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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4주일설교 누가복음13:18-21
본문: 누가복음13:18-21
제목: 하나님 나라는 무엇과 같을까?
오늘은 누가복음13:18-21의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는 무엇과 같을까?”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저는 바이킹이라는 드라마를 본 적이 있습니다.
바이킹은 북게르만족 노르드인이고, 노르드어를 사용하며,
고향 땅인 스칸디나비아로부터 8세기 말에서 11세기
말까지 북유럽과 중앙유럽까지 항해하며
교역하거나 약탈로 활보한 바닷사람을 가리켜
바이킹이라고 부릅니다.
지금 있는 나라로 말하면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 드라마는 수많은 전쟁이야기가 나옵니다.
특별히 토속신인 오딘과 토르를 믿는 바이킹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기독교인과의 싸움입니다.
당시 서 유럽 지방은 기독교 국가였습니다.
바이킹과 서유럽 사람들은
서로의 신을 위해 엄청난 희생하며 싸웠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싸우다 죽으면
기독교인은 천국에 간다고 하고
바이킹들은 발할라에 간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의 목적은 오직 땅을 차지하는 것이고
보물과 먹을 것을 빼앗는 것이고
권력을 유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곳에 사랑과 평화는 없었으며
정의와 선함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신들을 찬양하고 신의 뜻이라고 말하고
십자가를 앞세우고 전쟁을 하고
십자가 앞에서 회개도 하고 성찬도 참여하지만
기독교인다운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기독교인의 모습
더 나가 기독교인이 이루어야 할
하나님의 나라는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왕이었고, 사제이었고, 십자가를 목에 걸고
십자가를 앞세웠지만 실상은 전혀
하나님 나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그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고 보여 주시고 살게 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자라면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잘 알아야 하며
그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1,하나님의 나라가 무엇과 같을까요?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과 같을까라고 물어 봅니다.
무리들에게 무슨 대답을 바라고 물어 본 것이 아닙니다.
무리들의 생각을 상기시키기 위해서
그렇게 물으신 것입니다.
무리들로 하여금 질문을
가져보기 위해서 그렇게 물었습니다.
저도 설교할 때 질문을 많이 합니다.
왜 그럴까요?
질문에 답을 하라는 말보다는
지금의 자신이 가진 생각을 상기시키고
다르게 생각해 보라는 말입니다.
질문에 답은 예수님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어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으로 행동하지 않고
우리의 뜻대로 행동하지 않고
예수님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 지를 들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무엇과 같다고 하십니까?
마치 사람이 자기 채소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과 같다고 하십니다.
겨자씨는 좁쌀 만 합니다.
한줌이면 수백 개도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겨자씨는 그렇게 작은 씨앗이지만
그것이 땅에 심겨져 자라게 되면
잘 자라면 3m 정도나 자란다고 합니다.
그런데 겨자씨가 심겨져 그렇게 크게 자라 나무가 되고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이는 것이
하나님 나라와 같다고 예수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비유를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생각 속에 그림을 그려서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말씀은 묵상이 필요합니다.
말씀을 보고서 듣고서 읽고서 상상해 보아야 합니다.
그냥 믿습니다가 아니라
이 말씀이 무엇인가 숙고해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 이 그림이 상상이 되십니까?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이렇게 그림으로 그려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그림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먼저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해야 합니다.
왜 하나님 나라를 그림을 그려서 보여줄까요?
왜 비유를 들어서 하나님 나라를 설명해 줄까요?
겨자씨와 그리고 그것이 자라서 큰 나무가 되는 것이
하나님 나라와 무슨 상관이 있다고
이런 말씀을 해 주시는 것일까요?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예수님은
어떤 장소라고 말씀하시 않습니다.
물론 낙원을 말씀하십니다.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에서 낙원을 말씀하시고,
십자가에서 오른 편 강도에게 낙원을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를 말씀하실 때에는
장소를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는 죽어서 가는 장소를
말하기 보다는 이 땅에서 삶
곧 하나님이 통치하는 이상적인 삶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장소가 아닌
하나님이 뜻이 이루어진 곳,
하나님의 간절한 염원이 이루어진 곳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마음입니다.
좋은 집에서 좋은 차타고 좋은 음식 먹으며
사는 것을 하나님의 나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어떠한지
어떠한 상태인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겉 삶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한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시는 장면이
사무엘상 16장에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1대 왕인
사울에게 실망을 하셨습니다.
사울은 하나님 마음에 합당한 자가 아니라
군사적 영웅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불레셋과 전쟁 중이었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군사적 영웅인 사울이 왕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사울은 그렇게 행동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그러한 사울에게 실망하셨습니다.
그리고 사울은 군사적 왕에서
이제 하나님게 제사하는 사제권까지 획득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실망하시고
사무엘에게 새로운 왕을 선택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새의 집에 가서 왕이 될 자를 찾았습니다.
그 집에 갔을 때 첫째 둘째 셋째 --일곱째까지
다 군사적으로 훌륭한 자들이었습니다.
