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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마경훈목사의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마경훈목사
찬양하라 내 여혼아! 시편 150:1-6
(설교자: 마경훈목사 비전교회)
지금 온 세상이 코로나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WHO에서는 팬더믹(pandemic)을 선언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저는 상황에 맞는 설교를 해야 하지 않는가라고 생각을 했습니다만 ‘전에 하던 대로’ 하기로 했습니다. 코로나가 유행하면서 제 마음에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주신 것이 ‘전에 하던 대로’였습니다. 다니엘이 신앙적인 위기를 만났을 때 그는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해서 열린 창문 앞에서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전에 하던 대로 예배하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설교도 위기에 맞는 설교도 필요하지만 오늘은 전에 하던 대로 하나님이 감동을 주신 설교를 하겠습니다. 저는 이번 주일 설교를 위하여 기도하던 중에 시편 150편의 감동을 받았습니다. 오늘 설교는 시편 150편으로 찬송을 주제로 설교를 하겠습니다.
찬송과 관련된 간증 중에 지금 우리 교회에 딱 맞는 간증이 있습니다. 어느 권사님의 간증입니다. 이분이 좀 큰 땅이 있었는데 어느 날 그 땅이 공원 부지로 묶였습니다. 이 권사님은 너무 속상해서 날마다 그 땅에 가서 찬송가 280장을 1절만 100번씩 불렀습니다.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 들고 옵니다. 주 나를 외면 하시면 나 어디 가릴까 내 죄를 씻기 위하여 피 흘려 주시니 곧 회개 하는 맘으로 주 앞에 옵니다” 사람이 너무 기가 막힌 일을 만나면 기도도 안 됩니다. 아마 그 권사님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권사님은 그렇게 날마다 그 땅에 가서 찬송만 불렀습니다. 그런데 몇 달 만에 공원부지가 해제 되면서 그 땅을 70억에 팔았다고 합니다. 들리기로는 우리 교회의 땅이 공원부지가 될 수 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물론 소문일 뿐입니다. 이때 우리는 이 간증의 주인공 권사님처럼 하나님을 찬송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믿고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바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 하나님께서 놀라운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찬송의 비중은 굉장히 큽니다. 기독교는 찬송의 종교입니다. 예배를 보면 찬송으로 시작해서 찬송으로 마칩니다. 찬송이 빠진 예배는 예배가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은 신앙생활을 잘하려면 찬송생활을 잘해야 합니다. 이 말은 노래를 잘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찬송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찬양을 해야 할까요? 우리가 찬송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➀사람의 존재 이유가 찬송이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43:21을 보겠습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목적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려고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찬송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조니 에릭슨이라는 미국 여성이 있습니다. 10대 시절에 강에서 다이빙을 하다가 전신마비가 되어 눕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인이기는 했지만 아직 이런 시련을 감당할만한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녀는 절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기도할 생각이 났습니다. 그는 “내가 이런 몸이라도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만 있다면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찬양하며 살겠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 직후에 자기는 전신마비지만 입술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입술에 연필을 물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전신마비지만 화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그림이 알려지자 유명한 볼펜회사에서 광고 모델을 제의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그가 나오는 모든 광고 아래 영어로 PTL(Praise The Lord/주님을 찬양하라!)이라는 글자를 삽입하기로 합의하고 출연했습니다. 그 후 그녀는 복음전도자로, 장애인을 위한 인권운동가로 미국사회에 강력한 영향을 끼치는 지도자로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비록 장애인이지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찬양하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게 찬송하라고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➁하나님은 찬송 중에 임재하시기 때문입니다. 찬양의 유익 중에 하나가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우리가 찬양할 때 하나님께서 임하셔서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시 22:3을 봅니다.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찬송할 때 하나님께서 임재하시고 하나님의 임재 속에 거하는 사람은 거룩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100:4을 봅니다.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여기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두 가지 비결을 말씀합니다. 먼저는 감사입니다. 우리는 감사할 때 하나님의 집의 문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찬송입니다. 우리는 찬송할 때 하나님의 궁정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궁정이 어디를 말하는 것입니까? 궁궐의 마당입니다. 우리는 찬송할 때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➂예수님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3:15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찬송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입니다. 그리고 찬송은 우리의 입으로 예수님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찬송할 때 위대하신 주님이 증거 되신다는 말입니다.
