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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9일(월요일)
1. 한신대학교 채플시간에 윤미향 대표가 참석하여 “나비, 평화로 날다”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한신대학교 교목실에서 오늘 오후 3시, 4시, 5시, 세 시간 채플을 윤미향 대표에게 맡겨주었습니다. 그만큼 많은 학생들에게 일본군‘위안부’ 할머니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평화로운 세상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2. 경남 양산 최옥이 할머니댁에 손영미 쉼터 소장과 김복동 할머니, 부산시민모임의 김차름 씨께서 함께 다녀오셨습니다. KBS 시사기획 “창”에서 김복동 할머니의 고향인 양산을 가게 되어 김복동 할머니와 함께 최옥이 할머니를 뵈러 갔습니다. 할머니는 옆으로 누우셔서 끙끙 앓고 계셨습니다. 다리가 너무 아파 밤새 잠을 주무시지 못하셨다 합니다. 처음엔 일어나지를 못하겠다고 하셨지만 김복동 할머니를 보시곤 힘들게 앉으셨습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가 할머니를 더 힘들게 하였나 봅니다. 12월에 부산대 양산병원에 예약을 해 놓으셨다고 하시며 엉덩이 양쪽에 난 커다란 종기를 보여 주었습니다. 양쪽에 고약을 붙이고 오늘 아침의 당뇨수치가 500을 넘었다고 이야기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래전에 금강산 간 이야기와 제주도 다녀온 이야기도 하였습니다. 아직 할머니의 기억력은 또렷했으며, ‘내가 서울에 와서 살아라고 할 때 갈 걸’하시며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평소에는 집 앞에 있는 평상(자리)에 나가 앉았었는데 며칠째 너무 편찮으셔서 나가지를 못했다고 하시며 서울에서 오느라고 수고했는데 집에 밥과 반찬 맛있으니 먹으라고 권하기도 하였습니다. 앉아 계시는 것도 힘들어하시는 할머니께 KBS에서 준비해 간 쌀 20kg과 홍삼, 두유와 라면 1박스를 선물로 드리고 ‘하루 빨리 일본에게 사죄 받고 배상받도록 건강하라’는 김복동 할머니의 당부 말씀이 있었습니다. 건강하시라며 할머니를 꼭 껴안아 드리고 집을 나섰습니다.
3. 나라사랑청년회에서 직접 담은 김장김치를 쉼터 [평화의 우리집]에 선물로 가져왔습니다.
11월 20일(화요일)
1. 수원 세류동에 사시는 안점순 할머니를 찾아뵙고, 댁에 32인치 디지털TV를 설치해 드렸습니다. 디지털TV코리아의 후원으로 할머니께 기쁨을 드렸습니다. 화면도 커졌지만 얇아진 TV를 보시더
니 할머니는 아주 좋아하십니다. 이제 새로운 리모컨 작동 방법을 배우시는 일만 남았다며 흥분해 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함께 한 DTV코리아 사무총장님과 직원들과 함께 기념촬영도 하고, 설치를 해주러 온 기사로부터 자세한 설명도 들었습니다. TV설치가 끝난 후, 안점순 할머니를 모시고 나와 근처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며, 안점순 할머니의 근황에 대해 듣고, 다른 할머니들의 소식에 대해서도 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할머니는 최근에 심한 어지럼증과 구토증세가 있어서 정밀검사를 받으셨는데,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 의사의 의견이 할머니가 드시고 있는 양약이 할머니와 맞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고 해서 그렇게 추측되는 약을 요즈음 하루에 세 번 복용하시던 것을 저녁에만 드신다고 힙니다. 그랬더니 요즘은 어지럼증인 없어지고 있다고 좋아하십니다. 식사가 끝나고 할머니가 먼저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떠나려 했지만 할머니께서 극구 우리 떠나는 것을 보시고 들어가시겠다고 하시며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뒤에서 손을 흔들며 서 계십니다. 그 마음이 우리 할머니들의 마음인 것을 알기에 가슴이 아련해 옵니다.
2. 서울 강서구의 한 요양병원에 계시는 김복선 할머니를 손영미 소장이 뵙고 왔습니다. 할머니는 원래 계시던 병실에서 건너편으로 병실을 옮기셨는데, 오늘 아침부터 설사를 하여 영양제를 맞고 계셨습니다. 힘이 없으셔서 그런지 아무리 깨워도 눈을 뜨지를 않으셨습니다. 요사이 드시는 음식 양도 현저히 줄어들어 간병인이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 가지고 간 빵을 드리니 할머니께서 드실 수가 없으니 가져가라고 합니다. 나중에 드시라고 하면서 간병인께 드리고 주무시는 할머니의 손만 가만히 잡고 있다 병실을 나섰습니다. 발걸음이 무겁습니다.
