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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저주에 걸린 백호여왕님 ※※
♥ 「작 가」 Hol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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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재방」 장르소설방
♥ 「출 처」 ╋소설나라╋ (http://cafe.daum.net/sosuln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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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 성원, 내가 없으니 백호궁을 다스릴 자는 너밖에 없다. 유희를 끝내도록 "
"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게 언제까지일지는 … "
성원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그가 왼손으로 얼굴을 훝자 노인의 모습이었던 그는 어느샌가,
20대 중반정도의 미남으로 변해 있었다. 노인의 모습이 아니라 지금 이 모습이
성원의 진짜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는 주령의 손등에 짧은 입맞춤을 하더니 곧 사라졌다.
필시 백호궁으로 간 것이니라.
" 자, 그럼 우리도 가도록 하죠 "
주령은 무현을 안아들고 마을 밖으로 걸어갔다. 강유와 비류는 의외로(?) 멀쩡해 보이는 모습으로
다리를 와들와들 떨며 주령을 뒤쫓아 갔다. 휘경은 둘을 한번 보더니 피식 웃고는
저 멀리 걸어가고 있는 주령에게 빠르게 걸어갔다.
" …이봐, 강유랑 비류, 느리다고 생각하지 않아 ? "
주령은 거의 기어오다싶히 저 멀리서 오는 강유와 비류를 한심스럽다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무현또한 주령이 눈치못채게 그들을 향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심히 비류의 이미지가 많이 망가졌음을 자각하게 하는 장면.
" 두분다 느리시군요. 제가 뒤에서 채.찍.질 하면 빨라지는건가요 ? 후후후 … "
" 야!!! 백주령!!! 네가 채찍질해서 느린거잖아!!!! "
역시 그 성질이 어디로 가겠는가. 비류는 더이상 참지못한채 열을 확 퍼뜨렸다.
주령의 눈꼬리가 살짝 치켜올라갔다. 어느새 주령의 손에는 피가 얼룩져있는(?) 채찍이 들려있었다.
주령은 웃고있었다. 소리를 내진 않았지만 즐거운듯이 그들을 내려다보며 …
흠흠, 작가가 드디어 미쳤는가 보다.
" …아, 아냐. 채찍질 안해줘도 잘 간다 ~, 이말이지. 으하하 "
" 아, 그러십니까 ? 그럼 얼른오세요. 보니까 멀쩡하기만 한걸요 "
비류가 바로 말을 바꾸자 주령은 씩 웃으며 채찍을 품속에 넣고는 뒤를 돌아 다시 걸었다.
" …일부러 표 안나는 곳만 때렸으면서 "
" 맞아맞아!! 으엥 "
[ * * * ]
밤이 되었는데도 마을은 나타나지 않았다. 주령은 이상하다 싶어 하늘의 별을 쳐다보았지만
별로 틀린점도 없는것 같아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휘경과 비류 강유 모두 녹초가 되어있었다.
그렇기에 한시간이나마 마을에서 쉬었다 가려했는데 ….
시간상으로 따지면 지금 그들은 10시간 동안 걸은것이다. 물론 중간에 쉬긴했지만, 주령의 닦달로
얼마 쉬지도 못한 채 걷기만 한 그들.
" 주령아 ~, 힘들어, 히잉. 지도없어 ? "
" …이쪽은 북극성만 따라가면 마을이 나오도록 되어있기 떄문에 지도는 없습니다. "
주령은 이 이상 가다간 자신은 괜찮지만 다른 이들은 몸이 버텨내지를 못할것을 알고서,
평평한 돌에 털썩 앉고는 잠시 쉬었다 가자고 말했다.
휘경은 잠시 눈이라도 붙이려는지 커다란 돌에 누워 눈을 감았다.
비류와 강유는 마을에 못 가더라도 쉬기만 하면 다 좋은지 금새 헤벌레해서
대충 자리잡고는 대자로 누웠다. 피곤하긴 피곤했는지 금새 잠드는 강유와 비류.
" …하아, 여러모로 귀찮게 한다니까 "
그들이 잠든것을 확인한 주령은 비류와 강유의 가슴에 가만히 손을 올려놓았다.
사실 휘경에 비해 그들이 더욱 지친것은 채찍으로 쓰다듬어준(?) 자신때문이기도 해서 그런지,
주령은 걷는내내 그게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주령은 그들의 가슴에 올려놓은 자신의 양손에 마나를 응축시켜 그들의 혈액을 인위적으로
순환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자신이 내었던 상처를 모두 회복시키고, 근육의 수축이 일어나지 않도록
조절하는 등, 앞으로 하루정도는 거뜬하게 걸을 수 있는 몸으로 만들어 놓았다.
" 보자, 휘경놈은 … "
모두 자고 있는것을 알고는 '님' 자 대신에 '놈'자를 붙이는 주령.
보통때 같음 항상 예민해져가지고는 제대로 자지 않고 옅은잠만을 자던 휘경도 어지간히 피곤했던지
곤히 잠들었다. 사실 주령이 가장 까다로워하는 상대는 휘경이었다. 가끔가다 자신을 쳐다보는
의심스런눈초리, 꽤나 정곡을 찌르는 질문들.
그렇기에 주령은 왠만해서는 휘경의 앞에서 마법은 잘 쓰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회복과 함께 인위적으로 근육을 표 안나게 맞춰줄 수 있을 것이다.
" 예민하니까 눈치챌지도 몰라. 하여튼 청룡주제에 왜이리 조심성이 많은지 원 … "
괜히 청룡을 탓하면서 혈액순환을 원활히 하고, 역시나 많이 걸어도 부담되지 않게 조심스럽게
다리근육을 걷기 좋게 조작하는 주령. 그리고 하는김에 스트레스로 인한 두통도 없애주는
친절한 주령씨. 아마도 휘경은 예민한 성격때문에 본의아니게 스트레스가 쌓이는 듯 했다.
" 자, 그럼 나도 내일을 위해 운기조식을 합시다 ~ "
오랜만에 눈과 귀를 닫고 잠을 잘때와 같은 상태로 운기조식을 하는 주령.
더이상 그녀에게 모든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주령은 지금 깊은 잠에 빠진것과 같은 상태이기 떄문이다.
그걸 알아채기라도 한듯 휘경이 전혀 자지 않은 듯한 표정으로 안경을 고쳐쓰며 일어났다.
운기조식을 깊게하고있는 주령은 그걸 알 턱이 없었다.
" 신력이 …, 충돌하지 않다니. 역시 수상해 "
휘경이 주령을 빤히 쳐다보며 나직히 말했다.
사실 신력도 레벨이 있었다. 보통 사방신이라고 하면 신수들의 우두머리로서 신력이 강한 자를 말한다.
그리고 신수들이라고 하면 하얀 호랑이, 검은 거북(자라), 푸른 용, 붉은 봉황을 일컫는다.
신수들은 다른 생물들에 비해 신력이 강하다. 하지만 그들도 사람으로 변할수 있고 없느냐에 따라
신력의 레벨이 달라지는 것이다. 사람으로 변할수 있는 정도라고 한다면 꽤나 신력이 강한것이다.
그리고 같은 종족이라고 해도 신력의 레벨이 크면 클수록 신력이 충돌한다.
물론 치료를 해주는자, 즉 신력을 보급해주는 자가 치료를 받는자보다 신력이 클 경우엔 충돌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주령의 신력은 최고 비류와 동급인 것이다.
그렇다면 또 하나의 의문점이 떠오른다. 미천하다면 미천하다고도 할 수 있을 정도의 신분을 가진 자가
어찌하여 지고하고 높은 주작수령의 신력과 맞먹는 단 말인가.
" 틀림없어. 백주령, 저자는 첫만남때 거짓말을 한거야. …진짜 백호수령은 저자다. "
휘경은 확신했다. 저자가 진짜 백호수령일 가능성은 무려 60%로 였다. 이때까지 주령의 행동이나
여러가지 면모를 정리한 결과 주령이 저런 능력을 가질 수 있는 경우는 딱 네가지가 있다.
첫번쨰는 백주령이 지금이 아닌 예전의 수령인 경우.
두번째는 주령이 수령의 자리에서 물러난 자의 능력을 물려받은 경우.
세번째는 10만년에 한번 태어날까 말까한다는 천재중에 천재일 경우.
마지막은 휘경이 장담한 현재 수령일 경우. 이렇게 네가지가 있다.
먼저 첫번째는 다소 무리가 있다. 왜냐하면 2편에서 언급했듯이 2000살이 넘으면 제일 어린 모습이
10대 후반정도이다. 하지만 바로 앞 대의 수령이라고 해도 벌써 5000살.
신력이 역대 수령중 10위안에 들어야 지금 주령처럼 10대 초반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다.
두번째는 원래 잘 없다. 왜냐하면 능력을 물려받는 의식이 고통스럽기 때문에 잘 안하기 때문이다.
세번째는 10만년이라는 세월. 말하자면 가능성이 약 1%정도밖에 안된다는 것이다.
위의 이러한 이유들 떄문에 주령이 현재 수령일 경우가 60%가 되는 것이다.
" 보편적으로 생각했을 때 주령의 나이는 아마 1000~1300살. 조카라고 해봤자 1000살 정도일 것이다.
그렇다면 저주에 걸렸다는 수령의 조카가 강유가 말한 14살의 외모를 하고 있을리가 없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백호수령일 가능성이 높은 주령이 사실은 여자이고 저주에 걸렸다고 한다면 "
휘경의 머리는 빠르게 돌아갔다.
원래 이쯤되면 그의 머리는 지끈거려야 했지만 주령 덕분에 두통이 생기지는 않았다.
" 어쩄든 백호족은 의술에 있어서는 으뜸이니까, 뭐. 치료받은걸 영광으로 생각해야되겠지, 피식 "
[ 10시진(5시간)후. 새벽 2시 ]
" 일어나시죠 "
" …조금만 더 ~ "
" 조금만 더 채찍질 해달라는 것입니까 ? "
" 응 ~, 응 ? 아, 아니야!!! 우에에엥 ~ "
아직 어두운 밤하늘. 시간상으로 볼때 많이 잤다고 해도 5시간정도밖에 안될 텐데,
왠지 모르게 평소때보다 더욱 가벼운 듯한 자신들의 몸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비류와 강유.
그들을 보며 살며시 미소짓는 주령.
" 어 ? 상처가 다 없어졌다 ? 우히히 ~ "
" …그러네 ? 캬, 이게 다 잘나신 이몸의 신력때문에 상처가 회복된거라구 ~ "
비류의 건방진 말에 주령의 눈꼬리가 살짝 올라갔었지만, 여기서 주령이 뭐라고 한다면 휘경의
레이더망에 걸릴 위험이 있기에 주령은 화를 억눌렀다. 참을 인자를 새기고, 또 새기며 말이다.
하지만 완전히 억누르지는 못한 듯. 주령은 퉁명스럽게 그들에게 재촉의 말을 던져놓고는
아직까지 반짝이고 있는 북극성이 가리키고 있는 곳을 향해 빠르게 걸었다.
" … "
" 히잉, 왠지 주령이 화난거 같아 "
" 쉿! 그거 들으면 저자식 더 화낸단 말야 "
그들이 쑥덕거릴 떄, 주령의 눈에는 희미하게 마을이 보였다.
주령이 기뻐하며 뛰어가자, 이내 희미하게 보이던 마을은 사라지고 없었다.
주령은 멈춰서서 옷소매로 눈을 부볐다.
뒤에 있던 그들이 왜그러냐는 듯이 주령을 빤히 쳐다보았지만,
주령은 아무말 없이 다시 걸었다.
12
계속 걷는 주령 일행. 그런데 갑자기 제일 먼저 앞서가던 주령이 멈춰섰다.
뒤에서 따라걷던 휘경과 비류, 강유도 모두 멈춰서서 주령을 쳐다보았다.
주령은 갑자기 긴 소맷자락을 왼손으로 올려잡고 오른손을 땅에 대었다.
" …젠장, 설마하니 이런 얄팍한 수에 당할줄이야. "
" 뭐가 ? 응응 ? "
주령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곳의 땅은 죽은 땅.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땅이었다.
가만히 서서 느껴보니 바람도 인위적인것이고, 모든것이 살아있는 느낌이 없었다.
금(金)을 상징하며 죽음을 관장하는 주령이니 알아챈 것이다.
주령은 일어서서 수인(手氤)을 맺으면서 마나를 불어넣었다.
