 정말 죄송합니다"로
시작된 남자의 말을
말없이 듣고만 있던 할머니는
카운터로 걸어가 오늘 번 돈이라며
남자 앞에 내밀어 놓는다
"좀 더 일찍 오지 그랬노""
살 날이
그리 많이 남은 거 같지 않아
가지고 있는 돈을
부모 없는 아이들에게 다 기부하고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처지라
"자네에게 줄 거라곤 이것뿐이라
미안허네"
숨죽인 울음이 되어 흐느끼고 있는
남자의 손에 한 묶음의 돈을 쥐여준
할머니는
"뭐하고 있노
그거라도 들고 가서 의사 샘한테
부탁 안하고.."
"잊지않고 꼭 갚겠습니다 "
"어서 가 보그래이..."
그제서야 정신이 든 남자는
녹슨 비가 내리는 거리를 용수철처럼
튀어나가 멀어지려는 모습을
바라보고 섰던 할머니가
고함을 치며 뒤따라오는 소리에
"이젠 틀렸구나..."
견딜수 없는 아픔을 바라보 듯
멈춰선 남자는 점점 다가오는 할머니의
발자국 소리에 심장이 멎어가려던
그때
"비 맞으면 못쓴다
우산 쓰고 가래이"
할머니의 그 말에
행복을 배워버린 남자는
애써 매달려 있던 눈물방울 하나를
우산을 쥔 손등위로 떨어뜨리고 있었고
"그 돈으로 모자랄끼다"
단 한 번의 따스함으로
봄이 오지 않는다며
끼고 있던 반지를 남자에 손에
연이어 쥐어주며
비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남자에게 빨리 가라는 손짓을 하고 있었다
비 갠 다음 날 저녁
게슴츠레 깔린 어둠을 닮은 얼굴로
식당 안으로 들어서는 경찰관 뒤에는
어제 그 젊은이의 모습이 따라 들어오고
있었다
"저기 할머니..
어제 여기서 도난당한 물건 있으시죠?"
"아무 일도 없었는데 와카는 교"
"혹 이 반지 도난당한 거 아닌지
한 번 봐 주세요"
"내꺼는 맞는데 도둑맞은 적은 없심더"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할머니 것이 저 사람 손에 있으니까
도난당한 거 맞으신 거죠?"
"내가 준긴데 와 생사람잡고 그라는교"
경찰관들이 사라진 자리에 서서
말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는 남자의
손을 잡으며
"여기서 이카먼 우야노
집사람한테 퍼떡 가봐라."
남자는
내일이면 아침처럼 다가올 이별이
아닐 길 기도하며 아내가 있는
병원으로 뛰어가고 있었다
"여보..
어디갔다 이제 오는 거야
원무과에서 보호자 만난다며
몇 번이나 왔다 갔어"
"알아서 걱정하지 마
내가 가 볼께.."
"여보 그냥 나가자,
우리가 돈이 어딨어."
" 돈은 일부 마련했으니까
이걸로 일단 수술부터 받자"
눈물은
눈물끼리 다독거리며 살자는
아내의 말을 귓등으로 넘기며
찾아간 원무과에서
"원장님께서 뵙고 싶어 하십니다 "
원장실 문을 열고 들어간 남자는
준비해 온 돈을 점퍼 안주머니에서
꺼내 반지와 함께 내밀어 놓는다
"저 원장님...
일단 이거 받으시고 수술해 주시면
나머진 제가 꼭 마련해 오겠습니다"
"제가 듣기론 실직 상태라고 들었는데
우리 병원에서 마침 일 할 분을
찾고 있었는데..."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이건
아내분 간병하시는 데 보태시고요
수술비는 일하면서 천천히 갚으시면
됩니다"
수술과 취직이라는 생각지도 못한
행운에 들뜬 부부는
가슴으로 언 손 녹이며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 행복에
봄을 본 꽃처럼 웃고 있었다
"여보 꼬집어 봐
꿈은 아니지?"
어느덧
같은 계절이
또 다른 계절을 불러다 놓은 자리에
곱게 다린 햇살 한 점을
손등에 올리며 살아가던 부부는
낯설지만 잊을 수 없는
가을이 걸린 하늘을 따라 걸어간
걸음을 멈춘다
"여긴 것 같은데.."
할머니의
식당이 있던 자리에 들어선
보육원 문을 열고 들어선 부부는
"저 말씀 좀 묻겠습니다
혹 여기서 식당 하시던 할머니.??.."
부부는
누군가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문을 열고 나오며
보육원 원장이 들려줬던 이야기를
가을 햇살에게 들려주고 있었다
"정말 훌륭하신 분이셨네요"
"전재산을 장학재단에 바친 것도 모자라
자신의 땅까지 아이들 쉼터로
만들어 주고 가시기까지..."
줄수 있는 건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다 주고 간
할머니를 좀 더 일찍 찾아뵙지 못한
송구함에 고개를 떨구고 있던 부부는
"여보….
할머니께 갚아드릴 돈을
아이들에게 대신 갚아주면 어떨까요?"
"분명 할머니도 좋아하시겠지"
보육원 문을 열고 들어간 부부가
다시 문을 열고 나왔을 때
한가득 싣고 온 생필품을 나르는
또 다른 부부와 마주치면서
서로는 익숙한 얼굴에 걸음을 멈춰
세운다.
"아니 원장님께서 여길 어떻게?"
부부는 알게 되었다.
할머니가 주신 또 다른 선물이
있었다는 것을..
"어떻게 이런 일이"
"어머니가 자네와 그 일이 있고 난
다음 날 내게 전화가 오셨지 "
"그랬었군요"
"난 자네를 좀 도와주라는
어머니의 마지막 유언을 받든 것 뿐일세"
발아래 세상을
하나의 마음만 가지고 살 순 없지만
불행도 때론
행복을 위해 필요한 거라며
용기내어
오늘의 세상을 살게 해 준
할머니가 그려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불행은 ...
행복을 위해
먼저 온 손님일 뿐이라던..
펴냄/노자규의 골목이야기
카페 게시글
감동이야기 모음。
할머니의 선물 5
첫눈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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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9.27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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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신화처럼 따뜻한 이야기, 따뜻한 사랑이 있어 비가 내린 뒤에 햇살이 빛나듯, 엄동설한을 이겨낸 푸른 생명들이 이어지는 거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