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13일 연중 제28주간 월요일
<이 세대는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29-32 그때에 29 군중이 점점 더 모여들자 예수님께서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30 요나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표징이 된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이 세대 사람들에게 그러할 것이다. 31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 사람들과 함께 되살아나 이 세대 사람들을 단죄할 것이다. 그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끝에서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32 심판 때에 니네베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다시 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들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곤장을 맞은 효자
나의 외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대단한 한량이셨고 독립운동가 이셨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어 계십니다. 중학생이던 나를 아주 유식하고 대단한 사람으로 대접을 해주었고 당신의 자손 중에서 유일하게 중학생 외손자를 두신 것을 큰 자랑으로 알고 계셨습니다. 80의 고령에도 걸음걸이도 빠르셨고, 말씀을 하실 때는 기운이 넘쳤습니다. 어느 가을 날 중학생 교복을 입고, 모자를 쓴 외손자가 보고 싶다고 뒷산에서 밤을 주워가지고 갓을 쓰시고, 두루마기 입으시고 삼십 리 길을 달려 오셨습니다. 그날 밤에 외할아버지께서는 효경의 한 구절을 말씀하시면서 옛날 얘기를 하나 해 주셨습니다.
어느 고을에 이름난 효자가 있었는데 그 효자 내외는 지극정성을 다하여 홀아버지를 모시고 있었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벌써 십 수 년이 되는 형편이라서 모든 사람들의 칭송을 받고 있었답니다. 매년 명절이 되면 원님은 효자와 효부를 표창하는데 그 효자는 아주 단골로 상을 받고 표창을 받았답니다. 신관 사또는 항상 그 고을의 원로들의 추천을 받아서 그 효자를 표창하였고, 그 효자의 아버지는 그 아들을 아주 자랑스러워하였답니다.
어느 해에 새로 관장이 부임하였는데 관장은 관례대로 아전들과 지방 원로들의 추천을 받아 표창하는데 이번에도 그 효자가 뽑혔고 상을 받기 위해 의관을 정제하고 동헌으로 간 아들이 저녁때가 되어도 돌아오지 않아서 ‘무슨 상을 이렇게 많이 받아서 싣고 올 수가 없는 것인가?’하고 걱정하면서 며느리와 아버지가 동구 밖에까지 나가서 기다렸답니다. 그런데 아들이 동네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겨우 걸어오더랍니다. 너무나 놀래서 “오늘은 무슨 상을 받았느냐?” 그러자 아들은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며 “아버님, 오늘은 곤장을 맞았습니다.” “뭐야, 곤장이라.. 그래 우리 효자를 누가 곤장을 때렸단 말이냐?” 그러니까 효자가 그러더랍니다.
신관사또가 그 효자를 보자마자 “그래 어떻게 효자인고?” 하고 묻더랍니다. 그래서 아전들이 “홀로 되신 아버지를 십 수 년이나 지극정성을 다하여 모시는 효자랍니다.”하고 추천을 올리자 “그래 언제부터 홀로 계신가?” 아들이 “십 수 년이 되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관장이 화를 내면서 “아니 저런 엉터리를 누가 효자로 표창장을 주었다는 말이냐? 아버지를 홀아비로 둔 저 녀석에게 곤장 20대를 상으로 내린다. 매우 쳐라.”하여서 그날 볼기만 아프게 맞았다는 것입니다. 자초지종을 자세히 들어본 다음에 아버지는 무릎을 치시면서 “과연 명판관이야! 명판관이다.” 하였다는 것입니다. 홀로 계신 아버지를 결혼 시켜 드리지 않고, 혼자 외롭게 살게 한 자식은 효자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아버지의 뜻을 헤아리지 못한 자식이 어떻게 효자일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내가 어릴 때 외할아버지의 그 말씀이 오늘 다시 생각나는 것은 사람들의 생각과 견해가 각각 다르다는 것을 생각해서입니다. 외할아버지는 열세 살의 어린 외손자에게 왜 그 얘기를 해 주셨는지 짐작은 할 수 있었지만 효성도 우정도 사랑도 서로 견해를 달리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그 말씀을 해 주셨을 것입니다. 그날 효경에 대하여 말씀하셨기 때문에 효도도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효성을 다한다고 할 수 없으며,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지 말고 부모의 입장에서 판단해야 하며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이라고 생각된답니다.
이처럼 견해의 차이는 정말 엄청나게 다를 수 있습니다. 하느님과 사람의 견해 차이는 상상할 수도 없이 아주 큰 격차를 보이고 있습니다. 문화와 가치관에 따라서 이런 차이는 아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부모와 자식 간에도, 신자들 사이에도, 성직자와 신자들 간에도 엄청난 견해 차이를 보입니다. 부부도 정말 살을 맞대고 산다고 해도 아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답니다. 학자들도 학설과 이론에 대하여 서로 엄청난 견해차를 보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과 제자들도, 예수님과 바리사이나 율법 교사들이나 수석 사제들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수용하지 못하는 견해차(見解差)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사람들이 생각하는 메시아관(觀)과 예수님의 구원계획은 정말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메시아는 유대왕국을 로마로부터 구해내실 분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자신들의 해방을 보장해주는 유대인의 왕으로 오실 것으로 생각하고 있으니 십자가에 달려 죽을 분으로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들이 보여 달라고 하는 표징과 소망은 로마를 하느님의 기적으로 이집트를 벗어날 때처럼 쳐부수어 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전혀 다른 표징을 계획하고 계십니다.
하느님과 사람을 사랑하는 구체적인 것을 가르치시고, 하느님 나라를 이 세상에 심어 주시고, 인류의 죄를 용서하시고, 속죄양으로 십자가에 처형되어 제물로 봉헌하시고, 인류를 속량하시고, 부활하시어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는 장엄하고 원대한 계획을 표징으로서 제시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진리로서 밝혀 주시기 위해서 성령을 보내 주실 것이며, 그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회개하고 새사람이 되어 예수님을 믿고 모든 세상 사람들을 하느님의 백성으로 만드시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효자인지 불효자인지는 모든 민족들과 같이 하느님께서 심판하실 것입니다. 내 문화와 가치와 역사가 다르다고 심판대에서 불복할 수 없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의 의견을 존중하시는 하느님께서 분명 회개하고 새 사람이 된 사람만 당신의 품에 안아주실 것입니다. 그 때는 모든 불효자는 밖으로 쫓겨 나 절치통곡(切齒痛哭)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