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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다 선생님 영원한 지침〉
2025년 1월 26일
오늘 1월 26일, SGI(창가학회 인터내셔널)가 발족(發足)한지 50주년의 마디를 맞이했다. 바야흐로 창가(創價)의 스크럼은 192개국·지역으로 넓혀져 각지에서 스승과의 맹세를 가슴에 품고 세계평화의 실현을 향해 일어서는 인재(人材)가 육속(陸續)으로 약출(躍出)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SGI 발족 25주년을 맞이했을 때, 이케다 다이사쿠(池田大作) 선생님이 SGI 발족에 있어서의 진정(眞情)을 담은 「수필(隨筆) 신·인간혁명(新·人間革命)」 “‘SGI’의 발족 전 세계로 평화(平和)와 화락(和樂)의 여로(旅路)를”〈「세이쿄신문(聖敎新聞)」 2000년 1월 25일자〉과 함께, ‘1·26’에 관한 광포사(廣布史)를 게재한다.
1·26 ‘SGI의 날’
「수필(隨筆) 신·인간혁명(新·人間革命)」
“‘SGI’의 발족 전 세계로 평화와 화락의 여로(旅路)를”에서
증오에서 우정으로! 대립에서 조화로!
세계광포는 인간의 행복을 위한(향한) 싸움
갠지스의 대하(大河)도 한 방울에서 시작된다.
영원(永遠)한 평화(平和)의 여로(旅路)도 한걸음(一步)에서부터 시작된다.
용기를 갖고 한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그리고 단호(斷乎)하게 계속 걸어가는 것이다!
그것은 태평양의 주옥(珠玉)같은 섬에서 실시된 모임이었다.
그곳에는 대통령이나 장관 등 정치인도, 부자도, 학자도 없었다.
방송사 등 각 언론사의 보도진(報道陣)의 모습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무관(無冠)인 민중(民衆)의 대표(代表)였다. 그러나 세계평화(世界平和)와 불법유포(佛法流布)의 사명(使命)을 생애(生涯)의 보관(寶冠)으로 정한 위대(偉大)한 선구자(先驅者)들이었다.
1975년 1월 26일 - 이날 푸른 산호바다에 떠 있는 아름다운 꽃과 녹음의 괌(GUAM)에서 SGI가 발족(發足)한 것이다.
내가 미국 각지를 돌고 하와이에서 괌으로 들어간 것은 이틀 전이었다.
25일 저녁에는 섬의 남서부 리살 해변에서 우호(友好) 전야제(前夜祭)가 열렸다. 필리핀의 영웅 호세 리살(José Rizal, 1861~1896)의 이름을 딴 해변이다.
석상(席上)에서 괌 정청(政廳)의 보르달로(Ricardo Jerome “Ricky” Bordallo, 1927~1990) 지사(知事)로부터 원주민인 차모로족(Chamorro)의 전통의상을 선물 받은 일도 잊을 수 없다.
지금은 평화로운 이 해변 근처는 태평양 전쟁에 있어서의 미일(美日)의 격전지(激戰地) 중 하나였다.
진주만(眞珠灣) 공격 직후, 괌은 일본군에 점령(占領)됐다. 하지만, 1944년(昭和19年) 7월 하순부터 3주간에 이르는 맹공격으로 미군이 탈환(奪還)한 것이다.
이 전투에서 미군 1천4백 명, 일본군 2만 명이 희생(犧牲)됐다.
또한 일반 도민들은 도탄(塗炭)의 고통을 강요받고 많은 분들이 돌아가셨다. 섬 내에는 지금도 일본군의 대포(大砲) 등 잔해(殘骸)가 산재(散在)해 있다.
‘전쟁(戰爭)’에서 ‘평화(平和)’로!
‘증오(憎惡)’에서 ‘우정(友情)’으로!
‘대립(對立)’에서 ‘조화(調和)’로!
우리는 이 새로운 역사의 출발에 어울리는 무대(舞臺)로 괌을 선택했다.
‘세계평화(世界平和)의 날’ - 보르달로 지사는 1월 26일을 이렇게 선언(宣言)해 주셨다.
당시는, 엄한 ‘미소냉전(美蘇冷戰)’ ‘중소대립(中蘇對立)’의 시대였다. 그 속에서 나는 전해(前年)의 5, 6월과 12월에 중국으로, 9월에 소련으로, 해가 밝아(바뀌어) 미국으로 동분서주(東奔西走)하고 있었다.
중국에서는 저우언라이(周恩來, 1898~1976) 총리, 소련에서는 코시긴(Aleksei Nikolaevich Kosygin, 1904~1980) 총리, 미국에서는 키신저(Henry Alfred Kissinger, 1923~2023) 국무장관 등 많은 요인(要人)을 만났고, 유엔본부도 방문했다.
