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터 가는 길
성탄절 아침이었다. 아파트에서 내려다보이는 중학교 운동장과 맞닿은 교회는 성탄 예배를 나선 신도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아침나절 칡차를 닳려 놓고 흙이 묻은 배낭을 씻어 두었다. 점심을 먹고 나서 산책을 나섰다. 사림동으로 건너가 사격장으로 올랐다. 왕성한 수세를 자랑하는 메타스퀘어다. 보도에는 블록을 뚫고 드러난 뿌리를 잘라내고 바닥을 손질하는 공사를 하고 있었다.
휴일을 맞아 산행객들이 더러 보였다. 먼저 산을 오른 사람들은 내려오고 내 뒤를 이어 산을 오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같은 문학 동인으로 안면이 있는 경찰관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상관과 함께 산행을 끝내고 내려오는 길이었다. 클레이 사격장에선 간간이 총소리가 들려왔다. 소목고개를 오르다 약수터에서 샘물을 한 모금 떠 마셨다. 고개에서 나아갈 방향을 가늠했다.
정병산이나 봉림산 정상으로 향하지 않았다. 가마골 약수터로 난 숲속 나들이 길로 들었다. 창원컨트리클럽과 이어진 산자락에 신이대 군락지가 나왔다. 옛날엔 신이대로 화살대를 만들어 썼다고 한다. 내 어릴 적에는 신이대를 쪼개어 방패연을 만들었다. 요즈음은 텃밭 고추를 가꾸는 사람들이 지주로 꽂아 쓰기도 한다. 산등선 중간에서 용강고개와 가마골 약수터 갈림길이 나왔다.
북사면은 단감나무과수원이었다. 창원대학 뒤를 빠져나온 24호 국도 터널은 덕산마을 앞으로 육중한 교각이 휘감아 돌아갔다. 남해고속도로를 달리는 차량은 꼬리를 이어갔다. 건너편은 구룡산이 병풍처럼 둘러쳤다. 그 아래 산기슭에는 용전마을과 남산마을이 나란히 펼쳐 있었다. 새로운 자동찻길이 생겨 아늑하던 마을의 자연경관이 많이 달라져 삭막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들어섰다.
용강고개로 가는 길은 몇 차례 가보았다. 태복산으로 건너가는 숲속 나들이 길이 새로 뚫어졌다. 예전에는 지금보다 아래쪽에 숲속 나들이 길이 나 있었다. 그 길은 봉림사 폐사지로 올라가 봉림산 정상 밑을 돌아가도록 했다. 이젠 골프장 남사면에다 가마골 약수터로 가는 길을 새로 뚫었다. 황톳길은 습기를 알맞게 머금어 발을 디딜 때마다 등산화 바닥에 와 닿는 촉감이 폭신했다.
몇몇 분재원이 있는 골프장 입구를 지나 태복산을 향해 올랐다. 계곡 이슥한 곳에 가마골 약수터가 있었다. 약수를 한 모금 마셨다. 약수터에서 비탈을 오르니 태복산 정상과 제2 약수터로 나뉘는 갈림길이었다. 수평으로 길이 난 제2 약수터로 돌아갔다. 산허리를 제법 돌아가니 명서동 살 적 다녀본 길이라 주변의 지형지물이 눈에 익었다. 제2 약수터에서도 약수를 한 모금 마셨다.
편백나무 조림지를 지나 제3 약수터로 갔다. 편백나무 숲에는 평상이나 벤치를 설치되어 삼림욕을 즐기기 알맞았다. 태복산에는 약수터가 세 곳인데 제3 약수터가 가장 높은 데 있다. 산 아래 사는 사람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약수터다. 그곳 물맛도 놓치지 않았다. 이제는 하산 방향을 도계동 체육공원으로 잡았다. 울타리 너머 샷을 날려대는 골퍼들은 새장 속에 갇힌 새처럼 보였다.
소목고개에서 가마골 약수터를 지나 태복산까지 이르는 길은 황톳길이 대부분이었다. 콘크리트바닥이나 아스팔트길에 익숙한 현대인이다. 딱딱하고 삭막한 길을 벗어나 흙바닥 길을 걸으니 마음이 한결 고요해졌다. 대나무와 소나무와 아카시나무와 졸참나무와 편백나무와 오리나무들을 스쳐 지났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산을 오르거나 내려가는 사람들은 여전히 계속 이어졌다.
산속에는 올망졸망한 오솔길이 실핏줄처럼 엉켜져 있었다. 사람들이 하도 많이 다녀 길바닥은 반질반질했다. 길바닥에 쌓인 가랑잎이나 솔잎은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에 바스라지고 있었다. 모두들 바쁘게 사는 사람들이지만 자신의 건강을 지키지 위해 부지런히 산을 오르내렸다. 무학산으론 겨울의 가녀린 햇살이 기울고 있었다. 집을 나서 길을 걸은 지 서너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12.12.25