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문의 시간
『완벽하려는 삶, 꾸준한 신앙』
창세기 17:1-2. 278, 279
1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2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
창세기 16장 16절을 보면 아브람이 이스마엘을 낳았을 때가 86세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창세기 17장 1절에는 아브람이 99세라고 나옵니다. 창세기 12장부터 16장까지 지난 11년 동안 철저하게 아브람과 동행하셨던 하나님께서 이스마엘 사건 이후 99세가 될 때까지 아브람을 만나주시지 않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내 생각, 내 육적인 방법을 동원했던 것이 아브람에게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계기가 되었습니다. 소돔으로 내려간 조카 롯은 마지막 소돔이 멸망하기 전까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내 생각과 육적인 방법을 따르게 되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축복의 순간이나 어둠의 긴 터널과 같은 시간일지라도 하나님의 임재를 소망하며 하나님의 때와 하나님의 방법대로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아니 계신 것 같은 13년 아브람은 어떻게 살았을까요?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창세기 17장 1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13년 만에 나타나셔서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완전하라’라는 히브리어 ‘할라크’는 ‘걸어가다’ 혹은 ‘계속하다’라는 뜻이 있으며 노아와 애녹을 설명할 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완전’은 묵묵히 성실하게 계속하는 것 혹은 걸어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축복의 순간이니까 기뻐 뛰며 주님을 찬양하고 어둠의 터널 속에서는 주저앉고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순간마다 계속해서 성실하게 주님과 함께 걸어가는 것이 ‘완전’이라고 성경은 말해주고 있습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임재하시지 않은 지난 13년! 아브람은 이스마엘을 보면서 자신의 잘못된 선택을 후회하며 긴 침묵을 통해 하나님과 대화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한 걸음 또 한 걸음 더디지만, 주님을 향한 걸음을 멈추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것을 성경에서는 ‘완전’이라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노아와 애녹처럼 ‘완전’하길 소망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완벽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축복의 순간에도 어둠의 긴 터널 속에서도 주님을 신뢰하고 신뢰하기에 주님과 함께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 내 삶은 어떤 상황입니까?
하나님께서 축복의 순간을 허락하셨다면 감사의 찬양을 드리십시오.
하나님께서 아니 계신 듯한 어둠의 터널을 만나셨다면 간절하게 기도하십시오. 그래서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완전히 행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삶의 적용 : 완벽보다 꾸준함이 더 중요함을 어떻게 고백하십니까?
마무리기도
주님 앞에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성실한 종이 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