하지만 “어째서 종교(宗敎)를 부정(否定)하는 나라에 가는 것인가?”라는 등 끝없는 몰이해(沒理解)의 비난(非難)·중상(中傷)의 폭풍이 안팎에서 세차게 휘몰아쳤다. 모두 각오한 바였다.
“그곳에 인간이 있는 한, 어디든지 간다!”라며 국가의 벽(壁), 체제(體制)의 벽을 넘어 평화와 우정의 씨앗을 심으러 달렸다.
단지 ‘대화(對話)’를 갖고, 그저 ‘신의(信義)’의 마음을 갖고서 분단(分斷)된 세계를 맺고(잇고) 싶었다.
저우(周) 총리는 나에게 말했다.
“20세기의 마지막 25년간은 중요한 때입니다.”
이 말은 또한 확실한 평화의 흐름을 만들기 위해 내가 깊이 마음에 기(期)하는 바가 되기도 했다.
생각하면, 20세기의 100년간을 되돌아보면 학회(學會)는 거의 ‘4반세기(半世紀)’마다, 큰 마디를 새기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초대 회장 마키구치 쓰네사부로(牧口常三郞) 선생님이 대저(大著) 『인생지리학(人生地理學)』을 발간하신 것은 20세기의 개막(開幕)으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1903년(明治36年)의 일이었다.
이때 이미 선생님께서는 한 명의 세계민(一世界民)의 자각을 갖고 ‘세계 만국(萬國)을 이웃집(隣家)’으로 교류해 갈 것을 호소하고 계셨다.
그로부터 4반세기가 지난 1930년(昭和5年) 11월 18일, 마키구치(牧口) 선생님과 도다 조세이(戶田城聖) 선생님의 사제(師弟)의 손으로 창가교육학회(創價敎育學會)가 고고지성(呱呱之聲: 아이가 태어나 처음 우는 소리)을 울렸다.
더욱이 도다(戶田) 선생님께서 제2대 회장에 취임해, 광선유포(廣宣流布)의 대투쟁(大鬪爭)을 외치신 1951년(昭和26年)은, 바로 20세기의 반환점(返還點)의 해였다.
그리고 나아가 4반세기를 거듭해, 마침내 ‘SGI’ 탄생의 순간을 맞이했다.
1960년(昭和35年)에 제3대 회장에 취임한 내가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다.”라는 스승의 유언(遺言)을 실현하기 위해 첫 해외방문에 비상(飛翔)하고 만 15년이 되어 가고 있었다.
1월 26일, ‘SGI’의 발족식이 된 제1회 ‘세계평화회의(世界平和會議)’의 회장(會場)은 국제무역센터(ITC)였다.
◇
개회(開會) 전, 나는 9층의 회장(會場) 입구에서 커다란 서명부(署名簿)에 사인을 요구받았다.
나는 첫 페이지에 사인펜으로 이름을 쓰고 국적란(國籍欄)에 ‘세계’라고 적었다.
내 마음에 오고 간 것은 은사(恩師)의 ‘지구민족주의(地球民族主義)’의 구상(構想)이었다. 세계의 동지를 위해 인생을 바치자고 정한 나의 솔직(率直)한 진정(眞情)이었다.
‘세계광선유포(世界廣宣流布)’는 니치렌 대성인(日蓮大聖人)의 어유명(御遺命)이다.
그것은 인류(人類)의 평화(平和)를 위한 싸움이다. 인간의 행복을 위한 싸움이다. 정의(正義)와 인권(人權)을 위한 싸움이다.
25년 전, 그날 숭고(崇高)한 사명(使命)의 별(星)을 품고 모인 창가(創價)의 전사(戰士)는 51개국·지역의 대표였다.
이제 SGI 동지(同志)는 암반(巖盤)에 손톱을 세워(바위를 손톱으로 긁어 없애듯) 꾸준하고 용감한 자비(慈悲)의 행동(行動)으로 148개국〈편집부 주(注)=현재는 192개국〉, 그야말로 전 지구(地球)를 무대로 난무(亂舞)하기에 이르렀다.
불법사상(佛法史上)에 영원히 빛날, 미증유(未曾有)의 대위업(大偉業)이라고 단언(斷言)해 두고 싶다.
그때 원통하게도 참가(參加)하지 못한 한국도 모범(模範)의 대발전(大發展)을 이뤘다.
정말 기쁘다. 나는 지구상(地球上)의 이 땅, 저 땅에서 광선유포(廣宣流布)를 위해 헌신(獻身)해 주시는 존귀(尊貴)한 여러분께 매일, 건강(健康)과 장수(長壽)와 행복(幸福)을 기원(祈願)하며 기원하고 있다.
그날 나는 동지에게 말했다.
“지평선(地平線) 저편(彼方)에, 대성인불법(大聖人佛法)의 태양(太陽)이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은 부디, 자기 자신이 꽃을 피우려는 마음이 아니라 전 세계에 묘법(妙法)의 씨앗을 뿌리고 이 존귀(尊貴)한 일생(一生)을 마쳐주십시오. 저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지금 창가(創價)의 태양은 혁혁(赫赫)하게 신세기(新世紀)의 하늘(大空)로 떠오른다. ‘불법(佛法)의 인간주의(人間主義)’의 빛을 찾는(구하는) 세계의 소리는 더욱더 드높다.
