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arca.live/b/spooky/56613513
아직도 친구들끼리 술마실때 가끔 하는 썰임
지금으로부터 약 4년쯤 전임. 갓 전역해서 처음 자취방을 구했을 때니까.
북아현동 재개발 지구. 또는 굴레방다리 달동네. 뭐 이런식으로 불리던 곳임. 지금은 밀었다는 얘길 듣긴 했는데 저기 나온 이후로 그 근처는 얼씬도 안해서 잘 모르겠음
내가 구한 집은 옥탑방이었음. 무슨 낭만 넘치는 옥상정원이 있거나 평상에서 별바라기를 할수 있는데는 아니었고,
달동네 중턱에 있는 구축 빌라에 불법으로 증축한 옥상층(대충 옥상에 컨테이너 하나 올리고 수도만 뚫어둔 층)이었음. 가뜩이나 싼 전세 매물이 말도 안되게 저렴하게 나온 곳ㅇㅇ
내가 살던 동네가 딱 저런 곳이었는데 한낮에 어디서 닭이 돌아다니고 골목 어귀엔 무슨 보살 점집 이런곳도 많고, 무슨 일을 하는지 의심스러운 사람들도 더러 있던 좀 외진 곳이었음.
(구라같지만 진짜 21세기에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닭이 거리를 걸어댕겼다니까? 그것도 차로 신촌 10분 거리에서..)
심지어는 거리마다 붉은 깃발들이 나부껴서 밤엔 더 무서운 동네였음
(실제 당시 북아현동 재개발지구 사진임ㅇㅇ)
무튼 각설하고, 당시 나는 새벽에 일어나서 일하고 저녁에 비몽사몽으로 돌아와서 잠들던 때였음. 환경이 어떻든 삶에 치이면 안보이니 상관 없다 싶을 정도로
어느날 여자친구랑 주말 맞이로 잠자기 전에 노닥거리는데, 집 창문에 나뭇가지 그림자가 흔들리는게 보였음.
(대충 저런 느낌)
사실 뭐 대단한 일은 아니었음. 옥탑이니까 가로수나 가로등보다 위에 있고, 밤에 가로등 빛이 위로 뻗어 창에 닿으면 그림자 정도야 질 수 있지 ㅇㅇ
그런데 장난기가 돌아서인지, 나는 그때 여친한테 겁을 좀 줬음. 저거 사실 나무가 아니라 손 그림자라고. 손 그림자처럼 생기기도 했거든 ㅇㅇ
이 동네가 유영철 연쇄살인사건 일어난 동네라 죽은 고인분들 기리려고 깃발도 건다. 가끔 저렇게 창에 손그림자가 비치면 모른척 해야 된다.
대충 이런 농담을 했음. 물론 다 구라임. 즉석에서 지어낸거였고. 여친은 좀 겁을 먹더니 금새 거짓말 하지 말라면서 킥킥거렸음.
그리고 다음날에 여친을 바래다주고 출근길을 나설때 집 앞 그 골목 어귀로 들어섰을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음.
나무가 보임?
달동네에. 그것도 재개발지구 깊은 곳에 있는, 주택만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이 동네에 가로수? 그런 조경사업이 이 동네에 있을 것 같음?
있긴 함 물론. 더 위로 올라가면 진짜 엄청 작고 낡은, 녹슨 운동기구들이 있는 공원 같은 게 있긴 함
근데 그게 우리 집에선 보일수가 없음. 우리집은 옆 빌라랑 거의 딱 붙어있는 좁은 골목만 보이니까.
근데 당시 새벽 5시 반. 겨우 서너시간 자고 출근하던 나는 별 생각 없이 비몽사몽으로 일하러 가야 했고
오지게 바쁜 하루가 끝나고 아홉시가 다 되어서야 집에 돌아갔음.
그날 밤이었음. 열대야가 한창인 여름밤
옥탑방, 그것도 컨테이너로 만든 간이 주거지여서 여름에 뒤지게 덥고 겨울엔 싱크대가 얼어붙는 환경이어서, 여름에 에어컨을 안켜면 잘수가 없었음
그날도 에어컨을 켜고 정신없이 곯아 떨어짐.
한참을 자고 있는데 귓가에 찬 바람이 훅, 하고 끼쳤음. 에어컨이 금성 에어컨(진짜 그 lg구형모델. 옵션이었음)이었는데, 온도 조절이 맛이 가서 틀어두면 오지게 추워질때가 있어서
그날도 어김없이 ㅆ발 꺼야지 하고 생각하며 정신을 차렸음.
근데 그 집 에어컨은 내 이부자리 옆에서 현관 방향으로 있었고, 그 말은 즉 내 머리맡으로 직접 냉풍을 뿜을 각도 자체가 안나온다는 소리임.
당시 우리집이랑 거의 동일한 구조의 원룸 조감도임. 저기서 창문위치, 화장실 위치 같은 세부사항만 바꾸면 딱 저렇게 생겼었음ㅇㅇ
컨테이너니까 가로로 긴 직사각형 모양 원룸이었지
근데 저기 사진상에 창문과 보일러실이 있는 밑변쪽에 내 이부자리가 있었고, 주방과 현관은 내가 고개를 들면 바로 보이는 위치였음.