[주는 나의 피난처]를 쓴 코리 텐 붐 여사가 어려움을 만났으나 찬송을 함으로 주님을 증거한 간증입니다. 그분이 호주의 시드니 공항에서 짐을 싣지 않은 채 비행기를 탔습니다. 두 시간이 지나서야 그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 짐 안에는 자신의 모든 재산과 기록이 들어 있었기에 승무원을 불러 사정을 말했지만 나흘 후에나 되돌려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붐 여사는 걱정하기 않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렸습니다. 찬송을 하던 중 비행기가 고장이 났다는 방송이 나왔습니다. 승객들이 모두 사색이 되어 아우성을 쳤는데도 붐 여사는 평안을 유지하며 찬송을 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비행기는 다시 시드니로 돌아갔고, 붐 여사는 자기 가방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한 유태인이 붐 여사에게 다가와 물었습니다. “내가 보니 비행기가 고장 나서 아우성치는 승객들 가운데 유독 당신만 찬송하고 감사하던데 어떻게 그럴 수 있었습니까?” 여사는 그에게 복음을 들려주었고 그렇게 해서 그 유태인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찬송은 예수님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입니다. 우리의 찬송은 예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찬송은 그분이 나의 구원자라는 증거입니다. 나의 영혼의 구원자요 생활의 구원자라는 증거입니다.
➃찬송을 부르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면 놀라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감사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위대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난리가 나서 임금님이 피난을 갔습니다. 변장을 하고 신하들과 도망하여 어느 시골로 숨어들었습니다. 어느 촌부의 집에 유하기를 청합니다. 농부는 그들을 알지 못했지만 점잖은 사람들이 얼마동안 유하겠다하니 아무 것도 묻지 않고 그들을 받아드렸고 정성껏 잘 대접을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 상황이 바뀌어 임금님이 환궁을 했습니다. 궁에 돌아온 임금님이 생각해보니 그 촌부가 퍽 고마웠습니다. 그 난리를 피하게 해주었으니 얼마나 감사했겠습니까. 임금님이 그 촌부를 궁으로 불렀습니다. 농부가 궁에 가서보니 전날에 그저 이서방으로 알고 있던 그 사람이 임금님이었니다. 임금님이 말했습니다. “전날에 나를 도와준 것 참 고맙네, 소원이 있으면 한 가지만 말하게, 땅이나, 집이나, 벼슬이나 뭐든지 말하게” 촌부가 대답했습니다. “아무 것도 바라는 것이 없고 단지 며칠 후에 제 환갑날인데 임금님께서 꼭 와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임금님이 꼭 참석하겠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농부의 집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임금님이 촌부의 환갑잔치에 오신다는 소문이 나자, 사방에서 얼마나 많은 선물이 들어오는지 하루아침에 떵떵거리는 부자가 되었답니다. 임금님의 임재의 결과입니다.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면 놀라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유다의 왕 여호사밧 시대에 모압 자손과 암몬 자손과 마온 사람들이 연합군을 형성해서 유다를 침공했습니다. 여호사밧은 그 전쟁을 이길 능력이 없었습니다. 여호사밧이 두려워서 백성들을 모으고 하나님에 기도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했습니다. 그 때 여호와의 영이 레위 사람 야하시엘에게 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통해서 전쟁에 승리할 것이니 염려하지 말라는 예언을 주셨습니다. 그 예언을 들은 여호사밧은 백성과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여호와를 찬송하게 하였습니다. 찬송이 시작 될 때에 여호와께서 임재하셨습니다. 복병을 두어 적들을 쳐서 유다로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희한한 일이 벌어졌는데 적들이 자기들끼리 서로 쳐 죽이고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찬송 중에 임하신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시편은 하나님을 찬송하는 내용이 주제입니다. 시편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할렐루야입니다. 할렐루야의 뜻이 뭡니까? 할렐루야는 히브리어로 ll'h(할랄)과 Hy:(야흐)의 합성어입니다. 할랄은 ‘자랑하다. 찬양하다’라는 뜻이고 야흐는 여호와의 축약형입니다. 할렐루야를 풀어서 말하면 ‘여호와를 찬양하라’입니다. 시편 146편부터 150편까지의 시는 할랄시입니다. 이 다섯 편의 시는 할렐루야로 시작해서 할렐루야로 끝나기 때문에 붙은 별명입니다. 오늘 다룰 본문은 시편의 결론입니다. 시편은 ‘하나님을 찬양하라’, ‘할렐루야’가 결론입니다.