3. 황금자 할머니를 뵙고 왔습니다. : 손영미 소장이 황금자 할머니의 짝궁인 최은영 재가자원활동가와 함께 할머니의 집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찾아뵈었습니다. 평소 호스로 영양식을 하고 계시기 때문에 먹을 것을 준비해 가도 소용이 없기에 오늘은, 할머니께 수면잠옷과 양말을 준비하여 갔습니다. 할머니 집에 도착하여 할머니 옆에 계시는 최은영 씨와 인사를 나누고 침대에 앉아 계시는 할머니께도 인사를 드렸습니다. 방문할 때 언제나 알아보시던 할머니께서 누구인지 잘 모르겠다고 하셔서 “오리알” 하고 조금 큰 소리로 말씀 드리니 안다고 하시며 웃으셨습니다. 몇 년 전 할머니께서 건강하실 때 문산에서 가져온 오리알을 여러 번 갖다 드린 적이 있었기에 할머니는 늘 그것을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할머니는 지난 번 방문 때보다 말 수는 줄어들었지만 얼굴은 아주 평온하고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가지고 간 수면잠옷을 입혀드리니 만족해하시며 아주 작은 소리로 ‘사랑해’하였습니다. “할머니 저도 사랑해요” 하면서 안아드리는데, 할머니께 예쁜 냄새가 났습니다. 오랫동안 얼굴을 맞대고 그렇게 앉아 있었습니다. 앉아 계시던 할머니께서 잠이 오는지 눈을 감으시고 곁에 있던 간병인께서 어깨를 갖다 대니 살며시 기대어 잠이 드셨습니다. 잠이 든 모습을 한참 지켜보다 할머니 집을 나섰습니다.
11월 21일(수요일)
1. 1049차 수요시위를 일본군'위안부'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는 iCOOP소비자활동연합회의 주관으로 진행하였습니다. 수도권 지역의 아이쿱 조합원들이 평화로를 가득 채워주셨습 이어서 정대협 윤미향 상임대표가 최근에 진행되고 있는 일본군‘위안부’ 와 관련한 상황들을 보고하고, 정대협이 진행하고 있는 활동을 보고하면서, 오는 12월 2일에 있을 후원의 밤에 많은 관심과 참석도 당부하였습니다. 오늘 수요시위에는 청강문화산업대학교 뮤지컬학과 학생들, 토요방과후학교 '뭉치', 운산고등학교, 군포고등학교 3학년, 북녘어린이 영양빵공장 효고현본부 실행위원이신 이케다님, 이화나비, 김서경&김운성작가, 불교인권위원회 진관스님, 일본산묘법사 다케다 다카오, 아이쿱에서 안양율목, 군포, 안산수원, 수원미래, 화성, 용인, 평택오산, 성남분당, 광명나래, 광주하남 에서 함께 하셨고 김복동․길원옥 할머니께서 자리를 지키셨습니다. 자유발언 순서에는 청강문화산업대학교 학생들, 토요방과후학교 '뭉치', 군포고 학생들, 일본산묘법사 다케다 다카오 님, LA 가주연대의 황 근 님, 안철수 후보 부인 김미경 님이 자유발언과 연대발언을 하면서 할머니들 문제가 하루 빨리 해결될 수 있도록 연대하겠다는 결의들과 기림비 건립 등 각지에서 진행되고 있는 일본군‘위안부’ 관련 활동들에 대해서 발언해 주었습니다. iCOOP생협은 할머니들게 다양한 생협 선물꾸러미를 전달해주었고, 정한별 학생이 할머니들게 편지를 낭독하고, 배숙선 성남분당생협 이사장님이 시낭독으로 할머니들에 대한 죄송함과 존경, 사랑을 전달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김길순 안산생협 이사장님이 성명서를 낭독한 후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투쟁 속에 동지 모아~” 노래를 부르며 수요시위를 마쳤습니다.
2. 서대문에 있던 할머니들의 쉼터의 옆집인 명덕학사에서 연남동 [평화의 우리집]으로 추수감사절 행사 과일를 보내주셨습니다.
