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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난 5월26일 청와대 게시판에 택시운송체계의 개혁에 대하여 탄원서를 게시를 한 바 있다. 아울러 서울시 건교부 등 관계기관과 언론 방송 국회의원 홈페이지 등 각종 사이트에 게시를 하였다. 이어 A4용지 4장으로 압축 복사하여 운행 중 틈틈이 시내에서 기사들에게 배포를 했다.
아울러 5월 30일 오후 3시경 일을 마치고 회사로 들어와 회사 동료들에게도 알리려고 노조 위원장에게 복사물 한부를 대기실 게시판에 일정 시간 동안 게시할 것을 요구하였다. 위원장은 난색을 표명하였고 나는 배차실에 있던 전무에게 같은 요구를 하여 역시 거부를 당했으나 대기실의 동료들에게 복사물을 건넸다.
바로 그날 밤 10시 경에 전무가 집으로 전화를 걸어 만날 것을 요구하였다. 요구에 응하지 않자 지금 집 앞의 음식점에 와 있으니 만나 줄 것을 수차례 전화를 걸어왔고 끝내는 집으로 찾아든다고 해서 어쩔 수없이 만났다. 그 자리에서 전무는 택시 안 게시물인 자격증을 품에서 꺼내 보이며 배차중단을 말했다.
그 이후 나는 줄곧 전무에게 배차 할 것을 요구하다 끝내는 지난 8월 11일 노동부에 진정을 하였다. 결국 나는 서울 남부 노동사무소에서 전무가 건넨 사직서를 쓰고 지난 해 11월 5일 첫 택시 영업에 나선 택시기사로서의 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나는 정보의 공유가 아닌 삶의 공유란 생각으로 인터넷을 사용했기에 이글을 쓴다.
혹 이글을 읽고 나의 삶과 비슷한 처지에 당한 동료들에게 자그마한 보탬이 되었으면 한다. 또한 택시 영업이라는 힘겨운 직종에서 일하는 동료들에게 한때 동료였던 나의 삶이 그들에게 용기와 위안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나의 힘겨운 삶의 여정에서 50이 넘어 새롭게 도전한 택시기사로서의 삶을 이렇게 마감하는 마음도 씁쓸하다.
지난 5월 19일 나는 택시운송체계의 개혁에 대하여 대통령에게 탄원서를 올리기로 마음먹고 사실의 진위여부나 경우의 올바른 판단 그리고 문맥의 잘못에 대하여 경륜이 풍부한 선배 동료들의 충고를 듣기위하여 청와대 게시판에 게시를 하기 전에 초안을 전택연의 게시판에 게시를 하였습니다. 저의 신상을 확실히 밝히려 회사의 명칭도 썼습니다.
그러나 청와대게시판에 게시하기도 전에 일이 생겼습니다. 탄원서를 전택과 민택 게시판에 게시한 지 하루가 지난 5월20일입니다. 6시 교대인 낮일을 마치고 회사에 들어가니 전무가 보자고 하였습니다. 회사를 떠나 다른 곳에서 일할 수 없냐며 자진 퇴사를 종용하였습니다.
당연히 거부를 하고 집에 오자 지난 7개월 간 일체 소식이 없었던 인근 택시회사에서 노조위원장을 하는 고향 선배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자정을 지나 1시 가까이 양주 두병을 마시며 간접적인 압력을 받았습니다. 술에 취해 집에 갔는데 밤늦은 그 시각에 집으로 다시 전무가 찾아왔습니다.
대뜸 저의 앞에 무릎을 꿇더니 살려달라고 하였습니다. 황당한 일이었고 당황스런 일이었습니다. 어쩔 수없이 근처 술집에서 전무와 마주 앉았고 김 부장이라는 친구도 함께했습니다. 탄원서에 회사이름 0000이 있으니 삭제해 달라는 것이었고 새벽 5시 경에 전무 보는 앞에서 삭제를 했습니다.
탄원서 내용이 회사의 비리나 불법을 고발하는 것이 아니고 택시제도의 개혁을 요구하는 것이었고 어차피 실명 확인 절차를 거쳐야 청와대 게시판에 게시하는 것이기에 그런 문제로 탄원서가 청와대에 올리기 전에 회사와 각을 세우는 것은 좋지 않다는 판단을 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전무에게 탄원서는 일주일 이내에 반드시 청와대 게시판에 게시를 한다. 하지만 회사이름을 쓰지 않고 개인 이름으로 올린다고 확언을 하였습니다. 20일 저녁부터 21일 아침까지 몇 차례에 걸쳐 계속 회유를 받았기에 21일은 일을 할 수 없었으며 전무가 알아서 한다고 했습니다.
23일 일입니다. 그 주일은 야간 일이어서 고정 배차된 차를 몰고 운행을 나가는데 술이나 한잔 하자며 일을 나가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일을 해야 하였기에 전무의 말을 무시하고 일을 나갔습니다. 전무한테서 계속 전화가 왔습니다. 저의 생각을 확실히 말해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여 만났습니다.
