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자화상
태어나 반년도 채 살지 못하고 떠난 세희와의 작별이 있은 후, 도무지 어린 아이들을 대할 자신이 없다고 하자 YMCA 책임자는 녹색가게로 나를 배치시켰다. 그 곳을 지키던 나와 동년배인 이가 여름휴가를 다녀오는 길에 경미한 교통사고를 당하고서 사직서를 낸 상태였고, 대신 그 일을 맡고 있던 팀장도 분만일을 앞두고 휴직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어영부영 남은 내가 파견이 된 것이다.
단기적인 일이긴 하지만 새로운 환경에 다시 적응되려면 기본 일주일의 시간은 걸린다. 작년 초 Y에서 면접을 본 후 곧장 방과 후 스쿨로 들어가 5,6학년 사춘기 아이들과 몸씨름을 하며 지냈다. 또 한동안은 보육 교사 형태의 일을 했고, 이 가을엔 예상치 못했던 옷가게로 옮겨졌다. 내 노역이야 노가다 잡부(雜夫) 수준이지, 라고 말하면 그들은 뭐라 할까.
봉사정신으로 메우지 않으면 탈락되기 십상인 현재의 직업은, 20년 간 망부석처럼 한 자리를 지키던 전문직과는 성격이 많이 다르다. 호칭부터 달라졌다. 너무 젊어서 사모님 소릴 듣게 된 것이 버거웠던 나는, 정말이지 그 딱지를 떼고 싶어서 안달을 한 적이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선생님 아니면 아줌마로 바뀌었다. 아무렴, 처녀도 아닌데 아줌마라 부르면 어때 할머니라고 부르지 않는 것만도 다행이지 하면서도, 때로는 세월과 지위가 전도(顚倒)된 삶을 살고 있구나 하는 우울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세상은 돈과 지위만 있으면 어느 때나 어느 곳에서나 고속도로처럼 열린다는 듯 쌩쌩 매몰차게도 달린다. 회전하는 수레바퀴가 아찔할 때도 있다. 가끔은 지워진 현기증이 몸살처럼 돋기도 하지만 그런 종류의 아픔이 감상으로 발화되기엔 시간이 나를 너무나 많이 바꾸어 놓았다.
노인복지관에서 나오는 노인 네 분과 함께 일하게 된 녹색가게, 50평 남짓한 공간 안에는 물물교환이 가능한 옷가지들과 갖은 잡동사니들이 깨끗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집안에서 내 온 물건들을 카드에 소액으로 적립해 주고 필요한 물건을 구입했을 때는 약간의 이익을 남기며 물건을 파는 곳이 바로 녹색가게다. 전국적으로 확산된 재활용품을 주고받는 실용적인 이런 가게로는 아름다운 가게가 있다.
수익금은 어려운 우리 이웃들과 가난한 이웃 나라 아이들의 밥값으로 나간다고 한다. 단돈 200원이면 살릴 수 있는 예방접종도 할 수 없는 땅, 대부분이 하루 1000원 이하로 사는 사람들의 땅. 300년 넘게 제국주의들의 노예사냥으로 생명을 약탈당하고, 다시 100년 동안의 야만적 식민지 통치로 폐허가 되어 버린 아프리카와 같은 지구 사각지대로.
그러나 척 봐도 그리 남는 장사는 못 되는 것 같다. 입고 간 내 옷까지 걸어놓고 팔고 싶은 심정이다.
내가 좀 부자였으면 아니 남아서 내다 버릴 때 이런 일을 맡았으면 가게가 더 활기찼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든다. 일주일에 세 번 녹색가게 계단을 오른다. 계단이 유난히 가파르다. 시립도서관 건물을 지나서 3층의 열린 가게 문으로 들어서면 열두시까지는 내리치는 햇살로 인해 계절을 잊을 정도로 따뜻하다. 그러나 점심시간이 지나면 곧 응달진 구석으로 돌변해 손발이 시리다.
할머니 한 분이 무릎 담요를 건네 주셨다. 때가 때이니 만큼 추운 것도 당연하다. 새 것은 아니지만 공간 가득 알토란같이 걸려 있는 옷가지들은 대형 창고를 방불케 한다. 한쪽에서 수선을 하시는 할머니(호칭은 반드시 어머님으로 함)는 주름살이 갈래졌지만 한 때 참 예쁜 얼굴이었겠다 싶다.
자주꽃 핀 건 자주 감자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 그녀들 표정 읽는 일이 일과 중 하나가 되고 보니, 먼 훗날 노인복지를 하게 될 지도 모를 내게 예행연습을 시키는 것 같기도 하고 미래의 내 모습을 미리 보는 것도 같아서 마음 구석이 아리다.
그녀들 역시 젊은 여자들 못지않게 말하기를 즐기는 편이다. 아무 때나 끼어들었다가는 밉상으로 찍히기 딱이라서 첫째도 자중 둘째도 자중 하며 듣기 훈련을 한다. 만만찮은 70대라고 나는 혀를 내두르면서도 질세라 맞장구를 치기도 하고 신소리도 떠든다. 어머나, 이번에 오신 선생님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다 좋아라 하는(혹, 푼수라고 하진 않았나 몰라)사람이라고 말하며 어린애처럼 헤죽 웃는 할머니의 모습. 내 눈에는 분명 할머니인데 그녀들끼리 이야기 나눌 때 보면 할머니가 아니다.
복지관 프로그램을 줄줄 꿰면서 젊은 사람보다 더 빡빡한 스케줄을 일러주시는 할머니는 스포츠 댄스를 배운다고 하셨다. 전국 춤대회에 나가서 3등을 했고 역시 같은 복지관 할머니 한 분도 전국 미스코리아대회에서 1등을 했다고 자랑을 하셨다. 미인이 되신 그 분의 연세가 여든 살이라고 해서 헉, 하다가 나는 얼른 배시시 웃어 보였다. 한동안 그녀들과 친하게 지내야 할 과제를 안았다.
늙는 일이란 할머니가 되어가는 현상이란 무엇일까. 빨간 간을 빼 놓을 듯 정신없이 붙좇는 저 낙엽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의심찬 눈빛으로 가을 창을 바라본다. 공명도 없이 가라앉는 것들을 보노라면 목울대가 치민다. 치밀어 오르는 것들은 막다른 힘을 쏟고자 하는 의지로 충혈된 빛이다. 가여운 바람들이 일어선다. 바람 속에서 자신을 살살 달래는 일이 또한 삶에 대한 작은 예우일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가지 끝 서리처럼 빌붙어 사는 나도 윙윙 바람소리로 울고 있을까. 가을 끝에선 모든 인생이 헐거워진 언어가 되고 낙엽이 되고 늘 그렇게 쓸쓸하고 낯선 풍경이 된다. 압화의 통증이 향기로 피어오를 수 없더라도 가을에는 모든 여자들이 나이와 상관없이 평등해짐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