3. 초등학교 교육용 교재를 만들어 전국적으로 발송해 드렸습니다. : 이번 지침서는 현직 초등학교 선생님(수원 매여울초 윤진희, 조연수, 효원초 정혜순)들이 집필자로 참여하였습니다. 집필자들은 우선 각 학년별 교과 국어, 도덕, 창체등 과목의 성취기준을 통해 일본군‘위안부’ 관련한 차시학습목표를 분석하고 관련 사례, 자료 등을 정리하였습니다. 지침서에는 집필한 내용을 중심으로 집필자들이 직접 수업을 진행한 사례가 담겨있습니다. 정대협은 매년 11월 25일 세계여성폭력추방일 시기를 기점으로 세계인권선언기념일인 12우러 10일 사이의 16일 기간을 다양한 캠페인과 함께 일본군‘위안부’ 교육의 날 행사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이 캠페인을 앞두고 교재를 제작하였고, 교사들에게 신청을 받았는데, 1000부 제작에 1000부가 모두 발송되었습니다.
11월 22일(목요일)
1. 마포경찰서 외사계에서 [평화의 우리집]을 방문하였습니다. 너무 늦게 찾아뵈어서 죄송하다고 하시면서, 앞으로 할머니들의 안전을 위해 힘쓰겠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음료수도 선물로 가져오셨습니다.
2. 트위터를 통하여 홍정숙 님께서 [평화의 우리집]에 쌀 20kg과 한복선 사골도가니탕을 1상자 보내주셨고, 전남 영광, 법성포에서는 박찬석 님께서 굴비를 다량으로 보내주셨으며, 마포구 연남동사무소에서는 김장김치를 가지고 방문해 주셨습니다.
3. 산청에 사는 양정석, 이말숙 부부께서 부부가 직접 키우는 유정란을 보내주셨습니다. 정성과 사랑으로 키우며 새로운 삶을 개척해 나가고 있는 분들의 삶이 담겨있는 유정란이기에 더욱 값지고 감사하게 느껴집니다.
4. 양화진문화원에서 개최하는 목요강좌에 윤미향 대표가 초청강사로 참여하였습니다. 양화진문화원은 100주년기념교회가 설립한 기관으로써 교회와 사회의 소통을 추구하기 위한 목적으로 양화진목요강좌를 매주 진행하고 있습니다. 11월에는 손봉호, 정윤수, 승효상 선생님들과 함께 윤미향 대표가 [20년간의 수요일]이라는 제목으로 마지막 초청강사로 참여했습니다. 참가자들은 윤미향 대표가 준비해 간 PPT 화면과 동영상을 통해 저녁 8시부터 10시 까지 거의 2시간이라는 늦은 시간, 긴 시간동안 진행되었음에도 진지하게, 집중하며 강연에 참여해 주었습니다. 강연이 끝난 후에는 질문과 30분이 넘는 시간을 질문과 답변으로 이어가며 관심과 열정을 보여주었으며, ‘평화와 안보, 국가관’의 차이로 의견이 조금 다른 질문이 있었지만, 그 역시 우리들이 갖고 있는 생각은 그 사람의 역사와 경험에서 비롯되어진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11월 23일(금요일)
1. 2011.08.30 헌법재판소의 ‘위헌판결’ 이후 외교통상부 내에 만들어진 일본군‘위안부’관련 TF팀이 주최하는 간담회 전반부 회의에 참석하였습니다. 참석한 대상은 관련단체, 법률가, 언론인 등이었습니다. 공식적인 활동임에도 불구하고, 보고내용으로 담기에 제한이 있는 그런 회의였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개적으로 밝힐 수 있는 형편에서 보고를 드리자면, 다른 분들은 어떻게 느꼈을지 모르지만, 제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회의 소집의 목적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그 의미가 혼돈되는 느낌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참석한 성원들이 그 의미를 혼돈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일본의 법적 배상이 아닌 ‘위로금’ 차원에서 지급되었던, 그래서 피해자들과 피해국 시민단체들의 분노를 샀던 ‘아시아여성평화기금’ 입장에 서서 활동해 왔던 박유하 씨를 비롯하여, 최근에 ‘사죄합니다.’는 퍼포먼스를 하면서 전국적으로 돌고 있는 한국남성과 결혼하여 한국에 살고 있는 일본여성들(통일교 관련 단체) 그룹의 대표도 참석해 있고, 언론사의 정치평론가... 회의 내용도 외교통상부에서 이런 일들을 해왔다는 보고와 함께 앞으로 어떤 것이 해결책인지, 법적 책임이 무엇인지... 중재위원회 회부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등등. 외교통상부의 ‘소통’을 통한 해결 모색이라는 도구에 참여하고 있다가 우리가 갈 길을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판단으로 지역 할머니들을 방문하기 위해 1부 회의에만 참석하고 나왔습니다.