이제 시편 150편에서 주는 찬양에 관한 교훈을 나누겠습니다.
1. 하나님을 찬양하라
1절에 보니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권능의 궁창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찬양할 유일한 대상은 성삼위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이사야 42:8입니다. “나는 여호와이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다른 어떤 존재가 받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을 도적질한 사람들은 저주를 받습니다.
사울왕은 하나님의 명령과 승리의 약속을 받고 아말렉과 전쟁을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을 위하여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자기가 받은 것입니다. 결국 그는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바벨론의 영광이 자신의 능력 때문이라고 말하다가 하나님의 매를 맞고 정신병자가 되어서 7년을 짐승처럼 풀을 먹고 살아야 했습니다. 그 이후에야 그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헤롯왕은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듣고 신의 소리라고 영광을 돌리자 그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드리지 않아서 충이 먹어 죽었습니다.
북한이 저주 가운데 있는 이유 중에 가장 큰 이유는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이 하나님께 가야 할 영광을 자신들이 받았기 때문입니다. 1907년 평양에서 놀라운 부흥이 일어났었습니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교회를 폐쇄시키고 부흥의 현장이었던 장대현회를 헐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김일성 김정일 동상을 세워서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가로챘습니다. 북한에서 있었던 노동당 대회 모습을 잠간 영상으로 보겠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eBsfQBtIDzU 37초-1분16초) 이렇게 북한에서는 하나님이 받으셔야 하는 영광을 도적질하니 그 땅에 저주가 가득한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성삼위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2. 성소에서 찬양하라
1절에 보니 그의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그의 성소는 하나님의 성소입니다. 하나님의 성소는 어떤 곳입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이 함께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곳입니다. 성도들은 구별된 장소에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하며, 하나님을 찬양을 돌립니다. 구약 시대에는 성전이고 이 시대는 교회입니다.
시편 149:1을 보겠습니다. “할렐루야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성도의 모임 가운데에서 찬양할지어다” 찬양의 교훈이 두 가지 나옵니다. 먼저는 새 노래로 찬양해야 합니다. 이 말은 늘 새로운 곡으로 찬양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늘 마음을 새롭게 하고 찬양하라는 말입니다. 마음이 새로워지면 찬양은 늘 새로운 것입니다. 또 하나의 교훈은 성도의 모임 가운데서 찬양하라는 말입니다. 성도의 모임은 공예배를 말합니다. 이명진 성산생명윤리연구소장은 공예배는 기독교인에게 산소공급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분은 우리는 산소가 없이 존재할 수 없듯이 기독교 신앙은 공예배 없이 유지할 수 없다는 중요한 말을 한 것입니다.
코로나 사태로 공예배를 폐하고 영상 예배를 드리는 교회들이 많은데 비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분들의 마음도 이해를 합니다만 저는 이럴 때 일수록 기독교인들은 모여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이번 사태는 사람의 힘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사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공예배가 살아나야 합니다.