몸집이 컸고, 잘 생겼고, 싸움도 잘하게 생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이
왕이 되기를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의 마음은 바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중심을 보실 때
하나님이 원하시는 부분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사무엘 선지자도 그들이 좋아 보였습니다.
겉으로 멋있어 보이고,
강건하게 보이고, 훌륭해 보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눈도 그렇습니다.
그런 사람이 앞에 있으면 멋있다고 하고 부러워합니다.
우리의 눈은 그런 것을 좋아합니다.
우리의 눈은 그러한 것에 익숙합니다.
사람들은 눈에 익숙한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익숙한 것이 아름답습니다.
익숙한 것이 향기롭습니다.
그래서 고향이 좋다고 하고 가족이 좋다고 합니다.
우리의 눈은 그렇게 보도록 습관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눈은 잘생기고 예쁜 사람들에게
주목하고 관심을 가지고 좋아합니다.
그리고 그런 눈으로 세상을 봅니다.
사람은 눈으로 세상을 봅니다.
사람은 눈으로 사람을 봅니다.
그렇기에 중요한 것은 잘생기고 예뻐야 하고
그가 나에게 무엇을 주는가?
그것이 중요하고 무엇을 해 줄 수 있는지를 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와 다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보십니다.
그 사람의 감정이 어떤지, 그 사람의 감각이 어떤지,
그 사람의 진심을 어떤지를 보십니다.
그 사람의 화려한 말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얼굴 표정을 보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주는지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중심 그 마음을 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사무엘은
이새에게 다른 아들은 없는지 묻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보았던 이새의 아들에게서는
겉모습이 훌륭해 보였지만 진심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른 아들이 없는지를 물었더니
이새는 막내아들 다윗을 데려왔습니다.
사무엘에 앞에선 다윗은 어떠하였습니까?
그는 순결하고 즉흥적이고, 진실하고
매 순간이 처음이며 시작인 긍정적인 어린 아이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어린아이와 같은 자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윗을 사울은 대신하여
왕으로 택하였습니다.
마음이 맑은 사람인 다윗을 택하였습니다.
진심이 통하는 사람인 다윗을 택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보이지 않지만
사소한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의 것입니다.
숨겨져 있지만 나한테 소중한 진심을 품고
자신의 삶을 차근차근하게 실천하여 살아가려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를 사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는 밭에 뿌려진
겨자씨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뿌려졌을 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가 내 마음 속에 품은 진심,
진실 된 어떤 생각은 보이지 않습니다.
자신의 삶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입니다.
그 중요한 것을 내 삶에서 매일 매일 고백하고,
겸손하게 행하는 사람입니다.
건축가 미스 반델레온은
“신은 사소한 것에 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사소한 것은
우리 마음에 담겨져 있는 어떤 생각입니다.
사소하게 보이는 작은 생각이
위대한 것을 이루게 됩니다.
겨자씨의 작은 씨앗 곧 사소한 것이 심기어 질 때
키가 큰 나무가 되어 새가 깃들이어 쉼터가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마음속에 사소하지만
품은 선 한 뜻, 사랑, 헌신, 기쁨이
결국은 우리를 하나님 나라에 살게 하는 것이고
그것이 결국 다른 사람들에게 안식처가 될 수 있습니다.
2.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1)겨자씨를 우리 손에 쥐어야 합니다.
겨자씨를 내가 쥐었을 때 아무도 모릅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말씀을 듣고 받아 들였을 때는 아무도 모릅니다.
우리가 복음을 듣고 받아 들였을 때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겨자씨를 뿌리려면 움켜쥐어야 합니다.
아무리 많은 씨앗이 창고에 있다고 해도
움켜쥐지 않으면 뿌려질 수 없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내가 움켜쥐어야 합니다.
강단에서 전해지는 말씀을 내가 받아 들여 믿어야 합니다.
성경에 있는 말씀을 내가 받아 들여 믿어야 합니다.
2)겨자씨를 마음에 품어야 합니다.
겨자씨를 쥔 농부를 그것을 채소밭에 심었습니다.
겨자씨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나의 채소밭에 가져다 심어야 합니다.
나의 채소밭이 어디일까요?
나의 삶의 현장입니다.
그 말씀이 내 삶의 현장에 뿌려져야 합니다.
나의 삶의 현장은 가정이고 내가 만나는 친구와 이웃이고 내가 일하는 직장입니다.
좋은 씨앗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는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손에 좋은 소금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음식에는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씨앗이 뿌려질 때 역사가 일어납니다.
소금이 음식에 뿌려질 때 맛이 변화가 됩니다.
내가 삶 속에서 그 말씀을 실천하고 행동할 때
그 씨앗은 자라게 되어 있고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
영향력을 주고 변화를 주고 다른 사람에게
쉴 수 있는 안식처를 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다른 사람에게 쉬는 곳이 되고 있습니까?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와서
평안을 누리며 기뻐하고 있습니까?
하늘 나라의 씨앗인 말씀을 듣고
그 말씀으로 세상에서 살아갈 때
다른 사람과 관계 속에서 행할 때
그런 일이 일어납니다.
