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즈의 어원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주신 제우스와 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 사이에 태어난 9명의 ’무사이(Musai)’라는 그리스 여신들에서 유래했다. 이들은 학예의 여신들로, 천문학이나 역사 등 꽤 넓은 범위를 관장하는 신이었다. 그리스 사람들은 예상도 하지 못했던 순간에 갑자기 떠오르는 예술적 영감이나 아이디어가 바로 이 신들에게서 나온다고 생각했다.
살바도르 달리 (갈라의 기도)
알프레도 시티글리츠 (조지아 오키프)
이후 무사이(Musai)가 영어 단어 뮤즈(Muse)로 바뀌는 과정에서, 뮤즈는 창작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지만 존재 자체만으로도 창작자에게 깊은 영향을 주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실제로 여러 시대에 거쳐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미모와 재능을 갖춘 여성들에게서 작품의 영감을 받아 명작을 탄생시켰다. 아메리칸 발레단을 설립한 러시아 출신의 미국 무용가 겸 안무가 조지 발란신은 음악성과 기교, 외모 등 모든 면에서 독보적이었던 발레리나 수잔 패럴을 위해 <돈키호테>, <샤콘느> 등을 창작했으며, 초현실주를 창시한 화가 살바도르 달리는 연인 갈라를 위해 <갈라의 기도>를 그렸다. 사진작가 알프레도 스티글리츠는 ‘꽃의 화가’로 유명한 화가 조지아 오키프에게 반해 그녀의 몸짓을 섬세하게 포착해낸 사진 수 천장을 찍었다. 문학 분야에서도 여러 소설가와 시인들이 아름다운 여인을 떠올리며 후세에 길이 남을 명작을 창조했다.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작품을 썼던 작가들과 그들의 뮤즈에는 누가 있는지 살펴보자.
단테의 뮤즈, 베아트리체
“아아. 고귀한 여인이여, 내 희망은 당신 안에서 솟구칩니다”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가 그린 ‘축복받은 베아트리체’
이탈리아가 낳은 최고의 시성(詩聖) 단테는 1294년 봄, 그의 나이 아홉 살에 평생의 연인이자 뮤즈 베아트리체를 만나 한 눈에 반했다. 그 후 9년 만에 길에서 잠시 스치듯 재회했을 만큼 그들의 만남은 짧았지만, 단테는 평생 한결 같이 베아트리체를 사모했다. 그러나 몰락한 귀족의 아들이었던 그는 명망 있는 가문의 딸이었던 베아트리체와 결혼할 수 없었고, 결국 그녀를 마음에 품은 채 다른 여인을 아내로 맞았다. 그리고 다른 남자와 결혼한 베아트리체는 1290년 스물 네 살의 나이로 요절하고 말았다. 18살이 되던 해부터 글을 쓰기 시작한 단테는 한 번도 소유하지 못했던 여인에 대한 사랑을 창작활동의 원동력으로 삼았다. 특히 그가 죽기 전 완성한 <신곡>에서 평생 단 하나의 사랑이었던 베아트리체를 영원한 여인상으로 찬미함으로써, 베아트리체는 위대한 작가에게 강렬한 영감을 남긴 대표적 뮤즈로 기억되었다.
신곡/ 단테
<실락원>, <천로역정>과 함께 최고의 기독교 문학작품으로 꼽히는 장편 서사시로서, 지옥∙연옥∙천국편 등 3편으로 이뤄져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으로 직접 등장하는 단테는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안내로 지옥과 연옥에서 벌을 받고 있는 인간들의 모습을 목격하고, 다음으로는 천국에 이르러 성 베르나르의 안내로 천상의 신비를 맛보게 된다. 작품 중 연옥편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베아트리체는 단테가 천국에 오를 수 있도록 깨끗한 몸으로 준비시키는 성스럽고 고귀한 존재로 그려진다. 전쟁에 휘말려 1302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추방당한 단테는 망명생활을 하며 1321년까지 이 작품을 썼고, 평생 마음속에 간직해왔던 여인 베아트리체를 지고의 아름다움을 지닌 구원의 여인으로 탄생시킨다.
새로운 인생 / 단테
<새로운 인생>은 단테가 젊은 시절 평생 사모했던 여인 베아트리체에게 바치기 위해 쓴 서정시들이 담긴 책이다. 이 작품에서 단테는 아홉 살 무렵, 베아트리체를 처음 만났던 순간을 회상하며 “진실을 말하자면 바로 그 순간 심장의 은밀한 방 안에서 기거하고 있던 생명의 기운이 너무나 심하게 요동치는 바람에 가장 미세한 혈관마저도 더불어 떨리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 서정시를 통해 베아트리체와의 첫 만남, 그녀의 아름다움과 선한 품성에 대한 찬미, 두 사람의 사랑이 서로 엇갈리게 된 과정, 베아트리체의 부고를 전해들은 날 느낀 슬픔, 그녀를 향한 자신의 진실한 감정 등을 아름다운 문장으로 기록했다.
