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탄 기차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구연식
내가 관리자로 있는 학교에서 2019학년도 초등졸업학력 인정반 졸업여행을 여수로 갔다. 세계박람회 해양공원 일대와 케이블카를 타고 남쪽 바다를 하늘에서 감상해보는 하루의 일정이었다.
열차표는 익산역에서 일괄 구매하여 익산역에서 출발하고 나 혼자만 전주역에서 합류하기로 했다. 집안의 대·소나 어느 모임의 책임자로 행사를 주관하는 경우에는 새벽부터 서두르는 성격 때문에 늘 아내로부터 지적을 받는다. 오늘도 새벽부터 잠자리에서 살금살금 걸어 나가 오늘 행사 준비를 서둘렀다. 아내는 못마땅하다는 듯 연신 헛기침을 한다.
전주역 주변에는 자가용 주차가 불편하니, 전주역까지 처음으로 시내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아내가 가끔 이용하는 시내버스 승차권을 처음 사용해야 하며 버스 노선도 모르는 상태에서 집 앞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승차하여 전주역까지 가는 게 고민이었다. 인터넷에 들어가서 전주 시내버스에 관한 모든 것을 뒤져봐도 나의 수준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택시는 최후 수단이므로, 이번 기회에 시내버스 노선을 꼭 익혀두어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열차 출발시각 1시간 전에 집을 나서서 집 앞 버스정류장에 도착하여 버스 목적지를 아무리 봐도 전주역 가는 시내버스는 없었다. 대학생처럼 보이는 학생에게 전주역까지 가는 시내버스는 몇 번을 타고 가야 하느냐고 물으니, 그 학생은 스마트폰을 꺼내더니 어떤 앱을 누르면서 어르신 60번 차를 타고 가시면 된다고 했다. 말하는 순간 60번 차가 왔다. 전주역에 가기 전 시내버스는 돌연 전북대 병원으로 들어갔다. ‘아차 잘못 탔다’를 속으로 외치면서 다음 정류장에 내려서 택시를 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버스는 다시 전주역 쪽으로 향하고 있어 겨우 안도의 숨을 쉬었다. 전주역에 도착하니 기차 출발 30분 전이었다. 아내에게 전주역에 잘 도착했다고 전화를 하고 대합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대합실에서 한참을 쉬고 있는데 열차 안내방송이 나왔다. 조금 후에 여수엑스포역에 가는 열차가 도착하니 승객께서는 안전한 지하도를 이용하여 4번 홈에서 대기하라고 했다. 4번 홈에서 조금 기다리니 드디어 여수엑스포역까지 가는 열차가 식식거리면서 들어오더니 숨을 죽여가며 속도를 낮춰 정차했다. 나는 16 열차 14A석에 가보니 우리 일행이 한 사람도 없었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지 하면서 순간 당황스러웠다. 조금 있으니 열차 안내원이 지나갔다. 나는 열차표를 보여주면서 이 열차와 차표가 맞느냐고 물으니 손님이 이 열차보다 7분 뒤에 따라오는 열차인데 혼동하여 앞차를 탔으니, 다음 역인 남원역에서 환승하라고 했다. 순간 전주역에서 내가 승차할 것으로 알고 있는 선생님들이 걱정이었다. 책임 선생님에게 내가 아침 일찍 남원에 볼 일이 있어서 일을 보고 남원에서 승차하겠다고 했다. 조금 후에 남원에서 학생들과 합류했다.
열차는 산속을 지날 때는 아침 안개를 뒤집어쓰며 달려갔다. 터널을 지날 때는 매연 때문인지 기침을 하면서 남쪽으로 남쪽으로 내려갔다. 드디어 여수 엑스포역에 도착했다. 이곳 여수는 대학 친구가 살았고, 현직 때는 교직원 연수와 학생들 소풍 등으로 너무 눈에 익은 장소다. 여수세계박람회 행사기간에는 모든 전라선 열차가 콩나물시루처럼 승객이 꽉꽉 찼으나 오늘은 여유롭게 왔다. 그 당시 행사 기간에는 구경하는 사람보다 줄 서는 사람이 많았다. 2시간 줄을 서서 20분 구경하는 진풍경이었다. 그런데 오늘의 해양공원에서 500여 m를 걸었는데도 구경 나온 사람은 50여 명 정도다. 국가 예산을 지출하여 매머드 시설을 해놓고 벌써 녹슬고 떨어지거나 휘어져서 막대한 국민의 혈세를 방치하고 있으니 속이 끓는다. 국제적 행사도 좋지만, 사후관리와 연계된 시설 투자를 생각해야겠다. 꽃게장 점심 후에 오동도 입구에 있는 관광케이블카에 나누어 탔다. 케이블카 아래는 해풍으로 다져진 나뭇잎들이 참기름을 발라 놓은 것처럼 반질반질했다. 모든 지붕은 미술 선생님이 채색했는지 생동감 있게 조화를 이뤄 좋았다.
가을의 남쪽 바다는 햇살을 그대로 되받아 비추니 금가루를 뿌려 놓은 것 같아 하늘, 땅 그리고 바다 어디를 봐도 흥에 겨워 가곡 '가고파'가 저절로 나왔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돌산공원 일대를 두루 산책하니 혼자 보기 아까웠다.
오는 길에 여수엑스포 행사 때 제일 높다 했던 스카이타워 20층 전망 좋은 커피집에서 목을 축이며 앞바다의 파도 소리가 자장가로 착각하여 순간 잠이 들었다. 누군가가 "교장 선생님, 갈 시간이에요." 하면서 깨웠다. 학생들은 이구동성으로 "남원 광한루의 러브스토리를 계속하시려면 이번에도 남원에서 내리시죠." 하면서 전체가 하하호호 웃었다. 나는 순간 아아 오늘 아침에 남원에서 환승한 것에 대해서 선생님들과 학생들은 엉뚱한 오해를 하고 있구나 생각했다. 나는 대충 얼버무리면서 겸연쩍게 웃어버리니, 학생들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차창 밖에는 벌써 땅거미가 지기 시작했다. 전주역에 도착하여 아내에게 전화를 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40여 분만에 집 쪽으로 가는 시내버스를 탑승했다. 전주역을 출발한지 1시간 만에 아파트에 도착했다. 아내는 무사히 도착한 나에게 공연히 트집을 잡았다. ‘걸어서 왔어도 벌써 왔겠네!’ 했다.
모든 일에 완벽한 만능 인간은 없다. 내가 분필가루 공장에서 세상에 나온 지 어언 10여 년이 되어간다. 정말 세상 물정 모르고 살았다. 열차를 전주역에서 잘못 타고 남원역에서 환승하고, 시내버스 타는 법도 몰라 40여 분만에 승차했던 하루가 저물고 있다. 나의 실수한 일과를 남원의 러브스토리로 착각한 학생과 선생님들, 융통성 없고 고지식한 남편을 원망한 아내가 이 글을 읽어줄 테니 오히려 나는 속이 시원하다.
(2019.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