2. 오늘 금요강좌는 쉬어가기로 하였습니다.
3. 경상도 지역 할머니들을 만나기 위해 윤미향 대표, 김동희 사무처장, 첫 번째 방문지, 남해로 출발하였습니다. : 외교부 회의를 마치고 사무실에 돌아오니 5시가 넘었습니다. 생존자복지를 위해 후원해 주신 회원들의 사랑을 모아 준비한 선물들을 [희망승합차]에 잔뜩 싣고 출발하였습니다. 금요일 저녁시간, 도로는 여기저기 꽉꽉 막혀 서울 시내를 빠져나가는 데 벌써 1시간을 소요해 버렸습니다. 내려가는 길에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정현태 남해군수님께 전화를 걸어, 오늘 연락도 못하고 남해에 내려간다는 것과, 내일 아침 남해읍에 사시는 박숙이 할머니를 뵈러 갈 것이라고 전해드렸습니다. 감사하게도 군수님이 숙소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할머니 방문할 때 군수님도 함께 가시겠다고 하십니다. 밤 11시가 넘어 남해읍, 예약된 모텔에 도착하여 어깨에게 휴식을 주었습니다.
11월 24일(토요일)
1. 남해에 사시는 박숙이 할머니를 찾아뵈었습니다. 아침 8시, 남해읍 중앙시장 입구에서 정현태
할머니의 기억도 90세가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주 명확했습니다. “일본은 믿어서는 안된다”는 따끔한 훈계도 주셨습니다. 휴대폰에 단축전화번호 8번으로 제 전화번호를 입력해 드리고, 따뜻한 봄이 되면 서울에 놀러가자고 하니, 그러면 좋겠다고 하십니다. 해방 후 할머니의 삶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십니다. 자기 자식은 아니지만 남의 자식을 데려다 키웠는데, 그 자식들이 크는 동안에는 신고를 할 수 없어서 이제 시집 장가 모두 가고, 자신의 곁을 다 떠났기 때문에 신고하는데 거리낄 것이 없었다고 하십니다. “할머니가 절대로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았어요. 일본정부가 그런 나쁜 짓을 했기 때문에 부끄러워해야 하는 것이고, 한국정부와 우리들이 할머니들 이렇게 오래도록 아픈 채 놔뒀기 때문에 우리가 부끄러워해야 하는 것이에요.” 라고 말씀드리니 빙그레 웃으십니다. “제 고향이 남해인데, 할머니 때문에 더 자주 오겠다”고 말씀드리니 자주 오라며 좋아하십니다.
유모차에 몸의 무게를 의지한 채 대문 밖까지 나와서 우리에게 잘가라고 배웅해 주시는 할머니를 뒤로 하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다음 지역으로 옮깁니다. 정현태 군수님은 오늘 큰 제사가 있는데 우리 때문에 나오신 듯 합니다. 바쁜 걸음 재촉해 가셨습니다. 고맙습니다.
2. 창원 한 요양병원에 입원해 계신 이효순 할머니를 찾아뵈었습니다. 희망승합차를 몰고 다음 행선지인 창원, 이효순 할머니가 요양하고 계신 병원으로 찾아갔습니다. 남해 박숙이 할머니 댁에서 약 2 시간 가량 걸렸습니다. 병실에 들어서니 이전 보다 더 마른 할머니가 보입니다. 할머니의 여동생이 와 계셨습니다. 마침 점심때가 되어 병원에서 드시는 밥이 배달되어 왔습니다. 음...그런데 반찬이... 안그래도 입맛이 없으신 할머니께 오늘 반찬은 영~ 입맛을 솟아나게 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여동생이 마른 멸치 깐 것과 고추장, 굴비 반찬을 별도로 내서 상위에 올려놓습니다. 여동생이 옆에 있어서 돌봐주니까 좋다면서 여자형제가 있어서 좋다는 말씀도 하시고, 최근에 아파서 다른 병원에 입원하셨다가 퇴원하고 다시 요양병원으로 옮기셨다는 말씀도 해주십니다. 할머니는 여전히 숨쉬기가 불편하여서 코에 인공호흡기를 꽂은 채 지내고 있었습니다. 할머니께 드리려고 준비해 간 두유와 무릎담요를 드리고, “필요한 것 없으세요? 드시고 싶은 것이나 갖고 싶은 것 뭐 그런 것 있으면 말씀하세요. 서울에 가서 보내드릴께요.” 라고 말씀드리니, 필요한 것 하나도 없다고 하십니다. 기저귀도 많이 있다면서 찬장문을 열어 보여주십니다. 정말로 기저귀가 아직 많이 남아있습니다. 우리가 자꾸 말을 걸어서 할머니가 식사를 더 못하시는 것 같아 아쉬워하는 할머니를 뒤로 하고, 다시 오겠다고 말씀드리고 병실을 나섰습니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어서 그런지 바깥바람이 매섭네요. 점심먹을 시간도 생략한 채 다음 행선지로 다시 희망승합차를 운전합니다.