" 윽, 피비린내 …. "
" 뭐야, 갑자기 말라비틀어진 땅이 나타나고 "
비류와 강유가 갑자기 바뀐 풍경에 인상을 찌푸렸다. 아까까지만 해도 작은 들길같은 풍경이었는데
지금은 땅은 가뭄때문인지 다 갈라져 있었고, 풀은 누렇게 변색되어있는 길이였으며,
흉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낡은 집들이 군데군데 보였다.
" 이미 우린 마을에 들어와있었던거군 "
휘경이 말했다. 주령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이 마을을 이지경으로 만든자가,
주술로써 진법과 함께 요상한 술수를 부려 이 마을로 들어오려는 자들은 이 마을안을 계속 돌아다니게
영원히 이 마을안을 돌아다니다가 죽도록 만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사실을 눈치못채게 진법으로
마을의 모습을 감춘것이고.
주령이 늦게 알아챌 정도이니 꽤나 레벨이 높은 진법임이 분명했다.
" …아직, 아직 누가 살아있습니다! "
주령은 새하얗게 질린 얼굴을 하고서 공간이동을 했다. 흥분했는지 주령은 기를 감추지도 않고
공간이동을 해서 비류와 강유, 휘경은 손쉽게 주령을 따라 공간이동을 할 수 있었다.
그들이 공간이동을 했을 때는 주령이 한 여자아이 앞에 서 있었다.
" 흑 흑 …, 도경아 … "
15,16살 정도 되어보이는 꾀죄죄한 모습의 여자애는 12,13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 남자애의 시체를
안고서 울고있었다.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주령.
주령이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기에 휘경일행은 주령을 건드리지 못했다.
" 죽은 자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만울거라 "
" 당신이 뭘알아!!!! …도경이는 죽지않았어. 쓰러진거라구!! 아하하, 도경아, 미안. 흑 … "
아마도 이 마을이 이지경이 된 것은 일주일도 채 안된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여자아이가
저렇게 멀쩡할리가 없으니까. 그 여자애는 동생과 둘만 살았는지 부모님의 시체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주령은 여자애 쪽으로 다가갔다. 남자애의 시체는 부폐하기 시작했는지
썩은 냄새가 풍겨왔다. 차갑게 늘어뜨려져 있는 몸.
" 흐흑, 백호님 …. 와주셔요. 저에게로 와주셔요. 흑, 흐흑, 제 동생을 살려주세요, 백호님 !!! "
그 여자애는 백호를 부르고 있었다. 자신의 동생을 살려달라고. 당사자인 주령은 여자애에게
다가가려다가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죽은자를 살릴 수는 있지만 그러면 안된다는 것을 잘 알기에.
아무것도 해 줄수 없는 자신에게, 이런 경험이 아무것도 없는 어린애에 불과한 무능한 자신에게
화가 치밀어 올랐다.
" …동생의 시체가 더이상 부폐되기 전에 묻어주려무나 "
" 안죽었어!!! 죽지 않았단 말야!!!!!! "
[ 짜악 ]
고래고래 소리지르던 여자애. 주령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여자애의 뺨을 때렸다.
그렇게 세게 때리진 않았는지 맞은 티도 안나는 여자애의 뺨.
여자애는 고개를 들어 주령을 째려봤다.
원망이 서린 불쌍한 눈. 주령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 산 자는 죽은 자를 놓아주어야 하는 법이거늘, 그렇게 미련을 가져서야 되겠느냐 ! "
" …도경이는 …, 3일 전 나쁜놈에게서 날 구해주려다가, 나 대신 …, 나대신 … "
주령이 여자애에게 다가가려고 하자, 품에 안겨있던 무현이 울었다.
" 큐우~ "
" …내가, 내가 백호다 "
주령의 몸이 빛나면서 왠만한 백호보다 조금 더 큰 백호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놀란 표정의 여자애. 하지만 이것은 주령의 본 모습이 아니었다.
백호는 신수. 그러나 백호수령은 신이다. 설마하니 이 모습이겠는가.
원래의 모습은 하늘을 이불삼을 만큼 커다란 백호의 모습이다.
" …아아, 백호님!! …제가, 제가 무례했습니다. 살려주셔요, 도경이를 살려주셔요 ! "
뒤에 놀라서 벙쪄있는 세사람의 표정은 보이지도 않은 지 차갑게 여자애를 응시하고만 있는 주령.
여자애는 주령이 전혀 안무서운지 멈칫하지도 않고 태도를 바꾸며 주령에게 매달려 하소연했다.
주령은 꿈쩍하지 않았다. 그저 차갑지만 흔들리는 파란 눈동자로 여자애를 응시할 뿐.
< 살려줄수 없다 >
" 어째서 …!! 백호님은 죽음을 관장하는 분이시잖아요 !!!! "
< 저승세계의 질서를 네 동생의 혼 하나때문에 꺠뜨릴 수는 없느니라 >
여자애는 다시 원망어린, 독기어린 눈으로 주령을 쳐다보았다.
주령은 이제 더이상 흔들리는 눈동자를 하지 않았다. 주령은 다시 남자모습으로 돌아가
도경이라는 남자애의 시체를 향해 손을 뻗었다.
여자애는 주령이 말은 안된다고 해놓고 동생을 살려준다는 건 줄 알고 해맑게 웃었다.
하지만 이내 웃음은 사라졌다. 주령의 고운 손이 접히며 주먹을 쥐자,
남자애의 시체는 부스러기가 되어 바람에 날리었다.
" 아아아악!!!!!!!!!! 무슨짓이야!!! "
" …더이상 볼일이 없는것 같군요. 그만 가도록 하죠 "
주령은 입술을 꽉 깨물고 집을 나갔다. 우물쭈물하며 주령을 따라나가는 비류.
강유도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우물쭈물하며 주령과 비류를 따라나갔다.
휘경은 그들이 나가는 것을 바라보다가 여자애를 바라보았다.
여자애는 휘경따위 없는 것 처럼 생각하는지 주령이 나간 문만 쳐다보았다.
" …네 동생은 저승으로 가길 원했다. 그걸 네가 붙잡고 있었던 거야. "
" 아냐!! 저 악마가 내 동생을 죽인거야! "
여자애는 휘경의 말에 재빨리 대답하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
" 당신은 백호가 아냐!!! 백호님을 가장한 악마야!!! 이 악마!!! 동생을 죽인 살인자 !!!!! "
휘경은 여자애를 무시한 채 주령을 따라 나섰다. 주령은 여자애의 거친 욕설에도 꿋꿋히
앞을 향해 나아갔지만, 비류와 강유는 멈춰서서는 주령과 여자애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휘경은 뭐하냐는 듯 앞을 가리켰고, 그제서야 비류와 강유는 여자애에게서 시선을 뗀 채,
주령을 따라 걸었다.
" …당신을 저주할꺼야!!!!!!! 평생토록!!!!!!!!!!!!!!!! "
그 여자아이는 기운이 다 했는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주령은 여자애가 주저앉자마자 그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돌아서며 순식간에 그 여자애 앞으로 다가갔다.
주령이 오자 고개만은 빳빳히 세워 주령을 노려보는 여자애.
" 거참 기대되는구나. 어디한번 날 저주하고, 날 죽여보도록 해라. "
주령은 여자애를 내리깔아보며 냉소까지 머금으며 차갑게 여자애에게 말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짐을 여자애 앞에 던졌다. 여자애는 뭐냐는 듯 쳐다보았다.
하지만 주령은 눈하나 깜짝하지 않은 채 말했다.
" 날 저주해서 죽이기 전에 네가 먼저 죽으면 아니되지 않느냐. 이 마을의 진법은 풀렸다. 이제 다른
마을로 갈수 있을 테니, 그 짐의 옷들을 팔아 돈을 구하고, 짐 안의 비상식량으로 배를 채우거라.
…치레아 공국으로 가거라. 어떻게든 죽을힘을 다해 치레아 공작을 만나 나의 행적을 묻고,
온갖 술수를 익혀 죽을힘을 다해 날 죽여보아라. 내 그날을 기다리겠느니라 "
주령은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일행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걸어갔다.
주령의 뒤에서 여자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왜 이렇게까지 해주는지 모르겠지만, 당신뜻대로 해주겠어!! 아무한테도 죽지마!!! 당신은, 당신은!!
내손에 죽어야하니까!!! 다른사람손에 죽는다면 난 저승까지도 따라가겠어!! "
" …재밌겠구나 "
주령은 더이상 지체않고 내공을 이용하여 금새 일행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 이들에게 평화와 안식을 "
원한에 사무쳐 성불하지 못한 채 자신의 시체에 붙어있는 마을사람들의 혼이 성불했다.
휘경은 주령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면서 동시에 역시나 주령은 백호수령이라고 확신했다.
수령이 아닌이상 마을사람들의 혼을 달래어 성불시키는 일은 하지 못할테니.
" 끔찍한걸 봐버렸네, 백주령. "
" …사실대로 말해주지 그랬어!! 응 ? 주령이 넌 그 여자애를 위해서 … "
" 아닙니다. 전 원래 이런놈입니다. 전 사실 남이 저주하는걸 즐기는 타입이랍니다(생긋) "
이쁘게 웃는 주령의 웃음에 비류와 강유는 얼굴빛이 노래져서는 입을 꾹 다물었다.
주령의 웃음에는 많은 뜻이 내포되어 있었기 떄문이다.
표면적으로는 남이 저주하는걸 진심으로 즐기기떄문에 저절로 나오는 웃음.
하지만 사실적으로는 사실 지금 힘드니 묻지말아달라는 부탁의 뜻.
" 아아, 다음마을에서도 날 저주해줄 사람이 있다면 정말 좋겠군요, 후후후 "
13
여긴 치레아공국을 속국으로 두고있는 제스피아 왕국의 수도, 카시루.
그 피비린내나는 마을같지도 않은 마을에서 쉬지도 못한 채 또 다시 3시간을 걸어 도착한 곳이었다.
도착하자마자 최고급방(주령이의 돈으로)부터 잡고 뻗어있는 주령일행.
보통 때 같음 대충 쉬었다가 가자고 할 주령도 아까 그 마을에서 타격이 컸는지,
녹초가 되어있었다. 아니 녹초를 지나서 꽤나 아파보이는 얼굴.
" 모두에게 100골드씩 드릴테니 알아서 쓰세요. "
그리고는 옆방으로 쏙 들어가서는 문을 잠궈버리는 주령. 휘경은 주령이 들어간 방을 쳐다보았지만,
비류와 강유는 돈을 받고는 좋아가지고 쉰다고 했던 말들은 다 잊어버린채 호텔을 빠져나갔다.
아마 그 둘은 좀 있으면 다시 돌아올 것이다. 왠만한 가족의 1년생활비가 넘는 돈을 다 썼다면서
빌빌빌 들어올것이다. 물론 휘경은 돈쓰는곳이 책과 음식, 숙박밖에는 없으므로,
밖에 나가지는 않았다.
" …애는 애군. 경험이 모자라 그런 상황에서 상처받다니. 뭐, 내가 신경쓸 일은 아니지만 "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신경쓰이는 지 주령의 방을 자꾸 힐끔거리는 휘경.
책을 펴 놓고는 하나도 읽지않아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고있어 책이 다 불쌍할 지경이었다.
휘경은 주령의 방을 자꾸 쳐다보았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어 생각을 떨쳐버리고는 자신도 방을 나갔다.
이대로 있긴 뭐 해서 청룡궁의 책 보단 못하겠지만 유희로서 적토계의 책을 읽어보기 위해
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모두 화려한 옷을 입고있는 수려한 외모의 휘경에게로 시선이 몰렸다.
" 거기 잘생긴 총각! 보아하니 책 좋아하게 생겼는디, 좋은 가게 소개시켜주랴 ? "
" …그렇게 해주겠는가. "
" 아이고, 말 하는것이 고냥 마 귀족아드님이구만 ~ "
옷가게주인의 말에 고서만을 판다는 전통있는 서점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휘경.
그 곳은 고서만을 판다는 서점임을 가르켜 주듯 가게외관부터가 주위 가게들에 비해
옛날건물처럼 낡으면서도 고풍있게 꾸며져 있었다.
왠지 외관부터가 마음에 꼭 드는 휘경. 희미하게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은 그도 어쩔 수 없는 듯.
" …어서오십시오. 잘 구경하다 가시길 "
고풍있는 담배 파이프를 입에 물고, 눈을 감은 채 건성인사를 하는 노인.
