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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s://arca.live/b/spooky/83187203
우리 할아버지가 어렸을 적 친하셨던 친구분은 구미에 사셨음
구미쪽을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거긴 진짜 산이 겹겹하게 존재하는 곳임
밤만 되면 지금도 자동차 라이트가 없으면 한 치 앞도 안 보일정도로
할아버지랑 단짝이셨던 친구분은 그 구미에 사셨고 겁도 없으셨었다고하셨음
초저녁까지도 동네 여기저기 뛰어다닐 정도로 담력이 강하셨다고 동네 사람들이 인정할 정도였거든
그러다
어느 날 일이 터져버렸음
친구 분의 어머니가 되게 아프셔서 누워버리셨는데
당시에 지금처럼 병원이 발달한 것도 아니고 약도 뛰어난 종류들이 아닌 한의원에 가까운 병원 진료 시설에 약을 처방받아 먹는 정도에 불과해서
아무리 약을 먹어도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시대가 시대인 상황이라 각 마을마다 약간 무속적으로 신기가 있는 사람이 있거든 당산 나무도 있고 그런게 진짜 좀 어느정도 크기가 되는 마을에는 꼭 있단 말이야
그 신기가 있던 어르신이 도대체 무슨 소리를 했는지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할아버지 친구분에게 이렇게 말 했었다나봐
(이건 할아버지도 다른 어르신에게 들었다고 하셨었음)
당시 뒷산에는 과거 이 땅에 마을이 들어서기 전부터 산을 지키고 있으셨던 거목이 있는데 어르신은 그 나무에 신이 깃들어 있으시다
성심성의껏 몸을 청결하게 하고 진심을 다해 빌거라 너의 정성을 보시면 분명히 산신님께서 도와주실거다
기도는 커녕 신이 뭐고 그렇게 어려운 것도 모르는 할아버지의 친구분은 그래도 그 말에 한가닥 믿음이라고 가지셨던 것인지 아침부터 점심 오후까지 어머니 병간호에 아버지 밭 일을 도왔다가 몸을 냇가에서 깨끗하게 씻고 어둑어둑해지기 전에 빠르게 뒷산 중턱에 있는 거목에 빌고 왔다고 하더라고
여기까지 보면 그냥 근면성실하고 기특한 이야기에 불과하지만...
문제는 어느날 갑자기 벌어졌어
할아버지 친구 분이 뒷산 중턱에 올라가셨는데 그 날 따라 평소에 돌아왔어야할 시간이 지났는데도 집에 돌아오지를 않았다는거야
게다가 어둑어둑해지는 것을 고사하고 비까지 소나기처럼 억수로 내려오기 시작했고
말 그대로 그 집안은 난리가 났어
아픈 상황에서 아들이 없어졌다는 어머니도 비몽사몽하는 와중에 울고 난리가 났지만
무엇보다 아버지께서 멘붕하고 울고 난리가 났다는거야 아내까지 이렇게 아픈데 내 귀한 자식까지 어떻게 될 수는 없다고
근데 이게 이상한 일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게
뒷산이라고 해봤자 그렇게 높았던 산도 아니고 언제나 가는 길을 이렇게 시간이 걸릴 수도 없고 헤맬 수도 없거든
결국 환하게 비출 수 있는 건 전부 들고 찾으러 돌아다니던 동네 어르신들도 몇 시간을 찾아도 친구분 행적을 찾을 수가 없었고 당시 전화라는 개념도 그런 촌구석에 있을리가 없었거든
그러다가 엎친데 덮친 격으로 굵은 빗물까지 뚝뚝 떨어지더니 곧 사람들 전부가 홀딱 젖을 정도로 비가 거세게 내리기 시작했어
그러다 와중에 어르신들 무리에서 신기가 있으신 그 어르신이 말씀하셨다고해
"오늘의 날이 만월에 산에 음기가 가득 쌓였다 필시 oo이가 산의 악기에 홀렸다"
지금 같으면 가족들이 무슨 헛소리냐고 노발대발할 소리겠지만
당시에는 시대상도 그런걸 아직까지 좀 믿는 상황이라 특히 아버지게서 울고불고 빌었다하더라고 어르신 꼭 부탁드린다고
그래서 막 뭔가를 준비할려고 하는 그 어수선한 상황에
"찾았다!"
