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方[3624]범중엄(范仲淹)시, 漁家傲·秋思(어가오·추사) 행초서
<낙관글>
范仲淹詩一首國棟書(범중엄시 일수 국동 서)
범중엄의 시 한 수를 국동이 쓰다.
작가: 여국동(呂國棟)
약력: · 일조시 서예가협회 회원
· 일조시 동항구 서예가협회 부비서장
명제: 漁家傲·秋思(어가오·추사)
가을에 (이는) 적막한 심정
-범중엄(范仲淹)
塞下秋來風景異(새하추래풍경이)
변방에 가을이 오니 (주변) 풍경이 다르네.
塞(새): 변방 새. 막힐 색
衡陽雁去無留意(형양안거무유의).
형양 (왔던) 기러기는 미련 없이 날아가고
無留意(무유의): 머물 생각이 없다는 말로. 여기서는 미련 없이로 풀이함
四面邊聲連角起(사면변성연각기)
사방에서 (들려 오는) 변방 소리는 이어지는 호각소리에 생기고
千嶂裏(천장리)
수많은 가파른 산봉우리 사이로
嶂(장): 높고 가파른 산(봉우리)
長烟落日孤城閉(장연락일고성폐).
길게 낀 놀, 지는 해 외로운 성은 굳게 닫혀있네.
濁酒一杯家萬里(탁주일배가만리)
막걸리 한 사발에 멀고먼 고향집 (생각나나),
杯(배): 잔. 본문에서는 盃(배)로 썼다. 뜻은 같다.
燕然未勒歸無計(연연미륵귀무계).
연연산에 (공적을) 새기지 못하면 돌아갈 계획이 없네.
然勒頌(연륵송): 연연산은 오늘날 몽골의 항애산(杭愛山)이다.
後漢(후한) 和帝(화제) 때 거기장군 竇憲(두헌)이 북흉노와 싸워
크게 승리하고 연연산에 올라 그 공적을 기리기 위해
班固(반고)의 솜씨로 銘(명-금석이나 기물, 비석 따위에 남의 공적을
찬양하는 내용을 새김)을 지어 비석을 그곳에 세웠다고 함.
반고의 銘(명)이 바로 封燕然山銘(봉연연산명)이다.
勒(륵): 굴레. 새기다. 다스리다
羌管悠悠霜滿地(강관유유상만지)
강족(오랑캐)의 피리소리 아득하고, 서리는 천지에 가득한데
羌管(강관): 오랑캐의 피리소리. 悠悠(유유): 아득하다
人不寐(인불매)
잠 못 드는 이 밤에
將軍白髮征夫淚(장군백발정부루)
장군은 (수심으로) 머리가 허옇게 세고,
병사들은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네.
征夫(정부): 전쟁터에 나간 사람. 여기서는 병사로 풀이함.
<참고>
漁家傲(어가오)·秋思(추사)
漁家傲(어가오)는 시의 내용과는 무관한 사패의 곡조적 명칭이다.
총 62자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내용과 관계 있는 부제 秋思(추사)를 붙였다.
<작가 소개>
북송 소주(蘇州) 오현(吳縣) 사람. 자는 희문(希文)이고,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진종(眞宗) 대중상부(大中祥符) 8년(1015) 진사(進士)가 되고,
비각교리(秘閣郊理)와 우사간(右司諫), 권지개봉부(權知開封府)를 역임했다.
인종(仁宗)의 친정(親政)이 시작되자 부름을 받아 간관(諫官)이 되었다.
경우(景祐) 3년(1036) 곽황후(郭皇后)의 폐립문제를 놓고
찬성파 여이간(呂夷簡)과 대립하다가 지방으로 쫓겨났다.
요주(饒州)와 윤주(潤州), 월주(越州)의 지주(知州)를 맡았다.
그 뒤 구양수(歐陽修)와 한기(韓琦) 등과 함께 여이간 일파를 비판했으며,
스스로 군자의 붕당이라고 자칭하여 경력당의(慶曆黨議)를 불러일으켰다.
보원(寶元) 원년(1038) 이원호(李元昊)가 서하(西夏)에서 제위에 오르자,
섬서경략안무초토부사(陜西經略安撫招討副使)가 되어 서하 대책을 맡고,
침입을 막았다. 그 공으로 경력(慶曆) 3년(1043) 추밀부사(樞密副使)가 되고,
이어 참지정사(參知政事)로 승진하여 십사소(十事疏)를 올리는 등 내정개혁에 힘썼지만, 그를 미워하는 하송(夏悚) 일파의 저항이 강해 지방관을 지내다가 병으로 죽었다.
시문(詩文)과 사(詞)를 잘 지었고, 만년에 지은 「악양루기(岳陽樓記)」가 유명하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중국역대인명사전)
※ 제20회 한·중(평택-일조) 서화문화교류전 출품작
[출처] 漁家傲·秋思|작성자 farh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