3. 창원 김양주 할머니를 찾아뵈었습니다. 골목길을 들어서 다시 좁은 골목길 입구를 찾아 막다른 곳에 할머니 집이 있습니다.골목입구까지 아드님이 나와서 우리를 맞이해 주었습니다. 추운 겨울이어서 좁은 집에 빨래들도 거실에 들어서있고, 이것 저것 짐들이 거실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할머니와 함께 안방에 앉아서 할머니가 내주신 단감을 깍아 먹으며 준비해 온 선물도 드리고, 늘 떠나지 않는 아드님 결혼걱정, 다른 할머니들 안부 등... 외로우셨나봅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풀어 놓으십니다. 성당에는 꼭 빠지지 않고 미사드리러 간다는 이야기도 해 주십니다. 일본정부 상태가 지금 좋지 않지만 우리가 더 열심히 노력해서 할머니 살아계실 때 문제 해결을 볼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말씀도 드렸습니다. 할머니댁을 나오면서 ‘정말 그래야 할 텐데... 살아 계실 때에 해결을 봐야 할 텐데...’ 현실을 생각하니 가슴이 무겁습니다.
4. 창원 한 아파트에 살고 계시는 김복선 할머니를 찾아뵈었습니다. 보통 때는 아파트 앞 빵집에서 만나서 팥죽을 먹거나 빵을 함께 먹기도 했는데, 오늘 할머니의 목소리는 힘이 좀 없어 보입니다. 집으로 직접 오라고 하십니다. 할머니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집에 들어가니 할머니는 거실에 전기장판을 깔고 누워계시 다가 우리를 맞이하기 위해 앉으셨습니다. 그런데, 다른 때와 달리 많이 초췌해진 모습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건강이 나빠진 듯 합니다. 얼굴색도 조금 검어진듯 하고. 그러니 바깥출입도 예전처럼 자유롭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우리에게 뭔가 대접하고 싶어서 귤도 내오시고, 음료수도 내주십니다. 그냥 앉아서 얘기하고 싶다고 괜찮다고 말씀드려도 이것저것 내주시려고 움직이려 하시는 할머니께 우리가 오히려 죄송해졌습니다. 전기장판으로만 온기를 만들고 계시니 아파트 실내는 설렁한 느낌입니다. 감기걸리니 돈이 들더라도 지원금 아낄 생각말고 난방을 제대로 하고 사시라고 말씀드려보지만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할머니들은 난방비가 아깝다기보다 무서워서 따뜻하게 지내지 못하시는것 같습니다. 서울에서 준비해 간 수면잠옷을 입혀드렸습니다. 무릎담요도 드렸습니다. 수면잠옷을 입으시고는 아주 좋아하십니다. 예쁘다고 칭찬도 해 드리고, 할머니와 이런 저런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할머니가 피곤해지시는 듯 하여 다시 오겠다고 인사를 드리고 할머니집을 나섰습니다. 이제는 할머니들과 긴 시간을 함께 지내는 것이 오히려 폐가 될 정도가 되었습니다. 자주, 짧은 시간 찾아뵈는 것이 좋을듯 한데... 가까이 산다면 더없이 좋겠네요.
5. 창원에 사시는 김경애 할머니를 찾아뵈었습니다. 김경애 할머니댁으로 주소를 찍어서 가면서 우리 둘이 걱정을 나눕니다. “할머니가 귀가 안들리는데, 우리가 문을 두들겨도 못들으시면 어쩌나...” 아니나 다를까, 할머니댁 대문에서 문을 두들기고 초인종을 누르고, 전화를 해도 반응이 없습니다. ‘어떻게 하나?. 이대로 못 만나고 갈 지도 모르겠네.’ 하며 걱정하고 있는데, 2층 주인집 아저씨가 “그렇게 두들겨도 소용없어요.” 하시며 내려오십니다. 그렇게 하여 다행스럽게 문을 열고 1층,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밑에 자리잡은 할머니집의 현관문을 열고 “할머니~” 하고 얼굴을 내미니 그제서야 할머니는 화들짝 반갑게 맞이하십니다. 외출하고 들어왔다면서 따님 이야기부터 옷장을 새로 구입한 이야기, 이 집을 월세로 살고 있는데, 보증금 이야기부터, 집을 찾을 때의 사연 등 쉬지 않고 말씀을 풀어놓으십니다. 자주색 반코트를 새로 구입한 이야기도 하시고, 옷장을 얼마에 산 것 같으냐고 우리에게 묻기도 하십니다. 집을 맨날 쓸고 닦으며 산다는 이야기도 하십니다. 정말로 할머니 집은 아주 깨끗했습니다. 끝날 줄 모르는 할머니 이야기에 맞장구를 한창동안 치다가 할머니께 이제 다시 부산으로 가야 한다며 인사를 드리려 하자 서운한 듯합니다.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할머니께 다시 오겠다고 약속을 드리고 할머니집을 나와 이제 부산으로 향합니다.
