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세·애플·푸단大·부동산·블루오션… 중국 부자를 이해하는 5가지 키워드 속에 돈의 흐름이…

[강헌]

중국 부자 연구소 '후룬 보고서' 창업자이자 발행인… 루퍼트 후거워프 인터뷰

후거워프 발행인

'하루 만에 재산 16조원 증발.'

마윈(馬雲) 알리바바 회장을 제치고 중국 최고 부자로 불리던 중국 태양광업체 하너지(Hanergy·漢能)의 창업자 리허쥔(李河君) 회장 이야기다. 지난 20일 홍콩 증시에서 '하너지박막발전'의 주가가 50% 가까이 폭락하면서, 최대주주인 리 회장의 재산도 크게 줄었다.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대체 재산이 얼마나 되길래 주가 하락으로 하루 만에 재산 16조원이 날아갈 수 있는 것인가. 대다수 사람들이 중국 부자들의 부(富)가 막대하다는 것은 짐작하지만, 자세히 알지는 못한다. 중국 경제 성장과 더불어 억만장자가 단기간에 여럿 나오다 보니, 누가 어떻게 얼마나 돈을 벌었는지 정리하기가 쉽지 않고, 중국 부자들이 자신의 부를 드러내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도 있다.

이런 궁금증을 풀어주는 데 일조한 보고서가 있다. '중국판(版) 포브스', '중국 부자(富者) 연구소'로 불리는 후룬(胡潤) 보고서다.

후룬 보고서 창업자이자 발행인인 루퍼트 후거워프(Hoogewerf·45)를 지난 19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만났다. 그는 조선일보가 주최한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ALC) 참석차 한국을 방문했다. 후룬은 후거워프의 중국식 이름이다. 영어로 인사를 건네고, 짧은 중국어로 기자를 소개하자 바로 "중국에서 공부한 적이 있냐?"며 유창한 중국어 답변이 돌아왔다. 후거워프는 1997년부터 현재까지 중국 상하이에서 가족과 함께 거주 중이다.

후거워프는 영국의 컨설팅 업체 아서 앤더슨 상하이지사 주재원으로 근무하던 중 중국 부호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1990년대 후반은 중국 경제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시기였다. 새로운 부자 탄생을 알리는 뉴스가 신문 헤드라인을 자주 장식했다. 그러던 어느 날 중국 내 부자 순위가 궁금해져 자료를 찾았는데, 공신력 있는 자료가 없다는 것을 알고 후거워프는 직접 조사에 뛰어들었다. 도서관에 틀어박혀 언론에 공개된 자료를 모아 보고서를 썼다. 이 보고서가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에 인용되면서 화제가 됐다.

그 결과 취미로 하던 것이 지금은 본업이 됐다. 그의 이름을 딴 후룬 보고서는 지난 2004년부터 매달 발행되고 있다. 후룬 보고서에는 중국 부호 명단과 그들의 소비 습관, 선호하는 브랜드, 그들의 투자 전략들을 분석한 내용이 주로 담겨 있다.

무엇 때문에 중국의 억만장자를 집중적으로 다룬 후룬 보고서가 화제가 됐을까. 후거워프는 "지난 16년 동안 1위에 오른 억만장자가 12명이나 된다"며 "새로운 억만장자가 계속 나오고 있는 중국에 관심을 가져야 돈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공개되지 않은 숫자를 합치면 중국의 억만장자 수는 이미 미국을 추월했다"고 덧붙였다.

후거워프에게 중국 억만장자들을 설명하는 5가지 키워드를 들어봤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①53세

중국의 억만장자들은 중국 경제가 성장하는 와중에 기회를 잘 잡았습니다. 중국 최고 부자 10명의 평균 나이는 53세입니다. 1962년생 정도가 되는 겁니다. 30세인 1992년에 사업을 시작했고, 1997년에 회사를 설립합니다. 1990년대 후반은 중국 경제 성장 엔진에 불이 막 붙기 시작하던 시기입니다. 평균적으로 2007년에 기업공개(IPO)를 하면서 막대한 부를 구축합니다. 2007년은 중국 증시가 상승세를 타던 시기입니다. 중국 경제의 상승 사이클과 억만장자의 부 생성 사이클이 맞아 떨어지는 셈입니다. 실제로 2000년대 초반 중국 경제 성장을 이끌던 제조업과 부동산 분야에서 많은 억만장자가 나왔습니다.

