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原文)
大嶺山神贊 幷序
歲癸卯夏,余在溟州。州人將以五月吉,迓大嶺神。問之首吏,吏曰:「神卽新羅大將軍金公庾信也。公少時游學于州,山神敎以釗術,鑄釗於州南禪智寺,九十日而出諸爐,光耀奪日。公佩之,怒則躍出韜中,以之滅麗平濟。死而爲嶺之神,
至今千有餘歲,威靈赫然,能爲人作福禍。歲以端午日迎神,巫覡雜戱,設醮以祈。神至,則叢木與幢竿俱動,如植則歲豐,傾則歲凶。」
余奇之,往觀焉。果不傾,州人咸歡呼抃舞稱慶。遂贊曰:
猗紫纓裔,趫趫桓桓。
爲國虎臣,提抱登壇。
杖鉞轅門,氣呑麗濟。
鞭笞鬼神,威聲震世。
終始一節,勳在王室。
영靈不泯,大嶺之脊。
享祀千載,左右幢竿。
靈其不昧,降福孔多。
현대어 번역문 (現代語 譯文)
대령산신찬 병서 (대관령 산신을 칭송하는 글과 서문)
계묘년(1603년) 여름, 나는 명주(강릉)에 머물고 있었다. 고을 사람들이 5월의 좋은 날을 택하여 대관령 산신을 맞이하려 하길래 이두(아전의 으뜸)에게 물어보았더니, 아전이 이렇게 말하였다.
"산신은 곧 신라의 대장군 김유신 공이십니다. 공이 젊었을 적에 이 고을에서 유학할 때 산신이 검술(검을 만드는 기술)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고을 남쪽 선지사(禪智寺)에서 칼을 주조하였는데, 90일 만에 용광로에서 나오니 그 빛이 태양을 가릴 정도였습니다. 공이 이를 차고 다녔는데, 노하시면 칼이 칼집 속에서 스스로 튀어나왔고, 이 칼로 고구려를 멸하고 백제를 평정하였습니다. 돌아가신 뒤에는 대관령의 산신이 되시어 지금까지 천여 년 동안 위엄과 영험이 현혁하여 사람들에게 복과 화를 내리실 수 있습니다. 매년 단옷날에 신을 맞이하여 무당들의 온갖 가무와 잡희로 재를 올리고 기도를 올립니다. 신이 오시면 나무 숲과 깃대(幢竿)가 함께 움직이는데, 똑바로 서면 그해에 풍년이 들고 기울어지면 흉년이 듭니다."
내가 이를 기이하게 여겨 가서 구경하였더니, 과연 깃대가 기울어지지 않았다. 고을 사람들이 모두 환호하고 손뼉 치고 춤을 추며 경사스러워하였다. 이에 마침내 다음과 같이 찬(贊)을 짓는다.
아, 귀한 가문의 후손이여! 굳세고 당당하셨네.
나라의 범 같은 신하 되어, 큰 책임을 맡고 제단에 올랐도다.
부월(군권의 상징인 도끼)을 쥐고 진영에 서니, 기세는 고구려와 백제를 呑滅(탄멸)할 듯했네.
귀신마저 채찍질하시니, 위엄과 명성이 세상에 진동했도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은 절개로, 공훈은 왕실에 남아 있네.
훌륭한 신령스런 영혼은 스러지지 않고, 대관령의 산맥에 남아 있도다.
천년 세월 동안 제사를 받으시며, 좌우의 당간을 주관하시네.
신령의 넋이 어둡지 않으니, 내리시는 복이 매우 크시도다.
첫댓글 허균의 《성소부부고》에 수록된 〈대령산신찬 병서(大嶺山神贊 幷序)〉(1603년 작성)는 강릉단오제 역사 연구에서 가장 결정적이고 중요한 사료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현존 최고(最古)의 강릉단오제 문헌 기록으로
역사적 연대의 입증의 자료이다. 조선 선조 36년(1603년) 당시 강릉에서 거행되던 단오제 모습을 직접 목격하고 남긴 기록이다. 강릉단오제의 기원을 구전 설화가 아닌 문헌적 데이터로 입증해 주는 가장 오래된 핵심 사료이다.