6. 부산 한 요양병원에 입원해 계신 황금주 할머니를 찾아뵈었습니다. 부산으로 이동하면서 황금주 할머니 따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지금 가고 있으니 요양병원에서 뵙자고. 창원에서 부산으로 향하는 길, 여기 저기 아직도 강 주변들에 공사 잔해들이 널브러진 채 있는 모습들이 가슴아프게 느껴집니다. 1시간 30분 여를 달려 할머니가 계신 요양병원에 도착했습니다. 할머니가 계신 방으로 들어가니 따님이 와 계시고, 마침 저녁식사 시간이어서 식사가 배달되어 왔습니다. 우리 황금주 할머니는 검은깨 죽이 나왔습니다. 밥을 씹지 못하니까 죽으로 식사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죽임에도 할머니의 목은 잘 삼켜주지를 않습니다. 파킨슨병이 이제 더 깊어져서 숟가락을 잡고 밥을 떠드시긴 하지만 너무나 힘겹습니다. 따님이 떠서 입에 넣어드리며 드시게 해봅니다. 그러나 한 모금 드시고 다시 쾍쾍, 물 한모금 드시고 다시 쾍쾍... 식사를 하시는 것조차 힘겹게 드실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누군지 알겠냐고 여쭈니 뚤어져라 눈동자를 쳐다보시고는 “언니 언니...” “언니 언니...” 말만 계속 되풀이 하십니다. 옆에 있는 분이 누구냐고 여쭈니 “딸!” 하시며 “순옥이” 하십니다. 아... 다행입니다. 딸도 못알아 보신다면 할머니의 기억은, 할머니의 삶은 얼마나 공허로울 지... 아무 기억도 없는 할머니께 희망적인 말도 해드릴 수 없고, 우리가 지금 열심히 애쓰고 있다는 말도 해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저, 가만히... 속으로 울며... ‘할머니, 차라리 욕을 퍼부으세요. 생전 처음 들어보는 욕을 할머니한테 들으며 지낼 때가 훨씬 편했습니다.’ 하며 할머니의 눈동자를 응시하며 마음을 전해 볼 뿐입니다. 그러는 동안에도 할머니는 똑바로 앉아 있는 것도 힘들어 계속 뒤로 넘어갑니다. 이렇게 할머니가 정신을 잃었어도, 그럼에도 할머니 살아계실 때 이 문제 해결하는 것의 의미가 있겠죠? 허전하고 텅 빈 마음을 스스로 달래며 병원을 나섭니다. 이미 어두워졌지만 다시 대구로 향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아침에 남해군수님이 사주신 아침밥이 식사의 전부였습니다. 대구에 도착하여 숙소에 짐을 풀고, 매운 낙지볶음밥을 먹으며 오늘 하루 일용할 양식을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7. [정신대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 이인순 사무국장님과 만나 대구에 건립하려고 하는 역사관 활동 계획, 새해 대응 방안 등에 대해 밤이 깊도록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결론은 열심히 공부하면서, 열심히 조직해 나가면서 애쓰자는 이야기입니다.
11월 25일(일요일)
1. 대구에서 맞이한 아침 : 아침에 눈을 뜨니 등의 근육이 뻐근... 딱딱합니다. ‘앗!... 무리하구나...’ 머릿속부터 아침을 불러옵니다. ‘힘내자!, 기운차리자!’ 그렇게 머릿속을 의지로 깨우니 몸도 기운을 차립니다. 다시 희망승합차를 몰고 길을 나섭니다.