중국의 억만장자 대부분이 자수성가한 사람들입니다. 특히 고등 교육을 받지 않고도 스스로의 노력으로 막대한 부를 일군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미국과는 다른 점이죠.

미국의 성공한 억만장자를 한번 볼까요. 빌 게이츠나 마크 저커버그는 중퇴했지만, 세계 최고의 명문대학으로 꼽히는 하버드에서 공부한 사람들입니다. 아주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았던 사람들입니다. 집안도 부유한 편입니다.

반면 중국의 억만장자는 다릅니다. 좋아하는 것을 배우기 위해 개인 교습을 받았던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이 영어를 배우기 위해 외국인 투숙객에게 무료 가이드를 해줬다는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합니다.

후룬 보고서가 조사한 결과 중국 본토 억만장자 가운데 고등 교육을 받지 못한 자수성가형 부자 비율은 61%에 달합니다. 미국은 이 수치가 13%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성공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시대의 흐름을 잘 읽었고, 이를 바탕으로 가장 유망한 시장을 겨냥해 창업했기 때문입니다. 최근에도 창업에 성공한 젊은 사업가들이 억만장자 명단에 새롭게 진입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②애플

중국 부자들이 타인에게 선물을 할 때 가장 선호하는 브랜드는 무엇일까요? 샤넬, 루이뷔통, 카르티에, 몽블랑 같은 패션 브랜드나 시계 브랜드를 떠올리셨나요? 지난해 후룬 보고서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가장 선호하는 브랜드는 애플이었습니다. 설문에 응답한 중국 백만장자 가운데 남성의 20.3%, 여성의 18.9%가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로 애플을 꼽았습니다. 지난달 출시된 애플워치의 경우 중국에서 한 대당 2000만원이 넘는 최고가 모델이 1시간도 안 돼 매진됐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삼성 역시 중국 부자들이 선호하는 브랜드 중에 하나라는 것입니다. 남성의 경우는 10위, 여성의 경우 9위에 올라와 있습니다. 중국 부자들이 선물을 주고받을 때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 10개에 IT 기업이 2개나 포함됐습니다.

중국 부자들이 좋아하는 브랜드는 (남성 기준) 1 애플 2 루이뷔통 3 구치 4 샤넬 5 몽블랑 6 마오타이 7 에르메스 8 카르티에 9 불가리 10 삼성

중국 부자들이 IT 제품에 눈길을 돌린 것은 중국 정부의 반부패 정책 때문입니다. 중국 정부가 반부패·사치풍조 퇴치 캠페인을 벌이자 중국 부자들은 값비싼 명품 시계나 명품 가방의 구입을 꺼리고 있습니다. 반면 IT 기기는 아무리 비싸도 명품 가방이나 시계보다 가격이 비교적 쌉니다. 스마트폰이나 스마트워치, 태블릿PC 같은 IT 기기들은 휴대하기도 편합니다. 디자인도 예쁘니 들고 다니면서 자랑할 만한 물건이 됩니다. 결국 중국의 반부패 정책이 애플과 삼성을 부자들이 좋아하는 선물 목록에 올린 셈입니다.

이외에도 루이뷔통, 샤넬, 구치, 에르메스 등 명품 패션 브랜드가 꾸준히 중국 부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중국 브랜드 중에서는 명주 브랜드로 잘 알려진 마오타이(茅台)가 남성 부호들이 선호하는 브랜드 6위에 올라 있습니다.

③푸단대

중국 부자들이 중국에서 가장 선호하는 학교로는 상하이 푸단대(上海 復旦大), 칭화(淸華)대, 베이징(北京)대, 경영대학원인 장강상학원(長江商學院), 중국유럽국제경영대학원(CEIBS) 등이 있습니다.

중국 부자들이 인맥을 쌓기 위해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학연입니다. 기업 경영을 위해 중국 내 명문대의 경영전문대학원(MBA) 같은 비즈니스 스쿨에 들어가고, 거기서 그들만의 '이너 서클(inner circle·소수 핵심 그룹)'을 만듭니다. 기업 경영자와 임원을 대상으로 한 최고경영자 MBA(eMBA)에서도 이너 서클이 만들어집니다.