2005년 강릉단오제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될 때, 단오제가 최소 400년 이상 그 원형과 전통을 유지하며 지속되어 왔음을 학술적으로 증명하는 결정적 문서가 되었다.
이 기록을 통해 당시 강릉 지역 주민들이 대관령 산신으로 신라의 김유신 장군을 모시고 있었음이 구체적으로 밝혀진다.
역사적 상징인 김유신이라는 인물이 지역의 수호신이자 산신으로 거듭나는 양상을 구체적 연원(선지사에서의 검 주조 설화 등)과 함께 보여줌으로써, 신라 시대부터 이어져 온 호국신앙이 민간의 마을 수호신앙으로 정착했음을 증명한다.
"단옷날에 신을 맞이한다(歲以端午日迎神)", "무당들의 가무와 잡희로 재를 올린다(巫覡雜戱 設醮以祈)"라는 구절을 통해 신목(神木)과 깃대(幢竿)를 모시는 영신제(迎神祭) 및 굿, 가무의 형태가 17세기 초에도 현행 강릉단오제와 동일한 구조로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깃대의 움직임을 통해 그해의 풍흉(豐凶)을 점치는 행위("如植則歲豐 傾則歲凶")가 기록되어 있어, 강릉단오제가 단순한 제사를 넘어 마을의 안녕과 농사의 풍요를 기원하던 유구한 농경 제의적 성격을 지녔음을 학술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당시 사대부였던 허균이 이를 미신으로 매도하여 배척하지 않고, 직접 현장에 찾아가 구경("往觀焉")하고 유인들의 기쁨과 신령의 위엄을 기리는 찬(贊)을 지었다는 점이 독특하다.
유교·무속·도교적 요소가 융합되어 거행되던 민중 축제의 실제 양상을 지식인이 긍정적인 시각으로 기록했기 때문에, 조선 중기 지방 사회의 민속 문화 및 대중적 종교관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사료가 된다.
강릉단오제의 신격 체계에서 대관령산신(김유신)과 대관령국사성황신(범일국사)은 제의의 서막을 열고 축제를 이끄는 핵심 주신(主神)들이다.
두 신격은 신라 시대 인물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영역, 역할, 성격에서 명확한 차이점을 지니며 서로 보완적인 관계를 형성한다.
대관령산신 (大嶺山神)은 김유신 장군이다. 국토를 수호하는 자연신이자 산신이다. 강릉과 대관령의 공간적·자연적 안위를 수호한다.
명주(강릉)에서 검술을 익혀 검을 주조하고 고구려·백제를 평정한 후 사후 산신이 되었다.
유교식 산신제(山神祭)의 대상이다.
대관령국사성황신 (國師城隍神)인 범일국사 (810~889)는 지역을 수호하는 인물신이자 성황신이다.
강릉 주민들의 일상·생활적 복락을 수호한다.
학산리 우물에서 태어나(태양유허 설화) 신라 굴산사를 창건하고 지역을 구했다.
무속적 성황제 및 영신제(迎神祭)의 핵심 인물이다.
대관령산신(김유신)이 대관령이라는 자연 공간 전체를 지키는 최고 어른 신이라면, 대관령국사성황신(범일국사)은 강릉 마을 사람들의 삶과 번영을 직접 보살피는 행정·생활적 수호신이다.
단오제가 시작되는 음력 4월 15일, 제관들은 먼저 대관령 산신당에서 산신제를 올려 산신께 예를 갖춘 뒤, 바로 인근의 국사성황사로 이동하여 성황제를 올리고 신목(神木)을 베어 내려온다. 산신의 허락 아래 성황신을 모셔 오는 형식을 취한다.
조선 사회에서 지방 공동체는 자연의 위엄을 상징하는 산신(김유신)과 지역의 역사·문화적 영웅인 성황신(범일국사)을 함께 모심으로써 신앙적 완결성을 높였다.
신라를 통일한 무장으로서의 호국 기운(김유신)과, 강릉 굴산사를 창건하고 선종을 펼친 고승의 영험함(범일국사)이 결합하여 강릉이라는 지역을 이중으로 안팎에서 지켜준다는 믿음이 오늘날 강릉단오제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