2. 대구에서 첫 번째 방문, 이용수 할머니 댁을 방문했습니다. 전화도 하지 않고 할머니 집을 가봅니다. 그 반가움이 더 클 것이라 믿기에. 아니나 다를까. “딩동~” 초인종을 누르니 안에서 “누구요?” 하는 이용수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불도 켜지않은 채 방안에 계시다가 빼꼼하게 문을 열고 내다보시다가 “이게 누고?” 하시며 엄청 반가워하십니다. “아이구 놀랐다. 한참 봤네. 이 사람들이 여기에 이 아침에 무슨 일인가 싶어서...”
무겁게 들고 간 유자차와케이크를 받아들고는 뭘 이렇게 사왔느냐며 선물받는 것을 미안해 하시고는 아침은 먹었느냐, 뭘 좀 마시겠느냐 하며 묻습니다. 일부러 아침은 먹었다고 대답했습니다. 할머니 방은 어수선합니다. 미국에 가기 위해 짐을 꾸리느라 옷가지들이 방에 쌓여있었고, 남향이 아닌 방은 조금 어두컴컴합니다. “할머니가 가장 깨끗하게 정리하고 사실줄 알았더니 아니구만...” 하고 웃으며 이것 저것 수다를 펼쳐놓습니다. 어제 남해, 창원, 부산을 방문하고 온 이야기도 하면서 다른 할머니들 소식도 전했습니다. 한참의 수다 후, 할머니 성당 가실 시간이 되어서, 이선옥 할머니를 뵈러 가겠다고 말씀드리고 나서는데 점심사먹으로고 신사임당 지폐를 한 장 꺼내서 주십니다. 기쁘게 받았습니다.
3. 아파서 누운 채 지내시는 이선옥 할머니를 뵙고 왔습니다. : 이용수 할머니와 같은 동에 사시는 이선옥 할머니를 뵈었습니다. 아드님이 함께 계셔서 집안은 깔끔이 청소가 되어 있었지만 할머니는 요 위에 그대로 누워계셨습니다. 살도 많이 빠져있습니다. “할머니, 왜 이렇게 약해지셨어요. 빨리 일어나서 움직여야 해요. 식사도 일부러라도 맛있게 드시고, 몸도 열심히 움직여서 오래 살아야죠. 그래야 일본정부가 배상하는 것, 보시죠.” 말씀드리니 “그래, 나 오래 살아야지.” 하십니다. 유자차와 케이크를 받으시고는 고맙다고 하시면서, 뭘 대접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하십니다. 배도 부르고, 여기 저기서 차도 많이 마셨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드리고, 일본정부의 상황에 대해, 한국정부가 최근에 다른 때보다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으니 조금 더 힘내서 건강해 달라고 부탁드리니 활짝 웃으십니다. 말씀을 계속하시는 것이 더 피로를 드릴 것 같아 일어나려 하는데, 딩동~ 이용수 할머니께서 내려오셔서 성당까지 태워달라며 채근하십니다. 하하하... 우리 이용수 할머니... 이용수 할머니를 희망승합차에 모시고 성당 바로 앞까지 모셔드리고, 이제 이수산 할머니와 박분이 할머니가 살고 계시는 아파트로 차를 몰았습니다. 차로 이동하는 길에 빵집에서 산 샌드위치를 먹으며 주린 배를 달랩니다.
4. 이수산 할머니를 찾아뵈었습니다. : 이용수, 이선옥 할머니를 뵌 후 20분 정도 자동차로 달려 이수산 할머니와 박분이 할머니가 살고 계신 아파트단지에 주차를 했습니다. 유자차와 케이크를 손에 들고 먼저 이수산 할머니댁 초인종을 눌렀습니다. 마침 할머니는 목욕을 하신 후여서 온몸에 땀이 나있었습니다. 햇볕이 거실 가득 화사하게 내리비치고, 창문 사이로 앞산이 훤히 들어옵니다. 중국에서 잠시 들른 아드님이 곁에서 할머니 시중을 얼마나 잘 들고 있는지, 집안이 어쩜 이렇게 깔끔할까 싶습니다. 중국대추를 먹어보라며 내주시기도 합니다. 할머니는 아드님 자랑, 며느님 자랑도 하시고, 서울 쉼터 할머니들 안부도 묻습니다. 할머니들, 행복해 보이시는 것 같아 우리도 마음이 편안합니다. 아드님이 곁에 있어서 외로움도 없는 것 같고, 얼굴이 그렇게 편안해 보일 수가 없습니다. 이런 저런 소식들을 전하면서 수다를 풀어놓고, 시간이 한동안 흘러 분이 할머니를 찾아 뵙고 인사드리러 가야 한다며 할머니께 유자차와 케이크를 전해드리고, 집을 나왔습니다.