아울러 중국 부자들은 자신의 출신 지역에 있는 비즈니스 스쿨을 매우 선호합니다. 얼마 전 싱가포르에서 중국 부자 몇 명을 초청해 세미나를 열었습니다. 총 20명이 참석했는데, 그중 7명이 한 마을 출신이었습니다. 한 명을 초청했더니 친구들을 모임에 부른 것입니다. 학연과 지연이 얽힌 이너 서클은 탄탄한 결속력을 자랑합니다.

자녀 교육에 있어서는 조금 다른 양상을 보입니다. 해외 유학을 선호합니다. 중국 부자들의 80%가량이 자녀를 해외로 보냅니다. 가장 좋아하는 대학교는 미국의 하버드입니다. 영국의 옥스퍼드, 케임브리지도 가고 싶은 대학으로 꼽습니다. 중국 억만장자들은 평균적으로 자녀가 평균 16세가 되면 해외로 보냅니다. 세계적인 명문대에 진학하기 위한 것입니다. 미국·캐나다·호주·영국·싱가포르 등이 유학 장소로 인기가 많습니다. 거의 다 영어권 국가입니다. 영어를 잘 해야 중국에서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④부동산

중국 부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투자처는 부동산입니다. 특히 국외 투자 시 가장 먼저 고려하는 수단이 부동산 매입입니다. 가장 선호하는 곳은 LA·샌프란시스코·밴쿠버 3곳입니다. 좋은 대학이 있거나 교육 시설이 훌륭한 지역과 가까운 곳에 부동산을 매입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외에도 뉴욕·시애틀·토론토·보스턴·시드니·멜버른·싱가포르·뉴질랜드, 그리고 런던 등의 부동산에 눈독을 들이고 있습니다. 영미권 국가들의 대도시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것은 자녀들 때문입니다. 자녀 교육이 해외 부동산 매입의 가장 큰 이유입니다. 부동산 매입 가격은 평균적으로 약 100만달러입니다.

주식은 최근 다시 떠오르는 재테크 수단입니다. 많은 중국 부자들이 지난해 주식 시장에서 큰돈을 벌었습니다. 지난해 중국 상하이증시와 홍콩 증시의 교차 거래인 '후강퉁' 시행 이후 증시가 급등한 덕을 봤습니다. 올해 역시 주식시장에서 많은 돈을 벌 기회가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중국의 억만장자들 가운데 증시가 달아올랐던 지난 2007년 전후 기업공개를 통해서 갑부가 된 사람이 많습니다. 다만 2007년에 중국을 포함한 글로벌 증시가 크게 과열됐고, 2008년에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찾아왔던 것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중국의 경제성장은 둔화되고 있는데 중국 증시는 여전히 상승 흐름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부호들은 증시가 곧 큰 폭의 조정을 받을 가능성도 주시하고 있습니다.

⑤블루오션

중국 부자 리스트에 젊은 부자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억만장자 중 2명은 1980년대생입니다. 중국의 온라인 쇼핑몰 주메이닷컴을 창업한 첸우(陳歐)의 나이는 31세에 불과하지만, 그의 재산은 15억달러에 달합니다. TAL 에듀케이션의 창업자 장방신(張邦薪)은 34세지만 이미 10억5000만달러의 돈을 벌었습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초기 중국의 억만장자들은 부동산과 제조업에서 돈을 번 경우가 많았지만, 요즘은 블루오션(새로운 시장)에서 기회를 찾습니다. 주메이닷컴은 화장품 전문 온라인 쇼핑몰로, TAL 에듀케이션은 온라인 학원 강의로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요즘 기업가들은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투자자로부터 돈을 받아 빠르게 사업을 키울 수 있습니다. 벤처캐피털, 엔젤 투자자, 사모 펀드가 돈을 댑니다. 과거 대다수 기업가들이 맨손으로 사업을 키운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이것은 아주 큰 차이입니다.

한때는 인터넷과 모바일이 대표적인 블루오션이었습니다. 중국 최고 부자 10명 가운데 알리바바 마윈 회장 등 4명이 IT 분야에서 나왔습니다. 중국 부자들의 요즘 관심사는 중국인의 달라진 소비 성향입니다. 중국 경제성장에 힘입어 중국인들의 씀씀이도 커졌습니다. 안전한 먹거리를 찾고,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며, 겉모습을 꾸미는 데 돈을 씁니다. 교육에도 많은 돈을 지출합니다. 여기서 기회를 찾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온혜선 기자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