제가 정한 술집에 들어서니 전무와 전무의 친구 김 부장 그리고 고향 선배로 인근 택시회사인 00운수의 노조위원장이 먼저 와서 있었습니다. 잠시 후에 우리 회사 노조위원장이 왔습니다. 택시는 전무가 회사 직원을 불러 가지고 갔으며 저는 그 자리에서도 탄원서는 올린다고 확언했습니다.
술자리가 일찍 끝났습니다. 집의 마루에서 쉬고 있는데 갑자기 전무가 찾아 왔습니다. 수박 한통과 음료수 한 상자를 현관에 놓고 급히 갔습니다. 그냥 둔 채 TV를 보다가 선잠이 들었는데 큰 소리에 잠을 깨니 아내가 상자에서 꺼낸 봉투가 있었고 그 안에는 수표와 편지가 있었습니다.
수표는 10만 원 권 20장으로 2백만 원이었으며 중소기업은행 5월20일 발행의 번호는 거라 74674766~거라 74674785였습니다. 편지는 4장으로 전무의 삶의 역정을 솔직하게 닮은 글로 0000 사장과 전무와의 관계(외삼촌) 회사 경리과장인 아내와의 결혼과정 사장의 경력 등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저와 아내는 즉시 전무에게 전화를 걸어 만남을 요구하였고 밤 10시 반 경에 신정네거리 [다몽]이란 이름의 레스토랑에서 전무와 아내인 경리과장 내외 앞에서 수표를 봉투째 반환 하였고 편지는 지금도 보관하고 있습니다. 5월26일 탄원서를 청와대 게시판에 게시하기까지 이런저런 과정이 있었습니다.
5월 30일 밤에 전무가 친구를 대동하고 저의 집 근처 술집에서 만나 배차 중지를 통보하였을 때 저의 본심이 노조 위원장이냐 돈이냐며 본심을 말하라고 하였었습니다. 회사의 대기실에서 누가 자진하여 통성명을 하는 동료들이 없었지만 커피 대접은 스스로 많이 한 것은 사실이나 게시판에 글 쓰는 것을 아는 동료는 없었습니다.
단지 회사 노조 관계자들한테만 게시판에 글 쓰는 사실을 알렸을 뿐였습니다. 저의 글 그대로 택시운송체계는 근본적으로 잘못되었기에 이 나라의 최고 통치권자인 대통령의 결단만이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습니다. 상소하는 마음에서 확실히 하기위하여 회사의 이름을 썼을 따름이었습니다.
글에 나타난 대로 비리나 불법 행위를 고발한 것이 아니라고 누차 강조를 했습니다. 나는 사실 회사를 상대로 어떤 투쟁이나 선동을 한 적이 없었고 할 마음도 없습니다. 나는 현 시스템 하에서 회사를 상대로는 그 어떤 것도 얻을 수없다는 생각입니다. 역시 최선의 방책은 스스로 깨닫고 현실의 대안 사이버를 이용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5월31일 회사에 가니 고정으로 배차되었던 택시는 이미 다른 기사에게나 배차되어 운행을 나간 상태였습니다. 불법으로 승무정지를 당한 것입니다. 전무에게 순리적으로 일 처리 할 것을 요구하며 계속 배차를 요구하였습니다. 전무는 괴롭다며 일은 한 것으로 할 터이니 계속 쉬라는 말만 하였습니다.
6월2일 노조위원장 배석 하에 입사 7개월 만에 전무의 주선으로 회사 사장과 면담이 있었습니다. 이런 일이 없었다면 사장을 언제 볼지 모릅니다. 사장이 영업사원인 택시근로자가 입사를 했는데 7개월 동안 모른 척했다는 것은 사장이 영업에 등한히 해도 이익이 있다는 반증이라 할 것입니다.
사장 자신도 현재의 택시제도가 잘못되었다고 하였으며 택시가 고급의 교통수단이 되면 자연히 택시제도도 바뀌니 참고 열심히 일하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전부터 전무가 전권을 행사하였으니 전무와 협의하라 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전무는 부당하게 배차를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5월 31일 이후 매일 출근을 하여 전무에게 순리적으로 배차할 것을 요구 하였습니다. 만날 적마다 전무는 괴롭다고 하며 끝내 저의 문제는 사장이 전무에게 책임을 지라고 하였다고 실토를 했습니다. 전무는 저를 채용한 책임을 지고 사표를 내니 저한테도 자진 사표를 내라고 하였습니다.
결국 전무는 8일 사표의 제출을 빙자하여 회사 출근을 하지 않았습니다. 6월 18~19일로 기억을 합니다. 사표를 제출하였다던 전무한테서 만나자는 연락이 왔습니다. 술을 취하도록 마셨습니다. 50이 넘어 새로운 직업을 얻어 그간 만근을 하며 나름대로 열심히 일한 것에 대한 아픔을 그에게 토로했습니다.