5. 박분이 할머니를 찾아뵈었습니다. 박분이 할머니는 오늘이 일요일이지만 교회에도 못나가신 다고 집에서 쉬고 있었습니다. 기력이 떨어지고 날씨까지 추워지니 할머니들의 움직임도 집안에 머물게 하는 것 같습니다. 할머니의 집은 할머니의 소박한 손길을 느낄 수 있게 합니다. 연분홍빛 나는 천으로 벽에 얇은 공간을 만들고 그 속에 옷을 걸어두셨습니다. 먼지도 들어가지 않을 것 같고, 그 천이 방안 분위기도 조금 환하게 만들어 주는 듯 했습니다. 분이 할머니는 눈이 좋지 못해서 계속 눈에 눈약을 넣고 계셨습니다. 주사도 맞으신다는 데, 여전히 한 쪽 눈이 분명하지가 않아서 사람 얼굴도 바로 가까이에서 봐야 보이지 형체만 어른 어른거린다고 합니다. 식사는 잘 하시냐고 여쭈니 뭐 그냥 입맛이 별로 없어서 먹고 싶은 것도 없지만 밥은 잘 챙겨 먹을려고 한다고 합니다. 눈이 나빠지고 할수록 영양을 잘 챙겨서 식사하셔야 한다고 부탁드렸습니다. 다른 때는 이 맘 때쯤 김장김치가 배달되었는데, 올해는 아직 김장김치를 받지 못했다고 하십니다. 눈이 나빠졌지만 아파트 경로당에도 놀러가서 화투도 치면서 노인들이랑 논다며, 현 상황에서도 즐겁게 사시려 애쓰는 것이 보였습니다. 우리가 더 열심히, 빨리 해결할 수 있도록 힘 쓸테니 건강을 위해 잘 드시고, 잘 지내주시라고 부탁드리고 할머니아파트를 나왔습니다.
6. 포항으로 달립니다. 하천부지 위에 서있는 포항에 사시는 박필근 할머니 댁을 찾아뵈었습니다. 희망승합차를 길가에 주차하고 내리는데 저 앞에서 유모차위에 나뭇가지들을 싣고오는 할머 니를 만났습니다. 살이 많이 빠졌습니다. 반가워서 손을 잡는데 손바닥의 느낌이 마치 거친돌을 만지는 느낌입니다. 평생 동안 이렇게 일만 해오신 할머니의 손.. 살포시 안았다가 떨어지는데 할머니의 옷에서 먼지가 입니다. 바로 할머니의 삶을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처마 밑에 메주도 달려있고, 여기저기 나뭇가지 더미들이 쌓여있는 것은 고령에도 불구하고 할머니의 부지런함을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할머니의 손마디는 툭툭 불거져 밤에는 통증을 느낄 듯 한데, 허리와 무릎 아픈 것을 빼고는 다른 곳은 아프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할머니 방안에는 다른 할머니들처럼 전기담요가 깔려있습니다. 이불이 보온성이 별로 없는 나일론 이불이 깔려 있습니다. 우선 희망승합차에서 무릎담요를 내다가 할머니께 드립니다. 홍삼셋트도 드립니다. 정말 좋아하시네요. 우리도 기분이 좋습니다. 마루에 걸터 앉아 먼 산 보다가 할머니 얼굴을 마주 보다가 그렇게 살아가는 이야기 끊임없이 나누며 시간을 보내다 다시 오겠다고 인사드리고 할머니댁 을 나섰습니다. 할머니의 외로움이 우리를 붙잡습니다.
7. 안동의 김외한 할머니댁을 찾아뵈었습니다. 포항에서 안동으로 달려, 고개 고개를 넘습니다. 논두렁길 사이로 난 찻길을 따라 할머니집에 도착했습니다. 할아버지가 나오시며 반갑게 맞이해 주십니다. 할머니는 여전히 방안에, 이불속에 누워계시다가 일어나 앉습니다. 할머니께도 홍삼셋트를 드렸습니다. 건강하셔야 한다는 인사와 함께. 서울 소식도 전해드리고, 남해부터 창원, 부산, 대구 할머니들 방문 소식도 전해 드렸습니다. 할아버지가 계셔서 안심이 되었지만 할머니의 건강이 좋아지지가 않아서 걱정을 많이 됩니다. 할아버지도 내내 할머니 건강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도 연세가 있으시니 할머니 수발드시는 것이 쉽지 않은듯 합니다. 그래도 할머니집을 나서는데 아프신 할머니 홀로가 아니라 할아버지가 계시니 우리의 마음은 다소 안심이 됩니다. 이제 희망승합차는 서울로 향합니다. | |
첫댓글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