시인 백석의 뮤즈, 김영한
“바다와 같이 당신을 사랑하고만 싶구려”
백석의 연인이었던 기생 김영한
천재시인’뿐 아니라 ‘문단 최고의 미남’으로 불렸던 시인 백석은 항흥영생여고 영어교사로 근무하던 당시 기생 김영한과 운명적으로 만났다. 집안의 어려운 경제적 사정으로 인해 열 여섯의 나이로 기생이 됐던 김영한은 문학에 재능이 있어 ‘삼천리 문학’에 수필을 발표하는 등 인텔리 기생으로 이름을 알리던 차였다. 교사들의 회식장소에서 김영한을 만난 백석은 김영한을 만나자마자 옆자리에 앉혀 손을 꼭 잡고는 “오늘부터 당신은 나의 영원한 마누라야. 죽기 전에 우리 사이에 이별은 없어요”라고 속삭였다고 한다. 그 후 백석은 김영한에 대한 사랑을 창작의 원료로 삼아 <바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등의 시를 썼다. 그러던 중 김영한을 못마땅해하던 부모가 백석을 강제 결혼시키자, 그는 김영한에게 만주로 함께 도피하자고 제안한다. 그러나 자신의 존재가 백석의 인생에 걸림돌이 된다는 생각으로 괴로워하던 김영한은 그 제안을 끝내 거절했고, 백석이 혼자 만주 신경으로 떠난 사이 한반도에 3.8선이 생겨 두 사람은 다시는 만나지 못한다.
정본 백석 시집 ㅣ 백석
시인 백석이 1935년부터 1948년까지 발표한 시를 모은 책. 이 책에 수록된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에는 백석이 김영한에게 함께 만주로 도피하자고 설득했다가 거절당했을 때의 심경이 담겼다. 아무도 자신들을 찾지 않는 곳에서 둘 만의 세계를 꾸리고 싶었던 백석은 “나타샤와 나는 /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 산골로 가쟈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라는 글로 못 다 이룬 꿈을 그려냈다. 또 다른 시 <바다> 역시 김영한에게서 영감을 받아서 쓴 작품이다. 백석은 어느 날 이 시가 실린 여성지를 갖고 와서 김영한에게 보여주며 “이 시는 당신을 생각하면서 썼다”고 말했다고 한다. “바닷가에 왔더니 / 바다와 같이 당신이 생각만 나는구려 / 바다와 같이 당신을 사랑하고만 싶구려”라는 글이 김영한을 향한 백석의 깊은 사랑을 짐작하게 한다.
내 사랑 백석 ㅣ 김영한
백석의 뮤즈였던 기생 김영한이 백석과의 만남, 그리고 이별하기까지의 과정을 회고한 수필집. 그녀가 백석과의 사랑을 떠올려 <내 사랑 백석>을 비롯해 <내 가슴 속에 지워지지 않는 이름> 등의 수필집을 창작했으니, 백석 역시 김영한의 뮤즈 역할을 했던 셈이다. 백석과의 사랑을 남은 평생 동안 고이 간직했던 김영한은 해마다 백석의 생일인 7월 1일에는 하루 동안 아무 음식도 입에 대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그녀는 1997년 문학계간지 창비에 기금을 출연해 백석의 시적 업적을 기리고 그의 문학정신을 잇기 위한 백석문학상을 제정하도록 했다. 이 책에 시린 다음의 글귀가 그녀가 평생 마음 속에 간직한 깊은 연정을 느끼게 한다. “나는 옛 청진동집 앞 골목에 멍하니 서서 눈앞의 환상으로 떠오르는 당신께 이처럼 나직한 목소리로 혼자 중얼거린다. “이대로 언제까지라도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게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뮤즈, 루 살로메
“당신만이 진실입니다”
릴케의 작품활동에 깊은 영향을 미친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
시인이자 소설가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뮤즈였던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는 릴케 뿐 아니라 니체, 프로이트 등 당대의 예술가들과 사상가들에게 영향을 미친 뮤즈로 알려져 있다. 릴케는 22세였던 1897년 뮌헨에서 36세였던 루 살로메를 만나 한 눈에 반한다. 작가이자 평론가였던 루 살로메는 릴케에게 니체의 사상과 러시아 문학을 소개해주는 등 사상적, 예술적 뮤즈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릴케는 루 살로메 때문에 자신의 이름을 바꾸기도 했다. 루 살로메가 그의 필명 ‘르네 마리아 릴케’가 여자 같다고 놀리자, 라이너 마리아 릴케로 이름을 바꾼 것이다. 처음에는 릴케의 열렬한 구애에 경계심을 품었던 루 살로메도 차츰 릴케의 정열에 감동했고, 이후 회고록에 “당신이 사랑을 고백하면서 한 말 ‘당신만이 진실입니다’하는 바로 그 말을 나도 그대로 당신에게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릴케는 한 남자에게 얽매이기 싫어했던 루 살로메를 끝내 붙잡을 수 없었지만, 그녀와의 깊은 소통을 통해 더욱 원숙한 시 세계를 일구게 된다. 그는 1924년 지인 투른 운트 탁시스 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루라는 이 비상한 여인의 영향이 없었다면, 나의 모든 문학적 발전은 이처럼 다양한 길을 걷지 못했을 것입니다.”라고 고백했다.
