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사 불꽃 아래 남은 것은 /똘시인,권기일
누가 첫 불을 붙였는가
그는 이제 말이 없다
빛보다 먼저 번진
불경의 숨결이
돌단 위에 식지 않고 남아 있지
흰비늘처럼 일던
운무의 고운사
문무왕 첫 해의 숨결 위에
의상이 심은 소리 없는 연화(蓮花)
장경의 결락된 나뭇결에
처음으로 불은 붉은 입을 대었고
소슬한 적멸의 석등은
제 그림자를 삼켰다
너는 보았는가
만행의 발끝이
다 타지 못한 계율을 디디던
그 부서진 정토의 문을
불은 불에게 묻고 있다
너는 누구를 태우려 드는가
대답 없는 재들이
사리를 품은 채 가라앉는다
회향 없는 바람이 스쳐 간
고운의 밤
다 닳은 목탁 소리
어느 산자 고승의 아픔이
하늘을 종처럼 울리고 있겠지
아픔의 고운사를 생각하며~
고운사의 화마는 단지 나무와 기와만 태운 것이
그곳을 찾고 머무시는 노승의 발자국과
아이 손을 잡고 오던 엄마의 기도와
그리고 계절을 맨발로 걷던 천년 숲길의 기억까지
모두 함께 타버려서 너무 가슴 아픕니다
이 아픈 기억이 詩가 되어
화엄의 사상이
잿더미 속에서도 연꽃을 피운다는 메세지를 늦은 새벽 글을 적어봅니다
재는 사리로 남고
슬픔은 다시 길이 되겠죠!
우리는 고운사를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겼던 의미
다시 살아내야 존재
언젠가 마지막 까지 생명을 지킨
고운사의 종소리
다시 소리치면
단지 청동의 떨림이 아니라
상실을 넘어 피어난 연화(蓮華)의 향기일 것이라
/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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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고운사, 아픔이 재가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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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선생님 ~ 좋은 시 잘 읽었습니다 덕분에 감사합니다 ^^ 늘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