종교개혁 이전의 예배에는 회중이 함께 부르는 찬양시간이 없었습니다. 4세기에 열린 라오디게아 총회에서 회중들의 찬양을 금지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가톨릭이 얼마나 하나님을 떠났는지 알 수 있는 사건입니다. 예배시간에 모인 성도들은 찬양대가 부르는 뜻도 모를 찬양을 듣고 성직자들이 읽어주는 라틴어 말씀을 멀뚱멀뚱 듣다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래서 마틴 루터는 종교 개혁을 일으키고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는 일을 했고 또 회중들이 함께 찬양할 수 있도록 독일어 찬양을 직접 작사, 작곡하는데 힘을 썼습니다. 루터는 회중들이 따라 부르기 쉽도록 당시 유행하던 멜로디에 찬양 가사를 붙이기도 했습니다. 공예배가 살아나야 교회에 생명력이 넘치는 것입니다. 개인의 신앙도 공예배가 살아나야 생명력 있는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요한 웨슬리 동생 찰스 웨슬리는 교회에서 찬송을 할 때 주의 할 점 다섯 가지를 말했습니다. ➀모든 회중이 다 같이 불러야 한다. 찬송할 때 특별한 은혜가 임하면 기도할 수도 있지만 늘 그렇게 하는 것은 공예배 정신에 위배되는 것입니다. ➁힘 있게 찬송하라. 찬송은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께 드려야 하기 때문에 간절해야 합니다. ➂겸손한 마음으로 부르라. 위대하신 하나님 앞에서 찬양하기 때문에 겸손해야 합니다. 건들거리며 찬양하는 것은 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➃곡조와 박자를 맞춰 부르라. 음치 박치는 어쩔 수 없지만 가능하면 악보대로 하는 것이 좋습니다. ➄하나님께 맘 문을 열고 가사를 생각하며 영적으로 찬송하라. 마음 문을 여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폭포수 같이 부어지는 예배라도 마음 문을 열지 않는 사람의 심령은 메마른 광야와 같습니다. 우리는 성소 즉 교회에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공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께 찬양을 드려야 합니다.
3. 모든 삶의 장소에서 찬양하라
1절에 보니 그의 권능의 궁창에서 찬양하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말의 궁창(穹蒼)은 하늘穹과 푸를蒼을 쓰는데 말 그대로 푸른 하늘입니다. 성경에는 세 종류의 하늘이 나옵니다. 첫째 하늘은 대기권입니다. 둘째 하늘은 해와 달과 별들이 떠있는 우주입니다. 셋째 하늘은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천국입니다. 궁창에서 찬양하라는 말은 우리가 하늘에 올라가서 찬양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저는 자연만물 가운데서 찬양하라로 해석합니다. 더 확실하게 적용을 하면 예배당 밖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말이고 다른 말로하면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말입니다. 또 다른 표현을 하면 모든 장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말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어디든지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어디든지 계십니다. 화장실에도 계십니다. 경상도 어느 시골 교회에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신앙 연조가 오래 깊어갈수록 직분이 무거워졌고 마침내 장로님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지 못하고 있는 게 하나 있었습니다. 담배가 끊어지지 않는 겁니다. 담배 한대 핀다고 지옥 가는 게 아닐테고 특별히 잘못된 것 없지만 이것 때문에 양심에 찔려서 장로로써 구실을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분명히 예수 믿는 사람인데 그 꼴을 하고 살아가니 도무지 자신감이 없었습니다. 이것 끊지 않고는 내가 믿음 생활에 승리하기는 영 글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배가 끊어 지지 않는 겁니다. 목사님 몰래, 교인들 몰래, 자식 몰래, 아내 몰래, 담배를 피는데 주로 시골 화장실에 앉아서 피웠습니다. 그 부인이 더운 여름날 구더기가 하도 많으니까 거기다가 석유를 한번 씩 뿌려줍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석유가 없어서 휘발유를 한통 뿌렸습니다. 그런데 장로님이 몰래 담배를 피고 담배꽁초를 밑으로 딱 떨어뜨린 순간 불길이 확 솟아서 온몸에 화상을 입었습니다. 장로님이 병원에 입원을 하고는 해괴 망칙한 자세를 하고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중얼중얼 내뱉엇습니다. “하나님 잘못 했습니다. 용서해 주이소. 확 끊어버릴 겁니다.”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지만 “아이구 아파라 확 끊어버릴 겁니다. 아이구 아파라~ 한번만 용서해 주이소” 그러더랍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어디든지 계십니다. 화장실에도 계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이 안 계시는 곳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예배당에만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집에도 계시고 학교에도 계십니다. 하나님은 회사에도 계시고 시장에도 계십니다. 하나님은 안 계시는 곳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어디서든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4.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 때문에 찬양하라.
2절에 보니 하나님의 능하신 행동을 찬양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실 일들을 생각하며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실 일들을 몇 가지로 요약하겠습니다.
➀창조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온 우주를 창조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앉아 있는 의자를 보십시오. 우주에 비하면 너무나 작고 단순한 물건입니다. 그런데 이 물건도 저절로 그냥 생겨날 수 없습니다. 하물며 이 광대한 우주이겠습니까. 창조주 하나님이 계시기에 우주가 존재하며 인간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창조로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➁사랑입니다.
