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단상 51/십이연주十二連珠 둘레길]지지地支 12봉峰
어느 마을(임실군 지사면)의 뒷산(덕재산)이 제법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데, 열두 봉우리를 ‘십이연주十二連珠’라 오래 전부터 불렀다한다. 그 봉우리마다 지지地支(육십갑자에서 지지는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 쥐․소․호․토․양․뱀․양․말․잔내비․닭․개․돼지 등 열두 글자이다. 천간은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甲乙丙丁茂己庚申壬癸 열 글자이다. 올해의 지지가 임壬이고 천간이 인寅이므로 2022년 임인년. 2023년 계묘년, 2024년은 갑진년이다. 동양에서는 간지-천간과 지지를 조합하여 연월일시를 나타낸다)의 순서대로 봉우리의 이름을 정해 2019년 비석 12개를 세워놓았다는 향토사학자의 말을 듣고, 엊그제 제1봉인 자봉에서 제12봉인 해봉까지, 그 길을 친구와 걸어보았다. 전체는 2km남짓. 왕복으로해도 4km가 채 안되는 듯했다(2시간 이내). 등산이랄 것도 없고 그야말로 트레킹수준. 그래도 제법 올락낼락, 작은 깔딱고개까지 있어 등산 흉내는 낸 셈이다. 이른바 ‘십이연주 둘레길’을 걸으며 지지 비석 12개의 사진을 찍으며, 그 교훈적인 의미를 되새겼다.
탐방로 개발 지원사업으로 추진됐다해도, 맨처음 12봉 비석을 세우자고 아이디어를 낸 향토사학자는 대단한 일을 하신 것이다. 인근지역이 고향인 그 선생님은 고향마을 앞에 유명한 관광지 안내판처럼 ‘지사랑이마을 역사문화유적지 안내도’<사진>도 만들어 세워놓았다. 1933년생 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직한 이후 귀향하여 22년 동안 한시집 3권을 비롯한 고향관련한 책(지사면지, 리지, 서원지 등)을 30권 펴냈다한다. 노익장이 따로 없다. ‘6학년 6반(66세)’인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지금 학생들은 한자는커녕 한문을 배우지 않으니 천간이나 지지를 어찌 알겠는가. 게다가 농사지천하대본 세상의 기본이었던 ‘24절기’도 알지 못할 것이다. 예전엔 ‘절기節期’와 ‘간지干支(10간12지)’를 알아야 비로소 성인成人이 되고 ‘철’이 들었다 했거늘. 새삼 한심지경을 탓할 필요는 없겠지만, 초중고생들로 하여금 십이연주 둘레길을 걷게 하는 체험학습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보자. ‘자봉子峰’ 비석 뒷면에 새겨진 ‘자’의 띠(쥐)와 달(11월)과 시(밤11시반-새벽 1시반), 좌향(북․→남), 오행(물과 지智), 오색(검정) 등의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열두 봉 비석 앞에서 5분여 동안 해설만 들어도, 한자 12자와 동양철학의 일면을 조금은 알 수 있지 않겠는가.
오수에서 장수 산서 방향으로 차를 달리다보면 지사중학교가 왼편에 있는데, 교문앞 플래카드 문구가 고개를 갸우뚱하게 했다<사진>. <꿈으로 설계하는 미래/인문 향기 당연 지사>라는 문구 끝에는 <인문지사>라는 낙관까지 찍혀 있다. 아니, 군도 아니고 일개 면이 어떻게 <인문人文 지사只沙>라는 단어를 만들어 쓸 수 있을까? ‘인문한국’이라는 말은 들었어도 워낙 생경하고 의아했는데, 향토사학자인 교장선생님 말씀을 들으니 결코 오버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고려말 명신 이능간의 고향이어서 예부터 ‘승상촌’이라 불렸으며, 사액서원인 ‘영천서원’을 비롯해 일개 면에 서원書院이 5개나 현존하고 있고, 예전에 서당이 동네마다 있어 20여개에 달했다 한다. 군번 1번인 분은 대장까지 올랐고, 사시, 기술고시 등에 합격한 인재들도 수두룩하다고 한다. 아하-, 그래서 ‘인문지사’라고 했구나, 역시 할 만하다 싶었다. 하지만, 이런 역사적인 사실을 발굴하고 책으로 펴내는 등 세상에 널리 알린 것은 교장선생님같은 향토사학자들의 활동 덕분일 것이다. ‘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라고 했던 유홍준의 말도 생각났다. 이런 ‘재야의 고수’들이 많아야 우리나라의 문화가 한없이 풍성해질 것은 자명한 이치가 아니겠는가. 조선시대에도 십이연주라고 불렸다는 봉우리마다 지지 비석을 세움으로써, 십이연주 둘레길은 지사면 아니 임실군, 더 나아가 전라북도의 자랑으로 살아남을 수 있지 않은가. 12개의 연주連珠, 역시 '구슬은 꿰어야 보배'라는 옛말이 틀린 말이 아님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자봉에 서면 제법 지사면 들판을 훤히 굽아다볼 수 있어 뷰view 또한 아주 좋았다.
사족 한마디: 제1봉에서 내려와 관기리라는 마을로 들어서며 마을 뒤 산자락 논 가운데에 있는 아담한 팔각정 안내판이 눈에 띄여 읽어보다 깜짝 놀랐다. 정자의 이름은 ‘팔초정八樵亭’ 작명의 사연인즉슨, 일제강점기때 이 마을의 자치동갑 남자 8명이 살았는데, 호號의 끝자가 모두 ‘나무꾼 초樵’자였다고 한다. 1935년 갈수록 더 암울해져가는 시국에 뭔가 뜻 있는 일을 하자고 결의한 뒤, 끼니 때마다 쌀 한 숟가락씩을 모았다. 10년 동안 모은 쌀이 50가마에 이르자 1944년 논 9두락을 사고, 1950년 8월 아주 그럴듯한 정자(팔초정)을 지어 ‘수상한 세월’ 한시를 지으며 정자에서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지금의 정자는 새로 지은 것으로 별 특징이 없는 팔각정에 불과하지만, 후손들은 해마다 백중(음력 7월 15일)에 모여 윗대를 추모했는데, 점차 동네축제날로 자리잡았다는 것이다. 이토록 아름다운 이야기는 그리 흔치 않을 듯하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더니, 10년 동안 8명이 하루 3번 쌀 한 숟가락씩을 모은 게 50가마가 되었다는 게 아닌가. 그것으로 논을 사 공동명의로 등기를 하고 후손들이 의좋게 살를 바랐으며, 후손들도 그 뜻을 이어받아 그분들을 기리다 마침내 동네축제일이 되어 지금껏 모이고 있다니 미담美談이랄 수 있겠다. 자칫 보지 않고 스쳤으면 알 수 없었던 팔초정의 사연을 읽고 옛사람들의 슬기 한 자락을 배웠다. 역시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모를 때하곤 사뭇 다르니라. 오늘도 좋은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