휘경은 노인의 인사말에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생각보다 넓은 공간안에 가득 찬 책들을 보며
꽤나 마음에 드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 이중문 … ?"
별로 마음에 드는 책이없어 어슬렁 거리던 휘경의 눈에 포착된 것은 이중문이었다.
왠만한 서점에서는 구입할 수도 없을 만큼 엄청난 가치를 자랑하는 옛날 왕가의 마법서가 진열되어
있는 책장. 휴경에게 인간의 마법서 따윈 흥미없었지만, 그 책장 양 옆에 틈이 있는 것을 보고는
단번에 이 책장이 이중으로 되어있다는 것을 알았다.
휘경은 고개를 돌려 노인이 있던 곳을 힐끔 쳐다보았다.
여기서는 노인이 보이지 않았다. 휘경은 도둑질은 아니지만 도무지 신이 할 행동이 아닌 행동을
하려다 보니 마른침이 꿀꺽 넘어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강력한 호기심이 그를 이끌었다.
- 끼이익
" …평평한 벽인 줄 알았더니 움푹 파여있군 "
아무래도 문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 책장뒤에는 벽이 있었는데, 알고보니
그 책장 뒤만 벽이 움푹 들어가 있었꼬, 책장 뒤에는 앞에 것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오래된 책들이
너덜너덜 해져서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다른 책장에는 조금이나마 먼지들이 있는데 이 책장은 거의 없는걸로 봐서,
가게주인은 이 책들을 굉장히 소중히 한다는것을 휘경은 알게되었다.
" …!!! "
휘경은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책장 뒤에 있던 그 책들은 3분의 2가 전부 사방신들에 대한 책이었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사방신은 자신이 사방신이라는것을 인간들에게 숨기며,
자신이 믿는 인간에게만 다른 인간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지 말것을 약속하며 정체를 드러낸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적토계에서는 사방신에 관한 책들은 한권도 발견되지 않았다.
물론 역사서 중간중간에 한두줄씩 나오기는 하지만 그 내용들은 전부 자신들이 생각하는 엉터리들.
하지만 휘경이 청룡서전이라는 책을 들어 한두장 보았을 떄, 다는 아니지만 꽤나 맞는 부분들이 많았다.
" 이게 어찌된 …. 백호서전 "
휘경은 백호서전을 들었다. 여기 있는 책중에서는 그나마 가장 새것같았다.
휘경은 백호서전을 품속에 넣었다. 그리고 백호에 관한 서적 두어개 정도를 손에 들었다.
다시 책장을 원상태로 만들어놓고 계산을 하기 위해 가게주인에게로 간 휘경.
" 이걸 계산해 주시오 "
" …이건 ….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소이다만, 이것들은 팔수 없소이다. "
노인은 처음엔 약간 놀랐지만, 곧이어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강경한 태도로 안된다고 말하였다.
양심에 찔리기는 하지만 백호서전은 자신의 품에 있기에 솔직히 나머지 책들은 없어도 큰 상관은
없었다. 그러나 노인이 이렇게 강경한 태도로 나오자 왠지 갖고싶어졌다.
" 값을 부르시오. 얼마가 되든 내가 사겠소. "
" …정 그렇다면 두권 중 하나만 가져가시오. 돈은 필요없소이다. "
노인은 휘경을 바라보더니 주름진 얼굴에 살짝 미소를 띄며 말했다.
휘경은 한권만 있어도 상관없겠다 싶어, 아무거나 하나를 짚고 품속에 넣었다.
그리고 주령에게서 받아 허리춤에 매달아 놓았던 돈꾸러미를 보지도 않고 그대로 노인에게 주고는,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가게를 나왔다.
" …그나저나 우리 가문에서 청룡을 만난건 내가 처음이구만, 헛헛 "
노인은 담배 파이프 아래에 달려있떤 손톱만한 거울을 빼 내었다.
아주 작은 그 거울의 주변은 정교하게 꾸며져 있었고,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노인이 뭐라고 주문을 외우자, 그 거울에서 푸른빛은 더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거울의 뒷편에는 '전현영경(全炫映鏡)' 이라 적혀있었다.
※전현영경 : 모든것을 밝게 비추는 거울이라는 뜻
[ * * * ]
왠지 주령의 근처에선 제대로 집중해서 못 읽을 것 같은 휘경은 근처에 마련된 쉼터에
의자에 앉아 품속에 있던 백호서전을 꺼내어 펴 들었다.
-도저히 잊을 수가 없다. 난 꿈을 꾸는 것인가. 우리집 가문은 예로부터 사방신과의 인연이
굉장히 잦았으며 5천년전에 살았던 조상님은 주작수령님과 만나 '전현영경'을 얻으셨다.
난 가보인 전현영경을 들고 백호가 많이 산다는 신성한 산으로 대담히 들어갔다.
그 숲속에는 여신처럼 자그많게 빛나는 아름답고, 청아한 여자아이를 보았다.
보통때였다면 귀한 신분의 아가씨쯤 으로 생각했겠지만, 그때의 나에겐 전현영경이 있었다.
모든것을 비춘다는 이 전현영경은 인간으로 변신한 신들을 알수 있게한다는 신비한 힘이 있었다.
그래서 난 알수 있었다. 그 여자아이는 백호님이였다는 것을.
백호님은 나에게로 다가왔다. 내 손에 들려있던 전현영경을 보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 인간이 그것을 가지고 있다니. …난 백호수령의 딸, 백주령이다. 허나 나에 대한것을 그 누구에게도
발설하여선 안되느니라. 잊지말거라 '
난 그떄 꽤나 잘나가는 화가였다. 백호님의 모습을 잊지않기 위해 그날부터 백호님의 모습만을
그려왔다. 그리고 드디어 가장 잘된 그림이 완성되었다. … -백호서전中
" 백호수령의 딸, 백주령. 이것이 진짜라면 …. 여기의 백주령은 내가아는 백주령이겠군 "
계속 책을 읽어나갔다. 그리고 이 책을 쓴 사람이 백주령을 보았을 떄 주령의 모습은 7,8살의
모습이였다고 했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이 책을 쓴 사람은 주령에게 진짜 나이를 물었고, 나이를
알아내었다. 그 당시의 주령의 나이는 927이었다고 한다. 지금 주령의 모습은 넉넉잡아
12~14살정도. 하지만 주령의 능력이라면 자신의 나이보다 더 늙어보이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건 지금으로 부터 몇십, 몇백정도 지난것일까. 일단 책의 수명을 보아서는
대충 100년전쯤에 쓴 책 같았다.
" …어쩄든 이로서 백주령은 여자이고, 백주령이 강유의 저주에 걸렸다는 건 증명된거야 "
꽤나 악마같은 매력적인 웃음을 짓는 휘경. 그떄 그런 휘경의 눈에 종이가 팔랑거리며 땅에 떨어졌다.
휘경은 그 종이를 주웠다. 아마도 책에서 찢겨나온 듯 너덜너덜한 종이.
그 종이에는 아름다운 여자의 그림이 그러져 있었다.
" 이 여자는 !!! "
휘경은 들고있던 책을 다시 똑바로 들고서 무슨 내용을 막 찾기시작했다.
원하는 내용이 없는지 거칠게 책을 던지는 휘경.
그 다음 휘경은 거칠게 그림이 그려져 있는 종이를 뒤로 넘겼다.
작은 글씨로 빼곡히 뭔가 써져 있었다.
- 보랏빛이 감도는 은백색의 직모에 가까운 반곱슬머리가 결좋게 바람에 흩날렸다.
우수에 젖은, 하지만 고독함에 쪄들은 아름답게 빛나는 파란 눈동자,
아프다고 느낄만큼 창백하게 희고 고운 얼굴, 붉은 입술,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목선, 가녀린 손목.
꾸미지 않은 길고 고운 손. 백호가 수놓아진 분홍색과 흰색이 어우러진 고급스런 옷을 보고있자니
옷이 날개란 말은 거짓말이라는 생각이 들고, 주령님이 입으면 모든 옷은 날개가 된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
14
" 그럼 …, 그날 밤의 그 여잔 … "
생각지도 못한 진실까지 알아버린 휘경. 지금 그의 엉망은 정리를 못할 정도로 어지러웠다.
책을 덮는 휘경의 손이 덜덜덜 떨려왔다. 그의 눈썹도 파르르 떨렸다.
" 모른척 있어야 하는가 …. 모두에게 알려야 하는가 …. "
그의 판단력이 흐트러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휘경은 고개를 살짝 내저었다.
너덜너덜해져버린 책이 무슨 소중한 보물이라도 되는 냥 품속에 집어넣고 일어나는 휘경.
그리고는 결심을 했는지 주먹을 꽉 쥐어보이고는
더이상 흔들리는 모습따위 하지 않고 여관으로 돌아가는 휘경이었다.
[ * * * ]
" …비류 "
" 어 ? "
" 나, 미움받고 있는 걸까 "
시장으로 나오기 전까지와는 달리 휘황찬란한 차림을 하고있는 그들.
마지막 남은 돈으로 먹을 것을 가득 안고서 근처 쉼터에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강유가 굉장히 진지한 표정을 짓고서 비류에게 말을 건네자,
비류는 당황한 채 답해주지 못하고 있었다.
" …이모님이 자신의 엄마라서, 자신을 버린 엄마라서, 그래서 나 미워하는걸까 ? "
" 뭐야, 너. 그런거 아직까지 신경쓰고 있었냐 ? "
강유의 슬픔어린 말에 피식 웃으며 강유의 등을 퍽퍽 내리치는 비류.
강유는 비류의 행동에 약간 뾰루퉁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강유의 등을 더 퍽퍽 내리치는 비류.
" 그자식이야, 너하고 나랑 세트로 괴롭히잖냐, 설마 널 미워해서 나까지 때리겠냐 ? "
" 하지만 … "
강유의 '하지만' 이라는 말이 마음에 안드는지 눈썹을 찌푸리는 비류.
" 하지만은 무슨!! 그새끼는 원래 성격이 개같아, 임마!!! 그리고!! 네가 언제 그런거 신경썼냐 ? "
" …몰라! 하지만 왠지 주령이가 나 미워하면 나 정말 슬플 것 같아 "
토끼마냥 귀엽게 고개를 떨어뜨리고 눈에 눈물방울까지 맺힌 채 기운없이 말하는 강유.
비류는 강유의 말에 기가찬 듯 '허' 라는 짧은 소리만 내뱉었다.
비류는 이해못하겠다는 듯 강유를 바라보았지만,
여전히 심각한 표정을 한 채 기운없이 축 늘어뜨려져 있는 강유.
" …설마 너, 백주령 그자식을 좋아한다느니 어쩌느니 하는건 아니지 ? "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서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강유에게 조심스레 묻는 비류.
그런 비류의 질문에 강유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지만, 눈을 마주치치는 않았다.
하지만 입을 벙끗거리면서 아무말도 안 하는 강유는 보며,
비류는 '설마,설마'하며 가슴을 조렸다.
" …그런가봐. 히잉 ~ "
" 야임마!! 그새끼 남자야!! 알아 ? 남자라구! "
" 그치만, 그치만 좋은걸 어떡해 … "
커다란 눈에 엄청 큰 눈물방울을 매단채 귀엽게 울상을 짓고 있는 강유.
비류는 아까와는 달리 강유를 어이없다는 식으로 내려보면서 혀를 끌끌 찼다.
그러고는 갑자기 입꼬리를 씩 올리는 비류.
강유는 사악하고, 보기만해도 역겨운(..) 비류의 썩소를 보며 눈물이 쏙 들어갔다.
" …흐흐흐, 그럼 내가 좋은 방법 가르쳐 주지 ! "
" 에 ? 진짜 ? 우와아- , 돌머리들의 우상인 네가 ? "
" 죽을래 ? …하여튼 그러니까 … "
[ * * * ]
" …오셨나요 ? 오늘은 하루정도 여기서 머물테니 휘경님도 쉬시지요 "
아까 그 책을 보고난 뒤라 그런지 새삼르게 자꾸 주령을 의식하게만 되는 휘경.
가만보니 얼굴형이나 눈같은 경우는 아직 여자모습 그대로 남아있는 것 같았다.
지금도 충분히 여자같은데 저주가 풀리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자신도 모르게 주령을 보면서 자세히 못 보았지만 너무나 아름다웠던 달밤의 여자를 상상하는 휘경.