요한복음 3:16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➂도우심입니다.
우리는 연약한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주십니다.
헨리 무어 하우스라는 목사님이 교회적으로 어려운 일에 부딪쳐서 낙망했을 때였습니다. 풀이 죽은 모습으로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목사님에게는 소아마비로 잘 걷지 못하는 딸이 있었는데 그 딸이 응접실에서 놀다가 아빠를 반갑게 맞이했습니다. 딸은 아빠 손에 들려 있는 꾸러미를 보고는 휠체어에서 일어나며, “아빠 그게 뭐예요?”하고 묻습니다. “엄마에게 줄거란다. 엄마! 어디계시니?”, “2층에 계셔요. 아빠, 그거 이리 주세요. 제가 들고 갈게요”, “아니 너는 제대로 걸을 수도 없으면서 어떻게 이 꾸러미를 들고 2층에 간다는 거니?” 목사님은 의아해하며 물었습니다. 딸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빠! 이 꾸러미는 내가 들고 아빠가 나를 안고 가면 되잖아요?” 그 순간 헨리 목사님은 ‘아!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도와주시는데 왜 내가 그렇게 걱정하고 고민했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영원토록 도와주십니다.
➃심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곧 다시 오실 것입니다. 구름을 타고 천사들과 함께 오실 것입니다. 재림의 주님은 온 세상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예수님의 도우심 때문에 심판을 이기고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심판을 받아서 영원한 지옥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5. 하나님의 위대하심 때문에 찬양하라.
2절에 보면 하나님의 지극히 위대하심을 따라 찬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크게 3가지 방면에서 위대하십니다.
➀하나님은 존재가 위대하십니다. 세상의 모든 존재들 가운데 오직 하나님만이 스스로 존재하십니다. 하나님을 만든 존재는 없습니다. 모든 존재는 자신 외에 다른 존재의 원인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존재하시는 원인은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아무리 능력이 있는 존재라도 여기에 있으면 저기에는 없습니다. 한국에 있으면 미국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온 우주에 충만하십니다. 어디든지 계십니다. 무소부재하신 분입니다. 존재하지 않으시는 곳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어디든지 존재하심이 위대합니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존재의 시간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물론 사람의 영혼이나 천사는 영원히 존재합니다. 그러나 사람과 천사는 끝은 영원하지만 시작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으신 분입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존재하심이 위대합니다.
➁하나님은 능력이 위대하십니다. 말씀으로 우주만물을 창조하셨으니 더 이상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하나님은 광야에 강을 내시고 바다에 길을 내시는 분입니다. 그분의 위대하신 능력은 측량할 수 없습니다. 감사한 것은 측량할 수 없는 위대한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인도하시고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➂하나님은 성품이 위대하십니다. 하나님의 성품 중에 가장 뛰어난 성품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독생자를 주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성품이 위대하십니다.
6. 다양한 방법으로 찬양하라
3-5절에 보니 나팔 소리로, 비파와 수금으로, 소고로, 춤으로, 현악으로, 퉁소로, 제금으로 찬양하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 외에도 성경 전체를 보면 다양한 방법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말씀합니다. 정리를 해보겠습니다.
➀목소리로 찬양합시다. 하나님이 주신 가장 위대한 악기는 목소리입니다. 우리는 노래로 찬양할 수 있고 말로도 찬양할 수 있습니다. 위대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➁손뼉으로 찬양합시다. 시편 47:1입니다. “너희 만민들아 손바닥을 치고 즐거운 소리로 하나님께 외칠지어다” 제가 손바닥을 쳐보겠습니다. “짝짝짝짝” 혹시 찬양소리로 들리셨습니까? 저는 “할렐루야”라고 들리던데요 ㅎㅎ
➂아멘으로 찬양합시다. 설교를 들으면서 아멘하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기도를 할 때 아멘으로 하답하는 것도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20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➃악기로 찬양합시다. 본문에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다양한 악기가 나옵니다. 지금으로 하면 피아노, 신디사이저, 기타, 드럼, 템버린 등입니다.
➄춤으로 찬양합시다. 4절에 보면 춤 추어 찬양하라고 말씀합니다.