엄청난 소리와 함께 단순에 마을 사람들이 뛰어간 곳은 분명히 사람들이 뒤져봤을 수 밖에 없었던 곳
뒷산의 샛길이자 정식으로 사람이 사용하는 길은 아니지만 가끔 새벽 산길에 올라가시는 어르신들이 자주 사용하는 길에서 할아버지의 친구분이 서있었다고 하더라고
그 때는 할아버지도 정신이 없으셔서 이야기도 못하고 그냥 막 사람들이 웅성웅성 거리는 인파에서 정신 못차리다가 집으로 동라가셨는데
다음날 친구를 만나고 자초지종을 들을 수가 있었는데
지금부터가 할아버지 친구분의 이야기임
그 날도 자기가 한참을 올려봐야 겨우 가지가 보일만큼 나이드신 거목님에게 기도를 올리고
늘 그랬듯이 똑같이 하산을 하기 시작했는데
이상하게
아무리 아무리 내려가도 길이 끝나지를 않는거래
친구분은 당황했어
만약 다 자란 성인이라도 그런 상황이면 멘붕할건데 아직 초등학생 나이 정도의 아이라면 어떻겠냐?
허둥지둥 뛰고 난리피우고 어떻게든 내려가려고 발악을 했는데 1시간? 몰라도 그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고 체감이 들 정도로 긴 시간을 하산해도 평소의 출구 쪽이 나오질 않았어
(원래 그 산의 정식 출구는 특징적인 굽은 소나무가 나와서 알아차릴 수 있다고 하는데 그 소나무는 커녕 울창한 잡풀들이 계속 나타났다고 하더라)
그러다가 결국 발 헛디디고 굴러서 발을 삐어버리셨는데 설상가상으로 굵은 빗방울까지 뚝뚝 떨어지기 시작하는 거야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지
발은 삔 것인지 아프고 퉁퉁 붓고 팔도 돌에 벗겨진 상처에 아프고 비는 내리기 시작하여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숲의 어두움에 점점 앞길이 안보이기 시작하고
무엇보다 친구분을 잡아 먹기 시작한건
그 끝을 알 수 없는 어둠 속에서 빗소리와 함께 산의 온갖 벌레 소리와 고요함이 기묘하게 합쳐지는 두려움
결국 마음이 꺾여서 훌쩍 훌쩍 우시다가 아픈 발목과 다리를 못참고 적당한 이끼 낀 바위에 앉았는데
문득 그 순간에 자기가 다시 생각하셔도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울면서 마음속으로 빌었다고해
자신이 매일 빌었던 그 거목과
이름도 모습도 그게 무엇인지도 모르는
신에게
제발 도와주세요라고
조금의 기적이라도 바라고 그렇게 한참을 속으로 빌면서 우는 친구분은 처음에 몰랐는데
조금씩 뭔가가 이상한걸 느낄 수 있었데
자기가 지금 이야기를 하면서 믿지 못할 거라는걸 알면서도 분명하게 느꼈던 그 느낌
억수 같이 비가 내리는 그 상황 속에서도 촉촉한 비가 자기 얼굴과 몸을 적시는게 느껴지지만
일순간 고요해졌다
세상이 조용해졌다
풀벌레 소리도 바람 소리도 세상 모든 소리가 자신의 귀를 무언가가 막아준 것처럼 고요해진 친구분의 눈 앞으로
그것이 서있었다
그것
아니 그 분?