그때 눈을 감고 쇼파에 누워있던 주령의 눈이 갑자기 떠지면서 조금 경계하는 듯한 눈으로
휘경을 직시하는 주령.
" 뭐 하실 말씀이라도 … ? "
" …아니. 난 샤워하고 있을 테니 밥 먹을 떄 쯤 불러줬음 해 "
고개를 까딱 하고는 다시 눈을 감는 주령. 휘경은 잠시 주령을 보다가 욕실로 들어갔다.
휘경이 들어갔는지 문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물소리도 시원하게 쏴아 하고 들려왔다.
물소리가 들리자 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눈을 뜨는 주령.
주령은 쇼파에서 일어나 휘경이 씻고있는 욕실을 흘겨보았다.
오늘따라 이해가 되지 않는 휘경의 행동.
" 뭔가 알아챈거라도 있나 …. "
자신이 고민 좀 하려는 찰나 시끌벅적하게 저 멀리서 들려오는 강유와 비류의 목소리.
주령은 살짝 인상을 찡그리고 있던 표정을 얼굴에서 싹 지우고,
평소떄의 그 아무 감정없는 무표정으로 고민을 감추었다.
그러자 타이밍도 절묘하게 요란하게 등장하는 강유와 비류.
" 할로우!!! 히히 ~ "
" 킥킥, 우리가 멋져서 벙찐 것 좀 봐라 "
예상은 했지만 이정도일 줄이야 …. 라는 뜻이 포함되어있는 약간 굳은 표정으로 두사람의 위아래를
재빨리 훝어보는 주령. 비류는 그런 주령의 모습을 자기 멋대로 해석하고는 막 웃었다.
오늘 따라 왠지 둘은 더욱더 호흡이 잘 맞고, 동시에 항상 하던 행동임에도 불구하고,
뭔가 꾸미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 주령(여자의 직감은 예리하다)
" …이렇게 사치를 하다니 "
" 뭐, 이정도야 주작궁에서 하던거에 비하면 새발의 때국물이지, 킬킬킬 "
" 죄송하지만 새발의 때국물이 아니라 새발의 피입니다. "
비류의 어처구니없는 속담에 질린다는 듯한 표정을 하고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버리는 주령.
주령이 들어가자 기다렸다는 듯이 씩 웃어보이는 강유와 비류.
역시 주령의 예감은 정확했다. 뭔가를 꾸미고 있는 강유와 비류.
" 준비는 됬겠지 …? "
" …오우, 두말하면 잔소리지, 헤헤 "
두사람의 번뜩이는 눈동자.
15
" 자자, 내가 결계 칠테니까 어서해 ! "
" 응응!! 비류 고마워~ 히히 "
주령의 소리, 기척이 아무것도 들리지 않자 음흉한 웃음을 짓는 두사람.
둘이 미리 짠 계획대로 비류가 굉장히 단단하지만 발동되는 것을 잘 느낄 수 없는 고위급의 결계를
발동시켰다. 그리고 강유를 향해 눈짓하자 쟁반위의 음식을 자신의 앞으로 가져다 놓는 강유.
" 어두움이 그 무엇에게 뒤질소냐, 효력이 무엇에게 얽매이겠느냐, 그 위대한 구에 드래곤의 힘을
보태니 그 무엇보다도 강한 집념으로 저주를 ! "
예전 주령에게 날려보낸 한없이 어둡고 사악한 기를 담은 구체가 서서히 모습을 들어내보이며
강유의 손에 완전한 구형의 모습을 이루어내고 있었다. 구가 완성되서 천천히 좌전하며 강유의 손에서
흉흉한 기운을 내뿜자, 강유와 비류가 서로 마주보며 한번 웃었다.
강유는 오른손에 있는 구를 향해 순진한 미소를 한번 짓고는 왼손으로 주머니에서 작은 약병을
하나 집어들었다.
" 에구구, 제발 빠져나가지 말고, 잘 들어가거라 … "
낑낑 대면서 어른의 주먹만한 구를 손톱만한 병 구멍으로 막 믹어넣고 있는 강유.
들어갈리 만무했지만 갑자기 구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병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새끼손가락만한 길이에 엄지손가락만한 넓이밖에 안되는 그 작은 병에 주먹한한 검은 구체는
어느새 찰랑거리는, 약간 진득거리는 액체로 변해있었다.
성공이라는 듯 강유가 헤벌쭉 웃었다. 비류도 강유를 보며 싱긋 웃어주었다.
" 자, 그럼 이제 음식에다가 ~ "
" 아, 잠시만! 이제 결계 풀어도 되지 ? "
" 응 ? 아니 ~. 음식에 넣어야 사악한 기가 숨겨져 "
비류는 고개를 끄덕이며 결계에 마나를 불어넣어 더 강하게 만들었다.
강유는 비류의 행동을 지켜보다가 음식에 약간 진득거리는 검은 액체를 남김없이 다 부었다.
그 액체에서 질소에서 나오는 것 같은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그 검은액체가 음식위에 내려앉자
막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감자기 검은 액체들은 증발되기라도 한 듯 없어졌고, 처음 그대로의 맛있어보이는 음식만이
그대로 생생하게 유지되어있었다.
" …이제 결계 풀어도 돼, 헤헤 "
" OK "
비류가 혹여나 예민한 주령이 눈치챌라, 마지막까지도 조심조심해서 결계를 풀었다.
결계를 푼 뒤 강유를 향해 비류가 돌아보자, 강유는 뭐가 좋은지 헤벌쭉한 얼굴로 음식을 바라보고
있었다. 비류는 강유의 어두운 강철빛 머리를 막 흩으려 놓고는 주령의 방문쪽으로 손가락을 올리며
들어가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강유는 왼손을 불끈 쥐며 기합을 넣고는 뻣뻣하게 걸어서 주령의 방문에
도착했다.
" …뭐해 ? 두드려야지 ! "
" 응. …히잉, 못하겠어 !!! "
" 쉬, 쉿!!! "
긴장했는지 부들부들 떨며 그 자리에 굳어버린 강유.
비류는 한숨을 쉬며 강유의 옆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문에 두어번 똑똑하고는 문이 열렸을 떄
주령이 자신을 못 보도록 옆으로 비켜섰다. 강유는 비류가 문을 두드리고 비켜서자,
더 긴장되었는지 이제는 식은땀까지 흘려댔다.
" …아, 안나온다 "
" 아오, 이새끼 뭘 꿈틀거리는지. 흠흠, 주령아, 들어갈께 ~, 헤헤 "
" 씨이! 강유는 그런목소리 아 … "
" …으음, 들어오세요 "
어설픈 강유목소리로 말을 한 비류. 강유가 막 비류에게 화를 내려고 하자,
주령의 방 안에서 자다 일어나서 약간 잠긴 허스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잘해라! "
" 응 ! "
로봇처럼 뻣뻣하게 문을 열고 들어가는 강유.
문을 열자 얇은 옷을 입고 어꺠가 한쪽 드러난 채로 눈을 감고 자고있는 주령이 보였다.
흩으러진 붉은빛의 은백색머리가 더운지 발그레해진 뺨을 하고있는 주령을 더욱 돋보이게 해주었다.
강유는 막 심장이 터질듯이 두근대고, 얼굴이 달아올라 이 방에서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손에 들려있는 음식을 보자 비류의 응원이 자꾸 생각나 나갈수가 없었다.
" …저, 저기 ;;; "
" 잠…, 더자고 싶은데 …. "
배까지 덮어져있던 이불을 가슴께까지 살짝 끌어올리면서 눈을 부비적거리는 주령.
그 모습이 또 너무 귀여워서 강유는 얼굴이 더 달아올라버렸다.
주령은 시야가 흐릿한지 약간 흐리멍텅한 눈으로 강유를 빤히 쳐다보더니
침대에서 일어나 대충 옷을 추스리고는 힘없이 침대에 걸터앉았다. 아무래도 아직 잠이 덜 깬 듯.
" 헤헤, 그, 그러니까 …. 바, 밥먹으라구!! "
" …별로 먹고 싶지 않습니다만 "
" 건강을 생각해서 먹어야돼!! 꼭!!! "
두 주먹을 불끈쥐고 눈을 크게 뜨고서 뜨거운 투지에 불타고 있는 강유를 보자 피식 웃어버리는 주령.
주령은 아직도 잠에서 안깨어 눈이 안 뜨여지자 강유에게 잠깐 기다리라고 하고는 방 안에 딸린
작은 욕실로 들어갔다. 미지근한 물이 솨 하고 나오자 주령은 그대로 고인 물에 머리를 넣었다.
" 푸아 - "
앞머리와 옆머리가 젖어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미지근한 물에 잠이 깨었는지,
주령의 눈도 생기있게 번쩍 뜨여졌다.
옆에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내고는 욕실로 나가는 주령.
" …그럼, 먹어보도록 하죠. 아, 강유님도 같이 드시죠 "
" 으,응 ? 아, 아냐! 난 비류랑 휘경이랑 같이 먹었어, 헤헤 ;; "
뭔가 오늘따라 어색한 강유의 웃음에 강유를 살짝 흘겨보는 주령. 하지만 이내 음식쪽으로 시선을
돌리고는 숟가락을 들었다. 아무생각없이 약간 미지근해져서 먹기 딱 좋은 온도가 되어버린
맛있는 크림스프를 약간 뜨는 주령.
강유가 긴장되는지 주먹을 불끈쥐고 주령의 입만 빤히 쳐다보았다.
" …그렇게 쳐다보시면 체하겠습니다. "
" 응 ? 아, 으응. 그, 그렇겠다 ~ "
주령이 스프만 주시하다 갑자기 눈동자만 강유쪽으로 굴리면서 무덤덤하게 말하자,
강유는 놀래서 더듬거리며 대답을 하고는 고개를 앞쪽으로 돌렸다.
확실히 이상한 강유의 행동에 주령은 잠시 고개를 갸웃했지만,
사실 지금 배가 고프긴 했기 떄문에 곧 이상한 생각은 지워버리고 숟가락을 입안으로 넣었다.
" 맛있지 ? "
" …네 ? …아, 네 "
" 다먹어야돼 ? "
주령이 고개를 끄덕거리자 순진한 미소뒤에 음흉한 미소를 숨긴 채 주령의 방에서 나오는 강유.
문 밖을 나가자 갑자기 얼굴을 들이대는 비류때문에 깜짝 놀라긴 했지만 이내 쿵쾅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킨뒤 비류의 팔을 꽉 끌어안고 쇼파에 앉는 강유.
싱글거리는 강유의 표정에서 자신들의 계획이 성공했다는 것을 알아 챈 비류가 사악하게 웃었다.
" …이제 된거냐 ? 엉 ? 이쁘던 ? "
" 음식에 넣었으니까 최소 10분은 흘러야 저주가 발동돼 "
" 아, 그래 ? …뭐 그떄까지 우리도 간단히 식사를 즐기자구, 후후 "
장장 1시간동안 저주를 완성시키기 위해 재료를 구해다가 조합을 한 비류와 강유.
그래서 아무것도 먹지못했다. 오직 주령을 '여자' 로 만들겠다는 일념하나로 식사도 거른 두사람.
이제서야 배고픔이 느껴지는지 둘은 테이블에 남은 토스트를 끌어다 와구와구 입안으로 집어넣었다.
조금 있다가 올 변화를 구경하기 위해서는 10분안에 배를 채워야만 했다.
" …아아아악!!!!!!! "
그들이 식사를 마친 뒤 와인을 입에 대려하자, 갑자기 주령의 방에서 여자의 비명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리고 방문틈에서 굉장히 밝은 빛이 비쳤다.
" 무슨일이야 ? "
주령일 것이 확실한 여자비명소리에 옆방에서 독서를 하고 있던 휘경이 나왔다.
강유는 왠지 자신이 예상하고있던 반응과 조금 다른 반응에 덜컥 겁이나기 시작했다.
강유는 울상을 지으며 비류에게 매달리다가 주령의 방쪽으로 뛰어가 문을 열었다.
" …강유, 비류. 너희 도대체 무슨 … "
휘경은 말을 하다말고 주령의 방안에 펼쳐진 광경에 말문이 막혔다. 밝은 빛이 사라진 주령의 방안에는
주령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고, 처음 보는 여자만이 흐리멍텅한 눈을 한 채로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16
" …당신은 "
휘경은 잠시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저사람은 분명히 달밤에 보았던 그 여자.
그리고 자신이 훔쳐온(?) 책에 그려져 있던 백호.