3)그 씨앗은 장식을 하면 안 됩니다.
씨앗을 분해하거나 가공하거나
가열하거나 쪄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받아 들여
내 생활에 적용될 때 역사가 일어나고
변화가 일어나고 놀라운 은혜가 나타나게 됩니다.
불뱀에 물린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 길은
장대에 걸린 놋 뱀을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바라보고 믿는 것입니다.
그것이 단순하다고 해도 생명과 능력이 있습니다.
겨자씨는 작습니다. 단순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땅에 뿌려지면
전혀 다른 존재가 되어 큰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리고 뿌려진 씨앗은 얼마 동안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청년 때 뿌려진 씨앗이
장년의 때에 열매가 될 수 있습니다.
부모가 뿌린 씨앗이 자녀가 거둘 수도 있습니다.
금생의 뿌린 씨앗이
내가 죽은 후에 열매가 될 수 있습니다.
뿌려질 때 상상하지 못했던
놀라운 풍성한 결과를 얻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은 죄에 얽매였던 자를 자유롭게 합니다.
복음은 소망이 없던 존재가 변화가 되어
놀라운 존재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한 영혼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은 작은 일로 보여 집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한 영혼은 통해서 한 가정이
한 사회가 한 나라가 변화될 수 있습니다.
씨앗을 뿌릴 때 어떻게 그 작은 씨앗을 통해서
새들이 와서 노래할 것이라고 생각하겠습니까?
씨앗을 뿌리는 일과 새가 와서 노래하는 일이
아무런 상관이 없어 보입니다.
지금 뿌려진 씨앗이 어느 때
성장이 와서 어떤 결과로 올지 모릅니다.
손에 잡히기도 힘든 씨앗에서
새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까?
그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를 꿈꾸는 일입니다.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그렇기에 작은 일이 아닙니다.
예수 믿고서 병을 낫는 일도 있습니다.
예수 믿고 기도했더니 부자가 되고
성공하는 일도 있습니다.
예수 믿고서 교회를 세우고
놀라운 일을 하는 일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 믿고서 정말 중요한 일은 무엇입니까?
적은 누룩을 반죽된 가루 서 말속에 넣었을 뿐인데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 가루 서 말이 다 부풀게 되었습니다.
바로 누룩은 그렇게 반죽된 밀가루 속에 들어갈 때
엄청난 변화를 일으키게 됩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것은 누룩의 특징 때문에 그렇습니다.
누룩이 밀가루 반죽을 만나면
부풀게 하는 그런 특징 때문에
전체를 누룩 화 하는 능력 때문에 그렇습니다.
겨자씨 안에 이미 새들이 깃들이게
자라날 생명력이 있었듯이
누룩에게도 그런 능력이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겨자씨가 땅에 뿌려지는 것이며
중요한 것은 누룩이 밀가루 반죽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책이 귀하고
성경을 읽는 것도 귀하고
예배를 드리며 말씀을 듣는 것도 귀하고
성경을 암송하는 것도 귀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나의 삶 속에서 심겨져야 합니다.
나의 삶 속에 뿌려져야 합니다.
나의 삶에서 그 말씀이 행해져야 합니다.
그 말씀이 나의 삶에 적용되어야 합니다.
그때 싹이 나고 자라게 되며
그 자란 것을 통해서 세상에 영향력을 끼치는 삶이 되며
그 영향력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평안함을 누리며
안식을 누리게 됩니다.
더 나의 변화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이 변화를 이루며
각자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룩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목적의식입니다.
목적의식이라는 것은 자기 행위의 목적에 관해
가지는 뚜렷한 자각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살기를 원하는 목적에 대해
뚜렷한 자각을 가지고 있습니까?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예수를 믿는 것에 가장 중요한 목적은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뚜렷한 자각이 필요합니다.
어떤 자각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렇게 살겠다는 자각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작은 것이지만
그것을 실천하겠다는 행동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예수님의 말씀으로 주신 씨앗이
내 속에서 자라나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은 내 마음 밭에 뿌려지는 것이며
그것은 내 삶의 밭에 뿌려지는 것입니다.
뿌려졌다는 것은 그것으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듣고 하는 내 삶에서 작은 행동
이웃을 향한 작은 사랑 작은 헌신 작은 실천이
상상치 못할 놀랍게 커진 나무로 자라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겠다는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돈을 얼마 벌고 어떤 지위에 올라가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의 삶을 살겠다는 자각
그것이 우리의 목적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의 시간을 씨앗을 받는 시간이며
우리가 사는 세상에 나가 살아가는 것은
그 씨앗 손에 잡고 뿌리는 시간입니다.
이것이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전원에 연결되어 있지 않는 전기 줄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상수원에 연결되어 있지 않는 수도관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예배와 삶이 연결되어야 하고
말씀과 내 마음이 연결되어야 하고
세상에서 내 행동이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행동해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 하나님 나라가 여러분의 삶에
풍성하게 이룩되어 하나님 나라를 사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