헤어져 집으로 가는 길에서 전무가 바지 주머니에 무언가 넣어주었습니다. 집에서 아내 보는 앞에 꺼내 보니 10 만 원권 수표 20장이 있었습니다. 떳떳하게 살림에 보탰습니다. 전에는 게시하지 말 것을 은연중 요구하는 대가성이 있었지만 탄원서를 게시하고 배차정지를 당한 마당에 주는 것은 챙겨야 했습니다.
전무는 6월20일 이후 정상적으로 출근을 하였습니다. 글을 쓰는 이 순간까지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은 배차 정지를 당해 일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전무에 대한 인간적인 신뢰였습니다. 그의 입장에서 어쩔 수 없다하더라도 가장으로 회사의 전무로 중년의 나이에 자신의 삶을 나에게 편지로 이야기하였다는 점입니다.
이에 저도 많은 고민을 하였습니다. 지금도 이글을 쓰며 그에게 어떤 면에선 미안한 마음이 가득합니다. 그러나 그보다는 잘못된 오늘날의 택시운송체계 속에서 택시근로자들의 힘겨운 삶이 더욱 안타깝고 중요하다 여겼습니다. 회사의 비리나 불법 행위에 대한 직접적인 고발도 아닌 탄원서를 올리는 것도 자유롭지 못한 현실이 진정 안타까울 뿐입니다.
며칠 전 서울남부노동사무소에서 진정 건에 대하여 출두요구서가 날아들었습니다. 진술서를 작성하는데 나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출두를 하여 함께 진술서를 받았습니다. 회사에서는 사장이 나오지 않고 전무가 대리로 참석하여 진술서를 작성하였습니다. 진술서 말미에 복직이 아닌 법대로 처벌할 것을 진술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복직을 요구하였지만 사업자들의 모임인 사업자 조합에서 어찌하였든 불량 택시기사로 찍혀 회사에서 적절히 대처할 것을 지시한 마당에 나는 서울에서 택시기사로써 설 자리는 없다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아울러 회사에서 일을 한들 껄끄러운 것은 고사하고 아마도 스스로 무너질 것은 불문가지라 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어제 노동사무소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회사에서 합의 요청이 있는데 합의할 마음이 없냐는 것이었습니다. 법으로 회사가 잘못하였다는 판정은 아니나 노동자의 입장에서 다만 얼마라도 이익을 챙기는 것이 낫지 않느냐는 말이었습니다. 결국 법대로 사업주의 처벌을 요구한다는 진술을 번복하였고 250만원을 받아 영수증을 썼고 사표도 썼습니다.
저의 삶이 이러합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나의 삶을 살아왔다고 스스로 말은 합니다. 50이 넘어 어렵게 작정하고 시작한 새로운 삶이 이렇게 끝을 맺고 이제 또 다른 삶을 시작해야 합니다. 시작하기 전에 번민으로 불면의 밤을 지새운 것이 조금은 우습습니다. 이글을 읽고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지만 단지 이런 삶이 곁에 있었다는.......
*지난 9월 말에 서울남부노동사무소(강서)에 구직신청을 하여 실업급여(월70만원)를 타고 있습니다. 이글은 회사와 합의한 9월6일 이후에 쓰여진 글입니다. | |
첫댓글 저하고 너무나도 비슷하네요.신기합니다. 20일즈음이 않좋은 가보네요. 전 아직도 회사와 합의안되어서 지방노동위원회, 중앙노동위원회, 서울행정법원. 천안경찰서, 천안법원,대전고등법원,서울고등법원, 대법원등.. 회사의 회유와 배차중지 그리고 사직서를 강요하던회사... ... 인터넷게시판이용등이 똑같아요.
원본 게시글에 꼬리말 인사를 남깁니다.
이런경우 회사와 타협인가요? 인생과 타협인가요? 계속 회사와 투쟁해야 옳은건가요?
정말 말로만 듣던 택시업계의 많은 소설들중에 하나의 실사례이군요! 소설이 아니고 실화입니다! 저는 주장합니다!택시업계의 노조 위원장의 임기를 단임제로! 위원장 출마 자격을 제한없이 하여,택시를 잘모르는 신선하고 똑똑한 새내기 1년차 미만의 인재들이 선출되도록! 그리하여,노조원을 위한 봉사하는 위원장자리가
되도록 구조적인 제도 변화가 있어야만 한다고 감히 주장합니다. 우선 실현 가능한것부터,고정관념의 탈피로부터 조그만 개혁은 시작되리라 사료됩니다!위의 내용들은 위원장이 해야 할일들을 1년차 미만의 택시 새내기가 외롭게 싸우다가 힘없이 지쳐버린....!위원장은 방관은 고사하고 사측의 대변인 노릇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