그렇다면 저 여자는 주령이란 말인가.
분명 저주에 걸려 남자의 모습으로 있는것으로 판단하고 있었는데 주령이 여자의 모습을 하고있자.
휘경의 머리속은 터질듯이 엉켰다.
" 와 ~ 성공이다!! 그치 , 비류야 ? "
" 그러네. 캬, 그나저나 주령이자식, 이쁘긴이쁘네 "
비류와 강유의 대화가 지금 이 상황에 연결되는 거라고 직감한 휘경.
휘경은 그들을 무서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휘경의 시선에 움찔하는 비류와 강유.
땀을 삐질삐질 흘려대며 왜 그러냐고 휘경에게 조심스레 묻자,
휘경이 쫙 깔린 목소리로 답했다.
" 백주령에게 무슨 짓 했어 "
" 그, 그러니까 …. 저번에 백호수령의 조카한테 했던 그 저주를 "
" 뭐 ? "
강유의 말에 휘경의 머리는 또 다시 회전하기 시작했다. 만약 자신의 추리대로 백주령이 강유의
저주에 걸려있었다면 ? 그런데 그 저주가 풀리기 전에 또 다시 똑같은 저주에 걸리게 되었다면 …
휘경의 머릿속은 금방 새하얘져서 주령을 바라보았다.
주령은 그대로 주저앉아있었다. 공허한 눈을 한 채로.
" …젠장. 백주령 ! 정신차려, 주령아!!! "
휘경이가 주령의 양 어꺠를 잡고 막 흔들어 댔다. 주령은 천천히 고개를 들고 휘경과 시선을 마주쳤다.
휘경은 주령이 움직였다는 사실에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주령을 바라보았지만 휘경의 미소는
그리 오래가지 못하고, 금새 굳어졌다.
" …(피식) 뭐냐, 넌 ? "
공허한 파란눈동자에는 아무감정도 실리지 않았다. 비웃고는 있었지만 목소리에는 전혀 감정이
실려있지 않았다. 그야말로 옥구슬에 쟁반흘러가는 듯한 목소리였지만,
지독히도 차가워서 듣는 사람을 오싹하게 할 정도로 얼어붙은 목소리였다.
그리고 그런 주령의 모습의 놀란것은 휘경뿐만이 아니었다.
뒤에서 휘경과 주령을 바라보던 강유와 비류도 놀랐다.
" 내가 왜 인간계에 와 있는거지 ? …그새끼 족치던것까진 생각이나는데, 흠 "
안쓰던 험한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으면서 멍해져있는 휘경의 손을 가볍게 털고 일어나는 주령.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한번 보더니 인상을 찌푸리던 주령은 침대 근처에 있던 짐꾸러미를 보고는
작은 보폭으로 천천히 걸어가 짐꾸러미를 풀어헤쳤다.
남자옷들 사이사이에 숨겨져 있던 여자옷을 들어보이고는 망설임 없이 자신이 입고있던 옷의 윗단을
뜯어버리는 주령. 휘경과 비류, 강유의 위치에서는 뒷모습밖에 안보였지만,
앞쪽 윗단을 뜯어버리자 살짝 흘러내려서 어꺠에 위태롭게 걸터져있는 끈을 보자니,
괜스레 얼굴이 붉어지는 그들. 그들은 일단 자초지종이고 뭐고, 나가고 보자라는 심정으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 왜 내가 현무수령, 주작수령, 청룡수령들과 함께 있는지 도통 기억이 나지않네. "
그리고는 어꺠에 걸터져 있는 끈을 내리는 주령. 하얀 실크의 잠옷같은 옷은 스르르 내려가
방바닥으로 추락했다. 그리고 주령의 하얀 알몸위에는 하늘색의 동양풍 치마가 입혀졌다.
옷 안에 있는 머리카락을 손으로 살짝 꺼내어 날리고는 차가운 눈으로 방문을 쳐다보는 주령.
주령은 짐 안에있는 여러장신구들을 보더니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 …백호궁의 물건을 가져왔다면, 적어도 내 스스로 인간계에 내려왔다는건데. "
설마 자신이 백호수령인 것을 들킨것인가 생각을 해보는 주령이었지만, 지금까지의 기억이 없어져서
그런 생각이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것을 꺠닫고는 주령은 머리를 두어번 흔들었다.
짐꾸러미속의 화려하게 빛나는 꽃비녀를 꺼내어 들고 긴 머리칼을 대충 꼬아서 높이 틀어올리는 주령.
비녀를 거침없이 꽃고 짐꾸러미를 챙기고 주령은 방문을 열었다.
" …아, 주, 주령아 "
" 아하하, 모, 몸은 어때 ? "
" 무리하지는 마, 백주령 "
여유롭게 책을 읽고있는 휘경과 그사이에 얼굴에 멍 하나씩을 달고있는 강유와 비류.
아마도 둘은 휘경에게 몇대씩 맞은 모양이다. 주령은 그런거엔 관심없다는 듯 한번 쳐다보고는
금새 시선을 거두고 휘경의 옆에 털썩 앉았다.
주령이 아무말도 앉자 긴장된 공기속의 침묵만이 계속 묻어져나왔다.
" …너희들, 사방신이면서 왜 나와 인간계에 내려와있는거지 ? "
" 으, 응 ? 헤헤, 그러니까 ~ "
" 그리고. 내몸에 무슨짓을 한거지 ? "
식은땀을 흘리면서 말하는 강유에게 어느새 손가락 끝에 끝이 아주 뾰족한 가늘게 빛나는
얼음바늘을 만들어 강유의 목에 핏방울이 맺히도록 강유의 목을 꾹 누르고있는 주령.
순간 강유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한방울 흘러내렸다.
그리고 강유와 함께 공범자인 비류또한 식은땀을 등줄기로 흘려보냈다.
" 내 정체를 알고는 있는건가 ? "
" …에 ? 그러니까 넌 백호궁의 잡무를 담당하고있 … "
" 아아, 그만 "
강유의 말을 듣다말고 이제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말을 싹둑 잘라먹고는 얼음바늘을 녹여버리는 주령.
여전히 주령의 눈은 익숙하지않은 탁한 푸른색눈동자를 하고 있었다.
" 내가 기억을 잃었다는 것 쯤은 알고있지. 그래, 지금 너희들의 나이는 ? "
존댓말을 고집하던 주령이 반말을, 그것도 여태껏 하지않던 차가우면서도 무관심한 말에
왠지모를 긴장감을 느끼는 강유와 비류.
휘경은 상관없다는 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주령의 질문에 답해주었다.
" 3409살. 붉은머리를 한 놈은 3408살이고, 검은머리를 한 놈은 3430살이야. "
주령은 휘경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했다. 자신의 기억하고있는 정보에 의하면 청룡으로 보이는
안경 쓴 자는 3209살이어야 했고, 주작으로 보이는 싸가지없어 보이는 자는 3208살,
현무로 보이는 나이에 맞지않게 귀여운 모습을 한 저자는 3230살이어야 했다.
하지만 모두 자신이 기억하고있는 정보보다 200살씩 나이가 많았다.
자신의 나이는 802살. 이자들의 말에 따르면 내 기억은 200년전. 그렇다면 주령, 자신의 현재나이는
1002살이라는 말.
" 그럼 이제 나도 1000살이 넘었다는 거군. "
" 에 ? 주령이 너 나이 몇인데 ? "
" …너희들의 말에 따르면 지금 내 나이는 1002살이 되는거겠지 "
휘경은 책을 읽고 난 뒤로 나이를 예상하고 있었기에 별로 놀라지는 않았으니,
강유와 비류는 엄청 놀랐다. 설마 이제 1000살이 갓 넘은 어린애였다니.
이떄까지 자신들이 당한 수모들이 떠올라 금방이라도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 거기 안경. 넌 뭔가 숨기고 있는 것 같은데, 순순히 불어 "
" …이런이런. 200년전 어린백주령은 성질이 정말 더러웠나 보군 "
휘경은 약간의 비웃음을 머금고 슬그머니 일어서며 말했다. 발끈할 것 같았던 주령은 의외로
표정하나 안 바뀌고 휘경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사실 휘경은 말은 저렇게 했지만 속으로는 조금 뜨끔했다.
사실대로라면 이제 802살정도 된 여자애가 자신의 심리를 이용하다니.
" …아, 원래는 숨기고 사는데 지금 굉장히 예민해져 있어서 말야. 그러니까 빨리 부는게 신상에 좋아 "
" … "
" 너 …. "
휘경의 표정이 미묘하게 바뀌면서 아무말도 안하고 있자 그런 휘경의 행동에서 뭔가를 알아낸 듯,
주령이 휘경을 흘겨보며 뭔가를 말하려다 말았다. 주령은 흥미롭다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휘경을 바라보았다. 강유와 비류를 바라보며 잠시 생긋 웃더니,
휘경의 손을 잡고 금새 공간이동을 해버리는 주령.
" 어, 어엇 ? 주령이가 휘경이 델꼬 갔어! "
" 도대체 일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거야, 강유야 …;; "
[ * * * ]
" …왜 데리고 왔지 ? "
" 그 둘이 있으면 방해될 것 같았거든. …청휘경. 너, 내가 백호수령인걸 알고있지 ? "
아까 지어보였던 귀여운 미소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감정하나없이, 마치 인형의 얼굴같은
딱딱하게 굳은 무표정을 지은 채 국어책읽듯 자신의 할말을 내뱉는 주령.
휘경은 이 어린 백호수령에게 간파당하는 자신의 모습에
부끄럽고 수치스럽다는 등의 감정보다는
주령의 차가운 얼음바늘같은 위험한 재능에 감탄어린 시선을 보냈다.
" …그래. 알고있어. 이 책 덕분에 "
휘경이 품에서 백호전서를 꺼내어 주령에게 던졌다. 그것을 받고 안쪽을 대충 훝어보던 주령은
뭔지 모르겠다는 듯한 눈으로 휘경을 바라보았다. 그도 그럴것이 이 책에 있던 내용에 따르면
이 당시의 주령의 나이는 927살이었다고 하니, 주령에게는 이 책 또한 미래의 일인 것이니,
모르는 것이 당연했다. 휘경은 잠깐 아차 하더니 곧 살짝 웃었다.
" 나도 자세히는 잘 모르지만, 뭐 그것도 네가 잃어버린 기억. 즉 지금의 너에겐 미래의 일이 적혀있는
책이라고 볼 수 있지. 너에게도 꽤 많은 도움이 될꺼야. 그리고 난 그 책 덕분에 너에 대해 알게되고,
또 너의 행동, 자질등으로 추리에 추리를 거듭해서 네가 백호수령이라는 것을 알게된거지 "
주령은 백호전서를 태웠다. 불꽃이 확 일어나면서 책은 3초만에 불타 재조차도 남지 않은채 사라졌다.
그러나 백호전서에 있던 주령의 모습이 그려져있던 그 그림만은 불타지 않았다.
" 필요없다면 그 그림은 나에게 주지 않겠어 ? "
주령은 망설임없이 기분좋은 바람에 색이 바랜 종이를 날려보냈다.
휘경이 종이를 잡아서 잠깐 쳐다보다가 품 속에 있던 책 사이에 구겨지지 않게,
무슨 소중한 보물마냥 조심스레 넣고는 다시 품 속으로 넣었다
" …뭐, 몸은 괜찮아 ? "
" 글쎄. 아무래도 저주가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똑같은 저주를 한번 더 걸린것 같은데 "
" 맞아. 똑같은 저주니까 뭐 이상한 점은 없겠지만 … "
주령은 단전에 손을 가볍게 놓았다. 그런데 갑자기 주령의 손이 단전으로 쑥 들어갔다.
휘경은 놀란눈치였지만, 곧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손을 꺼내는 주령을 보고는
주령이 일부러 넣었다는 것을 알고 진정했다.
그리고 주령은 짜증난다는 듯 인상을 한 껏 찌푸렸다.
" …이거, 현무수령이 한짓거리 ? "
" 그래. 두번다. "
" 젠장. 잘은 모르겠지만 부작용이 생길 것 같은데 ? "
주령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제 겨울로 한걸음 다가선 늦가을이다 보니,
하늘은 이미 검게 물들여져 있었고, 휘황찬란한 보름달과 밝고 어두운 별들이 하늘을 수놓았다.
그런데 그 때 갑자기 주령이 단전을 두 손으로 잡더니 엄청난 양의 식은땀을 흘리며 쓰러졌다.