그대의 축제를 위하여 ㅣ 라이너 마리아 릴케
<그대의 축제를 위하여>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루 살로메를 만난 1897년부터 1898년 까지 뮌헨, 베를린, 피렌체 등지에서 쓴 시를 담았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루 살로메와의 여행, 철학적 대화 등을 통해 인식의 지평을 넓힌 릴케의 문학 세계를 엿볼 수 있다. 루 살로메와의 만남 이 전까지의 시기를 ‘의미도 한계도 없는 맹목적인 시기’라고 불렀던 그는 초기의 감상적인 연애시에서 탈피해 삶과 예술을 하나로 바라보게 하는 아름다운 시를 썼다. 이 시집에 실린 ‘내 눈빛을 꺼주소서’라는 시에서 그는 “내 눈빛을 꺼주소서. 그래도 나는 당신을 볼 수 있습니다 / 내 귀를 막아 주소서. 그래도 나는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 발이 없어도 당신에게 갈 수 있고 / 입이 없어도 당신의 이름을 부를 수 있습니다”라며 루 살로메를 향한 깊은 정열을 표현했다.
애드가 앨런 포우의 뮤즈, 버지니아 클램
“하늘의 세 쌍둥이 천사들도 우리의 사랑을 탐스러워 했다”
토마스 설리가 그린 버지니아 클램
<검은 고양이>로 유명한 애드가 앨런 포우는 많은 여성들과 염분을 쌓았지만, 그가 진실로 사랑했던 여성이자 그의 작품활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뮤즈는 애드가 앨런 포우의 사촌동생이자 아내였던 버지니아 클램이다. 1836년 27세였던 애드가 앨런 포우는 13세의 사촌동생 버지니아 클램과 사랑에 빠져 친척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감행했다. 어린 아내 버지니아 클램은 결혼 후 생활력도 없고 음주, 도박에 중독된 남편을 보살피기 위해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본래 병약했던 그녀는 결혼한지 3, 4년이 되기도 전에 심한 결핵 증세를 보였으며, 23살 꽃다운 나이에 담요도 덮지 못한 채 추위 속에서 쓸쓸하게 죽었다. 그녀의 병과 죽음은 애드가 앨런 포우의 작품활동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포우는 아내가 아프기 시작한 후부터 그의 초기 작품들보다 훨씬 암울하고 어두운 분위기의 시 ‘갈 까마귀’ 등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또한 아내와의 사랑을 이상화한 시 <애너벨 리>를 쓰기도 했다. 황폐한 삶을 살다가 40살의 젊은 나이에 한 술집에서 죽음을 맞은 그는 평생 아내를 몹시 그리워했다고 한다.
검은 고양이 ㅣ 애드가 앨런 포우
소설 속 나와 아내는 플루토라는 고양이를 귀여워하며 기른다. 그러던 중 알코올 중독에 빠진 나는 고양이를 학대하다 죽이게 된다. 이후 부부는 플루토를 대신할 만한 검은 고양이를 입양해 기르고, 고양이에게 싫증을 느낀 나는 어느 날 고양이를 도끼로 내려치는데... 많은 평론가들은 이 작품에 등장하는 아내의 모델이 포우의 아내였던 버지니아 클램일 것이라고 말한다. 알코올 중독에 빠져 광란을 일으키는 남편을 불평 한 마디 없이 받아주는 작품 속 어린 아내의 모습이 포우의 도박과 음주를 묵묵히 견뎌낸 버지니아 클램을 닮았다는 것이다. 또한 버지니아 클램은 생전 지독한 가난으로 겨울에 난로를 때지 못해 고양이를 껴안고 잠들었다고 한다. 아내의 죽음은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포우의 작품 세계에 더욱 음울하고 기괴한 분위기를 드리웠다.
애너벨 리 ㅣ 애드가 앨런 포우
<애너벨 리>는 포우가 젊은 나이로 사망한 아내 버지니아를 추모하여 쓴 시다. 그는 이 시에서 아내를 어느 왕국에 사는 소녀 애너벨 리로 미화시켜 애도하고 있으며, 자신과 애너벨 리의 사랑을 죽음조차도 갈라놓을 수 없는 영원한 사랑이라고 찬미한다. 그가 아내를 얼마나 사랑했는지는 두 번째 연의 ‘천상의 날개 달린 천사들도 부러워할 만큼의 사랑으로’ 사랑했다는 구절에 잘 나타나 있다. 아내의 비참한 죽음을 잊고 싶은 듯, 포우는 애너벨 리를 죽게 한 것이 자신들의 사랑을 질투한 천사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녀도 어린 아이, 나도 어린 아이 / 바다의 왕국에서 / 우리는 사랑을 사랑 이상으로 사랑했다. / 나와 나의 애너벨 리 / 하늘의 세 쌍둥이 천사들도 / 우리의 사랑을 탐스러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