지금도 그 존재를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모른다고 한다
키가 어림잡아도 평범한 성인남자를 우습게 생각할만큼 큰 체격에 온 몸이 짐승의 털을 대신하듯 얼굴 표정마저 보이지 않게 모든 곳을 빽빽하게 덮은 청록색의 파릇한 나뭇잎들
사람이 아니다
친구분은 다른 무엇도 아니고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사람의 피부가 아닌 두꺼운 나무의 껍질로 이루어진 두텁고 커다란 손을 보고 말이다
말은 없었다
그 어떤 대화도 없었다
그저 두려움에 조용히 그 존재를 바라보던 친구분은 어느새
그 존재가 천천히 그 투박한 손을 자신에게로 건내주는 것을 알았고
지금도 기억나는 따뜻한 목소리가 귀가 아닌 뇌에 때려 박는 것처럼 말했다고 한다
"나를 잡거라"
낯선 사람도 아닌 알지도 못하는 것이 내밀었다고 그 손을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안 잡았겠지
하지만 진짜 이상하리만큼 친구분은 그 목소리가 따뜻했고 무엇보다... 마음이 편안해지고 믿을 수가 있었다네
그 손을 잡자 거친 나무처럼 보이는 것과 달리 크지만 너무나 따뜻하고 편안한 그것이 친구분을 감싸 안았고 아무 말 없이 그저 걸었어
그러면서 친구분이 어렴풋이 느꼈는게
분명히 비를 맞아서 춥다고 느꼈던 몸이 가볍고 편안해지셨다고해 마치 몸을 묶고 있던 뭔가가 훌훌 다 털어내지는 것처럼
그리고 너무나 포근한 그 품에 서서히 눈이 감겨 잠이 들었는데
"일어나서 앞을 향해 가거라 그럼 집으로 갈 수 있으니"
또 다시 따뜻한 목소리가 울리는듯한 느낌에 일어났더니 어느세 자기가 항상 돌아다니던 마을의 산으로 올라가는 샛길에 자기가 누워있었고
얼마 가지 않아 막 뛰어다니던 철물점 아저씩 자기를 보고 미친듯이 찾았다고 소리를 질렀다고
이 이야기를 해주신 할아버지는 그 때 신기가 있으신 그 어르신이 이렇게 말씀하셨다고해
"산신님. 산신님을 만났구나"
감탄하며 며칠 뒤에 화려하게 갈아입으신 어르신은 친구분의 가족과 함께 산으로 함께 올라가셔 크게 굿을 올렸다고해
이젠 더 이상 그 때의 형체도 남아있지도 않을만큼의 옛날 이야기
인간과 자연의 경계가 확실하지 않았던 시기
전설과 신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고 내렸던 그 시절
할아버지는 지금도 이야기하셔
자기의 친구는 지금도 자신의 몸이 산에 오르지 못할만큼 늙기 전에 등산하는 이유가 있다고
그저 감사해서
자신은 산신님을 만났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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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한테 들었던 옛날 이야기 중에 하나를 적어봤어
글 쓰는 실력이 좀 허접해서 노잼이라면 미안하다...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엔트는 이렇게 생겼대..!
영화에 나오는 캐릭터(?)이지만
혹시 모르니 사진 주의
첫댓글 너무 재밌고 흥미롭다
동네마다 있는 뒷산도 다 산신이 있을거라 생각하니 맘리 두군두근하네..ㅎㅎ나름 무섭지 않게 사람 흉내 낸다고 모습을 만든 거 같기도 하다 ㅋㅋ
신기 있는 어르신이 젤 이상해ㅠ 초딩더러 당산 나무에 기도하라질 않나 애가 안 오니까 산의 악기에 홀렸다 하질 않나 어르신이 보냈잖아요!!!
ㄹㅇ 그렇게 위험한 날이면 말려주지!!
우와 ㅠㅠ
신비롭다 옛날엔 이렇게 신들이 계셨겠지...
와 나도 딱 엔트 생각하면서 읽었는데 진짜 산신님이였을듯.....
와 완전 흥미롭...
그래서 어머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