그리고 휘경이 다가서려하자, 주령의 몸에서는 비류와 강유가 준비한 음식을 먹고
약 효과가 일어났을 때 처럼 엄청나게 눈부신 밝은 빛이 주령의 몸을 감싸 안았다.
" …이게 무슨 … "
17
하얀빛이 없어지자 휘경의 눈에 보인 광경은 다시 남자의 모습으로 돌아온 주령이었다.
보랏빛 은색머리가 아닌 붉은빛이 감도는 은색머리, 중성적인 미소년의 모습.
" …뭘 봐. "
" …백…주령 ? "
" 존나 머리 깨지겠네, 젠장 "
여전히 싸가지없는 말투. 옷을 대충 툭툭 털고 일어나더니 휘경쪽으로 걸어오는 주령.
휘경은 이게 어찌된 일인지 상황파악이 잘 안되었기에 딱딱히 굳어있었다.
" 청룡, 미쳤냐 ? 왜 얼어있고 지랄이야 "
" 백주령, 너 나 기억하는거냐 ? "
" 이게 또 왜 낮부터 술주정이야 ? "
" 너 아까 여자모습으로 … "
" 앙 ? "
아무래도 성격은 여전하지만 여자모습으로 변하기 전까지의 기억이 남아있는 것 같았다.
대신 여자모습일 동안의 기억은 없는 듯 했지만 말이다.
왜 남자로 변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은 강유일행이 있는 곳으로 가야될 듯.
[ * * * ]
" 어 ? 왔다 ~ "
" …현무, 귀여운 척 하지마, 역겨워, 짜증나 "
" (멍-)우에에엥 ~ "
역시 성격은 그대로인 듯. 아니 오히려 더욱 성격이 안 좋아진 듯 했다.
공간이동으로 도착한 주령과 휘경. 강유는 주령이 남자모습이라는 것을 알기도 전에 좋아라 하며
주령에게로 뛰어갔지만, 주령의 톡 쏘아붙이는 말에,
금방 비류에게 안기며 울상을 짓는 강유.
" …휘경아. 근데 백주령 왜 다시 남자모습이냐 ? "
" 그러게. 나도 잘 모르겠다. "
강유와 비류, 휘경은 얘기를 나누며 주령을 바라보았다.
여자옷이 불편한지 이리저리 살펴보고 옷 안속도 쳐다보면서 인상을 한 껏 찌푸리고 있는 주령.
그리고 남자모습인데 여자처럼 비녀올리고 있는것도 별로 좋지만은 않은지,
신경질적으로 풀어내려서 아무렇게나 머리를 휘날려버리는 무책임한 주령.
휘경과 비류, 강유를 한번 힐끗 쳐다보더니 악마같은 웃음을 씩 내비치고는
방으로 쏙 들어가버렸다.
" …성격은 그대로인데, 기억은 되돌아왔어 "
" 정말이냐 ? "
" 어. 그런데 여자모습일 떄의 기억은 없어 "
여자모습일 떄의 기억이 없다는 말에 이마를 짚고 고개를 절레절레 거리는 비류.
그리고 입술을 꽉 꺠물고 있는것이 아마도 다혈질인 주작인 만큼, 주령의 행동들때문에 화가
치미는 것을 참기위함일 듯.
강유는 휘경과 비류의 얘기를 들으면서 계속 주령의 방을 힐끔 거렸다.
왠지 성격이 저렇게 된 건 자신탓이라고 생각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이다.
" 저기, 주령아 ~. 들어갈께 ? "
똑똑 노크를 해도 아무 반응이 없자 뾰루퉁한 표정을 짓는 강유.
역시 그의 성격에 참을성이란 없는 것일까.
강유는 그새를 못 참고 문을 열었다.
" 으갸갸갹!!! 주령아!! 히잉, 주령아, 왜그래 ? "
" …큭…쿨럭 "
소주한병은 족히 될 법한 검은 핏덩이들. 주령의 긴 머리카락에도, 아직 갈아입지 않은 옷자락에도
검붉은 피들이 스며들어갔다. 홍건한 바닥, 붉은 손바닥, 입 주위에 흐르는 핏줄기.
피를 토하고 있음에도 전혀 상관없다는 듯한 무덤덤한 눈동자.
기겁할 만한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왜이리 가슴이 쿵쾅대는지, 원.
망할놈의 심장만 탓하는 강유는 정신을 차리고 주령을 부축했다.
" 힝, 왜이러는 거야 ~ "
" …머리울려. 조용해. 하아, 하아 …. "
어깨를 잡고 부축하려는 강유의 손을 탁 내리치고는 긴 소매로 거칠게 입가를 닦는 주령.
힙겹게 일어서자 확 풍겨오는 피비린내가 코를 찌르자 저절로 고운 이마에 주름이 잡혔다.
화장대에 살짝 기대어 강유를 바라보며 피웅덩이로 고갯짓을 하는 주령.
강유는 뭔 말인지 몰라 고개를 갸우뚱 했다.
" 치우라고, 띨아 "
" …으, 응 "
남자모습이든 여자모습이든간에 그런건 강유에게 전혀 상관이 없었다.
그러나 이런 성격은 여전히 적응안되는 강유.
자꾸만 눈치를 보게되는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일까 ?
강유는 근처에 집히는 대로 피비랜내가 풍겨오는 피웅덩이를 닦았다.
" 아씹, 현무, 죽을래 ? 어디서 이딴 저주를 개발해가지고는, 후 - "
거칠게 머리를 쓸어넘기며 힘이 빠진듯 말끔해진 방바닥으로 스르르 주저앉는 주령.
약간 가슴이 풀어헤쳐지고, 머리가 풀어헤쳐져서 얼굴을 약간 가리고, 흐리멍텅한 눈까지.
강유는 벌겋게 달아오르려는 열을 어찌할 바를 몰라 연신 손부채질만 해대었다.
고개를 들지 않은 채, 약간은 건방진듯한 태도로 눈만 살짝 치켜뜨는 주령.
" 정신사나워. 그만해 … "
" 미, 미안. 그, 그런데 아까 그 피들은 다 뭐야 ? "
또 다시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물어보는 강유.
강유의 염려는 쓸데없는 것임을 증명하는 듯, 주령은 별 거 아니라는 듯이 눈을 살짝 감으며
나직한 목소리로 답했다.
" 단전에서 억지로 저주를 끄집어내려고 했지 "
" 그, 그래도 돼? 나, 난 무공같은거 잘 몰라서 … "
슬쩍 주령의 앞에 앉는 강유. 눈을 감고 있으면서도 그런 강유의 행동에 귀엽다는 듯 피식 웃는 주령.
" 왠만한 저주는 괜찮겠는데, 역시 저주의 달인의 특허품은 안되는건가보지 "
" 우엥, 미안해요 ;;; "
별 감정없는 목소리로 말했는데도, 왠지 강유는 따끔따끔 찔렸다.
칭찬같으면서도 왠지 비꼬는 듯한 말. 강유는 거의 소리를 지르듯 사과했다.
강유의 목소리에 주령이 살짝 눈을 뜨더니 강유의 머리에 힘이 없는지 손을 턱 올렸다.
" …계속 여행하면서 나 해독해줄꺼지 ? "
왠지 따뜻한, 예전 주령의 목소리. 강유가 푹 수그렸던 고개를 번쩍 들었다.
주령이 넌지시 자신을 바라보는 따뜻한 눈동자가 느껴졌다.
" …응 ! "
18
새벽 6시경. 해가 뜨기 시작하면서 푸르스름한 하늘이 맑아보이는 지금,
주령일행이 묶고있는 곳은 엄청 시끄러웠다.
빵파레가 울리고, 노랫소리도 좀 들리고.
아무튼간에 그 소음들은 주령일행을 금방 꺠우기 시작했다.
" 씨발, 누구야. 내가 친히 사지를 찢어 죽여야 하겠군 … "
평소에도 예민하지만 성격이 바뀌면서 더욱더 성격이 예민해진 주령.
그녀는 소음이 시작된지 1분도 안되어 흐리멍텅해서 더욱더 무서운 눈을 한 채로 부시시 일어났다.
그리고 주령의 입에서는 십원짜리 욕들과 함께 남들이 들으면 엄청난, 주령의 사고회로해 비하면
아주 평범한 저주가 흘러나왔다.
" …후, 왜이리 시끄럽지 ? "
두번쨰 타자. 가슴위에 책을 올려논 채로 자고있던 휘경. 예민한 성격도 조금 있긴 하지만,
대체적으로 침착과 낙천적인 현실주의자인 휘경은 무려 소음이 시작된지 10분이야 되서야
안경을 챙겨쓰며 일어났다. 금방 일어난 모습도 지적인 휘경.
항상 그의 아침은 Lovely한 책들과 함께♡
" 끄응, 아오!!!! 누구야!! 왜이리 시끄러 !! 현강유!! 또 너냐 ?! …젠장 존나 시끄러 "
" …히잉, 나 아니란 말야! 왜 잘자던 나 까지 깨우는거야! "
세번째 타자는 비류. 강유랑 항상 같이자는 그는 자신의 의지로 꺠어나지 않았을 때에는
자신을 깨운 원인을 강유로 생각하고는 일어나자마자 강유를 발로 차서 깨우고는 미안하다고 한다.
그래서 비류가 일어나고 3초후면 항상 강유도 뒤따라 일어나곤 하는 그들의 야한(?) 아침.
이리하여 그 유명한 '아침의 소음 대소동' 에 의해 사방신의 하루일과가 시작된 것이다.
" 우웅, 주령아 벌써 깼 …헉! "
" …왜 사람을 눈앞에 두고 놀라. "
머리를 감았는지 물기를 잔뜩 머금은 머리를 수건으로 툭툭 털며 나오는 주령.
그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주령의 얼굴 바로앞에서 얼굴을 붉히며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버린 강유.
주령은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지나가버리는데 왠지 자신만 주령을 의식하는 것 같아
더욱 더 얼굴이 붉어져가는 강유의 얼굴은 이미 사과보다도 붉어져 있었다.
쿵쾅쿵쾅 뛰어대는 심장이 야속하기만 한 강유.
" …밖에 누가 저렇게 시끄럽게 하는지. 아침부터 손에 피를 묻히기는 싫은데 "
장난은 아닌 듯 무표정으로 그런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주령.
평소에는 왠지 무섭게 느껴져야할 주령의 모습이 물방울이 또르르 흐르는 젖은 머리카락만으로도
어쩜 저리 매혹적인지, 강유는 새삼스레 머리카락의 힘을 느꼈다 ! (말도안되는 소리)
강유는 양 볼을 탁! 치고는 주령의 옆에 앉아 그녀의 손을 꼭 잡아 쥐었다.
약간 울상을 짓고서 입술을 다물고 뭔가 애원하는듯한 강유의 행동.
" …뭐 "
꼭 뭔가 부탁하는 것 같기도 하고 ….
여튼 무언(無言)의 효력은 영영 열릴것 같지 않던 주령의 앵두빛 입술을 기어코 열리게 했다.
대신 고운 주령의 이마에 주름을 몇개 만들어내긴 했지만 말이다.
" …살인은 안돼! "
" 누가 뭐래 "
" 살인은 안돼!! "
귀찮다는 듯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주령을 향해 계속해서 살인은 안돼라는 말만 되풀이하는 강유.
주령은 왜 강유가 이러는 것인지 몰라서(알고 싶지도 않고해서) 무시하려 했다.
그러나 뭔가 생각난 듯 주령이 갑자기 악마같은 웃음을 씩 지으며 다시 강유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웃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주령떄문에 하마터면 코피터질 뻔 한 강유.
" …난 살인따위 잘 안해. 다만 몇대 패 준다음 도망을 못가게 다리를 분지르고, 두 눈알을 뽑은다음
숨도 못쉬게 1분동안 코와 입을 막는 것을 5분마다 되풀이하고, 그다음 나한테 해를 가하지 못하도록
손가락 마디 하나하나를 다 끊어놓을 뿐 (씨익). 절대 난 살.인.은.하.지.않.아 "
" … "
핏기가 가셔서 하얗게 질린 강유의 얼굴. 생글생글 웃으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주령이 그순간
어찌나 무섭고 잔인하게 보이는 동시에 섹시하게 보이는지 원.
자기 눈에 콩깍지가 씌였나보다 라고 생각하며 눈을 비벼도 보았지만,
일단 주령의 외모가 뛰어난건 사실.