때는 왔다!
사랑하는 SGI의 동지여!
‘제3의 천년(千年)’을 향하여 명랑(明朗)하게, 위풍당당(威風堂堂)하게, 용기(勇氣)와 희망(希望)의 여행(旅)을 계속하자!
【광포사(廣布史)】
SGI의 발족을 계기(契機)로, 이케다 선생님은 더욱 정력적(精力的)으로 세계를 누볐다(돌며 달렸다). 각지(各地)의 동지와 유대(絆)를 맺고 정치, 경제, 문화, 교육, 학술 등 모든 분야의 식자(識者)·지도자(指導者)와 대화(對話)를 거듭하며 평화(平和)로 가는 길을 계속 모색(摸索)했다. 그 가슴에는 은사(恩師) 도다 조세이(戶田城聖) 선생님으로부터 계승(繼承)한 “지구상(地球上)에서 ‘비참(悲慘)’이라는 두 글자를 없앤다.”라는 맹세가 불타고 있었다.
SGI의 동지에게 있어서 평화구축(平和構築)을 향한 구체적(具體的)인 지표(指標)가 되어 온 것이 ‘SGI의 날’ 기념제언(記念提言)이다. 1·26 ‘SGI의 날’에 맞추어(즈음해) 이케다 선생님이 40회에 걸쳐 발표해 온 것이다.
그 제1회는 동서냉전하인 1983년(昭和58年). 미소(美蘇) 관계(關係)의 긴장(緊張)으로 군비확장(軍備擴張) 경쟁(競爭)이 격화(激化)하여 핵전쟁(核戰爭)의 위협(威脅)이 높아지는 가운데, 이케다 선생님은 「평화(平和)와 군축(軍縮)을 향한 새로운 제언(提言)」을 발표했다.
선생님은 “절망(絶望)이나 체념(諦念, 포기)으로는 미래(未來)를 향한 전망(展望)을 열 수 없다.”라고 기록하고, 사태(事態) 해결(解決)을 위해 일석(一石)을 던지는(파문을 일으키는) 심정(心情)으로 ‘미소정상회담’의 조기(早期) 실현(實現)을 제안(提案). 2년 뒤인 1985년 미하일 고르바초프(Mikhail Sergeevich Gorbachev, 1931~2022)가 소련 서기장(書記長)에 취임(就任)하면서 로널드 레이건(Ronald Wilson Reagan, 1911~2004)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이 실현됐다. 이 직접만난 대화(對話)에서부터 사태는 움직이기 시작해, 미소의 「중거리 핵전력 전폐 조약(中距離核戰力全廢條約)」의 체결 등으로 연결되어 갔다.
제1회 제언부터 2022년(令和4年)까지, 매년 발표된 기념제언. 수많은 제안(提案) 속에는 ‘지속가능(持續可能)한 개발(開發)을 위한 교육(敎育)의 10년’ ‘세계시민헌장(世界市民憲章)’ ‘어린이 병사(兵士)의 금지(禁止)’ ‘빈곤(貧困) 퇴치(退治)를 위한 세계연대기금(世界連帶基金)’ 등 유엔 등에서 다양한 형태로 구체화(具體化)된 것도 많다.
40년에 걸쳐, 한 번도 중도에 끊어짐 없이 제언 발표를 계속해 온 진정(眞情)이란? 이에 대해 이케다 선생님은 도다 선생님의 다음 말을 언급했다.
“인류(人類)의 평화(平和)를 위해서는, ‘구체적(具體的)’인 제안(提案)을 하고, 그 실현(實現)을 향해 스스로가(자신이) 선두(先頭)에 서서 ‘행동(行動)’하는 것이 중요하다.” “비록, 바로는 실현(實現)되지 못하더라도, 머지않아 그것이 ‘불씨(火種)’가 되어, 평화의 불꽃이 퍼져(넓혀져) 간다. 공리공론(空理空論)은 어디까지나 허무(虛無)하지만, 구체적(具體的)인 제안(提案)은 실현(實現)을 향한 ‘기둥(柱)’이 되고, 인류(人類)를 지키는 ‘지붕’이 되어 간다.”
제언에서 여러 차례 제시된 것은 국제사회(國際社會)에 있어서의 시민참획(市民參劃)의 중요성과 청년들이 간직한 무한(無限)한 가능성(可能性)에 대한 믿음이었다. 그 마음을 이어 모든 사람들과 연대(連帶)하여 풀뿌리 도전(挑戰)을 계속하고 싶다. ‘비참(悲慘)’이라는 두 글자가 없어지는 그날까지.
[기사 원문] https://www.seikyoonline.com/article/C689BF71852D290A755848E04C916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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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