에어컨이 나한테 바람을 불수 없다는걸 깨닫자마자 갑자기 멋대로 눈이 떠졌음.
그리고 어두운 방에, 가로등 불빛이 간접등으로 어스름하게 비추는 방 끝에. 주방과 현관 사이쯤에
뭔가가 웅크려 있었음.
희미하게 긴 검은 머리칼 같은 형체에, 하얀색인지 빛바랜 노란색인지. 정확히 알수 없는 넓은 옷을 입고서는. 등을 돌려 웅크려 있었음.
정말 “뭔가”였음. 갓 전역해서 치안도 안좋은 동네에 살면서 도둑이나 괴한이 침입할수도 있다는 생각은 늘 해왔고
그럴 경우를 대비해서 머리맡에 항상 장도리를 두고 잤기도 했고, 가끔 주말에 늦잠자다가 친구가 놀러오면 문 여는 소리 듣자마자 장도리 들고 일어서서 경계부터 할 정도로 준비를 잘 하던 시절이었는데도
손가락 하나 꼼짝할수가 없었음. 그냥 누운채로 눈만 뜨고 있었음.
그걸 본 순간
도둑인가? 공격해야 하나? 이런 같잖은 생각 같은건 들지도 않고
본능적으로. 그냥. 나는 죽는구나.
체념이 아니라, 당연한걸 납득하는 심정으로. 개구리가 뱀 앞에 몸이 굳듯이 깨달았음.
그 순간 갑자기, 온몸에 꼭 차가운 전기가 통하는 것처럼 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음
저게 지금 나를 봤다.
형체도 불분명하고 눈은커녕 이목구비도 안보이는데. 그게 나를 똑바로 보고 있다는 깨달음이 들었음. 그냥 알수 있었음 저게 지금 나랑 눈이 마주쳤다는걸
그 생각이 들자마자 갑자기 눈이 꽉 감겼음
다행이다. 이대로 기절하자. 낮이 되면 괜찮겠지. 차라리 다행이야.
이렇게 생각하며 속으로 덜덜 떠는데, 다시 귓가에 바람이 슥 스쳤음
아 ㅆ발 지금 내 옆에 있다
눈을 뜨면 죽는다
이런 생각이 들 때 쯤에, 목소리가 들렸음
해병대 나왔다더니 쫄았네?
(내 이부자리 바로 옆 행거엔 옷들이 걸려있었고, 당연히 그 중엔 내 전역복도 있었음ㅇㅇ 전역 직후 자취였으니)
그리고 잠시 멈추더니
안 자는거 알아. 일어나봐.
웃음기 하나 없는 목소리로. 조롱이나 농담 같은 말인데도 이상할 정도로 기계적으로 또박또박 저렇게 말함
그 소릴 듣고 진짜 까무러쳤고,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 곧장 근처에 자취하는 친구 집에 들어가서는 사흘간 집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음
그 뒤에 얼마 후 이사를 갔음. 이삿날 전까진 그 친구랑 내 자취방에서 같이 살았고, 그 기간 동안엔 별 일이 일어나지 않음.
내일 출근 안하는 김에 옛날 생각이 나서, 자주 눈팅하던 이 채널에 썰을 풀어 봄.
그 뒤로 이 썰을 술자리마다 풀땐 다들 내가 가위에 눌렸다고 했음.
근데 사건 전날에 창가에 보인 그림자는..?
그걸 당시 내 여자친구랑 같이 봤는데, 그림자가 질 수가 없는 위치에 그날만 바싹 마른 손 모양의, 나뭇가지 그림자가 졌었다고?
믿든 안믿든 자유지만, 구라 한톨 없는 진짜임. 난 아직도 그날만 생각하면 소름이 끼침. 평소에 공포영화도 좋아하고 괴담도 즐기지만 귀신이 실존한다고는 절대 믿지 않던 내가
그 날을 기점으로, 세상엔 어쩌면 뭔가가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내 주변에 적어도 보이거나 느껴지진 않아서 다행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살고 있음
긴 글 읽어줘서 고마움.
첫댓글 해병대 나왔다면서 별거아닌걸로 아직도 엄청 쫄아있네ㅋ
아놔 나뭇가지 무섭다 ㄷ ㄷ 하고 있었는데
해병대귀신헴때문에 다 까먹었어요
걍 눈떴다가 선잠 들어서 잘못들은거 같은데 ㅋㅋㅋㅋ 장도리까지 둘 정도로 긴장하고 살앗으면 그게 은연중에 공포심으로 다가와서 저렇게 들릴 수도 있을듯ㅋㅋ
나도 자취 초반에는 많이 불안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꿈만 꾸면 누가 우리집 문 도끼로 찍고 들어오는 꿈 같은거 자주 꿨음.. 익숙해지니까 쿨쿨띠 자더라
오호 나도 불편한자세로 선잠들면 귀에 누가 말하는경험 많앗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