" …하암, 더 자고 싶다 "
" 그만해. 이제 해가 중천에 떴어, 주비류 "
마침 나오는 휘경과 비류. 아마도 밖의 소음이 듣기 싫어 쳐놓은 주령의 결계 덕분에
두사람 모두 지금까지 다시 잠들었나 보다.
둘 다 약간 부시시하니까 (특히 비류)
" …지금 정도면 소음은 어느정도 가라앉았겠지 ? "
손가락을 마찰시키면서 따악거리는 소리가 나자 건물을 감싸고 있던 결계가 사라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30분 전부터 시끄럽게 울려대던 빵파레소리와 함성들이 갑자기 들려왔다.
괜히 결계를 풀었나 싶어 다시 결계를 발동시키려는 찰나, 밖에서 갑자기 소음이 다 가라앉았다.
< 안에 계신 드래곤님들 ! 잠시 나와주시기 바랍니다 ! >
근엄한 목소리가 목소리 증폭마법에 의해 또랑또랑하게 들려왔다. 드래곤이란 말에 주령이 창문쪽으로
다가서서 사람들이 줄기차게 서있는 곳을 향해 내려다보았다.
이런곳에 드래곤이 머물리 만무했기에 주령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이 무리도 아니었다.
" 이 곳에 드래곤도 머물고 있었나 ? "
" 아니, 사전에 미리 조사를 조금 했었지만, 여기 머무는 것들은 모두 인간뿐이야 "
주령이 약간 혼잣말 식으로 질문을 던지자 휘경에게서 바로 답이 날아왔다.
휘경의 답을 듣고 주령이 고개를 갸우뚱 했다.
주령은 어느정도 마른 머리를 뒤로 쓸어넘기며 무식하게도 창문을 부수고 아래쪽으로 뛰어내렸다.
주령의 몸이 창문을 다 통과하자마자 원상복귀되어지는 창문.
강유와 비류, 휘경은 주령이 아래층으로 뛰어내리자 천천히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 * * * ]
" 뭐야, 왜 이리 소란스러워 "
" 아, 오, 오셨군요, 드, 드래곤님 ! "
주령이 내려가자 마자 주령에게 드래곤이라는 거북한(..) 호칭을 붙이며 절을 올리는 중년의 남자.
약간 살이 찐 몸집에 꽤나 부유해 보이는 옷을 입고있는 그는 필시 귀족이나 왕족임이 분명했다.
뒤에 호위병이나 군위대도 장난이 아니게 많은 수였고, 결정적으로 그 남자의 옷에
이 나라의 황제를 상징하는 초록색 입사귀를 물고있는 왕관 쓴 비둘기가 고급스럽게 그려져
있는 것을 보니, 100% 그는 이 나라의 왕인 것이다.
" …미안하지만 난 드래곤이 아니야 "
" 네 ? 하, 하지만 저희 궁전의 예언자가 위대한 존재께서 이곳에 머무르고 계신다고 .. "
위대한 존재가 고작 드래곤이었다니. 주령의 관점으로 봤을 떄는 드래곤이나 인간이나
오십보 백보인 존재들이었다. 그런데 신인 자신이 드래곤에 비유되다니.
주령의 이마에는 삼거리 마크가 살짝쿵 새겨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주령의 표정은 폭풍전의 고요함과 같이 지독히도 평안하기만 했다.
" 그래, 내가 참 위대한 존재이긴 하지. 그런 위대한 존재께서 친히 … "
황제에게로 한발자국 다가서는 주령. 너무나도 인자한 웃음에 황제는 자신의 생각대로 일이 전개되어
간다고 생각했는지 '오옷' 이라는 만족의 소리와 함께 기쁜듯한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주령의 얼굴에서 갑자기 인자하고 상냥한 미소는 싹 지워졌다.
" …444가지 고문을 가해주지, 훗 "
19
주령의 기에 눌려 황제가 붙잡혀있는데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근위병들.
주령은 가소롭다는 듯이 웃으면서 황제의 머리에 손바닥을 올려놓고 꾸욱꾸욱 눌렀다.
" …이봐, 황제. 혹시 동양의 영향을 많이 받은 나라에 대해 알고 있는가 ? "
생글생글 웃으면서 황제의 머리칼을 잡고 얼굴을 들어올리고서 재밌다는 듯 말하는 주령.
황제는 어떻게 해야되면 좋을지 모르는 눈치였지만, 곧 솔직해지기로 마음먹었는지 천천히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아마도 일국의 황제이다 보니, 주변의 나라들에 대해 어느정도 지식이 있는가보다
" 그래 ? 그럼 동양의 영향을 받은 나라중에서 가장 무섭다는 고문중의 하나인 분근착골을 시행해주지 "
※ 분근착골 : 온 몸의 뼈와 마디가 뒤틀려서 도저히 고통을 참을 수 없는 고문 중 하나로 무공을
익혀야만 다른 사람에게 시행해줄 수 있다.
씨익 웃으며 황제가 두려움에 휩싸일 표정도 짓기전에 황제의 머리에 검지를 세우고 꾹 누르는 주령.
갑자기 황제가 막 비명을 지르며 온 몸을 비틀었다. 괴로운 듯 입가에선 침이 흘러내렸고,
오줌이라도 쌌는지 찌른내가 살짝 풍겨져 나왔다.
계속해서 비명을 지르며 몸을 꼬아대는 황제의 모습은 처참하기 짝이없었다.
" 으갸갸갸~, 주령아 그만둬 !!!! "
" …무슨소리야 ? 적어도 1각(15분)정도는 해 줘야지 "
이제 도착한 비류, 강유, 휘경. 강유는 주령이가 고문을 시행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기겁을 하며
달려와 주령에게 그만두라고 했지만 주령은 전혀 듣지 않았다.
비류와 휘경은 주령이 뭘 하든 별 상관 없는 듯.
황제는 강유를 보며 고통스런 표정에 애원을 담아 필사적으로 강유에게 시선을 보냈다.
" …시시하군. 인간이란 이렇게 나약하지 "
무표정한 얼굴을 한 채 뒤돌아서자, 헥헥 거리며 온 몸을 비틀던 것을 멈춘 황제.
아마도 주령이 분근착골을 그만 둔 모양이었다. 근위병들은 주령일행의 눈치를 살짝씩 보더니,
근위병의 총 대장인듯한 사람이 다가와 황제를 부축했다.
" 괜찮으십니까 ? "
" …헤엑,헤엑, 거, 것보다, 예, 예언자 실리아는 ? "
황제는 총대장의 부축을 받으며 예언자를 찾았다. 총대장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근위병들에게로
손짓하자, 근위병 무리 사이에서 얼굴의 반을 가린 아름다운 여자가 황제의 앞으로 다가왔다.
코 위로부터는 천으로 가린 신비스런 여자는 무릎을 꿇었다.
보통 예언자는 그 누구의 앞에서도 무릎을 꿇지 않는다. 그저 허리를 숙이는 것으로 절을 대신할 뿐.
그런 예언자가 무릎을 꿇자 황제를 비롯하여 근위병무리들이 모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 …실리아 폰 크람, 사방을 시키는 수호신들께 예를 올립니다. "
실리아라는 예언자의 말에 발걸음을 멈추고 무표정을 넘어서서 지독히고 차가운 표정으로 실리아를
바라보는 주령. 실리아는 주령의 살기를 느끼는지 못느끼는지 계속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 …나의 존재를 이런식으로 알리고, 또한 날 이용하려 들다니. "
주령의 주위에 서서히 바람이 불기 시작하더니 그 바람들은 점점 거센 회오리 바람으로 커져갔다.
그떄부터였다. 갑자기 반경 50M이내에 있는 식물들이 모두 시들어 가기 시작했다.
근위병들의 땀내나는 몸들은 조금씩 썩어들어가고, 그곳은 모두의 비명으로 가득찼다.
" 그만해, 백주령 "
" …짜증나, 더러워, 열받아, 지겨워. "
보라색눈이 아닌 붉은 눈으로 실리아를 바라보며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을 내뱉는 주령.
근위병들과 황제에게로 시선을 돌리자 그들의 상처는 더욱더 썩어들어갔다.
휘경과 비류, 강유는 말리고 싶었으나, 지금 그들은 다가가기도 힘들만큼 독이섞인 바람은 거세었다.
아무래도 변환하거나, 크게 다칠 위험을 각오하지 않는한 지금 주령을 막기는 힘겨울 것 같았다.
" 인간들은 모두 없어져 … "
무미건조한 주령의 목소리는 이어지지 못했다. 그저 주령을 몸을 감싼채로 주위에 재앙을 내리고 있던
거센 돌풍만이 서서히 가라앉혀지기 시작했을 뿐.
하늘을 바라보자, 희마한 남색빛을 띄던 새벽녘 하늘은 맑은 하늘색이었고, 지평선에 반틈 짤려있던
불쌍한 해는 어느새 그 둥근 구체를 뽐내며 떠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주령의 몸은 햇빛보다더 더욱 찬란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 주, 주령아 ? "
" …이 빛은 … ? "
" …설마 …! "
환한 빛은 점점 희미해지면서 거만한 모습의 여자가 보였다.
" …이봐들, 나 기다렸어 ? 킥 "
여자의 모습이 된 주령. 휘날리던 붉은빛 은백색머리는 이제 보랏빛 은백색머리로 바뀌어 휘날렸고,
볼은 홍조를 띄고 입술은 더욱 붉어졌으며, 눈은 남자모습일 떄 보다 훨씬 더 부드러워졌다.
이럴 줄 알고 있었는지 어느새 옷은 여자옷이었고, 저번과는 달리 별로 힘들어보이는 기색은 없었다.
" 근데 언제 저녁에서 아침으로 시간이 지나가버린거지 ? 나참 … "
머리를 약간 긁적이며 귀엽게 말하는 주령. 아무래도 여자모습으로 돌아온 만큼, 예쩐의 기억은 물론,
남자모습일 때 동안의 기억또한 없어진 것 같았다. 여하튼 그녀의 등장에 의해,
강유와 비류, 휘경은 모두 주령의 주위에 모여들었다.
" …주위를 둘러봐. 이거 다 네가 한 짓이다. "
휘경이 안경을 치껴올리며 날카롭게 지적했다. 주령은 팔짱을 끼며 배째라는 식으로 거만하게 휘경을
바라보았지만 주위를 둘러보더니 자기가 생각해도 심했다고 생각했는지 귀찮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무릎을 약간 굽히고 오른손을 바닥에 짚었다.
땅에 말라있던 식물들은 언제그랬냐는 듯 생생해졌고, 갈라져있던 땅들은 어느새 물기를 머금은
촉촉한 땅들이 되어있었다. 아직 죽지는 않은 자들이 여기저기서 신음을 흘리고 있는것을 주령은
알고 있었지만 무시하려고 했다. 그러나
" …씨잉, 사람들도 살려주어야지!! "
" 쓰벌 …, 여러모로 귀찮게 만든단 말야, 인간들은. 그냥 죽게 놔두지, 쳇 "
말은 그렇게 하면서 오른손으로 산들바람을 일으키는 주령. 산들바람이 널부러져있는 사람들에게
살랑거리며 불자, 사람들의 썩어가던 살점들은 빠른속도로 회복되고, 그들의 정신까지고
시원하게 해 줬는지 모두 얼른 일어나서 미소를 지으며 함성을 질렀다.
주령은 그들을 보며 인상을 찡그리며 몸을 살짝 틀었다.
무릎을 꿇고 있는 실리아를 발견한 주령.
" 넌 또 뭐냐. 눈에 거슬리니까 일어서 "
" …벌은 달게 받겠습니다. "
" …뭐래냐. 귀찮게 내가 왜 너한테 벌을 줘야하는데 ? "
일어서라는 말에도 계속 무릎을 꿇은채 벌을 받겠다는 실리아를 향해 역시나 거만한 표정을 하고서
정말 귀찮다는 듯이 말하는 주령. 실리아는 주령의 어이없는 말에 당황하며 고개를 살짝 들었다.
" 뭐, 그렇게 벌을 받고 싶다면야, 흠 …. 아, 사흘안으로 이 나라에서 가장 좋다는 약초들을 모아와 "
" 예 ? 그, 그게 벌이옵니까 ? 정녕 그것이 벌이란 말씀입니까 ? "
" 그럼 내가 너한테 거짓말한다는거야 ? …씹, 그럼 벌로 널 죽여줄까 ? "
" …아, 아닙니다. 백호님의 명, 받들겠나이다. "
그리고는 일어서서 근위병들쪽으로 걸어가는 실리아.
