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식사때 와인을 찾으니 병이 다 비었다. 할 수 없이 벽 한켠에 모아 두었던
빈병을 살펴보니 반잔쯤 남았다. 마개를 뽑고 와인 글라스에 따루니 잔 바닥에서
조금 올라왔다. 맛을 보니 오래되어 향이 다 날아고고 알콜 기운도 떨어진듯 했다.
그래도 맹물 보다야 낫지 않은가?
처서를 지나도 한낮에는 피부가 따가울 정도로 햇볕이 강하다. 햇볕이 고개를 조금
숙일 때쯤 돼서 지갑을 챙겨 지하철을 타고 중동역 앞에 있는 이마트로 향하였다.
밖에서는 무더워도 지하철을 타니 에어콘 바람이 시원하게 뿜어져 나왔다. 자리에
앉자 저녁식사때에는 맛있는 와인에다 활어코너에 가서 갓잡은 전어나 광어회로
잔치를 하겠구나 하는 생각만 해도 콧노래가 저절로 흘러나왔다.
중동역에서 하차하여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마트 앞에 내리니 출입문이 닫혀 있고
방범철망이 반쭘 내려져 있었다. 그 옆에는 '매월2주,4주 월요일 정기휴무'라고 대문짝
만하게 써 붙여져 있었다. 하필이면 내가 오는 날이 휴무라니.... 어제 황선생은 기장으로
바람쐬러 갔는데 마침 남창낭날(3일,8일)이라고 점심은 장국밥 사 먹고 온다고 했는데...
한여름밤의 꿈이 이렇게 무참히도 깨질 줄이야.
할 수 없이 다시 발길을 돌려 지하철을 탔다. 센텀에 있는 홈플러스로 가 볼 참이었다.
센텀시티역에서 하차하여 지하도 계단을 힘겹게 올라서서 횡단보도를 건너서 보니
홈플러스도 휴뮤가 아닌가. 막내가 차를 가지고 가지 않았다면 집에 와인이 떨어지기 전에
코스트코에 가서 하디즈를 적어도 2통이상은 준비해 두었을 것인데, 차가 없으니
장보러 가기가 쉽지 않다.
와인이 없는 저녁식사는 말하자면 '앙꼬 없는 찐빵'이나 다름없다. 와인을 사려면 우리동네
상가마트도 있고 편의점에도 와인이 있지만 종류가 많지 않아 입맛에 맛는 것을 고르기가
쉽지 않다. 또 재래시장 안에 새로 생긴 와인솦이 있는데 아직 한번도 가보지 않아 입맛에
맞는 와인이 있는지도 알수가 없었다. 그래서 인근 롯데백화점 와인코너로 갔다. 여직원이
다가와서 "혹시 찾으시는 와인이 있습니까?"하고 물었다."특별히 찾는 것은 없고, 평소 칠레산
1865를 즐겨 마시는 편으로, 맛은 드라이 하고 탄닌이 풍부하고 무게감이 있는 것이면 좋겠다".
고 했다. 그러자 미국산과 칠레산 두 세가지를 추천해 주어 두 병을 골라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