⑥함성으로 찬양합시다. 시편 32:11입니다.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마음이 정직한 너희들아 다 즐거이 외칠지어다” 하나님을 향하여 외쳐 봅시다. 북한에서는 김정일이 어느 부대를 방문하니까 손뼉을 치며 “와~~” 소리를 지르며 환영을 하더군요, 우리도 하나님을 함성으로 다같이 찬양해 봅시다. “할렐루야”, “와~”
⑦마음으로 찬양합시다. 고린도전서 14:15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 마음의 기도가 있고 영의 기도가 있습니다. 또 마음의 찬송이 있고 영의 찬송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우리의 마음의 상태를 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⑧영으로 찬양합시다. 영으로 찬양하는 것은 두 가지로 해석이 가능합니다. 하나는 문맥상으로 볼 때 방언찬양을 말합니다. 또 하나는 성령의 감동 속에서 찬양하는 것입니다.
⑨간증으로 찬양합시다. 자랑은 자기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간증은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통해서 하나님을 높이는 것입니다. 간증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좋은 방법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간증이 있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⑩삶으로 찬양합시다. 고린도전서 6:20입니다.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 우리에게서 하나님의 영광이 반사 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우리의 삶을 통해서 영광 받으십니다.
7. 살아 있는 것들은 찬양하라
6절에 보면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라고 말씀합니다. 호흡이 있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호흡이 붙어있는 동안에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만 살아 있지 않습니다. 육신의 죽음 이후에도 영원히 살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히 찬양해야 합니다.
찬양은 다른 말로하면 칭찬입니다. “하나님은 존재가 놀랍습니다. 하나님은 능치 못하실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성품이 위대하십니다.”라고 하나님을 칭찬하는 것이 찬양입니다.
누구든지 칭찬을 들으면 기분이 좋습니다. 칭찬은 사람을 움직입니다. 어느 목사님의 사모님은 늘 목사님을 칭찬하신답니다. “당신이 열심히 사시니 고맙고, 시간을 아껴 사시니 고맙고…….” 목사님이 사모님께 늘 이런 칭찬을 들으니 누워서 쉬고 있다가도 사모님이 들어오는 소리가 나면 일어나서 책을 편답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잖아요. 찬양은 하나님의 역사를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가 찬양할 때 하나님은 움직이십니다.
말씀을 정리합시다. 우리는 왜 찬양을 해야 합니까? ➀사람의 존재 이유가 찬송이기 때문입니다. ➁하나님은 찬송 중에 임재하시기 때문입니다. ➂예수님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➃찬송을 부르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1. 하나님을 찬양하라. 찬양의 대상은 오직 성삼위 하나님이십니다.
2. 성소에서 찬양하라. 교회에서 찬양하고, 공예배 시간에 찬양해야 합니다.
3. 모든 삶의 장소에서 찬양하라. 권능의 궁창에서 찬양해야 합니다. 자연만물 가운데서 찬양해야 합니다. 예배당 밖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4.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 때문에 찬양하라. ➀창조입니다. ➁사랑입니다. ➂도우심입니다. ➃심판입니다.
5. 하나님의 위대하심 때문에 찬양하라.
➀하나님은 존재가 위대하십니다. ➁하나님은 능력이 위대하십니다. ➂하나님은 성품이 위대하십니다.
6. 다양한 방법으로 찬양하라. ➀목소리로 찬양합시다. ➁손뼉으로 찬양합시다. ➂아멘으로 찬양합시다. ➃악기로 찬양합시다. ➄춤으로 찬양합시다. ⑥함성으로 찬양합시다. ⑦마음으로 찬양합시다. ⑧영으로 찬양합시다. ⑨간증으로 찬양합시다. ⑩삶으로 찬양합시다.
7. 살아 있는 것들은 찬양하라
우리는 영원히 살 것이기 때문에 영원히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칭찬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입니다. 우리는 늘 하나님을 찬양하며 삽시다. 그것이 인간의 본분입니다. 할렐루야.
성경을 들고 믿음의 고백을 합시다. “나의 존재 이유가 찬양입니다. 나는 찬송 중에 임하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나는 교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겠습니다. 나는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겠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능하신 행동 때문에 찬양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위대하심 때문에 찬양합니다. 나는 다양한 방법으로 찬양하겠습니다. 나는 영원토록 하나님을 찬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