" …어라 ? 난 그래도 좀 독한 벌 좀 내리려나 했는데 "
" 웅웅,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 "
비류와 강유의 염장지르는 말. 주령은 비류와 강유에게로 고개를 획 돌리면서 막 쨰렸다.
아까 주령이 화났을 떄 눈이 붉어지면서 엄청 무서웠던 장면이 생각나는 비류와 강유.
둘은 고개를 막 흔들며 아까 그 장면을 떨쳐버리며 주령에게 미안하다고 하고는
슬슬 뒷걸음질을 쳤다.
" …남자모습일 떄의 기억, 없지 ? "
" 남자모습 ? …몰라. 아무것도 기억안나. 분명 저녁이었는데, 벌써 아침이네 ? 흠. "
휘경의 말에 기억안난다는 주령. 비류와 강유가 고개를 갸웃했다.
" …후우, 놀라지마라, 비류, 강유. 지금 주령이는 이미 강유 너의 저주에 걸린 상태였었는데, 어제
저녁에 네가 똑같은 저주를 거는 바람에 그 부작용으로 아침엔 여자모습, 저녁엔 남자모습으로 살게돼.
여자모습일 때엔 예전의 기억은 물론이고 남자모습일 떄의 기억도 없어져.
반면 남자모습일떄는 여자모습일 떄의 기억외엔 모두다 기억하고있지. 어떄, 기억하기 쉽지 ? "
주령과 휘경은 알고있던 사실이라 담담했는데, 비류와 강유는 엄청 놀랐는가보다.
완전 패닉상태인 두사람. 스크림의 모습을 한 채로 혼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 …흐응, 알고는 있었지만 지금 다시들으니까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걸 ? 후후후 "
흐물거리는 두사람을 거만하게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고있는 주령. 두 사람은 사악하게 웃고있는
주령을 보며 이젠 흐물거리다 못해 녹아내리기 일보직전이었다.
두 사람이 녹아내리던 말던 상관없다는 듯이 더더욱 씽긋 웃으며 둘에게 다가가는 주령.
" 이봐들. 나한테 잘못한게있으니까, 앞으로 너희 둘은 내 노예다. "
" 에에 ? "
엄청 놀라며 소리를 지르는 두사람에게 그런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이 가소롭다는 듯 픽 웃으며
강유의 턱을 살짝 잡아 올리는 주령. 강유의 귀가 살짝 새빨개졌다.
" 특히 네놈은 내 저주 풀어줄떄까지야, 그떄 동안 현강유, 넌 내소유다. 쿡 "
20
결국 주령이가 실리아에게 내린 벌 떄문에 사흘동안 더 머물게 된 그들.
사흘동안 그들은 아침엔 여자주령, 저녁엔 남자주령인 것만 제외하면 평화롭게 지냈다.
그리고 약속한 사흘이 되었다.
" …주령님 ! "
" 엉, 왔냐 ? "
다행히도 지금은 아침이라서 여자모습인 주령. 자신이 실리아에게 내린 벌을 잘 기억하고 있었다.
" 말씀하신 약초들을 구해왔습니다. "
가지각색의 약초들은 장정 5명이 다닥다닥 붙어 들고와야할 만큼 커다란 바구니에
깔끔하게 정돈되어 담겨있었다. 흙냄새와 약초냄새가 살짝 풍겨져나왔다.
주령은 귀찮다는 기색이 역력한 표정을 하고서, 그 바구니쪽으로 걸어갔다.
" …많네. 이거, 저주해독에 좋은 약초들만 남기고 가져가 "
" 네 ? 네, 알겠습니다. "
뒤에 있던 시녀들이 막 몰려오더니 바구니 주위에 옹기종기 둘러앉아 양 손에 약초를 들고,
이리저리 둘러보며 저주해독에 좋은 약초들만 바구니에 담기 시작했다.
양이 아주 많았지만 시녀들의 수는 10명이나 되었기에 다 구별해서 정리하는데에
1각(15분)정도밖에 걸리지 않을 것 같았다.
" …저기, 저, 저주해독이라니 설마 "
" 노예, 입다물고 어꺠주물러 "
" 히잉 "
주령에게 말걸다 입다물라는 소리와 함께 '어꺠주물러' 란 명령까지 받게된 강유.
울쌍을 지으며 안락의자에 편안하게 앉아있는 주령의 뒤로 가서 뭉쳐있는 어꺠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영 맘에 안든다는 주령의 표정.
같은 노예처지에 놓인 비류가 주령의 표정이 보이지 않는 강유에게 눈짓을 했다.
그러나 못알아듣는 불쌍한 강유.
" …씹, 제대로 안주물러 ? 백호궁에 있을 땐 근육따위 안뭉쳤는데 너떄문에 적토계와서 이모양이잖아! "
" 으, 응!!! 제, 제대로 할께 !! "
" 어쭈, 뒤에 '요' 안붙이냐 ? "
" 하, 할꼐요 !!!! "
앞으로 더욱더 불쌍해질 강유를 위해 이 장면은 여기서 CUT!
* * * * * * *
" 이 약초로 나한테 건 저주를 조금이라도 해독할 해독제 만들어 "
" …그, 그렇게 말해도 그럴려먼 시간이 … "
" 내일 저녁이 되기 전까지 다 만들어 "
이제 곧 저녁이라 그런지 강유에게 대충 말하고는 방으로 쏙 들어가는 주령.
아무리 천재(?)라고는 하지만 저주에 대한 해독제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도 없는 강유가 어떻게
내일 아침까지 해독제를 만들 수 있겠는가.
그저 약초를 만지작거리면서 한숨만 내쉴 뿐. -_-
" …그러니까 우선 드래곤의 이자를 분해할려면 청분삼(淸分蔘)이 필요한데, 없네, 히잉 "
중얼중얼 거리면서 잘 정돈되 있는 약초를 마구잡이로 흩으리면서 눈물을 뚝뚝 흘리는 강유.
강유는 원망어린 눈초리로 비류를 쳐다보았지만 이런 복잡한 제조에는 재능이 없는 비류로서는
강유의 시선을 무시하며 자는 척.
" …해서 이거랑 저거랑 요거랑 내가 가져온 제조약을 두방울 떨어뜨리면 …에효 "
바다빛을 띄는 투명한 액체를 무슨 보물이 되는냥 조심히 다뤄놓고는 품안에서 손바닥만한 작은 책자를
꺼내는 강유. 해골모양도 있고, 무슨 암호같은 것들도 있는 걸로 보아, 저주와 해독제에 관한 책자인 듯.
품에서 외알안경까지 꺼내 쓰고는 열심히 책자를 들여다보는 강유를 보니
저주의 달인, 약물의 천재라는 말 들이 괜히 생겨난 것이 아님을 볼 수 있었다.
" 다, 다, 다 …됐…다 … "
밤을 샜는지 눈 및이 퀑하고 다크써클이 옅게 진 불쌍한 강유.
지금이 아침이니 아마도 밤을 샌 듯.
그래도 꼴에 친구라고 강유 옆에 있는 쇼파에서 새우잠을 자고 있는 비류를 보자,
강유가 피곤한 얼굴을 하고서 씩 웃었다. …상상하지 마시길;
" …하암, 뭐야. 다됐어 ? "
" 응 ? 아, 아니 네 !!! 히히, 마셔봐!!! …요 ! "
피곤한 얼굴에 풍부한(?)미소를 지으며 에메랄드빛 투명한 액체를 주령에게 건네는 강유.
주변에 이상한 액체들도 있고, 그 많던 약초들도 거의 없는 걸로 보아서, 밤새도록 완성한 것들 모두가
실패여서 만들고, 버리고 또 만들고 하는것을 되풀이한 모양이다.
주령도 신경은 쓰이는지 주변을 둘러보다 강유의 손을 꼭 잡는 주령.
" 이게 효과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정성을 생각해서 … "
피곤한 기색이던 얼굴에 혈색이 돌아오고, 다크써클도 없어진 강유.
아무래도 주령도 강유가 가엾긴 했는지 치료마법을 걸어준 듯 했다.
그리고 강유에게서 받은 약 한컵정도 되는 양의 해독제를 벌컥벌컥마시는 주령.
강유는 혹여나 주령이 잘못될까 가슴을 조리며 주령이 마시는 것을 지켜보았다.
" …어 …머리가 … "
쓰러지는 주령. 주령과 강유를 지켜보던 비류와 휘경은 엄청 놀란 눈치지만, 정작 가장 놀래야 할
강유는 이미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담담한 표정을 짓고서, 쓰러지는 주령을 가볍게 받아 안고는
주령의 방으로 향했다. 아직도 어리둥절한지 뚱한 표정을 짓고서 강유를 따라들어가는 강유와 휘경.
"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 "
평소에도 궁금한건 절대 못참는 휘경이가 먼저 물었다.
비류가 침대에 주령을 눕히는 강유를 보며 휘경이의 생각과 똑같다는 걸 증명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주령이에게 이불을 푹 덮어주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그들에게 돌아서는 강유.
" 내가 주령이에게 건 저주를 연구하고 계획해서 제조하는데 까지 총 몇일이 걸린 줄 알아 ? "
휘경이의 물음에 대한 답이 아닌, 되려 자신이 질문하는 강유.
강유의 약간 절망어린듯한 목소리에 입이 떨어지지 않는지 대답을 하지 않는 휘경과 비류.
" …자그마치 1년이야. 우리에겐 얼마 안되는 시간이지만 일년이면 얼마나 긴 시간인지 알지 ?
그런데, 이 해독제를 만드는데 하루가지고 될 것 같아 ? …해독제는 저주보다 훨씬 더 까다로워.
게다가 여긴 적토계. 평범한 약초들 가지고 해독제를 만들 수 있을리가 없잖아 !
연구는 물론이고 계획조차 없는내가 주령이를 구할 수 있을리가 없지, 하하.
주령이의 기억이 뒤죽박죽이니, 그것만이라도 되찾아 주기 위한 해독제를 만들었을 뿐이야. "
휘경은 이제 별로 상관없다는 듯 주령을 쓱 한번 흘겨보고는 방을 나갔다.
비류는 강유의 침울한 표정을 보더니 어찌해야 될 지 모르는 듯 고민을 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의자에 털썩 앉았다.
" …그럼 이제 여자모습일 때도 모든 기억이 나는거야 ? "
" 그래. 남자로 변했을 떄도 여자일떄의 기억이 이제 날꺼야. "
혼잣말 처럼 '그거 잘됐네' 라며 시선을 돌리는 비류.
" …주령이는 정말 착해. 그래서, 내가 좋아해도 되는지 자꾸만 의문이 들어 "
슬픈 표정을 짓고서 조용히 말하는 강유를 보며 덩달아 자신도 슬픈 표정을 짓는 비류.
비류가 강유에게 옆자리의 의자를 가리키며 오라고 손짓했다.
고개를 푹 숙이며 걸어와 비류의 옆에 있는 의자에 앉는 강유.
" 백주령이 뭐가 착하다고, 완전 마왕이 따로 없구만 "
" 아냐. 속은 착해. …주령이는, 내가 해독제 따위 못만들거 알고 있었던거야 "
" 뭐 ? "
" …내가, 내가 자신에게 도움이 되고싶어하는 걸 알고서 나에게 기회를 준거야, 주령이는 "
고개를 푹 숙인 강유의 얼굴 밑은 눈물방울로 얼룩졌다.
비류는 픽 웃으며 강유의 머리에 자신의 손을 턱 올려놨다.
" 킥, 놓치고 후회하지말고 계속 주령이 좋아해라. 안그럼 누구한테 뻇길지도 모른다 ~ ?"
" 응 ? "
" …그래, 분명 그녀석 …아, 아냐. 하하하, 나 나가볼꼐 "
강유가 다시 기운을 차린 얼굴로 귀엽게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묻자 말을 얼버무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가는 비류. 강유가 이상하게 보긴했지만 비류는 아랑 곳 하지 않았다.
" …그래. 분명 그녀석, 주령이를 좋아하고 있어. 그리고 "
고개를 푹 숙이고는 살며지 고개를 돌려 휘경의 방을 오랫동안 보는 비류.
그의 눈은 고심에 찬 아름다운 주황빛을 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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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lic。] [※※ 저주에 걸린 백호여왕님 ※※] (11~20)
*쥔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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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05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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